협동조합 청풍의 나서경 대표(24)가 말하는 지역 정착은 단순히 ‘주소를 옮기는 선택’이 아니다. 그는 머니투데이 와의 <더리더>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일단 이사부터 하라는 것은 청년에게 전 재산을 건 베팅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며 “정착에 이르는 계단을 촘촘하게 놓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인천 강화군에서 활동하는 협동조합 청풍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청년 커뮤니티다. 강화에 살지 않더라도 지역과 관계를 맺고 문화와 자산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을 ‘관계인구’로 본다. 당장 이주할 사람을 가려내기보다 누구나 지역을 찾아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지역소멸보다 ‘우리가 살고 싶은 강화’를 고민한 청년들
청풍은 2013년 강화 출신 청년 2명과 이주 청년 3명이 강화풍물시장에서 지역 특산물을 올린 화덕피자를 팔면서 시작됐다. 출발점은 거창한 지역소멸 담론이 아니라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고민이었다.
당시 청풍 구성원들이 체감한 지역 청년의 일자리 선택지는 공장과 편의점, 공무원 정도였다. 하고 싶은 일과 생계를 한자리에서 해결하기 어렵다면 직접 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강화에 청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서로 만날 자리와 취향을 나눌 공간, 새로운 일을 함께 도모할 사람이 부족했다. 청풍 구성원들은 시장 상인들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물건을 샀다. 바쁜 가게의 일손을 거들며 조금씩 신뢰도 쌓았다.
활동 영역은 2013년 피자집에서 2014년 ‘아삭아삭순무민박’, 2016년 ‘잠시섬’, 2021년 ‘강화유니버스’로 넓어졌다.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사업에는 두 차례 탈락한 끝에 2021년 선정됐다. 강화유니버스라는 이름과 세계관도 두 번의 탈락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나 대표는 “우리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강화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겪은 일을 외부에서도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옮기다 보니 ‘세계관’이라는 형식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니버스’는 누구나 접속해 함께 만들어가는 세계관을 뜻한다. 고향인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면 외지인은 계속 손님으로 남지만, 세계관 안에서는 접속하는 순간 누구나 ‘플레이어’가 된다. 참가자는 일곱 가지 ‘섬살이 유형’ 가운데 자신의 캐릭터를 고르고, 주민과 상인, 창작자는 ‘강화유니버스 피플’로 만난다.
◇2~5일 머물며 손님에서 이웃으로…‘잠시섬’이 건네는 환대
◇2~5일 머물며 손님에서 이웃으로…‘잠시섬’이 건네는 환대
강화유니버스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2016년부터 운영해온 체류 프로그램 ‘잠시섬’이다. 이름에는 ‘잠시 일상을 멈추고 서다’와 ‘잠시 강화도라는 섬에 머물다’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참가자는 미식가와 예술가, 노마드 등 일곱 가지 유형 중 하나를 골라 2박에서 5박 동안 강화에 머문다.
참여에 연령이나 거주지, 직업 제한은 없다. 정착 의향도 묻지 않는다. 나 대표는 “정착 의향을 모집 조건으로도, 성과 지표로도 삼지 않는다”며 “정착을 위한 면접을 본다는 압박이 사라져야 지역을 편안하게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정은 유명 관광지를 최대한 많이 둘러보는 일반적인 여행 프로그램과 다르다. 참가자는 앱에 안내된 미션을 따라 고양이와 인사하고 카페 사장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거나 풍물시장에서 특산품을 산다. 지역 쿠폰은 관광객이 골목 상점을 찾아갈 작은 계기가 된다. 저녁에는 호스트와 함께 하루를 돌아보고 일기를 쓴다.
처음에는 “어디가 좋으냐”고 묻던 참가자가 다시 찾아와 “제가 무엇을 도우면 되나요”, “여기서 모임을 열어도 될까요”라고 물을 때가 있다. 운영진이 기다리는 변화도 바로 이런 순간이다.
나 대표는 청풍이 하는 일을 숙박업이나 여행업이 아닌 ‘환대업’이라고 표현했다. 친절이 손님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환대는 기회와 자원은 물론 권한과 역할까지 나누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참가자는 프로그램에 앞서 지역과 낯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담은 ‘강화유니버스 약속문’을 읽고 웰컴퀴즈를 푼다. 지역 특성에 맞춘 성폭력 예방 가이드북도 제작했다.
잠시섬에는 2016년 이후 약 2만명이 참여했다. 최근에는 연간 1500명 안팎이 찾는다. 참가자의 70~75%는 재방문자이거나 기존 참가자의 추천으로 유입된다. 나 대표는 최근 3년 동안 잠시섬 참가자 20명이 강화로 이주했으며, 참가자에서 호스트로 역할을 바꾼 ‘잠시섬 크루’도 약 10명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프로그램인 ‘매일매일 영감모임’은 지난 한 해 동안 약 150차례 열렸다.
◇두 번의 정착 시도 끝에 강화유니버스 운영자가 된 나 대표
강화유니버스의 운영자이자 강화에 정착한 청년인 나 대표도 지역과 관계를 맺는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왔다. 인천에서 자란 그는 중학생 때 입시 경쟁에 답답함을 느껴 강화 산마을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3년 동안 학교협동조합 ‘마테’의 대표를 맡았지만, 당시 그에게 강화는 ‘학교가 있는 곳’이었다.
◇두 번의 정착 시도 끝에 강화유니버스 운영자가 된 나 대표
강화유니버스의 운영자이자 강화에 정착한 청년인 나 대표도 지역과 관계를 맺는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왔다. 인천에서 자란 그는 중학생 때 입시 경쟁에 답답함을 느껴 강화 산마을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3년 동안 학교협동조합 ‘마테’의 대표를 맡았지만, 당시 그에게 강화는 ‘학교가 있는 곳’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갭이어를 갖고 강화에 남으려 했던 첫 번째 정착 시도는 실패했다. 지역 어른들은 좋은 결심이라며 격려했지만, 열아홉 살 청년이 실제로 구할 수 있는 집과 일자리는 마땅치 않았다. 결국 졸업 전 서울의 한 스타트업에 취직해 강화를 떠나 약 6개월간 일했다.
두 번째 기회는 2021년에 찾아왔다. 먼저 청풍에서 일하던 학교 선배가 청년마을 사업을 함께 해보자고 연락했다. 서울에서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실제로 하는 일이 분리돼 있어 무척 답답했다. 청풍이라면 ‘살고 싶은 삶을 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강화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6개월만 일하고 해외로 떠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해 말 정식 조합원이 됐고, 2023년에는 이사장을 맡았다.
같은 지역에 남으려 한 두 번의 시도 가운데 한 번은 실패하고 한 번은 성공했다. 나 대표는 그 차이가 ‘조직과 동료’에 있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시도 때는 일을 함께할 동료와 이웃, 자신의 가치관을 존중해주는 안전망이 없었다. 2021년 돌아왔을 때는 세 가지가 모두 있었다.
나 대표는 “청풍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강화가 훨씬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며 “누가 어떤 마음으로 가게를 열었고, 그 장소에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알게 되면서 무심히 지나치던 동네가 다르게 보였다”고 말했다. 삶을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졌다. 그는 “좋은 삶의 기준이 ‘무엇을 이뤘는가’에서 ‘누구와 살고 있는가’로 옮겨갔다”며 “강화에 정착했다는 것은 내가 받은 환대를 다음 사람에게 돌려줄 자리를 얻었다는 뜻”이라고 했다.
물론 지역 생활에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의료와 교통은 개인이나 민간 조직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좁은 지역에서는 사람들과 빠르게 가까워지는 만큼 관계가 어긋났을 때 피할 곳이 적다는 양면성도 있다. 장을 보러 갔다가 업무 이야기를 나누고, 회의를 마친 뒤 함께 밥을 먹는 등 일과 삶의 경계도 흐릿하다.
나 대표는 “그럼에도 이곳에서 얻는 것이 훨씬 크기 때문에 강화에 있다”며 “평생 살겠다는 각오라기보다 여기서 하려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에 가깝다”고 말했다.
◇한 번 온 100명보다 다섯 번 온 20명…강화유니버스가 꿈꾸는 강화
◇한 번 온 100명보다 다섯 번 온 20명…강화유니버스가 꿈꾸는 강화
그는 지역소멸 대응 정책의 기준도 ‘몇 명이 이주했는가’에서 ‘몇 명이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대표는 “한 번 온 100명보다 다섯 번 온 20명이 지역을 바꾼다”며 “이주를 성공과 실패로만 나누면 떠난 사람은 다시 지역을 돌아보지 않게 된다. 하지만 관계인구의 관점에서 보면 서울에 살면서 1년에 세 번 찾아오고 강화의 물건을 사고 친구를 데려오는 사람도 여전히 강화의 편”이라고 말했다.
짧은 체류와 완전한 이주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도 과제다. 며칠간의 ‘살아보기’에 그치지 않고 한두 달 동안 실제로 거주하며 지역에서 일해볼 기회까지 마련돼야 정착 여부를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역 청소년을 커뮤니티로 초대하는 사업도 이어가고 있다. 청년정책은 주로 스무 살 이후를 대상으로 하지만, 지역을 떠날지 남을지를 처음 고민하는 시기는 열여덟이나 열아홉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에서 만들고 지역 밖에 판매하는 구조도 강화할 계획이다. 지역 농가와 소상공인, 장인을 외부의 창작자와 브랜드 기획자, 개발자와 연결해 상품과 콘텐츠를 함께 만든다. 지역 상인이 직접 자신의 가게를 알릴 수 있도록 인공지능 활용 교육도 진행한다. 보조금이나 용역이 끝나면 사람까지 떠나는 구조에서 벗어나 스스로 수익을 만들고 좋은 사람을 지역에 남기는 조직이 되겠다는 구상이다.
나 대표는 강화유니버스가 꿈꾸는 강화를 “모두가 생산하러 오는 섬”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관광객이 보고 먹고 사진을 찍은 뒤 돌아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역 농부와 외부 디자이너가 함께 물건을 만들고 개발자와 시장 상인이 서비스를 만드는 곳”이라며 “주소를 옮기지 않아도 언제든 돌아와 자신의 일을 펼칠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는 “결심보다 방문이 먼저”라고 조언했다. 나 대표는 “강화는 아무것도 없어서 새로 만들 것이 많은 곳이 아니라, 이미 많은 것이 있지만 아직 서로 연결되지 않은 곳”이라며 “혼자 모든 것을 준비해서 오지 않아도 된다. 혼자 시작할 필요도 없다. 일단 놀러 와달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