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에 춤추니 ‘날마다 오고 싶은’ 대구 기억돌봄학교

[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치매 초기부터 맞춤형 돌봄, ‘몸과 맘이 즐거운’ 프로그램 운영

머니투데이 더리더 대구=신재은 기자 2026.09.03 09:1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X
편집자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은 ‘정책’의 기획과 실행 능력으로 평가된다. 한정된 예산으로 얼마큼 효율적인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주민 삶은 크게 달라진다. 우리 동네에 ‘안심가로등’이 설치되는 것부터 출산과 양육 지원까지 모두 정책의 영역이다. ‘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은 기자가 직접 정책 현장을 찾아가는 코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해당 정책의 실효성을 검증한다. ‘더 좋은 정책’을 위해 대안을 제시, 독자들과 정책 대상자들에게 사랑받는 코너로 자리 잡는 게 목표다.
▲지난 8월 18일 대구 달서구 대구샘기억돌봄학교에서 어르신들이 기억 회상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사진=신재은 기자

“매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체조도 하니 밤에 잠도 잘 오고 기분도 많이 나아졌지. 가족들도 더 건강해졌다고 좋아해.”

대구샘기억돌봄학교의 하루는 바쁘게 흘러간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체조와 수업, 식사, 인지·회상 수업 등으로 채워져 있다. 어르신들은 매일 친구들과 소통하고 몸을 움직이며 하루를 보낸다. 기억돌봄학교는 대구광역시의 인지기능 저하 어르신 돌봄 사업으로, 예방적 치매특화 인지재활 및 맞춤형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대구 전역에 18개의 기억학교가 운영 중이다.

지난 8월 18일 대구 달서구의 대구샘기억돌봄학교에서는 ‘회상교실’ 수업이 진행됐다. 어르신들은 ‘무섭다’ ‘뿌듯하다’ ‘슬프다’ ‘행복하다’ 등 감정의 의미를 함께 되짚어보고, 이와 관련한 기억을 떠올려 발표했다. ‘아쉽다’는 감정을 꼽은 한 어르신은 “학교가 너무 가고 싶었는데 딸이라고 학교를 보내주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96세의 대구샘기억돌봄학교 최고령 어르신은 ‘즐겁다’라는 카드를 뽑고 “아들과 며느리랑 함께 사는 것, 90살 넘도록 사는 것 모두 즐겁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발표를 마친 어르신들은 감정과 관련한 기억을 글로 써보고, 지금의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사진 옆에 붙였다. 자연스럽게 옛 기억을 떠올리고 직접 글로 쓰면서 표현력과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연습하는 과정이다. 이영하 대구샘기억돌봄학교 원장은 “과거의 일을 떠올리고 이를 말로 표현해 자아통합감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이라며 “친구, 사회복지사, 강사 등과 상호작용하며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모두 자극한다”고 설명했다. 대구샘기억돌봄학교에서는 △옛날 생활상 떠올리기 △역사 교육 △시 필사 △주산 수업 등 다양한 인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복타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어르신들. 음악에 맞춰 스트레칭을 진행한다./사진=신재은 기자

이어진 프로그램은 신체활동 수업인 ‘복타교실’이었다. 어르신들은 강사의 구호에 맞춰 팔과 다리를 흔들고, 손가락을 교차해 움직이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류지윤 복타강사는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소극적으로 참여하던 어르신도 함께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원장은 “복타교실은 음악에 맞춰 전신을 움직여 근력과 협응력을 향상시키고 뇌와 신체를 자극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고재일 어르신(78)은 “평소에는 움직일 일이 많이 없는데 신나는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이니 운동이 된다”고 말했다.

일과를 끝마친 어르신들은 그날 하루를 종이에 기록하고 자유시간을 보냈다. 물리치료실에서 기기로 마사지를 받거나 태블릿PC와 컴퓨터로 인지재활 게임에 참여했다. 몇몇 어르신은 함께 모여 일상을 나누기도 했다. 손춘강 어르신(86)은 “기억돌봄학교에 방학이 없는 게 좋을 정도로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했다.

기억돌봄학교는 어르신들의 학교이자 안식처다. 배움의 욕구를 채워주고, 규칙적인 생활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사회성을 키우는 공간이기도 하다. 고재관 어르신(80)은 “친구들과 어울려 대화하고 그림이나 숫자를 배우는 게 재밌어 매일 학교에 오고 싶다”며 “사람들이랑 어울리니 마음이 밝아지고 기억력도 좋아졌다”고 변화를 설명했다.

◇“지역사회에 건강히 머물 수 있도록”…‘예방 중심 돌봄’ 운영
▲지난 8월 18일 기억회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이 감정과 기억을 떠올려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벽에 붙이고 있다./사진=신재은 기자

기억돌봄학교는 대구시가 전국 최초로 시작한 경증치매 어르신 특화 돌봄사업이다. 치매가 중증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고,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기획됐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가 주관한 ‘2025년 지방자치단체 복권기금 사업 성과평가’에서 전국 47개 사업 중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2013년부터 시작한 기억학교는 올해 통합돌봄과 결합하며 기억돌봄학교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대상과 기능을 확대했다. 기존의 경도인지장애 진단자를 비롯해 등급외자 중 인지저하자, 장기요양 인지지원등급자, 통합돌봄 대상자, 초로기치매 환자까지 이용할 수 있다.

프로그램도 체계화했다. 신체·인지·정서·사회·여가 등 5대 영역의 표준 프로그램과 AI 기반 전산인지 프로그램을 도입해 인지능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장기요양·통합돌봄 판정 전에는 ‘틈새돌봄’을 제공하고, 이용 종료 후에는 3개월간 사후관리를 실시하고 있다. 보호자에게 건강상태와 식사·투약정보 등을 전달하는 ICT 안심 앱도 도입했다.

▲지난 4월 17일 ‘줍깅’에 참여한 어르신들/사진제공= 대구샘기억돌봄학교

기억돌봄학교는 ‘예방’에 방점이 찍혀 있다. 단순히 어르신을 주간 동안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치매 초기 단계에서 인지·정서·사회적 기능을 유지하고 지역사회에서 오래 생활할 수 있도록 예방 중심의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단기·장기 기억을 자극해 이를 말과 글로 표현하게 하고, 체조와 운동 프로그램 등으로 신체 능력을 향상시킨다. 다양한 자극을 통해 사회성과 정서적 안정을 이끌고자 소규모 현장체험학습도 주기적으로 진행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효용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기억돌봄학교의 목표다. 이 원장은 “노인학대 예방 캠페인 참여, 줍깅 활동, ESG교육 참여 등을 통해 어르신들이 사회 일원으로서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키려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및 실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르신들에게 기억돌봄학교는 진정한 ‘학교’ 역할을 한다. 배움이 짧았던 어르신에게는 한자와 주산, 글자를 배울 수 있는 교실이며, 사회 활동이 필요한 어르신에게는 매일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소통하는 공간이다. 노복순 어르신(78)은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게 좋다”며 “기억돌봄학교에 올수록 마음이 즐겁고 집에 가서도 마음이 편하다”며 웃었다.

이 원장은 “어르신들이 규칙적이고 활동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생활습관이 재정립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인지기능 향상과 정서적 안정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힘을 드리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초고령화 대구시, 노인돌봄에 AI 기술 접목
▲대구샘기억돌봄학교에서 ICT 기반의 인지재활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어르신/사진=신재은 기자

대구시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난 7월 말 기준 전체 인구 237만3000여명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53만8000여명으로, 전체인구의 22.9%를 차지한다. 시는 어르신이 살던 곳에서 건강하고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지역사회 중심의 재가돌봄체계인 ‘단디돌봄’을 운영한다.

대표적으로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에게 안전·안부확인, 일상생활지원, 사회참여, 생활교육 등을 제공하며, 대구 전역 40개 수행기관을 중심으로 지역 밀착형 돌봄체계를 구축했다. 올해부터는 퇴원 후 일상생활 복귀가 어려운 어르신에게 영양·가사·이동 등을 집중 지원하는 ‘퇴원 환자 단기집중 서비스’를 시작했다.

노인 돌봄에 인공지능(AI) 기술도 접목한다. 시는 독거노인 등 돌봄을 필요로 하는 어르신 가정에 AI 로봇을 보급해 일상생활을 지원한다. 안부 확인과 말벗·정서 지원, 복약·식사 등 생활 관리, 인지 활동 지원 등을 통해 위기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고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생활지원사 등 기존 돌봄 인력과 AI 기술을 결합하는 것이 특징이다. AI 로봇은 일상적인 돌봄과 위험신호를 촘촘하게 살피고, 돌봄 인력은 어르신에게 필요한 대면 돌봄과 정서적 지원에 집중한다.

시는 앞으로 AI를 기존 재가돌봄 서비스와 연계해 어르신이 살던 곳에서 보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대구형 스마트 돌봄체계’를 만든다는 방침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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