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 개발이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 8월 22일 부산항을 출발해 북극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북극항로 시범 운항이 시작됐다. 정부는 시범 운항 데이터를 토대로 2030년 정기 항로 개설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북극항로가 새로운 해상교통로인 동시에 새로운 해상 경제권의 축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경제성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따른다.
북극항로는 유럽으로 향하는 새로운 항로로 주목받는다. 북극항로를 이용해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갈 경우 거리는 1만3000km로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기존 노선(2만6400km) 대비 35% 단축되며, 운항 기간도 20일 가까이 줄어든다. 중동 정세의 영향을 크게 받는 수에즈 운하를 대체할 수 있는 뱃길이라는 의미도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물론 홍해 항로도 예멘의 친이란 무장세력인 후티 반군의 영향권에 놓인 상태다. 기후 변화에 따라 여름철 해빙이 줄면서 쇄빙선 없이도 항해할 수 있게 되면서 비용 부담이 줄어들었다.
기존 항로의 높아진 위험성과 국제유가 상승으로 북극항로의 경제성은 높아지고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북극항로가 열리면 2030년부터 2050년까지 해운 비용 절감 효과는 연간 3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북극항로의 성장가능성을 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한 중국은 상업운항 단계까지 접어들었다. 중국 컨테이너 해운사 씨레전드 쉬핑은 중국과 영국을 잇는 세계 최초 정기 컨테이너 화물 운송에 들어간다. 북극항로를 통한 상업 운항이 정기 서비스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균형발전 이루는 ‘해양수도권’의 시작, 북극항로
정부와 일선 지자체는 북극항로 개척이 해양수도권의 시작점이라는 데서 의미를 찾는다. 단순히 운송거리와 물류비를 줄이는 항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양과 관련한 행정·산업·금융·자원·외교를 아우르는 해양수도권 형성의 시발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서울 수도권 일극체제를 극복하고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복안이다.
정부는 지난 5월 ‘남부 해양수도권 육성방향’을 발표하고, 지방정부·지역 경제계와의 광역 협력을 선언했다. 부울경의 지역별 주력산업을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한다는 내용이다. △부산은 해운·금융·법률·스마트 물류·해양 AI의 ‘지식·금융·물류 허브’ △울산은 친환경연료·오일·가스의 ‘에너지·벙커링(연료공급) 허브’ △경남은 쇄빙·친환경선박·기자재·수리조선의 ‘제조·수리조선 허브’를 맡는다. 넓게는 여수, 광양까지 포함된다.
부산시는 해양수도의 입지를 굳건히 하겠다는 구상이다. 해양행정과 항만·물류를 비롯해 금융·보험, 법률, 연구·개발(R&D), 인공지능(AI) 데이터 산업까지 모아 북극항로의 부가가치를 부산 안에 남기겠다는 전략이다. HMM을 비롯한 해운기업 본사와 문현금융단지와 한국해양진흥공사의 부산 이전, 2028년 개원 예정인 부산해사법원 연계도 그 일환이다.
북극항로를 중심으로 항구 기능도 재편한다. △북항은 해양행정·비즈니스 클러스터 △동천은 해양금융벨트 △부전역은 비즈니스·마이스 허브 기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범천은 AI·바이오 혁신지구 △우암은 해양신산업 거점 △영도는 해양 정보통신기술 특구 △남항은 수산블루벨트로 특화해 해양산업 기능을 도시 전역으로 확산시킨다.
◇북극항로 시대 준비하는 정부·지자체…정책 준비 ‘잰걸음’
정부는 북극항로 개척과 해양수도 완성을 국정과제로 책정하고 적극 지원하고 있다. 먼저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12월 범부처 협력체계를 갖춘 ‘북극항로추진본부’를 조직했다. 북극항로 활성화, 북극항로 운항에 필요한 기술개발 및 국제협력은 물론 해양수도권 육성까지 아우른다.
관련 법안도 마련했다. 지난 6월 북극항로 특별법이 제정됐고, ‘북극항로 활용 촉진 및 연관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제정령이 오는 9월 21일까지 입법예고됐다. 제정령에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북극항로위원회’와 해수부 차관이 위원장을 맡는 ‘실무위원회’의 운영 방식이 담겼다. 이 밖에도 △기본계획 및 실행계획 수립 절차 △북극항로종합지원센터 지정 기준과 운영방식 △연관 산업 범위 추가 △전문인력 양성 사업 등 법 시행에 필요한 사항이 담겼다.
부산시는 북극항로 시대에 맞춰 해양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시는 해양농수산국을 해양수도전략실로 격상하고, 북극항로추진과와 해양수도세일즈과를 신설했다. 북극항로 개척 종합계획 수립과 해양수산부 협업, 세일즈 외교 등을 담당한다. 아울러 해양 관련 기관을 모아 효과를 높이고자 한다. 50조원 규모의 동남권투자공사 출범을 통해 해양 신산업 투자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해수부 산하기관 가운데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과 해양환경공단 등 6곳을 중점 유치 대상으로 정해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부산시의회도 북극항로 거점 조성을 위한 기반 마련에 나선다. 박종철 부산시의원(국민의힘·기장1)은 지난 8월 19일 ‘부산광역시 북극항로 거점도시 조성 및 연관산업 육성 조례’를 입법예고했다. 조례에는 부산을 ‘북극항로 거점도시’로 조성하기 위한 조직 구성과 지원 체계가 담겼다. 해운·항만·물류와 조선·해양플랜트·기자재, 해양금융·보험, 항만기술·서비스 등을 부산 특화 연관산업으로 규정하고, 기본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을 마련토록 했다. 이 밖에도 주요 북극항로 정책을 심의하고 자문하는 ‘부산광역시 북극항로진흥위원회’ 구성과 정책을 현장에서 뒷받침하는 ‘부산광역시 북극항로 진흥센터’ 설치 및 운영의 근거도 포함됐다.
울산시는 북극항로 시대를 맞아 울산항을 ‘동북아 에너지·오일가스 허브’ 사업의 핵심 기반시설로 선택했다. 남신항에 에너지 부두와 배후시설 용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또 북극항로를 통과하는 선박을 대상으로 한 친환경 벙커링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북극항로 운항선박은 벙커링 허브인 싱가포르항에서 연료를 공급받기 어렵기에 울산항을 벙커링 기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경상남도는 범부처 조직인 ‘북극항로 대응 TF’를 구성하고 정책 대응에 나섰다. 경남도는 진해신항을 중심으로 스마트 항만 및 항만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한편 조선MRO 산업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조선·제조·우주항공 산업 기반을 활용한 극지 운항 선박 기술 개발과 에너지·물류·관광을 연계한 융합형 전후방 산업 생태계 구축을 통해 북극항로 시대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경상북도는 포항 영일만항을 북극항로 특화항만으로 육성한다. 경북도는 지난 7월 포항을 북극항로의 전략적 교두보로 설정하고, 영일만항에 북극항로 연관산업 지원 역할을 집중 배치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도는 영일만항을 노르웨이와 캐나다산 암모니아를 수입하는 허브항으로 육성해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생산과 연계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경제성·외교 등 불안요소…“해양산업 연계 개발 필요”
북극항로에 장밋빛 전망이 이어지고 있지만 불안 요소도 산적해 있다. 외교적 긴장감이 그중 하나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려면 대부분 러시아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을 통과해야 해 운항 허가 발급과 쇄빙선 에스코트 등을 러시아와 협력해야 한다. 문제는 러·우 전쟁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3자 제재’다. 해수부는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거쳤다는 설명이다.
경제성 문제도 있다. 운항 거리는 단축됐지만 쇄빙·내빙 선박 운항과 보험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북극항로 운항 가능 시기가 얼음이 녹는 7~10월로 한정되고, 해빙 상황에 따라 속도와 항로가 달라진다는 변수가 있다. 정기 항로로 전환하기 위해선 왕복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도 생긴다.
이수호 해양수산부 북극항로추진본부장은 실제 운항에서 확보한 화물량과 운임 등을 종합해 경제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본부장은 머니투데이 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이번 북극항로 시범운항은 북극항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며 “확보된 자료와 경험을 바탕으로 ‘북극항로 운항백서’를 제작하는 한편 후속 운항계획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장하용 부산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극항로 경쟁력은 항로 자체보다 연관산업을 얼마나 함께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며 “선박관리와 MRO, 금융·보험, AI 데이터, R&D가 함께 성장해야 지역의 일자리와 신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