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의 다른 이름 ‘식품사막’을 넘어라

[심층리포트 ①]먹거리 찾아 떠나는 난민, ‘공동체 중심’ 통합 지원책 마련해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신재은 기자 2026.08.04 09:44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X
편집자주지방 소멸과 인구 절벽. 이에 따른 사회인프라 붕괴가 식재료를 제때 구하기 어려운 ‘먹거리 접근권’까지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식품사막화는 고령 인구가 많은 지방 소도시에서 두드러진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동장터’ 등을 대안으로 시범 운영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머니투데이 <더리더>는 식품사막의 실태를 살펴보고 풀어야 할 과제들을 짚어본다.
밤에 주문한 신선식품이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하는 ‘새벽배송’ 시대지만, 전국 행정리 중 74%는 신선한 식자재를 구매하기 어려운 ‘식품사막’이다.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은 식품사막을 만들고, 이는 다시금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제도 정비 및 인프라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전국 곳곳 ‘식품사막’…삶의 질 저하 유발


식품사막의 주민들은 식품을 구하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도보 및 대중교통에 의존하는 고령층이 느끼는 불편은 더 클 수밖에 없다. 2024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군 지역의 식료품점 접근성(14.4분)은 도시 지역의 식료품점 접근성(3.9분)보다 크게 떨어졌다. 경기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농촌형 지역의 마트 접근 거리(10.2㎞)가 도시형(4.1㎞)보다 두 배 이상 멀며, 교통 수준을 고려할 때 농촌지역의 99%가 이미 식품사막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식품사막은 전국 곳곳에 있다.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행정리 3만7563개 중 73.5%(2만7609곳)에 소매점이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조사에서 전국 도내 행정리 중 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마을의 비율은 전북특별자치도가 가장 높았으며(83.62%), 전라남도(83.33%), 경상북도(78.86%), 충청남도(75.1%), 충청북도(75.04%) 순이었다. 고령화와 지역소멸이 가속화됨에 따라 올해 말 발표를 앞둔 ‘2024 농림어업총조사’에서의 식품사막화 수치는 더욱 심각할 것으로 예측된다.

식품사막화는 영양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은 신선하고 균형잡힌 식재료 얻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읍면지역에서 영양 섭취가 부족한 주민의 비율은 20.4%로 16.2%인 도시보다 높다. 한국농촌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식료품점까지의 이동 시간이 1분 증가할 때 과일 섭취 빈도가 더 낮은 범주로 이동할 가능성이 약 1.3% 증가하며, 육류나 생선 등 신선식품 섭취량, 단백질 및 칼슘 섭취량도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사막화는 신선식품보다 장기 보관이 쉬운 가공품의 섭취를 유도하고 있다.

◇지방 소멸 가속화하는 ‘식품사막’

▲ 지난 7월 10일 충남 당진시 ‘이동장터’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사진=최현승 기자

식품사막은 지방 소멸의 결과이자 소멸을 가속화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인구 감소와 인프라 부족, 서비스 축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식품사막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젊은 인구가 빠져나가며 해당 지역의 구매력이 줄어들고, 유통 인프라가 사라진다. 부족한 인프라로 인해 인구가 유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사람이 줄어들면 대중교통의 수도 감소한다. 고령의 주민들은 하루에 두세 번 오는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거나 지인의 차를 얻어 탈 수밖에 없다.

충남 당진시 출포리에 거주하는 박정인씨(78)는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40분을 걷고, 버스를 50분 동안 타야 당진 시내 시장에 갈 수 있다”며 “아직 젊어 운동 삼아 걸어다니지만, 몸이 불편하면 사실상 시장에 가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식품사막이 인구 유출과 지방 소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유 연구위원은 “식품사막이 생겼다는 것은 체육관, 병원, 이미용 시설, 식당 등 생활인프라가 사라졌다는 뜻”이라며 “지역 상권의 소멸은 인구 소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현실적 대안으로 주목받는 ‘이동형 장터’
▲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가운데)이 지난해 9월 12일 전남 함평군 해보면에서 열린 ‘찾아가는 농촌형 이동장터’ 현장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제공=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사막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이동형 장터’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냉장·냉동 차량으로 식품사막 지역을 찾아가 신선 식재료를 판매하는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를 2024년부터 시범운영하고 있다. 농식품부가 특장차량과 기자재 등을 보조하고, 지자체는 농협 하나로마트나 지역 소매점 등의 시행단체와 인력 확보, 운행 방법 등을 협의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동형 장터에서 신선식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도 개선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식품사막화에 대응하는 국민체감 신속추진과제로 ‘축산물 위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기존엔 포장육 등 축산물을 정육점과 마트 등의 점포에서만 판매해야 했지만, 시행령 개정으로 냉장·냉동 포장육과 냉장 달걀을 이동형 점포에서도 판매할 수 있다.

아울러 올 하반기부터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지역 7개 군을 대상으로 이동장터와 주문배달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냉장·냉동 탑차가 직접 마을을 정기 순회하는 ‘이동형’과 공공배달앱으로 취약계층 가정과 경로당 등에 식품을 배송하는 ‘주문배달형’ 방식이 있다.

민관이 협력한 사업도 있다. 한국부동산원,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BGF리테일과 함께 지난 1월부터 이동형 시니어 편의점 ‘CU이음가게’를 조성해 식품사막 지역을 찾아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기아, 지방정부 등과 협력해 신선식품 배송 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농어촌상생기금과 기아 자체 재원 등을 활용해 전용 차량과 운영 경비를 지원하고, 지방정부는 배송 기반 조성과 복지서비스 연계를 맡는다.

◇법적·재정적 기반 미흡…“부서 칸막이 없애야”
▲해양수산부가 어촌 식품사막화 개선을 위한 ‘어복버스’ 사업을 지난해 9월 17일부터 시작했다. 무인점포로 운영되는 어복점빵에서 가공식품과 생필품을 구매하는 주민의 모습/사진제공=해양수산부

‘이동형 장터’는 식품사막의 유일한 대안으로 평가되지만, 지속가능성엔 의문이 따른다. 법적·재정적 기반이 약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이동장터가 시범·단년도 예산에 묶여 전국 확산 기반이 약하고, 법·재정적 기반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또 지자체나 농협 등 외부 주체에 의존하는 구조라는 점도 한계로 꼽았다.

여러 마을을 이동해야 하고 구매력이 낮은 이동장터 특성상 매출만으로는 투입되는 인건비, 차량유지비 등을 감당하기 어렵다. 당진시에서 이동장터 사업을 진행하는 당진시농촌활성화지원센터의 추동기 매니저는 “지자체의 지원금으로 사업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예산이 부족해 인건비 등은 자체 예산으로 충당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식품사막화 해소를 위해선 법적·제도적 지원이 필수적이지만, 이를 명문화한 법안은 부재하다. 식품사막화 현상을 조사하고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는 내용의 ‘국민영양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복기왕·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각각 대표발의)은 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고 있다.

소병훈·임호선·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던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대안으로 소관위를 통과했지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이 법률은 식품접근성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식품접근성 제고를 위해 필요한 지원사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식품사막은 전국에 퍼져 있지만 식품사막 해소를 지원하는 지자체 조례는 전국에 8곳뿐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충북 보은 △옥천 △충남 서산 △전남 순천 △해남 △전북 임실 △충북 충주 △전북도 등이 식품사막 해소를 위한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식품접근성 문제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도 없다. 현재 이동장터 등 대부분의 식품사막 관련 정책은 농식품부가 추진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섬 마을의 식품사막 지역을 대상으로 이동식 장터인 ‘어복버스’, ‘어복점빵’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식품사막에 신선한 과일, 육류, 유제품 등을 공급할 수 있는 ‘푸드뱅크’ 사업은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이 밖에도 농촌에 거주하는 고령 주민을 위한 복지적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통합 지원을 강조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식품접근성 개선은 본질적으로 농식품·복지·보건·교통·지역개발이 결합된 영역임에도 부처·사업별로 분절돼 읍·면 지역 고령층·거동불편자 등 우선순위 대상에 통합지원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처·사업별 칸막이 해소를 위해 “현재 수립 중인 제5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6〜2030)’에 식품환경 개선사업 관련 사항을 포함하고, 지역별 맞춤형 정책이 설계(및 추진)되도록 각 부처·지방자치단체 간 협력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통 여건 개선·기본 소득 등 종합적 대책 필요”

우리보다 먼저 식품사막화에 대응한 미국, 일본 등은 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책에 민간이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우선적으로 실시한 것은 식품사막의 정책적 정의와 대응을 위한 법제화다.

미국은 2008년 ‘식품, 보존 및 에너지법’에 식품사막에 대한 정의를 규정했다. 일본은 ‘식료·농업·농촌기본법’ 제19조에 식품 접근 보장을 국가 책무로 명시했다. 아울러 ‘식품 접근 곤란 인구’를 정책적으로 정의해 이동판매·택배 서비스 등 민관 협력 기반의 ‘식품 액세스 종합대책’을 추진 중이다. 영국의 환경식품농무부는 ‘매핑도구(Mapping Tool)’를 활용해 식품사막 지역을 식별하고, 중앙·지방정부 간 정책을 연계해 대응 체계를 통합했다. 미국의 일부 주 정부는 식품사막에 출점하는 개인이나 유통업자에게 매달 보조금, 저리 대출 등을 지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기적 대안인 이동 장터가 원활히 유지될 수 있도록 ‘단순 판매’가 아닌 ‘지역경제 기반 주체’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중장기적으로 로컬푸드직매장·공공급식·노인급식과 연계해 안정적 수요 기반을 만들고, 수익의 일정 부분을 다시 지역 취약계층 지원에 활용하는 구조 설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존의 정책 및 인프라와 연계해 식품사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 연구위원은 “지역 소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식품사막을 해결하기 위해선 기존의 찾아가는 식품 배달과 함께 교통여건 개선, 기본소득 보장 등이 이뤄져야 한다”며 “수요응답형 교통 확대 등 교통접근성 문제를 완화하고, 농식품 바우처 사업으로 식품 구매를 위한 최소한의 소득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 공동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유 연구위원은 “모든 지역의 상황에 맞춘 정책을 개발하는 것은 어려움이 따르기에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식품사막의 문제들을 완화할 수 있는 활동을 펼치고, 중간지원조직이 도움을 주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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