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주 못 사줘서 이동장터 없어지면 어떡해. 이거 없으면 물건 사러 나가기 너무 힘들어.”
지난 7월 10일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에서 만난 한 할머니가 마을을 찾아온 이동장터를 바라보며 한 말이다. 할머니는 이동장터가 찾아온 반가움보다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먼저 내비쳤다.
충남 당진은 포항·광양과 함께 국내 3대 철강도시로 꼽힌다. 철강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당진은 2012년 군에서 시로 승격했고, 최근 5년 동안 인구도 꾸준히 증가한 몇 안되는 지자체 중 하나다. 하지만 시내에서 차로 10~20분만 벗어나도 상황은 달라진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된 일부 면에서는 식재료를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이른바 ‘식품사막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호지면 주민 차미선씨(62)는 고령층이 대부분인 이곳의 주민들은 마트 한 번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시내의 마트까지 차로 5~10분이면 갈 수 있지만, 운전을 못 하는 어르신은 하루 두 번 있는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간 뒤 환승할 때까지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버스를 탄다고 해도 장보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차씨는 “어르신들은 기력이 부족해 물건을 직접 들고 오기 어려워 많이 사지도 못한다”며 “마트에 갈 수 있다는 것과 필요한 물건을 사서 집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토로했다.
시는 이 같은 식품 접근 문제를 줄이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의 지원을 받아 ‘가가호호 농촌 이동장터’를 운영하고 있다.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차량에 싣고 마트 이용이 어려운 농촌마을을 직접 찾아가는 사업이다. 시는 중간지원조직인 당진시농촌활성화지원센터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10년 전에 사라진 슈퍼…마을의 유일한 상점이 된 이동장터
마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박미화씨(66)는 이동장터가 고령 주민들의 장보기 고민을 덜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나는 아직 젊은 편이라 직접 마트에 갈 수 있지만 나이가 더 많은 어르신들은 이동장터가 없으면 물건을 사기 어렵다”며 “나도 이제 곧 나이가 들 텐데 그때도 이동장터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날 이동장터 운영을 맡은 육성민 당진시농촌활성화지원센터 활동가는 주민들이 미리 요청한 상품을 준비해 마을로 향했다. 차량에는 두부와 계란 같은 신선식품과 빨랫비누, 세제 같은 생활용품이 실렸다.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과자와 라면, 술도 종류별로 준비했다. 신선식품은 당일 판매되지 않으면 마트에 반품하고, 반품이 어려운 일부 식품은 사전 주문을 받아 준비한다. 육 활동가는 “판매하지 못한 신선식품은 오후에 마트로 반품한다”며 “고기처럼 반품하기 어려운 상품은 주민들에게 미리 주문받은 수량만 준비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동장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모든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장터가 찾아가지 못하는 마을이 있고 가까운 곳에 장터가 와도 운영 사실을 알지 못하는 주민도 있었다. 이날 시장에 가기 위해 총 90분을 이동했다는 박정인씨(78)에게 이동장터에 대해 설명하자, 그는 처음 듣는다고 답했다. 마을회관을 자주 찾는 주민들은 마을 방송이나 이웃을 통해 방문 일정을 알 수 있지만, 회관에 잘 나오지 않거나 마을 중심부에서 떨어진 곳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이동장터 정보가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
◇차량 2대로 40개 마을…인력·예산 한계에 이른 이동장터
운영을 활동가 개인의 노력에 크게 의존하는 점도 과제다. 차량마다 배치된 활동가도 한 명뿐이다. 활동가 혼자서 운전부터 차량 관리·상품 입고·판매·주문 접수·재고 관리·가정배달·반품 업무까지 맡으며 하루 네다섯개 마을을 방문한다. 중간에 상품이 떨어지면 다시 마트로 가서 제품을 채우고, 주민이나 마을에서 특별히 부탁한 물건이 있으면 정해진 방문일이 아니더라도 별도로 찾아가기도 한다.
가정배달 역시 별도 인력이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가가 현장에서 주민의 거동 상태를 살핀 뒤 직접 돕는 방식이다. 서비스가 충분한 인력과 시스템이 아닌 활동가 개인의 판단과 선의에 의존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운영 방식이 현장의 과부하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조원지 전북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현재의 유통 방식은 시간 대비 판매 효율은 떨어뜨리고 재고유지비·유류비 등 운영 비용을 증가시킨다”며 “운영 주체의 재정적 부담뿐 아니라 현장 인력의 피로도까지 높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새로운 마을을 운행 대상에 포함하려면 기존 방문지 가운데 이용객이 적은 곳을 줄여야 하는 문제도 있다. 육 활동가는 이용객이 적은 마을이 방문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이용객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이동장터의 필요성이 낮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방문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몸이 불편해 판매 장소까지 나오지 못하는 주민들도 있기 때문이다. 육 활동가는 “가까운 거리여도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에게 집에서 회관까지 불편한 시골길을 걷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지자체 지원에만 의존하는 운영 구조도 지속가능성을 불투명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추 매니저는 “이동장터는 수익을 내기 위한 사업이 아닌, 농촌 주민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복지사업”이라며 “이익 없이 순수 지원비로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원이 중단되거나 운행 지역이 조정되면 일부 마을의 어르신들은 다시 식료품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이유다.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구조인 만큼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예산이 지속적으로 지원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조 책임연구위원은 “이동장터를 유통 사업이 아니라 농촌 주민의 생존을 위한 필수 공공 인프라로 봐야 한다”며 “제도를 명문화해 농림축산식품부 사업비뿐 아니라 노인 돌봄 예산과 지방 소멸대응기금, 지자체 복지 예산 등을 연계한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