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27일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의 시행을 앞두고 정부와 지자체의 준비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통합돌봄’이 우리 사회에 안착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 지자체의 발 빠른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4일 정부와 각 지자체에 따르면 통합돌봄은 노인, 장애인 등이 시설(병원)에 입소하지 않고 살던 곳에서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지자체 중심으로 체계를 구축하는 정책이다. 의료와 노인장기요양, 돌봄, 생활 지원, 주거 지원 등 분절된 채 운영되던 기존 서비스를 관계 기관 연계로 통합 제공하는 것이 제도의 골자다.
◇지자체 인프라 구축 미비…재택의료센터 0곳인 곳도
◇지자체 인프라 구축 미비…재택의료센터 0곳인 곳도
통합돌봄 시행 4개월을 앞두고 있지만 지자체들의 준비는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0월 14일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229개 시·군·구 중 절반에 못 미치는 지자체가 통합돌봄 관련 인프라를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담인력 배치는 58.1%(133곳), 전담조직 구성률은 34.1%(78곳)에 그쳤다. 의료·요양·주거·고용 등 관련 자원을 조정 및 연계하는 ‘통합지원협의체’ 구성률은 16.6%(38곳)에 머물렀으며, 개별 돌봄 대상자에게 지원 사항을 논의·조정하는 현장 의사결정기구인 ‘통합지원회의’ 구성률도 28.4%(65곳)에 불가했다. 조례 제정을 마친 지자체는 25.3%(58곳)에 머물렀다. 통합돌봄의 방법과 조직 구성, 재원 등의 기초가 되는 조례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지난 10월 기준 광역시도 단위로 보면 광주·대전·강원 3곳만이 통합지원협의체를 구성·운영 중이며, 서울·경기·부산 등 대규모 광역지자체조차 관련 위원회를 꾸리지 않은 상태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들은 현재 관련 조례를 제·개정한 뒤 연말쯤 통합지원협의체를 만들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는 각 구의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통합지원협의체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시 통합지원협의체 설립 준비는 조례 입법예고를 마치는 등 문제없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통합돌봄의 핵심인프라로 평가되는 ‘재택의료센터’를 갖추지 못한 지자체도 상당하다. 재택의료센터는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팀을 이뤄 환자의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진료와 간호,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보통 의료협동조합이나 공공의료원, 병의원, 한의원 등이 맡는다.
보건복지부가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에게 지난 10월 9일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전국 229개 시·군·구 중 절반에 못 미치는 113곳(49%)에서만 재택의료센터를 운영 중이다. 전국 17개 시도 중 울산은 재택의료센터가 아직 한 곳도 없다. 경북도도 22개 시군 중 4곳에만 재택의료센터가 등록돼 있어 최저 수준(18%)이다. 전남과 경남, 강원 역시 각각 27%, 28%, 33%로 전국 평균을 밑돌고 있다.
지역별 격차도 크다. 대전은 5개 자치구 전체에 9개의 재택의료센터가 있어 가동률 100%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도 25개 자치구 가운데 21개 구에서 44개의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반면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의 우선 대상자인 장기요양보험 1·2급 인정자가 전국에서 다섯 번째(2499명)로 많은 경남 창원은 재택의료센터가 1곳도 없는 실정이다.
일반 병·의원이 재택의료센터로 등록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 지자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창원시 관계자는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팀을 이뤄야 하기에 일반 병·의원이 참여하기는 힘들다. 관심을 보이는 한의원이나 관내 보건소와 연계해 본사업 시행 전 인프라를 갖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적극적 움직임을 주문하고 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의료·요양·돌봄 연계의 핵심 축인 재택의료센터 확충 대책을 즉시 가동하고, 특히 수요 상위 지역에 대해선 연내 신규 지정 목표와 일정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예산 부족…국비 0원엔 효과적 사업 이행 어려워
부족한 정부 예산도 통합돌봄 시행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통합돌봄 전면 시행으로 수혜 대상이 확대되지만 현재 편성된 국가 예산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내년 통합돌봄에 편성한 예산은 약 777억원으로 지자체별로 4억~10억원가량이다. 국비와 지방비 매칭 방식으로 12개 지자체에 각 9억원을 들였던 시범사업에 비해 적은 규모다.
국비 지원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지자체도 있다. 김윤 더불어민주당·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재정자립도 상위 20% 지자체(46곳)에 국비 지원을 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족한 예산 탓에 재정자립도 하위 80%에 해당하는 183개 지자체를 세 등급(A·B·C)으로 나눠 30~50%로 차등지급해서다. 경기도는 지난 6월 기준 노인 인구 235만 명, 장애인 인구 59만 명으로 전국 최대 복지 수요를 지닌 지역임에도 31개 시군 중 22곳(약 70%)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기초지자체는 새로운 서비스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한 기초지자체 관계자는 “기존에 진행하던 사회복지 서비스를 엮어 통합돌봄 체계를 구축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통합돌봄에 맞는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긴 어렵다”며 “담당 인력 예산조차 배정되지 않아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예산 축소는 전문 인력 확보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통합돌봄 시범사업 직무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군·구당 8.16명, 읍·면·동당 1명의 인력이 필요해 최소 7200여 명의 통합돌봄 전담인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기존 복지 공무원 인력을 활용하라”는 입장만 밝히며, 2400명에 대한 인건비를 내년과 2027년에 각 6개월분만 한시적으로 반영해주겠다는 계획이다. 이마저도 국비 지원을 받는 지자체에만 해당돼 46곳의 지자체에서는 기존 공무원들의 업무 과중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형식적 지표에 의한 정부 예산 배분으로 통합 돌봄 선도 지역이 불이익을 받는다는 지적도 있다. 변재관 돌봄과미래 정책위원회 위원장은 머니투데이 와의 통화에서 “지난 7년간 선도 사업을 진행한 부천·안산·천안·광주 서구·전주·김해·진천 등 7개 지역이 멘토 역할을 해야 하지만 이 중 6곳이 정부 예산 분류에서 ‘C 등급’을 받아 가장 적은 지원을 받는다”며 “기존 10억원에서 3억원 정도로 예산이 줄어 관련 서비스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도시락 지원이나 주거지원 서비스 등 예산이 필요한 사업을 유지하기조차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아울러 변 위원장은 정부의 국비 책정이 실제 대상자 규모를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령화율 △재정자립도 △의료취약도만을 기준으로 배분하다 보니 장애인 인구가 많은 대도시 상황은 고려하지 못한 분배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실질적 효과 있도록 과감한 재원 분배 필요”
전용호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통합돌봄 시행에 의지가 부족한 지자체를 변화시키려면 인력과 예산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산과 인력이 불확실하면 지자체는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예산을 과감하게 확보해 노인, 장애인 등 대상자들에게 보편적 돌봄체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돌봄 전담조직 구성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현재 돌봄통합지원법에서 통합돌봄 전담 부서는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이다. 전 교수는 “조직이 구성돼야 관련 업무를 원활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책임성 부여를 위해서라도 전담 조직 구성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