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아픈 지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에요.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이 어떻게 변신하는지 한번 볼까요?”
지난 10월 21일 오전 10시, 폐플라스틱 원사로 만든 조끼를 차려입은 어르신이 부산 ‘우리 동네 ESG센터’ 금정점에 견학 온 아이들에게 ESG센터를 소개했다. ‘시니어 환경 도슨트’를 담당하는 최수철 어르신은(66) 아이들과 함께 센터 곳곳을 돌며 우리 동네 ESG센터의 친환경 작업과 그것의 의미를 설명했다. 아이들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집중해서 설명을 들었다. 최수철 어르신은 어린이들에게 환경을 지키자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노인 일자리 사업과 환경 보호 활동을 접목한 이곳은 부산시 ‘우리 동네 ESG센터’다.
어린이들이 처음 둘러본 공간은 장난감을 색깔별로 분류하는 ‘폐장난감 순환실’이었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완전히 분리수거되지 않는다는 점을 배웠다. 장난감에는 여러 부속품이 들어 있어 각기 따로 분리해야 해서다. 최수철 어르신은 “어린이 여러분은 앞으로 안 쓰는 장난감 있을 때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고 우리 동네 ESG센터에 가져다주거나 장난감 수거함에 넣어달라”고 주문했다. 이렇게 분류한 장난감 조각들은 잘게 갈려 체험용 재료로 쓰이거나 새로운 장난감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평소에 손쉽게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병의 세척과 가공법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ESG센터에서 근무하는 어르신들은 플라스틱병 입구의 작은 플라스틱 조각과 뚜껑, 라벨을 제거하고 병을 깨끗하게 씻었다. 세척된 병을 기계에 넣으면 금세 작게 갈린 플라스틱 조각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 조각들은 롯데케미칼 등의 공장으로 옮겨져 플라스틱 원사로 만들어진다.
견학을 온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키링 만들기’ 체험을 했다. 어린이들은 빨강, 노랑, 파랑 등 다양한 색의 플라스틱 조각들을 조합해 키링 틀에 넣었다. 어르신 선생님들은 한 명씩 어린이들을 도우며 “아까 색별로 분류한 장난감들이 이렇게 변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키링 만들기를 마친 어린이들은 분해·분쇄 플라스틱으로 만든 블럭을 가지고 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환경교육 및 체험을 마친 어린아이들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자신이 만든 키링을 손에 꼭 쥐고 자랑스럽게 소개하기도 했다. 어르신 선생님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폈다. 한 어르신 선생님은 “어린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직접 만나 교육도 하고 안내도 하니 뿌듯하다”며 “무엇보다 너무 귀여워 일을 할수록 에너지를 얻는다”고 했다.
어르신들에게는 일상의 활력과 일자리를, 어린이들에게는 환경 교육 및 체험활동을 제공하는 우리 동네 ESG센터다.
◇노인일자리와 탄소중립 결합, 15분 도시 앵커시설로 자리매김
우리 동네 ESG센터는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노인정책의 필요성과 지구온난화에 따른 탄소중립 실천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다. 2022년 12월 1호점인 금정점 개소를 시작으로, 현재 5호점까지 개소해 운영 중이다. 플라스틱병 세척 및 장난감 분해 등의 친환경 활동을 노인일자리와 연계하고, 지역 주민이 자원순환을 통해 환경보호를 실천할 수 있게 했다.
현재까지 노인일자리 3500개를 창출했으며, 지난 10월까지 7804명가량이 어린이 환경도슨트에 참여했다. UN, 동티모르, 파라과이 등 국내외 기관에서 2596명이 방문하기도 했다.
우리 동네 ESG센터는 부산시의 역점사업인 ‘15분 도시’의 앵커시설이다. 시민 접근성과 체감도를 강화하기 위해 구·군별로 1개소 이상 설치해 자원순환 활동과 환경교육이 가능하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금정구 △동구 △해운대구 △영도구 △중구 등 총 5개소가 있으며, 올해 안으로 6개소를 신규 선정할 계획이다.
지난 3월 27일 ‘부산시 우리 동네 ESG 센터 관리 및 운영 조례’가 부산시의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며 제도적 기반도 마련됐다. 박희용 부산시의원(국민의힘·부산진구1)이 대표 발의한 이 조례는 △사업의 목적 △정의 △계획의 수립·시행 △기능 및 사업 △지도·감독과 생산품의 우선 구매, 협력체계 구축 등을 포함하고 있다. 박 의원은 “부산지역 내 고령친화기업을 설립, 운영해 친환경 제품을 제조 및 판매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사업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우리 동네 ESG센터는 자원순환활동과 환경교육 등이 주요 활동이다. 폐 페트병이나 장난감, 커피박 등을 손질해 공장 등에 보낸다. 이렇게 손질된 폐플라스틱은 원사로 가공돼 조끼, 신발, 가방 등으로 재탄생한다. 우리 동네 ESG센터 금정점에서는 장난감 수거 및 교환도 가능하다. 센터에 기부한 장난감을 어르신들이 수리해 전시하면 어린이들은 장난감을 1:1로 교환해갈 수 있다. 자원 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어린이집, 유치원 등 어린이 대상의 환경교육 및 환경체험활동은 환경 보호 의식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세대 간 벽을 허무는 역할도 한다. 최수철 어르신은 “교육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더 알려주고 싶다”며 “어린이들이 이론적으로 환경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생활 속 실천법들을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에 참여한 어린이들도 환경 보호의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 어린이 환경교육 및 체험을 마친 한 어린이는 “쓰레기도 많이 줍고 망가진 장난감을 가지고 와 다른 것으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우리 동네 ESG센터가 ‘15분 도시’의 앵커시설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시 차원의 세밀한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ESG센터의 일감은 센터가 자체적으로 마련하고 있지만 일률적이지 않고 부족한 편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우리 동네 ESG센터 금정점 관계자는 “인근 사회복지기관이나 부곡2동행정복지센터와 협력해 페트병을 지원받았지만, 페트병이 가치 있는 분리수거 품목 중 하나기에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ESG센터 홍보가 더 활발히 진행되면 작업물도 더 잘 모을 수 있고 어르신 일자리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사회 곳곳에 노인일자리를…어르신의 전문성 살려
특·광역시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부산시는 다양한 노인일자리 정책을 펼치고 있다. 먼저 내년도부터 ‘초등돌봄교실 시니어 지원단’ 사업을 추진한다. 맞벌이 및 한부모 가정의 증가로 초등돌봄교실의 방과후 돌봄 공백이 심화됨에 따라 노인일자리 사업을 통해 어린이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부산시교육청과 협력해 초등돌봄교실을 운영 중인 300개소를 대상으로 노인일자리 참여자를 지원할 계획이다. 어르신들은 학생 이동 및 안전 귀가 지도, 급·간식 제공과 정리 등 돌봄서비스에 참여할 예정이다.
시는 잇따른 화재 발생으로 인해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안전 관리 필요성이 증대됨에 따라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화재예방 안전기동단’을 운영할 계획이다. 사회복지시설의 경우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 등 화재 시 대피가 어려운 재난 약자가 많이 이용하나, 전문성 부재로 화재 취약 요소를 사전에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시는 전문 분야 퇴직 인력 및 자격증 소지 노인의 전문성을 활용해 점검 및 컨설팅을 진행하고, 화재 사전 점검의 내실화 및 화재안전사고 예방에 기여하고자 한다. 내년부터 4300여 개 사회복지시설에서 화재안전점검 및 교육·홍보, 화재 대피요령 및 위험요소 교육 등의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친환경 노인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부산형 자원순환 플랫폼을 완성해 초고령·기후위기 시대 탄소중립 실천으로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살기좋은 부산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