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에 위치했던 짐볼스훈련장은 과거 미군 산악훈련장이었다. 미군이 철수하면서 2005년 반환된 뒤 오랫동안 공여지로 남아 있었으나, 2021년 ‘푸른숲한류관광타운’ 조성사업을 통해 ‘니지모리스튜디오’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스튜디오는 일본풍 건축물과 상업시설을 갖춘 테마 공간으로, ‘한국 속 작은 일본’이라고 부르며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스튜디오는 애초 촬영세트장으로 출발했지만, 이후 일식당·카페·잡화점 등 상업시설과 료칸·온천 숙박시설까지 들어서며 관광지로 성장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주말이면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방문객을 모으고 있다.
미군이 철수한 후 활용되지 않는 부지 중 한국 정부에 반환된 땅(이하 미군 반환공여구역)을 활용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미군 반환공여구역이 있는 지자체들은 장기간 군사시설로 묶여 개발에서 소외됐던 부지를 관광·교육·의료 시설로 재탄생시켜 지역 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기업 유치나 산업단지 조성 사례는 아직 한 건도 없어 한계로 지적된다. 지자체들은 현행법과 열악한 지방 재정 탓에 반환공여구역 개발이 쉽지 않다며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군 반환공여구역의 상당수는 경기도에 집중돼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전국 69개 반환공여구역 가운데 38곳이 경기도에 있으며, 면적으로는 전체 143㎢ 중 97%인 138㎢를 차지한다. 이는 여의도 면적(2.9㎢)의 48배 규모다. 이 가운데 경기 북부에만 전체의 82%인 113㎢가 몰려 있다. 이 중에서도 개발 가능한 곳은 22개소(72㎢)다. △의정부(8곳) △파주(6곳) △동두천(6곳) △하남(1곳) △화성(1곳)에 위치했다.
개발 가능한 곳 중 일부는 관광시설, 대학교, 병원, 교육시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며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대표 사례로는 동두천시 동두천동 289-2번지 일원 ‘캠프 캐슬’ 부지다. 1971년부터 2004년까지 미2사단 제2공병대대가 주둔했던 이곳은 2011년 기지가 폐쇄되며 활용 방안을 잃었지만, 2016년 전국 공여지 내 최초로 대학교(동양대)가 들어와 개교하며 활용책을 찾게 됐다.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에 위치한 ‘캠프 하우즈’는 1953년 미군에 공여된 뒤 2005년 미군 철수와 함께 2007년 반환됐다. 이 부지에는 1만㎡ 규모의 공공 야구장이 지난 3월 개장했다. 새롭게 조성된 야구장은 국비 24억원을 포함한 총사업비 30억원이 투입됐다. 시는 이 부지에 미군이 사용하던 건물을 새롭게 단장해 공원 등 기반시설 건립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60년 동안 미군 사격장으로 사용됐던 경기 화성시 매향리 ‘캠프 쿠니에어레인저’에는 지난 4월 평화기념관이 개관하면서 시민들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했다. 평화기념관은 리움미술관 설계에 참여한 스위스 출신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국내 에이치엔에스에이(HnSa)건축사사무소가 설계를 맡았고, 지하 1층·지상 2층, 건축 총면적 2136㎡ 규모로 지어졌다. 1층은 미디어아트 등을 체험하는 어린이체험실이 들어섰고, 2층 상설전시실은 매향리에 있던 사격장인 쿠니사격장 설치부터 폐쇄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경기도 의정부시의 미군 반환 기지 ‘캠프 라과디아’는 평화와 통일을 상징하는 ‘경기권 통일플러스센터’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캠프 라과디아는 1953년부터 약 5만1510㎡ 부지에 미2사단 소속 엔지니어 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2007년 반환됐다. 센터 조성에는 국비와 도비 148억원이 투입됐으며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연면적 2083㎡)로 건립됐다. 내부에는 평화라운지, 전시체험관, 공연장, 하나센터 등이 들어섰다.
동두천 짐볼스훈련장 역시 반환부지 활용 사례 가운데 하나다. 관광 콘텐츠 중심의 개발이라는 점에서 다른 공여지 활용과 차별화를 보이며, 향후 지역 경제 활성화와 청년층 유입에 일조하고 있다. 이 외에도 파주시의 ‘캠프 모빌’ 부지(보산동 466-1번지) 절반이 반환돼 현재 오염 정화 작업이 진행 중이며, 캠프 님블은 경기도일자리재단 등 경기도 산하기관의 이전을 놓고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미군기지 반환…69곳 반환 완료

미군기지 반환 논의는 2000년대 들어 시작됐다. 2002년 체결한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과 2004년 용산기지이전협정(YRP)에 따라 전국의 주한미군 기지가 통·폐합됐고, 미군이 떠난 부지는 순차적으로 우리나라에 반환됐다. 현재까지 전국의 미군 공여구역 80곳(242㎢) 중 69곳(143㎢)이 반환된 상태다.
정부는 반환공여구역 활용을 위해 2006년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공여지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반환공여구역 매입 비용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고, 공장의 신·증설과 대학의 이전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정부는 2008년부터 매년 ‘주한미군 반환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발전종합계획’을 수립, 미군기지 설치로 개발이 제한됐던 공여구역과 주변지역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민간 주도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2023년 2월 민간사업자의 미군 반환공여구역 개발 등에 대한 출자 비율을 100%까지 올리는 내용의 공여지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각종 중복 규제와 열악한 지자체 재정 상황으로 반환공여구역 개발은 더디다. 활용 사례도 일부에 불과하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반환공여구역 활용 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1일 국무회의에서 국방부에 “경기 북부 지역의 미군 반환공여지 처리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보고하라”고 주문했다.
◇부지매입비 부담…“문화·예술 구축은 100% 지자체 몫”

지자체는 미군 반환공여구역 개발에 구조적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우선 토지매입비가 지자체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공여구역이 미군으로부터 반환되면 지자체가 아닌 국방부에 귀속되고, 개발을 위해선 지자체가 국방부에 토지를 매입해야 한다. 또 공여지특별법에 따라 반환공여구역을 공원·도로·하천으로 개발할 때 토지매입비의 일부(최대 80%)만을 정부가 지원하게 돼 있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의정부시 재정자립도는 22.1%, 파주시 28.5%, 동두천시 12.6%로 경기도 평균(55.7%)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토지매입비를 제외한 공사비와 조성비도 100% 지자체 몫이다.
토지매입비 사용처에 한계도 있다. 공여지특별법에 따라 국비 지원은 공원·도로·하천 조성 등으로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지역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화·예술·체육 인프라 구축에는 국비를 투입할 수 없는 실정이다. 김태경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반환부지의 활용성을 높이려면 지원 대상에 공공시설(도서관, 문화시설, 체육시설 등)을 추가해야 한다”고 했다.
◇공여지 개발도 쉽지 않은데…이중·삼중 규제 묶여 있기도

실제로 경기도 내의 개발 가능한 반환공여구역 22개소 가운데 개발이 완료된 곳은 의정부 캠프시어즈(경기북부 광역행정타운) 1곳뿐이다. 현재 일부 공사 중인 곳도 8개소에 불과하다. 공여지 개발 사업을 20년 가까이 진행했지만, 일부는 계획조차 없는 것이다.
파주시는 민자사업 유치에 잇달아 실패하기도 했다. 시는 2007년부터 국민대와 이화여대, 서강대 등 대학 캠퍼스 유치에 나섰지만, 막대한 토지 매입비 마련 등으로 대부분 무산됐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지난 8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그동안 미군기지 주둔으로 인한 규제와 개발 제한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어왔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라도 반환공여구역의 무상양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70년간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하면서 총 26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봤다는 입장이다.
의정부시는 반환된 7개 미군기지에 대해 매각하는 방식으로만 활용이 가능한 점을 문제로 제기했다. 토지를 임대하거나 단계적으로 개발하는 등 다양한 개발 모델은 사실상 배제되고, 매각을 통한 단일한 방식만 허용돼 제약이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가 해당 부지를 직접 사들일 경우에도 매입 후 10년간은 용도를 제한받고, 일정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국비 보조금을 환수당할 수 있어 체계적인 개발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김동근 의정부시장은 지난 7월 24일 반환공여지인 캠프 잭슨을 방문해 “지방 정부 단독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분명하다”며 “장기간 방치된 미군기지 개발은 국가가 직접 나서 법과 제도, 재정 전반의 구조를 개선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동두천시는 사정이 더 복잡하다. 시에 따르면 시 전체 면적 95.66㎢ 중 42.47%인 40.63㎢가 미군기지로 활용됐으며, 2005년 23.21㎢가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으로 반환됐다. 문제는 반환 면적 23.21㎢ 중 22.93㎢가 급경사 산지로, 99%가 개발 불능지다. 국제 규격 축구장(7140㎡) 3200여 개에 해당하는 규모지만 활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개발이 가능한 곳은 캠프 케이시와 캠프 호비 일부 부지이지만, 이곳들은 여전히 반환되지 않았을뿐더러 자연보존지역이 많다.
하남시의 대표 반환공여지인 캠프 콜번은 2007년 반환된 미군 기지로, 하산곡동에 위치해 있다. 시는 이곳을 첨단산업과 주거·문화 기능이 결합된 융복합단지로 개발하는 ‘캠프콜번 도시개발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개발제한구역과 과밀억제권역 등 각종 규제가 겹쳐 개발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현재 하남시장은 지난 8월 26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반환공여구역의 땅값이 반환 당시보다 크게 올라 부담이 커진 만큼, 국가가 무상으로 양여하거나 최소한 반환 당시 가격으로 보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되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사업성 확보를 통해 성공적인 사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평택 수준으로 지원해야”…장기 임대 방식도 고려 필요

지자체들은 평택에 적용된 특별법 수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평택지원법)’은 2004년 서울 지역 주한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보상을 위해 제정됐다. 법에 따라 주한미군 경계로부터 3km 이내인 평택과 김천 지역은 2026년까지 마을회관과 체육시설 등 국가 지원을 받는다. 현재까지 지원된 금액은 약 1조1636억원으로, 한 마을에 약 62억원이 지원됐다고 알려졌다.
국회에서도 반환공여구역에 세제 지원 등 개발 이점을 주는 법률안이 발의됐다. 이재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정부을)은 지난 8월 26일 반환공여구역 및 반환공여구역 주변지역을 ‘낙후지역’에 포함하는 ‘지역 개발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낙후지역으로 편입되면 재정 지원, 용적률 등 규제 완화, 세제 혜택 등 각종 개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국회에서도 반환공여구역에 세제 지원 등 개발 이점을 주는 법률안이 발의됐다. 이재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정부을)은 지난 8월 26일 반환공여구역 및 반환공여구역 주변지역을 ‘낙후지역’에 포함하는 ‘지역 개발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낙후지역으로 편입되면 재정 지원, 용적률 등 규제 완화, 세제 혜택 등 각종 개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경기도는 미군 반환공여구역 개발 기금을 조성하는 한편 규제 완화에 나설 방침이다. 도는 지난 8월 26일 총 30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10년간 토지 매입과 도로, 공원 등 기반시설 조성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경기도 반환공여지 개발 TF’를 통해 반환공여구역에 대해 ‘무상양여’가 가능하도록 특례 규정을 신설하거나 파격적인 임대료로 장기임대하는 방안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20년 이상 장기미반환 상태로 있어 도시 발전을 저해한 구역에 대해선 특별입법을 통해 ‘특별한 국가보상’도 추진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장기 임대 등의 방법으로 반환공여구역 개발이 시작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상봉 고려대 정부행정학부 교수는 “지자체가 토지매입비 등 막대한 재원을 마련하기 힘든 상황이기에 반환공여지 매입이 아닌 장기 임대 등의 방식으로 지자체가 부지 개발을 시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는 그동안 오랜 시간 피해를 입었던 주민들과 거버넌스를 구축해 부지 개발에 어떤 콘텐츠를 입힐지 계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