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두 나두’ 치매야 가라, 나이야 가라

[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트로트 노래 맞춰 체조 등 인지 향상 교육 통해 ‘100세’ 선물

머니투데이 더리더 나주(전남)=신재은 기자 2025.10.01 09:18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은 ‘정책’의 기획과 실행 능력으로 평가된다. 한정된 예산으로 얼마큼 효율적인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주민 삶은 크게 달라진다. 우리 동네에 ‘안심가로등’이 설치되는 것부터 출산과 양육 지원까지 모두 정책의 영역이다. ‘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은 기자가 직접 정책 현장을 찾아가는 코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해당 정책의 실효성을 검증한다. ‘더 좋은 정책’을 위해 대안을 제시, 독자들과 정책 대상자들에게 사랑받는 코너로 자리 잡는 게 목표다.
▲ 지난 9월 15일 나주 관정경로당에서 ‘100세 안심경로당-너두 나두 100세 교실’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스트레칭을 하는 어르신들 모습/사진=신재은 기자

“다 같이 숫자를 세면서 체조할 거예요. 치매도 예방하고 무릎 건강도 챙길 수 있어요!”

혼자 떠드는 텔레비전 소리만 가득한 여느 경로당 모습과는 다르다. 어르신들이 함께 숫자를 외며 운동을 하고, 그림그리기, 만들기 교실이 열린다. 어르신들의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어우러지는 전남 나주시 ‘100세 안심경로당’의 모습이다.

지난 9월 15일 오후 3시 나주 관정경로당에서 100세 안심경로당의 ‘너두(頭)나두(頭) 100세 교실’ 수업이 진행됐다. 시는 2023년 민선 8기부터 관내 180개소 경로당을 100세 안심경로당으로 지정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인지향상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을 기획 및 진행하는 100세 돌봄관리사의 우렁찬 인사에 맞춰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이날은 체조와 소고를 활용한 인지 향상 수업이 있었다. 어르신들은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트로트 소리에 맞춰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며 체조를 시작했다. 스티로폼 막대기를 이용해 상·하체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트로트 노래 가사에 맞춰 옆 사람을 안아주고 손을 맞잡는 등 심리적 교류도 빼놓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쑥스러움이나 어색함 없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어 소고 수업이 진행됐다. 국악 박자에 맞춰 소고를 다양한 방법으로 치고 가사를 외워 함께 부르기도 했다. 신나게 체조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맨 앞자리에 앉아 수업에 참여한 임점순 어르신은(86) “작년부터 100세 안심경로당 수업에 참여했는데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만나니 즐겁다. 머리도 좋아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관정경로당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김금주 100세 돌봄관리사는 신체 활동을 통해 어르신들의 사회적 관계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 돌봄관리사는 “어르신들이 주기적으로 만나 안부도 묻고 운동도 함께 하니 마을 전체에 활기가 돈다”고 설명했다.

100세 돌봄관리사가 어르신들의 우울감이나 인지 저하를 발견하기도 한다. 김 돌봄관리사는 “그림그리기나 색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한 가지 색으로만 칠하거나 어두운 색만 사용하는 등의 이상 징후를 가장 먼저 발견하기도 했다”며 “주변 어르신이 달라지면 주민들이 알려주기도 한다”고 했다. 돌봄관리사는 이를 보건소에 전달해 어르신들이 후속 조치를 받을 수 있게 연계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신체·인지 활동…“인지력 높이고, 우울감 낮춰”
▲관정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이 소고를 이용한 인지 수업을 하고 있다./사진=신재은 기자

물리적·심리적 고립 없이 익숙한 장소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일. 나주시는 ‘100세 안심경로당’ 사업을 통해 이를 구현하고자 한다. 시는 나주형 치매 통합돌봄서비스 체계 구축의 일환으로 2023년 6월부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로당을 거점으로 지정한 까닭은 경로당이 마을공동체의 중심이자 익숙한 생활 거점이어서다. 시 관계자는 “‘지역사회 계속거주’ 환경에서 치매통합돌봄을 제공하기엔 경로당이 제격”이라며 “치매예방 활동을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100세 안심경로당 사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너두 나두 100세 교실’은 치매 예방과 인지 강화 프로그램이 주를 이룬다. 노래 교실, 인지 체조 등이 인기다. 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음악과 리듬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돕고, 다양한 게임을 통해 기억력, 집중력, 문제 해결 능력 등 인지 기능을 자극한다. 동네 주민, 강사와 소통해 우울감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너두 나두 100세 교실은 38명의 100세 돌봄관리사가 경로당마다의 특색에 맞춰 커리큘럼을 구성 및 운영한다는 특징이 있다. 100세 돌봄관리사는 노인 및 돌봄 관련 자격증 보유자로 선발해 노인 맞춤형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다. 또 정기적 역량강화 교육을 실시해 강사의 자질 향상을 추진하고 있다.

돌봄관리사들은 어르신들의 긍정적 변화를 봤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9월 15일 나주시 보건소에서 진행된 ‘100세 안심경로당 운영 현황 보고회’에서 홍미희 100세 돌봄관리사는 “신체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을 주로 진행했는데 초반엔 부끄러워하고 어려워하던 어르신들이 이제는 수업 때마다 웃으면서 참여한다”며 “매주 진행되는 수업을 기다린다는 어르신, 프로그램 끝나는 것이 아쉽다고 말해주는 어르신이 계셔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가정방문도 병행한다. 돌봄관리사가 월 1회 치매 환자의 가정에 방문해 일상생활 수행능력 및 안부를 확인한다. 또 건강, 돌봄, 복합위기 발생 시 사례관리 및 시의 자원을 연계하고 있다. 가정방문을 받은 한 독거 어르신은 “정기적인 방문과 안부 확인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정책의 성과는 수치로 드러난다. 지난해 진행된 프로그램 성과평가 결과 인지능력은 30점 만점 기준 21.1점에서 21.8점으로 향상됐고, 기억력 감퇴는 15점 기준 3.9점에서 3.5점으로 좋아졌다. 노인우울척도도 15점 만점 중 3.5점에서 2.8점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 관계자는 “어르신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작년 사업만족도는 평균 98.2%로 2023년 95% 대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치매 안심 도시 나주, 숲학교 등 맞춤형 프로그램 운영

▲지난 5월 21일 진행된 숲속치매안심학교 명랑운동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윤병태 나주시장/사진제공=나주시

시는 고령화에 따른 노인인구 및 치매환자 증가에 대응해 지역 내 자원을 활용한 이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숲속 치매안심학교’가 대표적이다. 국내 최초로 숲에서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나주시치매안심센터와 국립나주숲체원, 동신대학교와 협력해 진행하는 사업이다. 국내 8대 명산인 금성산에 들어선 국립 나주 숲체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오는 11월까지 운영한다.

숲속 치매안심학교는 관내 65세 이상 어르신 90명을 대상으로 산림자원을 활용한 치매 예방, 인지건강 증진 특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어르신의 중증도에 따라 중증, 경증, 치매예방반 등 4개 반으로 구성해 운영 중이다.

치매안심학교는 치매 중증화 억제를 위해 지속적인 인지강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숲학교에서 교육이 이뤄져 사회적 고립 방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일반 학교와 유사하게 입학식과 졸업식, 여름방학, 운동회, 소풍, 체험학습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치매 환자들의 자존감과 사회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지난 3월 진행된 입학식에서 대표로 소감을 발표한 76세의 한 어르신은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갖게 돼 기쁘고 또래와 함께할 수 있어 외롭지 않다”며 “청춘의 마음으로 열심히 학교생활에 참여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겠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이 밖에도 시는 어르신의 건강 상태에 따라 맞춤형 치매 예방 인지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정상군 어르신이 참여하는 ‘9988치매예방교실’과 ‘모락(樂)모락(樂)’ 프로그램과 인지 저하 및 경도인지장애 어르신이 참여하는 ‘인지 강화 교실’, 경증 치매 어르신이 참여하는 ‘치매환자 쉼터’, ‘홈스쿨링 뇌총총+’ 등이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치매 조기 발견부터 지속적인 관리까지 이어지는 촘촘한 돌봄 체계를 구축해 어르신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고령화 시대 치매 관리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jenny091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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