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넘어 어울림으로 성장하는 즐거운 학교”
지난 2월 19일 찾은 원곡초등학교. 교문 옆 전광판에는 이 같은 문구가 떠 있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이 학교는 재학생의 98%가 이주배경 학생일 만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특히 중국 동포와 고려인 학생 비중이 높다.
인근 선부동과 원곡동 일대 학교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선일초등학교는 입학 안내 현수막에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병기하고 있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다문화 언어 강사와 이중언어 보조인력 채용 공고가 상시 게시돼 있다. ‘상호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안산의 오늘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원곡초 앞에서 35년째 문구점을 운영 중인 이모씨(75세)는 학생들의 변화를 지켜본 산증인이다. 그는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만 해도 학생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며 “2013년쯤부터 중국에서 온 아이들이 늘더니, 요즘은 러시아어를 쓰는 학생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주배경인구, 지난해 첫 통계…생산연령인구만 80%지난해 우리나라 인구 20명 중 1명이 ‘이주배경인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3월,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에 3개월 이상 거주한 이주배경인구는 271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5175만1000명)의 5.2%를 차지했다.
이주배경인구는 본인이나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이주 경험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본인이 직접 국경을 넘어 이주했거나,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외국 출신이거나, 북한이탈주민 등이 이에 속한다. 국제결혼 등으로 구성된 다문화가정보다 폭넓은 개념이다.
국가데이터처가 다양한 이주배경을 가진 인구를 포괄하는 통계를 개발해 공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국내에는 이주배경인구 전체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공식 통계가 없었다. 행정안전부의 외국인 주민 현황,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여성가족부의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 등 개별 자료를 통해 규모를 추산해왔다.
특히 전체 이주배경인구의 81.9%(222만3000명)는 생산연령인구에 해당해 일하는 연령대가 줄고 있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66만명(24.3%)으로 가장 많았고, 0~14세 유소년인구가 12.7%(34만4000명)로 나타났다. 반면 고령인구 비중은 5.5%(14만8000명)에 그쳤다.
아울러 국내 이주배경인구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에 거주했다. 이주배경인구 중 56.8%(154만2000명)는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거주했고, 이 중 경기도가 88만7000명(32.7%)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 47만5000명(17.5%) △인천 18만명(6.6%) △충남 17만6000명(6.5%) △경남 16만5000명(6.2%) 순이었다.
기초 시군구를 기준으로 봤을 때 경기 안산시가 11만3000명(4.2%)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기 화성시 8만5000명(3.1%) △경기 시흥시 8만1000명(3.0%) 순이었다. 총인구 대비 이주배경인구 비율이 10% 이상인 시군구는 총 17개였다. △전남 영암군이 21.1%로 가장 높았고 △충북 음성군(19.9%) △경기 안산시(16.1%)가 뒤를 이었다.
이주배경인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통계청이 202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앞으로 외국인이 연간 5만5000명가량 지속적으로 유입된다. 이에 따라 통계청은 20년 뒤인 2042년에는 이주배경인구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난 404만명(8.1%)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6세부터 21세까지의 이주배경 학령인구는 약 50만명으로, 현재보다 1.5배 늘어난다고도 예측했다.
◇“공장 운영에 필수적”…종합 대책은 없어
▲지난해 10월 2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타지키스탄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E-9)의 최초 입국을 기념해 직접 지은 한글 이름표 달아주기 행사가 열리고 있다./사진제공= 한국산업인력공단
실제로 생산연령인구가 80%를 넘는 등 이주배경인구는 국내 노동시장 전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도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인력난이 심화된 건설·제조업 등에서는 이주배경인구 없이는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산 단원구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대표 A씨는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무슬림 문화권의 직원들에게 할랄 음식을 제공할 정도로 이들은 공장 운영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이주배경인구가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노동시장과 인구 구조를 떠받칠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고용·정착·역량 개발을 아우르는 종합 정책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정부 부처별로 단편적인 지원은 존재하지만, 이주배경인구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과 경력 설계, 사회 통합 전략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자 만료되고, 외모 차별까지…방황하는 이주배경 청년
▲경기 안산에는 이주민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은행 지점이 많다./사진=신재은 기자
최혁수 이주민시민연대 사회적협동조합 대외전략실장은 “대학 졸업 후 주어지는 구직(D-10) 비자는 2년 제한이고, 특정 활동(E-7) 비자는 전문 분야에 한정돼 사실상 얻기가 어렵다”며 “전공과 관련해 취업해야만 비자가 유지되는데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주배경 청년에게 완화된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비자를 신설했지만, 현장에서는 간극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4월 법무부는 국내에서 7년 이상 성장한 이주배경 청소년이 취업할 경우 학력·경력·직종에 관계없이 체류 자격을 주는 국내성장인력(E-7-Y) 비자를 신설했다. 하지만 18세 이전에 7년 동안 체류하지 않으면 이주배경 청년에겐 진로 선택이 극히 제한된다.
이주배경 청년들은 학업 과정에서도 편견과 마주하고 있다. 지난 2월 19일 경기 안산 단원구에서 만난 고려인 동포 2세 펠릭스씨(25)는 2022년 A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적응을 하지 못해 자퇴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러시아 관련 기업에 취업하겠다는 꿈도 접어야 했다.
펠릭스씨는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며 “한국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데도 조별 과제에서 배제되는 일이 반복됐다.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뒀다”고 털어놨다. 이어 “현재는 사이버대학에 재학 중”이라며 “대면 수업이 있는 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아 진학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교 저학년의 나이에 입국한 이모씨(26세)는 외모로 인한 편견이 취업 과정의 장벽이 됐다고 토로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군복무까지 마쳐 법적 결격 사유는 없지만, 취업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씨는 “외모가 전형적인 한국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면접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며 “현재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소통 문제 겪기도…전문가, “한국어·이중언어 교육 병행해야”
▲경기 안산에서 영어권과 러시아어권 이주배경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자이언 국제상호다문화 대안학교의 수업 모습. 이 대안학교는 이중언어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수업을 하고 있다./사진=신재은 기자
중도 입국 이주배경 청소년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입국한 청소년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어 사용에 어려움을 겪으며 공교육 과정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24년 발표한 ‘이주민 밀집 지역 소재 학교의 실태 및 과제’에 따르면 이주민 가정 학생 지도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한국어 미숙으로 인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라는 응답이 57.3%(중복 응답)로 가장 많았다. ‘이주배경 학부모와 소통의 어려움’(42.1%), ‘이주배경 학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무관심 등 비협조적인 태도’(36.8%) 등이 뒤를 이었다.
일부 초등학교에서 이중언어 교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중언어 교사는 수업 내용을 특정 언어로 번역해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해 한 교사가 여러 학급을 순회하며 수업을 진행하는 실정이어서, 학습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또한 해당 제도는 초등학교에만 적용되고 10개월 단기 계약 형태로 운영돼 교육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공립학교에서는 한국어 특별반을 운영하고 있으나 정원 제한으로 인해 새로운 이주배경 학생이 전입할 경우 기존 학생이 일반 학급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어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일반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최 실장은 “한국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녔더라도 정규 교육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입국한 학생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어 교육을 안정적으로 진행하려면 한국어 특별반의 인원 제한을 완화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 실력이 향상된 이후에만 일반 학급으로 편입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언어 장벽이 학업은 물론 향후 경제활동 참여에도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지난 2월 4일 경기도 거주 고려인 동포 청소년과 부모 4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학교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한국어 소통’을 꼽은 응답이 43.3%에 달했다. 8년 이상 거주자 가운데서도 35.6%가 여전히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어 학습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응답은 90%에 달했으며, 경제활동에 대한 욕구는 77.2%로 높았지만 실제 노동 참여율은 11.4%에 그쳤다. 재단은 한국어 미숙과 낮은 임금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주민 아동을 대상으로 한 교육 정책이 학생들의 강점을 살리기보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데 치우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 실장은 “이주배경 청소년은 이중언어 구사 능력과 높은 문화 수용성 등 뚜렷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며 “하지만 국내 교육 정책은 단기간의 한국어 교육 지원에만 머물러 이러한 장점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주배경인구에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총괄하는 정부 부처가 없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지윤 국제이민정책연구원 원장(명지대 이민다문화학 교수)은 “대부분의 중앙부처가 이주배경인구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부처 간 조정 기능이 부족해 사업이 중복되거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자, 교육, 취업 등 전 주기를 아우르는 정책을 종합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전문가가 참여하는 컨트롤타워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체류 자격은 법무부, 학교와 교육 정책은 교육부, 고용·직업훈련은 고용노동부가 각각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부처별로 정책이 분절적으로 운영되면서 통계 수치와 용어, 적용 기준 등이 서로 달라 현장의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이주배경 청소년이 학령기를 지나 청년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정책 간 연계가 단절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총괄하기 위한 출입국·이민관리청 설립 법안이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공존하는 사회 되도록 지역 맞춤형 정책 필요”
▲경기 안산시는 외국인주민지원본부, 다문화이주민센터 외국인주민상담지원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사진=신재은 기자
이주배경인구가 많은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정책을 진행하며 지원하고 있다. 외국인 전담 조직을 운영하거나 언어·교육·주거 지원, 인권 보호 제도 마련 등 지역 여건에 맞춘 정책을 통해 외국인 주민의 안정적인 정착을 유도하고 있다.
경기 안산시는 2009년 단원구 원곡동 일대에 다문화마을특구를 조성해 ‘국경 없는 마을’을 표방하며 내외국인이 공존하는 지역을 조성했다. 2005년에는 국내 최초로 외국인주민지원본부를 설치했고, 2009년에는 지자체 최초로 ‘외국인 인권조례’를 제정했다. 시흥시는 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사업에 참여해 이주배경 청소년 특화 공간을 조성하고, 외국인복지센터를 중심으로 검정고시반을 마련해 전원이 합격했다. 김포시는 외국인 주민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유관 기관과 연계해 한국어 교육, 교과목 학습 및 진로 지원, 가족 캠프를 통한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주배경인구와 기존 주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정 원장은 “이주배경 학생들이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언어 교육뿐 아니라 생활 적응 교육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며 “동시에 한국 학생들 역시 이주배경 학생의 모국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지역 맞춤형 정책 필요성도 제기됐다. 정 원장은 “지역마다 특정 국가 출신 이주민 비중이 다르고 노동 환경 역시 차이가 있다”며 “안산, 서울, 동탄, 제주 등 지역별 특성에 맞는 예산을 편성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지난 2월 19일 찾은 원곡초등학교. 교문 옆 전광판에는 이 같은 문구가 떠 있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이 학교는 재학생의 98%가 이주배경 학생일 만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특히 중국 동포와 고려인 학생 비중이 높다.
인근 선부동과 원곡동 일대 학교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선일초등학교는 입학 안내 현수막에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병기하고 있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다문화 언어 강사와 이중언어 보조인력 채용 공고가 상시 게시돼 있다. ‘상호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안산의 오늘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원곡초 앞에서 35년째 문구점을 운영 중인 이모씨(75세)는 학생들의 변화를 지켜본 산증인이다. 그는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만 해도 학생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며 “2013년쯤부터 중국에서 온 아이들이 늘더니, 요즘은 러시아어를 쓰는 학생이 더 많다”고 말했다.
◇이주배경인구, 지난해 첫 통계…생산연령인구만 80%지난해 우리나라 인구 20명 중 1명이 ‘이주배경인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3월,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에 3개월 이상 거주한 이주배경인구는 271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5175만1000명)의 5.2%를 차지했다.
이주배경인구는 본인이나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이주 경험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본인이 직접 국경을 넘어 이주했거나,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외국 출신이거나, 북한이탈주민 등이 이에 속한다. 국제결혼 등으로 구성된 다문화가정보다 폭넓은 개념이다.
국가데이터처가 다양한 이주배경을 가진 인구를 포괄하는 통계를 개발해 공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국내에는 이주배경인구 전체를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공식 통계가 없었다. 행정안전부의 외국인 주민 현황,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여성가족부의 전국다문화가족실태조사 등 개별 자료를 통해 규모를 추산해왔다.
특히 전체 이주배경인구의 81.9%(222만3000명)는 생산연령인구에 해당해 일하는 연령대가 줄고 있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66만명(24.3%)으로 가장 많았고, 0~14세 유소년인구가 12.7%(34만4000명)로 나타났다. 반면 고령인구 비중은 5.5%(14만8000명)에 그쳤다.
아울러 국내 이주배경인구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에 거주했다. 이주배경인구 중 56.8%(154만2000명)는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거주했고, 이 중 경기도가 88만7000명(32.7%)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 47만5000명(17.5%) △인천 18만명(6.6%) △충남 17만6000명(6.5%) △경남 16만5000명(6.2%) 순이었다.
기초 시군구를 기준으로 봤을 때 경기 안산시가 11만3000명(4.2%)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기 화성시 8만5000명(3.1%) △경기 시흥시 8만1000명(3.0%) 순이었다. 총인구 대비 이주배경인구 비율이 10% 이상인 시군구는 총 17개였다. △전남 영암군이 21.1%로 가장 높았고 △충북 음성군(19.9%) △경기 안산시(16.1%)가 뒤를 이었다.
이주배경인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통계청이 202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앞으로 외국인이 연간 5만5000명가량 지속적으로 유입된다. 이에 따라 통계청은 20년 뒤인 2042년에는 이주배경인구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난 404만명(8.1%)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6세부터 21세까지의 이주배경 학령인구는 약 50만명으로, 현재보다 1.5배 늘어난다고도 예측했다.
◇“공장 운영에 필수적”…종합 대책은 없어
이민정책 학계에서는 통상 이주배경인구 비율이 5%를 넘을 경우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것으로 본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 자체가 꾸준히 증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귀화하거나 가족을 초청하고 한국인과 결혼해 자녀를 낳는 등 가족을 형성하며 정주 인구로 자리 잡고 있다. 단기 체류 인력을 넘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편입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생산연령인구가 80%를 넘는 등 이주배경인구는 국내 노동시장 전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도 역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인력난이 심화된 건설·제조업 등에서는 이주배경인구 없이는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산 단원구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대표 A씨는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무슬림 문화권의 직원들에게 할랄 음식을 제공할 정도로 이들은 공장 운영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이주배경인구가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의 노동시장과 인구 구조를 떠받칠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고용·정착·역량 개발을 아우르는 종합 정책이 사실상 부재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정부 부처별로 단편적인 지원은 존재하지만, 이주배경인구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과 경력 설계, 사회 통합 전략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자 만료되고, 외모 차별까지…방황하는 이주배경 청년
복잡한 비자제도는 이주배경 청년에게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11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다문화 교육 정책이 학령기 지원에 집중되면서 고교 졸업 이후 진로 지원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보고서는 비자 제도가 이주배경 청년의 진로 선택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졸업 후 제한된 기간 안에 취업하지 못할 경우 체류가 어려워 진로 탐색이나 경력 전환의 기회가 사실상 차단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주배경 청년에게는 학업 종료와 동시에 진로 확립을 요구하는 구조적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최혁수 이주민시민연대 사회적협동조합 대외전략실장은 “대학 졸업 후 주어지는 구직(D-10) 비자는 2년 제한이고, 특정 활동(E-7) 비자는 전문 분야에 한정돼 사실상 얻기가 어렵다”며 “전공과 관련해 취업해야만 비자가 유지되는데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주배경 청년에게 완화된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비자를 신설했지만, 현장에서는 간극이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4월 법무부는 국내에서 7년 이상 성장한 이주배경 청소년이 취업할 경우 학력·경력·직종에 관계없이 체류 자격을 주는 국내성장인력(E-7-Y) 비자를 신설했다. 하지만 18세 이전에 7년 동안 체류하지 않으면 이주배경 청년에겐 진로 선택이 극히 제한된다.
이주배경 청년들은 학업 과정에서도 편견과 마주하고 있다. 지난 2월 19일 경기 안산 단원구에서 만난 고려인 동포 2세 펠릭스씨(25)는 2022년 A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적응을 하지 못해 자퇴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러시아 관련 기업에 취업하겠다는 꿈도 접어야 했다.
펠릭스씨는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며 “한국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데도 조별 과제에서 배제되는 일이 반복됐다.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뒀다”고 털어놨다. 이어 “현재는 사이버대학에 재학 중”이라며 “대면 수업이 있는 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아 진학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교 저학년의 나이에 입국한 이모씨(26세)는 외모로 인한 편견이 취업 과정의 장벽이 됐다고 토로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군복무까지 마쳐 법적 결격 사유는 없지만, 취업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씨는 “외모가 전형적인 한국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면접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며 “현재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소통 문제 겪기도…전문가, “한국어·이중언어 교육 병행해야”
중도 입국 이주배경 청소년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입국한 청소년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어 사용에 어려움을 겪으며 공교육 과정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24년 발표한 ‘이주민 밀집 지역 소재 학교의 실태 및 과제’에 따르면 이주민 가정 학생 지도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한국어 미숙으로 인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라는 응답이 57.3%(중복 응답)로 가장 많았다. ‘이주배경 학부모와 소통의 어려움’(42.1%), ‘이주배경 학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한 무관심 등 비협조적인 태도’(36.8%) 등이 뒤를 이었다.
일부 초등학교에서 이중언어 교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중언어 교사는 수업 내용을 특정 언어로 번역해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해 한 교사가 여러 학급을 순회하며 수업을 진행하는 실정이어서, 학습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또한 해당 제도는 초등학교에만 적용되고 10개월 단기 계약 형태로 운영돼 교육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공립학교에서는 한국어 특별반을 운영하고 있으나 정원 제한으로 인해 새로운 이주배경 학생이 전입할 경우 기존 학생이 일반 학급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어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일반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최 실장은 “한국에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녔더라도 정규 교육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입국한 학생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어 교육을 안정적으로 진행하려면 한국어 특별반의 인원 제한을 완화하거나, 일정 수준 이상 실력이 향상된 이후에만 일반 학급으로 편입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언어 장벽이 학업은 물론 향후 경제활동 참여에도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지난 2월 4일 경기도 거주 고려인 동포 청소년과 부모 4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학교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한국어 소통’을 꼽은 응답이 43.3%에 달했다. 8년 이상 거주자 가운데서도 35.6%가 여전히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어 학습의 필요성을 느낀다는 응답은 90%에 달했으며, 경제활동에 대한 욕구는 77.2%로 높았지만 실제 노동 참여율은 11.4%에 그쳤다. 재단은 한국어 미숙과 낮은 임금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주민 아동을 대상으로 한 교육 정책이 학생들의 강점을 살리기보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데 치우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 실장은 “이주배경 청소년은 이중언어 구사 능력과 높은 문화 수용성 등 뚜렷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며 “하지만 국내 교육 정책은 단기간의 한국어 교육 지원에만 머물러 이러한 장점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주배경인구에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총괄하는 정부 부처가 없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지윤 국제이민정책연구원 원장(명지대 이민다문화학 교수)은 “대부분의 중앙부처가 이주배경인구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부처 간 조정 기능이 부족해 사업이 중복되거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자, 교육, 취업 등 전 주기를 아우르는 정책을 종합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전문가가 참여하는 컨트롤타워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체류 자격은 법무부, 학교와 교육 정책은 교육부, 고용·직업훈련은 고용노동부가 각각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부처별로 정책이 분절적으로 운영되면서 통계 수치와 용어, 적용 기준 등이 서로 달라 현장의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이주배경 청소년이 학령기를 지나 청년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정책 간 연계가 단절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총괄하기 위한 출입국·이민관리청 설립 법안이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공존하는 사회 되도록 지역 맞춤형 정책 필요”
앞으로 정부는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에게 언어교육, 기초 학습·진로 설계, 청소년시설 연계 등 맞춤형 통합 서비스를 지원한다. 성평등가족부는 지난 1월 학교·교육청 등 관계 기관과 협업해 4개의 가족·다문화가족 지원센터에 이주배경 가족 전담관리사를 배치해 지역사회 자원과 연계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주배경인구가 많은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정책을 진행하며 지원하고 있다. 외국인 전담 조직을 운영하거나 언어·교육·주거 지원, 인권 보호 제도 마련 등 지역 여건에 맞춘 정책을 통해 외국인 주민의 안정적인 정착을 유도하고 있다.
경기 안산시는 2009년 단원구 원곡동 일대에 다문화마을특구를 조성해 ‘국경 없는 마을’을 표방하며 내외국인이 공존하는 지역을 조성했다. 2005년에는 국내 최초로 외국인주민지원본부를 설치했고, 2009년에는 지자체 최초로 ‘외국인 인권조례’를 제정했다. 시흥시는 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사업에 참여해 이주배경 청소년 특화 공간을 조성하고, 외국인복지센터를 중심으로 검정고시반을 마련해 전원이 합격했다. 김포시는 외국인 주민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유관 기관과 연계해 한국어 교육, 교과목 학습 및 진로 지원, 가족 캠프를 통한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주배경인구와 기존 주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정 원장은 “이주배경 학생들이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언어 교육뿐 아니라 생활 적응 교육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며 “동시에 한국 학생들 역시 이주배경 학생의 모국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앙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지역 맞춤형 정책 필요성도 제기됐다. 정 원장은 “지역마다 특정 국가 출신 이주민 비중이 다르고 노동 환경 역시 차이가 있다”며 “안산, 서울, 동탄, 제주 등 지역별 특성에 맞는 예산을 편성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