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길 69. 낡은 여관 ‘석화장’이 청년들의 활기로 가득 찬 워케이션 거점 ‘청춘어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4일 의성군에 따르면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의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해 17실의 숙박시설과 공유오피스, 복합문화공간을 갖춘 청년복합문화센터로 조성해 운영 중이다. 센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워케이션 프로그램 ‘청춘어람’은 2024년 10월 완공과 함께 시작됐다. 군이 2022년 ‘동부권 청년 거점’ 마련을 목표로 첫 삽을 뜬 지 2년 만이다.
이러한 변신은 ‘소멸 위기’에 처한 군의 절박한 인구 구조와 맞닿아 있다. 행정안전부의 ‘2025년 주민등록 인구통계 분석’에 따르면, 군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49.2%에 달한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높은 수치로, 주민 두 명 중 한 명이 노인인 셈이다.
‘청춘어람’은 정주 인구만으로는 지탱하기 어려운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워케이션 공간을 통해 청년 유입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그 결과 금성면 일대의 △조문국박물관 △탑리리 오층석탑 △탑리역 등 지역 문화자원과 청년거점 공간을 연계한 청년특화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워케이션 사업을 기획했다.
◇“여기서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현실’로 답해주는 워케이션
공간 기획의 핵심은 ‘일만 하는 숙소’가 아니라 ‘쉼까지 설계된 생활 공간’이다. 명상룸·1인 헬스장·안마의자·미니 영화관 등 휴식시설을 넉넉히 배치했다. 공공시설 특유의 분위기를 지우기 위해 외벽 색부터 로고·상호 디자인까지 신경 썼다. 최 대표는 “시골인데 촌스럽지 않고, 트렌디한데 부담스럽지 않은 균형”이라며 “청년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과하지 않게 꾸몄다”고 말했다.
운영 방식은 ‘누구나 예약 가능한 숙박’이 기본이다. 전화나 온라인으로 예약해 이용할 수 있고, 단체 예약이나 ‘한 달 살기’ 형태의 장기 체류도 가능하다. 공간 구성은 지하 1층부터 층별로 기능을 나눴다. 지하 1층에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회의실을 마련해 군민도 대관·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뒀다. 2층에는 개별오피스·미팅룸·프린트 시설 등을 갖춘 워크라운지를 배치했고, 3층에는 공유주방과 세탁실, 명상룸을 둬 체류 편의를 높였다. 4층부터 7층까지는 숙박객들이 머무를 수 있는 객실이 위치했다. 업무부터 생활, 커뮤니티 기능을 한 건물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이 특징이다.
군은 완공 전부터 위탁 운영자를 먼저 모집해 설계 단계부터 운영자의 의견을 반영했다. 실제로 최 대표의 의견을 반영해 1인실 2개를 2인실로 바꾸고, 장기 숙박자의 편의를 고려해 주방을 추가했다. 또 공유오피스는 오픈형 대신 사생활을 보장하고 업무 집중도를 높일 수 있도록 밀폐형으로 조정했다.
다만 방문 목적은 ‘업무 공간’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 대표는 “퇴사 직후이거나 이직을 준비하는 청년, 번아웃을 겪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며 “단순히 일을 하러 오는 게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잡고, 지역에서의 생활이 가능한지 스스로 점검하려는 방문도 많다”고 말했다
워케이션에 맞춰 업무·체류 환경을 갖춘 덕분에 재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최 대표는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 덕에 집중이 잘된다는 반응이 많다”며 “지난해에만 단체 숙박을 6번 이상 이용한 청년 창업자 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름 성수기에는 예약이 꽉 차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인구소멸 1위가 오히려 매력”…운영자가 먼저 정착한 이유
최 대표에게 의성의 첫인상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었다. 그는 “면접을 앞두고 담당자가 합격 후 살게 될 집을 보여줬는데, 산과 파란 하늘, 남대천과 벚꽃이 어우러진 풍경이었다”며 “집과 사무실을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지원도 정착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인구소멸도시 1위’라는 타이틀 역시 부담보다는 매력으로 작용했다. 최 대표는 이에 대해 오히려 의성에 머무는 선택의 의미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준다고 설명했다.
물론 처음부터 적응이 쉬웠던 건 아니다. 최 대표는 “처음 의성에 왔을 때는 텅 빈 거리와 빈집들만 보였다”며 “‘내가 이곳에서 정말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최근에는 카페·양조장·굿즈숍 등 청년 점포가 늘고 24시간 편의점도 들어서는 등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지역에서의 삶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최 대표는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나 부족한 인프라 등 불편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누구에게나 지역에 정착하라고는 말하지 못한다”고 했다. 대신 그는 청년들이 ‘한 달 살기’나 ‘워케이션’ 등 체험을 통해 지역을 충분히 겪어보며 시행착오를 줄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살아보고, 생활해보고 판단…정착의 ‘중간 단계’로서 워케이션
그에게 의성의 첫인상은 ‘조용함’이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작업에 집중하기엔 오히려 좋은 환경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실험과 반복이 가능한 시간이 필요했다”며 “그런 점에서 의성처럼 조용한 환경에서 시작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활리듬이 안정되고 작업과 생산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을 의성 생활의 장점으로 꼽았다.
정 대표는 “워케이션은 지역에서 실제 생활이 가능한지 가늠해볼 수 있는 중간 단계”라며 “짧은 체류로도 생활리듬과 작업환경, 지역과의 거리감을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 정착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는 “감정이나 낭만보다 구조와 방향이 먼저”라며 “하려는 일이 지역 환경과 맞는지 충분히 점검하고 준비한다면 지역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선택지”라고 조언했다.
◇워케이션 이후 늘어난 청년 상점…지역 변화로 이어져
청춘어람을 바라보는 지역 주민들의 시선은 우호적이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손님들 때문에 조용한 마을이 시끄러워져 주민들이 불편해할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며 “어르신들이 오히려 ‘마을에 사람이 북적거려야 좋지’라고 먼저 말씀해주신다”고 말했다. 지역 상인들 역시 단체 방문객이 늘면서 매출이 오르자 “오히려 본인보다 청춘어람의 지속성을 더 걱정해준다”고 덧붙였다.
군은 청춘어람 개소 이후, 그동안 의성읍에 집중됐던 동부권 청년 대상 프로그램 운영 거점을 금성면까지 확대했다. 청춘어람에서는 ‘청년개발자 컨퍼런스’와 ‘청춘어람 가면무도회’(1주일 지역 살아보기) 등이 진행됐다. 군은 청춘어람 워케이션 이후 카페 ‘오비아’, 소품숍 ‘틀밖의 자유’ 등 청년 상점이 늘어난 점도 변화로 꼽았다. 군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농업 프로슈머 플랫폼 ‘파머투비’가 한 달간 ‘의성 사과농사 텀블벅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청춘어람 공간을 활용했다”며 “청춘어람을 매개로 민관 협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원’에서 ‘삶’으로 확장…의성군의 청년정책
군은 2017년 경북 군 단위 최초로 청년정책TF를 출범한 뒤 2023년 청년정책과 신설, 2024년 청년센터 개소로 청년정책 추진 기반을 강화해왔다. 창업 중심 청년유입정책을 통해 현재까지 62개 팀이 지역에 정착했고, 청춘어람을 포함한 분야별 청년활동 인프라도 9개소로 확충했다.
특히 군은 경북도 내 군 단위 지자체 가운데 유일하게 ‘청년발전기금’을 2023년부터 현재까지 누적 60억원 조성해 청년창업가·청년기업을 대상으로 연 1% ‘청년기업 융자지원사업’을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군은 이 사업으로 지난 2년간 74명에게 28억원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군은 앞으로 청년센터를 거점으로, 창업·주거·문화 등 개별 분야에 집중됐던 정책에서 지역에 정착한 청년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올해부터 지역 청년이 정책 설계에 참여하는 ‘의성군 청년정책 제2장’이 본격 추진된다”며 “이를 통해 청년이 살고 싶은 농촌형 청년정책 선도모델로 발돋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