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노동자? 이젠 ‘경력 보유 시민’입니다

[주목! 서울시의회 조례]청소·요리·돌봄 등 여성 몫 아닌 ‘모두의 사회적 가치’로 인정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25.12.01 09:32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정책은 정부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 영역에 입법의 영향이 커지면서 지방의회의 위상과 역할도 날로 커지고 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행정과 정책을 감시하는 서울시의회에 더 많은 시선이 가는 이유다. ‘더 나은 서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전국 지방의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의원들이 어떤 조례를 발의하는지 알아본다. 시의회 의원 비율에 맞춰 각 정당이 발의한 조례를 소개한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지난 8월 14일 열린 제48회 베페 베이비페어에서 관람객들이 역류방지 쿠션을 살펴보고 있다./사진=뉴시스
서울시의회에서 청소·요리·양육·노인돌봄 등 가정 내 ‘무급노동’을 ‘공적 노동’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발의했다. 임금도 법적 지위도 없는 상태로 지속된 돌봄·가사노동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절차가 마련된 것이다.

1일 시의회에 따르면 최호정 의장(국민의힘·서초구 제4선거구)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서울특별시 가사·돌봄노동 경력인정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지난 10월 대표 발의했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는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고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방지할 책임이 있다. 이번 조례안은 이러한 법적 취지를 구체화해 가사·돌봄노동을 수행한 시민의 경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의 사회·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 조례안에는 가사·돌봄노동 경력인정서를 발급하고, 관련 지원사업을 추진할 때 법적 근거를 마련토록 했다. 경력인정서의 발급 기준 및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은 시장이 규칙으로 정하도록 했다.

특히 ‘경력보유시민’의 개념도 새롭게 규정했다. 이는 일 경험이나 가사·돌봄노동 경험을 가지고 있으나 경제활동을 중단했거나 한 적이 없는 시민 중 취업 또는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시의회는 이들이 경력단절로 인한 불이익 없이 경제활동에 다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경력보유여성의 권익증진과 경력인정 등에 관한 심의·자문을 위해 ‘권익증진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조례에 따라 시는 권익증진을 위한 시행계획도 매년 수립·시행해야 한다.

조례를 대표발의한 최 의장은 “그동안 출산·육아·가족돌봄 노동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경제적 보상과 경력에서 배제돼왔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조례가 제도 밖에 머무른 수백만 명의 가사·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성평등 정책 전환을 이끄는 신호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사노동 돈으로 따졌더니 ‘490조9000억원’…GDP 1/4 수준

그동안 가사노동은 가족의 건강과 일상을 유지하고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필수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임금도 없고 경력으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국내총생산(GDP)의 약 26%에 해당하는 490조9000억원 규모에 달한다는 조사도 있다.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사진제공=서울시의회
통계청이 2023년 12월 발표한 ‘무급 가사노동 가치의 세대 간 이전: 국민시간이전계정 심층분석’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가사노동 가치의 총액은 490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총생산(GDP·2040조원)의 25% 수준이다. 이 중 여자는 356조원(72.5%)을, 남자는 134조원(27.5%)을 차지했다.

이처럼 가사와 돌봄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공식적인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시의회에서는 이 같은 가사노동을 사회적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최 의장은 “가사는 여성의 몫이라는 편향된 시선에 갇히지 않도록 시민으로 대상을 넓힌 국내 최초의 조례를 만들었다”며 “그림자 취급을 받았던 가사 노동을 제도 안으로 초대한 첫 조례”라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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