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고 찾아오고…‘청년이 잇는’ 예산

[청년, 지역을 택하다]사람과 지역 연결, 다양한 접점 통해 ‘생활·정착 인구’ 증가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현승 기자 2025.10.01 09:1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청년 인구 유출은 지역 소멸을 가속화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많은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하지만, 지역에서 미래를 설계하고자 하는 청년도 적지 않다. 이들이 지역에 정착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지자체의 청년 정책이다. 머니투데이 <더리더>는 ‘청년, 지역을 택하다’ 코너를 통해 지역을 선택한 청년들의 이야기와 이들을 지원하는 지자체 정책을 함께 조명한다.
▲지난 8월 9일 ‘예산의 내일을 나누장’ 프로그램 현장에서 수해 복구와 지역살이 프로그램을 결합한 활동에 참여한 청년들과 주민들이 함께했다./사진제공=잇는연구소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충남 예산군 청년 인구(18~45세)는 2020년 1만9252명에서 2024년 1만8280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전체 인구 대비 청년 비율도 24.6%에서 23.2%로 낮아졌다. 이처럼 청년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겹치면서 군은 ‘소멸 위기 지역’으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부 청년이 일정 기간 머물거나 정착하는 사례가 늘면서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가져온 실험은 ‘청년마을’이다. 과거 ‘도시로 떠나는 청년’이라는 일방향이 전부였다면, 청년마을은 ‘지역을 찾아오는 청년’이라는 작지만 강한 바람도 만들고 있다.

군에서 활동하는 ‘청년마을 내일’은 단순히 청년이 잠시 머물다 가는 체험형 프로그램이 아니다. 외지 청년이 일정 기간 지역에 거주하며 마을을 탐구하고, 주민과 교류하며, 자신이 가진 전공이나 관심사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기록 △콘텐츠 제작 △문화 기획 △지역민과 교류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진다.

◇예산군과 청년, 지역주민을 잇는 ‘잇는연구소’
▲지난 6월 24일 열린 ‘예산탐구생활’ 결과발표회에 참여자와 주민들이 모여 성과를 공유했다/사진제공=잇는연구소
‘청년마을 내일’을 운영하는 주체는 ‘잇는연구소’와 ‘내일마을 협동조합’이다. 잇는연구소의 박정수 대표(39)는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년 창업과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활동했다. 청년 창업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그는 “도시 청년들이 지역에 실제로 뿌리내릴 수 있는 구조가 부족하다는 한계를 느꼈다”며 “사람과 지역을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지난 2023년 예산에 정착, 잇는연구소를 만들었다. 내일마을 협동조합은 잇는연구소의 청년마을 내일을 통해 정착한 청년들과 지역 청년들이 함께 힘을 모아 설립한 법인이다.

박 대표는 군의 구도심인 예산읍 본정통 거리에 위치한 낡은 건물을 개조해 ‘내일숲’이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을 열었다. 이 공간은 청년마을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공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층 독립서점 ‘내일은 밝음’에서는 주민과 청년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소규모 강연과 북콘서트를 연다. 2층 메이커스페이스에서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굿즈 제작, 디자인 워크숍, 사진 전시회가 열린다. 3층 공유오피스에는 청년들이 입주해 영상 제작, 디자인, 기획 활동을 한다.

주민들은 서점을 찾아 청년들이 만든 굿즈를 구매하고 책을 함께 읽는다. 청년들은 메이커스페이스에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해 주민들에게 다가가고 소통한다. ‘내일숲’은 이제 잇는연구소의 터전을 넘어, 이주 청년과 원주민이 함께 어울리는 접점이 됐다.

잇는연구소는 군에서 세 가지 주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첫째, 예산탐구생활이다. 참가자들은 예산의 마을을 걸으며 주민을 만나고 인터뷰하고 사진과 영상을 제작해 기록한다. 지금까지 400명이 넘는 청년이 참여했다. 1기 참가자들은 예산 읍내의 오래된 가게를, 2기는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생활사를 채록했다. 3기부터는 영상 기록이 본격화되며 다큐멘터리 형태로 발전했다. 제작된 기록물은 예산군립도서관에 보관된다. 결과물을 주민과 함께 보는 상영회도 열렸다.
▲지난 8월 30일 예산읍 주민자치회가 주최한 ‘수재민 돕기 바자회’에 청년마을 팀원들과 최재구 예산군수(가운데)가 함께했다./사진제공=잇는연구소
둘째, 로컬 콘텐츠 학교다. 이곳에서는 영상 제작, 글쓰기, 디자인, 지역 콘텐츠 기획 등을 배운다. 청년 창작자, 지역 전문가, 대학 연구자가 강사로 참여한다. 청년들은 짧은 기간 안에 기획부터 제작까지 경험할 수 있다. 완성된 결과물은 실제 지역 행사와 공간에서 전시된다.

셋째, 로컬 비즈니스 해커톤이다. 청년과 지역 상권이 협업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실험이다. 예산 시장의 상인과 함께 전통 음식 콘텐츠를 개발하거나, 지역 국밥집과 협력해 홍보 영상을 제작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지금까지 예산탐구생활과 청년마을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 가운데 약 10%가 장기 체류나 정착으로 이어졌다. 그는 청년들이 정착을 결심하는 계기에 대해 “자신의 활동이 이곳에서 의미 있다고 느끼거나 주민들과의 긍정적인 교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며 “이런 경험이 지역에 대한 인식을 ‘머무는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바꾸게 한다”고 설명했다.

◇생활인구로, 정착인구로…자신만의 방식으로 예산과 관계 맺는 청년들
▲지난 4월 26일, 시산리 토종씨앗박물관 텃밭에서 김신우씨(가운데)가 청년마을 운영진들과 함께 텃밭 가꾸기 활동을 하고 있다./사진제공=김신우
청년마을 내일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김신우씨(31)는 지난해 여름 ‘예산탐구생활 8기’에 참여했다. 당시 2주간의 활동에서 그는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마을 골목을 촬영하며 기록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김씨는 “체험 전에는 예산을 수많은 소도시 중 하나로만 알고 있었다”며 “실제로 살아보니 오래된 골목부터 오래된 사람, 오래된 장소가 쌓아 올린 ‘밀도’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청년마을에서 보낸 짧은 시간 동안 소도시 감성에 깊이 매료됐다”며 “이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하며 운영진으로 합류한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예산에 집을 옮겨 정착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서울과 예산을 오가며 일정 기간 머물고, 다큐멘터리 제작과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한다. ‘생활인구’라는 형태로 예산을 선택한 것이다. 생활인구란 거주 인구와 달리 특정 지역에 정기적으로 드나들며 일이나 활동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 도시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경력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서울에서 경력을 쌓아가던 김씨 역시 예산으로 향했을 때 주변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았다. 그는 “주변에서 작업의 연속성 같은 경력 문제부터 생활의 기초적인 부분까지 현실적인 우려를 많이 했다”며 “하지만 이곳에서 만든 결과물을 보여주자 ‘이제야 네 자리를 찾은 것 같다’며 응원해주는 이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민 인터뷰와 기록 아카이브 정리, 상영회 개최 등을 통해 지역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외부 청년이 금방 떠날 거라는 주민들의 경계가 있던 건 사실”이라며 “더 자주 인사드리고 활동을 이어가자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방문자에서 이웃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반복된 만남 속에서 신뢰가 쌓였고, 기록물은 주민들과 공유됐다.

지역 생활에 대해 김씨는 “예산에서는 청년이 적은 만큼, 청년의 ‘귀함’이 분명하게 느껴진다”며 “기대와 책임이 함께 따라와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나 자신과 일의 의미를 자주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 지난 8월 8일 예산군자원봉사센터에서 열린 ‘호우 피해 이재민 식사 나눔 봉사활동’에 참여한 강이은씨가 청년마을 팀원들과 함께 점심과 저녁 도시락 준비를 돕고있다./사진제공=강이은
지난 8월부터 예산에 정착한 강이은씨(23)는 경북 구미에서 자라 대구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건축물 자체보다 건물 안에서 이뤄지는 사람들 간의 교류와 마을공동체 활성화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SNS를 통해 청년마을을 알게 됐고 지난해 진행된 ‘예산탐구생활 8기’에 참여했다.

탐구생활이 끝난 후에도 2주 정도 더 머무르며 청년마을 운영에 참여했다. 강씨는 “도시에서는 이웃과 대화할 기회가 거의 없지만, 이곳에서는 일상이었다”며 “체험 기간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아 정착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지역 어르신들과 청년이 함께 운영하는 ‘예산 꽃할머니 카페’를 담당하고 있다. 전공을 살려 카페 인테리어를 전담하고 있으며 △시그니처 메뉴 개발 △전시 기획 △굿즈 디자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잇는연구소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공예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강씨의 목표는 지역의 일상과 여행이 만나는 접점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제가 기획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것이 목표”라며 “건물 내부든 야외든, 골목길 투어든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공간이 활성화되면 지역 관광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며 “예산에 오래 머물며 제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생활인구로서 예산으로 출근하며 기록을 남기는 방법으로 지역과 관계를 맺고 있다. 강씨는 정착인구로서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에 참여한다. 두 청년은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역과 함께하고 있다.

◇청년이 직접 만드는 ‘청년이 살고 싶은 예산군’ 
예산군은 올해 청년 정책 슬로건을 ‘청년이 살고 싶은 예산군’으로 정하고 다양한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군은 △주거 △일자리 △문화·복지 등 청년 인프라 전반을 중심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청년 주거를 위한 대표 사업으로는 ‘신활력-업 타운 조성사업’이 있다. 이 사업은 2023년 충남도 공모사업에 선정돼 현재 예산시장 인근에 취·창업 청년을 위한 주거지를 조성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마을정비형 공공주택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일자리 부문에서도 다양한 노력이 이어진다. 산업단지와 연계한 청년 맞춤형 일자리를 비롯해 △대학생 아르바이트 지원 △청년 후계농 영농정착 지원 △청년 맞춤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사업 등 취·창업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청년들의 지역 내 경제활동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문화·복지 분야에서는 오는 10월 개관을 앞둔 청년복합문화센터 ‘예산청년온담’을 거점으로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지원할 예정이다. 공유오피스와 문화공간, 회의실 등이 마련돼 창업과 교류 활동이 동시에 가능하다. 또한 전시, 강연, 워크숍 등을 통해 지역 청년들의 활동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청년정책위원회를 통해 정책 과정에 청년들이 직접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청년이 직접 정책 과정에 참여하도록 설계했으며, 청년정책 기본계획(2025~2029)도 청년정책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수립됐다.

군 관계자는 “청년이 일자리와 주거, 문화, 교육을 함께 충족하며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다각도로 추진하고 있다”며 “정착 청년뿐 아니라 생활인구까지 포괄하는 정책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s175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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