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공화국’ 그늘, 빛 좋은 개살구 될라

[심층리포트]‘환경+경제’ 모두 잡으려면 ‘그 지역의 특별한 스토리’ 담아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신재은 기자 2025.09.02 09:21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정원은 단순한 녹지 공간을 넘어 도시 브랜드를 키우고 지역경제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일부 지자체가 앞다퉈 정원도시 조성에 나서고 있지만, 무분별한 사업은 예산 낭비와 생태계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원도시를 선포한 지자체들의 현황을 살펴보고, 풀어야 할 과제를 짚어본다.
▲2023년 3월 27일 오후 전남 순천시 순천만국가정원 내 정원박람회장/사진=뉴시스

전국 곳곳에서 ‘정원도시’ 조성 바람이 불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생활 속 녹색 공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데다, 2013년 개장한 전남 순천만 국가정원이 성공 사례로 주목받으면서 정원 조성에 대한 관심이 지자체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정원 조성이 자칫 지자체 예산 부담을 키우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어 계획 단계에서부터 지역의 특색 있는 콘셉트를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현재 대전과 부산 등 40여 곳이 지방정원 또는 국가정원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시는 삼락·맥도·을숙도 등 낙동강 하구 일대에 ‘낙동강 국가정원’ 사업을, 세종시는 세종중앙공원 일대에 국가정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충남 아산시도 지난 4월 신정호지방정원을 등록, 국가정원 지정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공주시와 부여·청양군은 공동으로 ‘금강 국가정원’ 사업을, 충북 충주시는 금릉동 세계무술공원 일원에 ‘탄금대 국가정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전시는 서구 흑석동에 ‘노루벌 지방정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정원’ 선정 쉽지 않네”…국내 두 곳뿐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정원누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등록정원은 △국가정원 2곳 △지방정원 13곳 △민간정원 162곳 등이다. 미등록·조성 중인 민간정원과 스마트가든(실내정원)까지 포함하면 전국에 약 1400곳의 정원이 운영되고 있다.

국가정원은 산림청이, 지방정원은 도지사나 시장·군수 등 지자체장이 지정한다. 국가정원은 정부가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직접 지정해 운영하거나, 지자체가 운영 중인 지방정원 가운데 승격 심사를 거쳐 확정된다.

국내에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곳은 순천의 순천만국가정원과 울산의 태화강국가정원으로, 각각 2015년과 2019년에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국가정원에 지정되기 위해서는 △30헥타르(30만㎡) 이상의 면적 △원형 보전지·조성녹지 호수·하천 등 녹지면적 40% 이상 △전담 조직 구성과 편의시설 설치 등을 충족해야 한다. 아울러 3년간 운영실적과 운영 후 품질과 운영·관리에서 70점 이상의 평가도 받아야 한다.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면 면적, 입장객 수에 따라 운영비를 국비로 지원받는다. 관련 법을 토대로 순천만국가정원은 40억원, 울산 태화강국가정원은 21억원을 연간 받고 있다.

지방정원의 경우 지자체가 10헥타르(10만㎡) 이상 면적에 조성해야 하고 부지 중 최소 40%는 녹지여야 한다. 정원관리 전담 부서와 주차장, 체험시설을 비롯한 편의시설, 지방정원 운영관리 조례 등이 충족되면 시·도지사가 지방정원으로 지정·등록할 수 있다.

◇‘죽음의 강’도 살리는 국가정원…지자체 효자노릇

▲서울시 보라매공원에서 5월 22일부터 10월 20일까지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진행된다. /사진=홍세미 기자

순천은 정원박람회를 통해 관광 산업을 활성화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시에 따르면 2013년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열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는 440만 명이 방문해 1조3323억원의 경제효과를 거뒀다. 10년 만인 2023년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간 열린 두 번째 박람회에는 첫 행사보다 두 배 이상 많은 980만 명이 찾았다. 전남경제연구원은 이로 인한 생산유발 효과를 2조841억원, 부가가치를 9489억원, 취업유발 인원을 2만5882명으로 분석했다.

박람회를 계기로 순천은 국내 1호 국가정원을 품은 전국구 관광 도시로 자리 잡았다. 연간 국내외 관광객 430만여 명이 찾는다. 전남대 산학협력단 연구에 따르면 순천만국가정원은 연간 경제 파급효과만 4116억원에 달한다.

한때 ‘죽음의 강’으로 불리던 울산 도심 하천 태화강이 이제는 연간 500만 명이 찾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거듭났다. 1996년 발생한 숭어 떼죽음 사건을 계기로 울산시는 대대적인 수질 개선에 나섰고, 6급수였던 태화강은 꾸준한 노력 끝에 1급수로 회복됐다. 어류와 조류가 돌아오며 생태 보고로 탈바꿈한 태화강은 2019년 순천에 이어 국내 두 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시에 따르면 태화강국가정원에 지난해 500만 명이 방문하며 1600억원 이상의 생산유발 효과를 내고 있다.

태화강국가정원은 2028년 4월부터 6개월 동안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한다. 전체 예산 7000억원 중 90%가 넘는 6510억원을 정원 인프라 조성에 투입한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최 당시 정원 조성에 들어간 예산의 3배가 넘는 규모다. 시는 박람회 개최를 통해 생산유발 3조1544억원, 부가가치 유발 1조5916억원, 일자리 창출 2만5017명을 예측하고 있다.

지방정원의 경우에도 지역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 담양군은 2005년 대나무를 활용한 관광지 ‘죽녹원’을 조성한 뒤 2019년 전국 두 번째 지방정원으로 등록했다. 군에 따르면 죽녹원에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찾고 있다.

2019년 지방정원 1호로 등록된 경기 양평군 세미원에는 해마다 18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한다. 한국관광공사에서 2년을 주기로 한국의 대표 관광지 100곳을 선정하는 사업인 ‘한국관광 100선’에 7년 연속 선정될 정도로 관광객 사이에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정원박람회를 개최하기만 해도 경제효과가 나타났다. 진주시는 지난 6월 13일부터 22일까지 초전동 초전공원과 월아산 숲속의 진주 일원에서 ‘2025 대한민국 정원산업박람회’를 열었고 41만여 명의 방문객을 모았다. 시는 약 248억원의 경제효과와 313명의 취업유발 효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서울시 보라매공원에서 5월 22일부터 10월 20일까지 약 5개월 동안 진행되는 ‘서울국제정원박람회’의 경우, 8월 1일까지 501만3900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행사 100일 차에 500만 명을 기록한 지난해보다 28일 빠른 기록이다. 박람회장 내 푸드트럭·판매 부스 등은 개장 후 40여일간 매출 17억5000만원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 그대로 충분한데…예산낭비 우려도

▲신정호 지방정원의 조형물/사진제공=아산시

이렇듯 일부 지자체가 정원 조성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생태 보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잡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무분별한 사업 추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원 지정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무리하게 대규모 부지를 확보하거나, 생태·문화적 특색과 무관한 ‘형식적인 정원’을 조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 지자체가 ‘정원 만들기’에만 급급해 차별성 없이 예산만 낭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충남 아산시는 ‘신정호 지방정원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비 대부분을 토지 매입에 사용해 의회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시는 지난해 지방정원 조성비의 73%인 186억원을 들여 신정호 생활체육공원 인근 부지를 매입했다. 일각에서는 신정호 정원 부지가 국가정원 등록 요건인 30만㎡에 못 미치자 부지를 추가 매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미성 아산시의원(더불어민주당·라선거구)은 머니투데이 <더리더>와의 통화에서 “지방정원을 조성하고 활성화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적은 국가정원 도전을 위해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는 신정호 일대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부지를 매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시 관계자는 “꼭 국가정원 지정을 위해서라기보다, 계획 없이 조성돼 있던 신정호 일원을 지방정원으로 정비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대전시는 2023년 전국일류정원도시를 목표로 ‘노루벌 지방정원’ 조성을 발표, 추진하고 있지만 낮은 경제성에 발목 잡혔다. 노루벌 지방정원은 민선 8기 핵심 공약으로 시는 이곳에 각종 인공 구조물과 조경시설, 고급 도시형 휴양 시설 등을 짓겠다고 계획했다. 시비 998억원과 지방채 971억원 등 1969억원이 투입되는 큰 사업이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경제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노루벌 지방정원 사업은 지난 7월 발표된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에서 비용편익비(B/C) 0.09인 ‘재검토’ 판정을 받았다. 통상 B/C가 1.0 이상이면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1.0보다 낮으면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본다. 시는 사업을 검토 및 재조정해 계속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머니투데이 <더리더>와의 통화에서 “B/C 비율이나 사업 규모 등을 재검토한 후 재심사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그 과정에서 사업비는 변경될 수 있다”고 했다.

경기 안양시에서도 예산 100억원을 투입하는 ‘안양천 지방정원 조성 계획’을 발표하자 안양·군포·의왕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련)이 생태계 훼손을 이유로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안양천 지방정원 조성 계획은 경기 광명·안양·군포·의왕 등 4개 시를 관통하는 안양천 일대를 지방정원으로 만드는 사업으로, 해당 지자체의 특성에 맞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안양시는 지난 7월 11일 주민설명회를 통해 “안양천 안양시 구간(12.2km)의 주요 거점에 교감정원, 향기정원, 물의정원 등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련은 지난 7월 14일 “안양천은 이미 수달과 원앙이 있는 생태하천인데 정원으로 개발한다면 오히려 생태계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매년 여름 범람하는 하천에 꽃을 심어 관리비만 낭비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2의 출렁다리 vs 건강 증진 정책

▲지난 7월 25일 오전 울산시청 로비에서 열린 ‘2028 울산국제정원박람회’ D-1000 기념행사에서 김두겸 시장, 이성룡 시의회 의장, 임현철 시 대변인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지역의 랜드마크로 ‘정원만들기’에 몰두한 나머지 특색 없는 정원만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한다. 비슷한 콘셉트의 정원이 조성되면 애초 지자체가 목표로 했던 ‘브랜드화’ 혹은 ‘관광객 유치 효과’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형기 신안예술섬프로젝트 총괄기획자(충북대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정원 조성 방식과 가치 부여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정원 만들기’만 한다면 제2의 출렁다리, 케이블카가 되기 쉽다”고 우려했다.

이미 여러 지자체에서는 출렁다리나 케이블카, 전망대처럼 특색 없이 유행에 편승한 관광시설을 유치한 바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적으로 238개의 출렁다리가 지자체 예산으로 지어졌다. 출렁다리 조성액은 규모와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수십억원부터 100억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전국 출렁다리 현황 및 효과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관광객 유치 효과는 3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정원 조성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국민 건강 증진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만큼 정원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경기 여주시·양평군)은 지난해 산림청 국정감사장에서 정원 공간의 사회·환경적 가치를 강조하며 국가정원 지정 요건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정원의 사회·환경적 가치는 약 13조원으로 추정되며 우울증과 치매, 알츠하이머 등 정신적 질환과 비만 등 신체적 질환에 대한 치유 효과도 입증된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통해 취약 지역을 정비하고, 부족한 녹지 공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정원도시를 조성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국제정원박람회, 연방정원박람회, 주정원박람회 등 세 가지 주요 박람회를 개최하며, 모두 녹지 공간 확충이나 도시 정비의 목적으로 진행된다.

이외에도 싱가포르는 1967년 ‘정원도시(Garden city)’를 슬로건으로 50년간 지속해서 도시(국가) 브랜딩에 성공했고, 2013년 ‘정원 속의 도시’(City in a Garden), 2021년 ‘자연 속의 도시’(City in Nature)로 발전시켜 전 세계적으로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김용국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원으로 이름난 독일, 싱가포르, 영국 등을 보면 도시계획의 철학을 가지고 ‘정원도시’를 조성하고 있다”며 “특히 독일은 도시 개발, 도시 재생의 차원에서 정원박람회를 개최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이 정원 조성을 추진할 때 정원과나 조경과 등 개별 부서뿐만 아니라 도시 개발, 재생, 건축 등 관련 부서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정원 조성의 조건, “고유 특성·스토리 담아야”
전문가들은 ‘도시정원 만들기’가 효과를 보기 위해선 독자적인 콘셉트와 스토리가 살아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체장 치적 쌓기, 전시행정 등을 위한 단기적 이벤트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형기 총괄기획자는 “정원이 지역에서 긍정적 효과를 내려면 산업적 기능이 필수”라며 “이를 위해선 지역마다 독자적인 콘셉트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위도와 경도가 크게 차이나지 않아 꽃과 나무만으로는 차별화할 수 없기에 규모로만 경쟁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역의 스토리가 담기지 않고 규모만으로 경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원 계획 단계에서부터 지역만의 특별한 스토리와 콘셉트를 담아 풍경이 아닌 의미가 있는 정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jenny091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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