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규 제천시장은 지난 6월 머니투데이 <더리더>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전국적인 추세가 그렇듯, 몇 년째 지속되는 인구감소와 초고령화로 인해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의 25%를 넘어서는 등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는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바로 ‘고려인 인구 정책’이다. 고려인은 1860년 전후부터 1945년 광복 시기까지 농업 이주, 항일 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의 이유로 러시아와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한인 동포 및 그 후손을 일컫는다.
시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국외에 약 50만 명, 국내 안산·아산·인천·광주 등지에 약 10만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을 지역사회로 유입시켜 인구 감소에 대응하고, 지역 공동체를 다문화적으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시는 ‘고려인 이주 정착 지원’ 사업을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인구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대부분 출산 및 결혼 장려, 귀농·귀촌 유치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김 시장은 이 같은 방식으로는 인구 증가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 김 시장은 “단순히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만으로는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인구정책의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며 “그 대안 중 하나가 고려인을 포함한 재외동포의 이주 및 장기 정착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려인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러한 점은 인력 부족 문제를 겪는 지역 기업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교관 출신 시장 정책 ‘통했다’, 외신도 소개 시가 ‘고려인 유치’에 주목하게 된 배경에는 김 시장의 이력도 한몫했다. 김 시장은 외교관 출신으로, 1984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외교통상부 인사제도계장, 주독일 참사관, 주아제르바이잔 대사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외신도 고려인 유치 사업을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적인 시도’라고 평가하며 지면에 소개하기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8월 6일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이주당한 고려인에게 정성을 기울이며 인구 소멸 도시를 구하려는 시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앞서 같은 해 7월 3일에는 BBC 뉴스 코리아가 ‘초저출생 한국에서 이미 시작된 미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의 고려인 이주·정착 지원 사업을 조명한 바 있다.
시에 따르면 6월 기준, 현지 적응 교육을 마치고 시로 완전히 이주한 고려인은 총 110세대, 276명에 달한다. 현재 이주를 진행 중인 인원은 183세대, 478명으로 집계됐다. 국적별로는 카자흐스탄 출신이 265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우즈베키스탄 213명, 러시아 198명, 기타 78명 순으로 나타났다.
이주 고려인 가운데 30~40대가 전체의 47%(358명)를 차지해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보였다. 미취학 아동과 초·중·고교 학생 등 교육 연령층은 26%(200명)로 집계됐다. 김 시장은 “단기적으로는 지역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장기적으로는 인구 구조 회복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고려인은 우리와 언어, 문화, 정서를 공유하는 동포로서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융화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고 말했다.
시는 ‘이주 정착 지원 사업’ 참여자를 연중 수시로 모집하고 있다. 지원 자격은 공고일 기준 단기방문, 방문취업, 거주, 영주, 결혼 비자 등을 소지한 고려인 동포로, 제천시에 2년 이상 실거주할 수 있어야 한다.
◇취업·주거·보육·의료 등 다양한 정착 지원 정책 고려인 이주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시는 2023년 3월 ‘제천시 고려인 등 재외동포 주민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에서는 ‘고려인’을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에 농업 이민, 항일 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의 이유로 러시아 및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인물과, 그 친족으로서 합법적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아울러 △고려인 및 재외동포의 정의와 지위 △지원 대상 기준 △구체적인 지원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선정된 고려인은 △4개월 단기 체류시설 제공 △한국어·한국문화 등 정착 교육 프로그램 제공 △취업 및 주거지 연계 지원 △보육·의료 지원 △인재 우대 지원 △법률·생활고충 상담 등 이주 정착을 위한 지원을 받는다.
시는 학생 수 감소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세명대학교와 대원대학교 기숙사를 리모델링해 ‘재외동포지원센터’로 탈바꿈시켰다. 이주한 고려인들은 이곳에서 약 4개월간 무상으로 숙식하며 사회통합 교육, 조기 적응 프로그램, 한글 교육 등을 받는다. 이후에는 시의 지원을 통해 취업, 교육, 주거, 복지 등 정착에 필요한 생활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시는 고려인의 성공적인 이주 정착을 위해 지역사회와의 융화를 중시하는 자생적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취업을 포함한 생활 전반에 있어 고려인들이 지역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국어 교육은 아동부터 성인까지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1년간 500여 명의 고려인이 약 4개월간 단기 체류하며 한국어와 한국 문화 정착 교육을 받았다. 시는 이들을 대상으로 취업, 주거, 보육·의료, 법률·생활 등 전반에 걸친 다양한 정착 지원 정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주 고려인 가정을 대상으로 다양한 경제적 지원책도 시행하고 있다. 미취학 자녀에게는 월 30만원의 보육료를 지원하고, 초·중·고 자녀가 있는 가정에는 제천인재육성재단을 통해 연 5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할 경우에는 100만원의 장학금도 제공한다.
시는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을 통해 고려인의 국내 취업도 지원하고 있다. ‘지역특화비자’(F2-R·F4-R)는 일정 요건을 갖춘 우수 외국인과 외국국적 동포에게 발급되며, 이를 통해 가족과 함께 제천 등 인구감소지역에서 최대 5년간 거주할 수 있다. 대상은 단기체류(C-3-8), 방문취업(H-2), 재외동포(F-4), 영주(F-5) 등의 비자를 소지한 합법 체류 고려인 동포이며, 제천에 정착한 고려인의 배우자도 취업이 가능하다. 현재 제천에 정착한 고려인 중 70% 이상이 취업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고려인을 대상으로 의료, 주거, 취업 등 전방위적인 지원 정책을 시행 중이다. 현재 관내 3개 종합병원과 협약을 맺고 의료비의 20%를 할인해주며, 이주 첫해에는 약값 등 의료비로 20만원을 추가 지원하고 있다. 입국 초기에는 체류시설 입소 전부터 시가 직접 나서 지역 기업과 연계한 취업을 알선하고, 공인중개사와 협력해 주거지도 함께 마련해준다.
또한 돌봄수당(30만원), 초·중·고 장학금(각 50만원), 대학생 장학금(100만원) 등 다양한 복지 혜택도 제공된다. 이 같은 정책을 바탕으로 시는 매년 약 300명을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고려인 유입 이후 지역 노동력 부족 문제가 해소됐고, 지역 상권에도 활기가 돌고 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정책으로 고려인들을 지속적으로 유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출산 친화 환경 조성해 살기 좋은 시 만들 것” 시는 일반 시민들을 위해 출산 친화적 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오는 7월에는 충북 도내 최초로 공공산후조리원이 시에 문을 연다. 다문화가정과 장애인 가정에는 산후조리원 이용 비용의 50%를 감면해줄 예정이다.
이와 함께 최대 3800만원까지 지급되는 출산장려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다자녀 가구에는 별도의 추가 지원도 제공된다. 돌봄센터 운영, 청소년 대상의 ‘꿈모아 바우처’ 등 보육과 교육을 위한 다양한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청년층을 위한 주택자금 지원, 청년센터 운영, 청년 근로자 인센티브 지급 등 청년 대상 정책도 진행하고 있다.
김 시장은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출산, 양육, 정착에 이르는 전 과정에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지역 공동체가 지속 가능하도록 다각도의 인구 정책을 추진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