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예리하게, 때로는 재미나게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무슨 칼럼을 어떻게 쓸까, 궁리한 만큼 어필할 수 있다

글쟁이㈜ 백우진 대표 2025.04.15 10:10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백우진 글쟁이㈜ 대표
#1. 이 몸은 한때 지상에서 가장 고귀했다. 나폴레옹 3세(재위 1852~1870)는 최상급 귀빈에게만 나로 만들어진 나이프와 포크를 내놓았다. 금 소재 식탁용 날붙이류는 그 다음 등급 진객에게 제공했다. 1884년 세워진 미국 워싱턴 기념비의 꼭대기에는 나로 제작된 무게 2.7㎏의 피라미드가 씌워졌다.

#2. 한국 마라톤 인구에 2차 빅뱅이 일어났다. 취미로 오래 달리기를 하는 사람 수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해 500만 명 정도가 됐다고 한다. 이 변화의 주역은 30대. 이들은 요즘 풀코스 대회 완주자 중 약 20%를 차지한다고 알려졌다. 4년 전 약 10%의 두 배로 늘었다. 최근 기사들은 20대도 많이 딜린다고 전하는데, 그들은 대회에 참가할 때 주로 하프 이하를 뛰는 듯하다.

#3. 엔비디아에서 ‘광속’은 일반적인 의미와 다르게 쓰인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사진)이 “광속으로”라고 지시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매우 빠르게’라는 뜻이 아니다.

2023년 12월 4일자 뉴요커 기사 ‘선택된 칩’ 등에 따르면 ‘광속’은 이상적인 속도다. 납기 등을 관리할 때 예산이 무제한이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된다는 가정하에서 가능한 최고 속도를 가리킨다. 관리자는 그렇게 정한 이상적 목표를 기준으로 변수를 바꿔가면서 성취할 수 있는 현실적 목표를 잡는다. 이 기법은 현재 상태에서 출발해 개선 방안을 찾는 방식에 비해 성과가 컸다. 일본에서 1980년대에 창안돼 국내 업체들도 벤치마킹한 이상목표관리시스템과 일맥상통한다.

이 세 꼭지는 필자가 쓴 칼럼 중, 좋은 반응을 얻었거나 그랬으리라고 자평하는 글의 앞부분이다. 기자는 물론이고 각 분야 전문가들 중에서도 빼어난 칼럼을 쓰고 싶어 하는 이가 많다. 어떤 글이 훌륭한 칼럼일까.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와 〈세계는 평평하다〉와 같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쓴 토머스 프리드먼에게서 들어보자.

“좋은 칼럼은 좋은 보도와 좋은 분석이 통합된 칼럼입니다. 제대로 된 보도에 기반을 둔 의견이어야 해요.” 프리드먼은 이렇게 운을 뗀 뒤 “다음과 같은 5가지 반응을 받는 칼럼이 좋은 칼럼”이라고 말했다. (출처: 관훈저널 2009년 3월 25일 통권 110호, 토머스 프리드먼, 그는 왜 최고의 칼럼니스트인가)

“첫째 독자가 그걸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는 새로운 정보가 있는 칼럼, 둘째 ‘나는 그렇게 보질 못했어요. 고맙습니다’라는 반응이 있는 칼럼, 셋째 ‘당신은 내가 느끼기는 했지만 표현하지 못한 걸 썼어요. 고맙습니다’(기자는 이런 칼럼을 쓰는 보람으로 사는데 그런 일은 1년에 다섯 번이나 있을까요), 넷째 ‘당신과 당신 가족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는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칼럼, 다섯째 읽는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칼럼입니다.”



◇복잡한 사안을 맥락 잡아 설명해도 좋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칼럼니스트의 조언이지만, 일부는 너무 어렵거나 바람직하지 않다. 각각을 놓고 생각해보자. 첫째 정보성 칼럼. 하루에도 수많은 발표와 보도 기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정해진 주기에 따라 쓰는 칼럼니스트가 발굴해 알릴 수 있을까? 

언론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고난도 과제인지 안다. 설령 내가 아직 알려지 않은, 유익하거나 유의미한 정보를 최초로 취재했을지라도 그 ‘최초’라는 정보의 가치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소멸되기 일쑤다. 넷째, 격렬한 반박을 불러일으키는 칼럼을 그는 권했으나, 예리한 칼럼은 그 칼날이 베어내고자 하는 의견을 지닌 사람들로 하여금 침묵하게 한다. 그런 칼럼은 논박할 여지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조언을 실행 가능한 버전으로 바꿔보자. 첫째 ‘정보성’을 ‘해설성’으로 확장하면 조금 쉬워진다. 복잡다단한 현상의 배경이나 전망을 설명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둘째 ‘고유하고 설득력 있는 시각’ 대신 ‘이미 알려진 시각이더라도 설득력 있게 전개’하면 된다고 본다. 감동은 내용과 표현에서 나온다는 점을 고려할 때, 셋째는 다섯째 안에 포함할 수 있다.

이제 필자가 쓴 세 칼럼이 어떤 유형인지 살펴보자. 첫째는 수사법을 구사해 독자에게 흥미를 주면서 이 주제를 전하려 했다. 둘째는 한국에 부는 마라톤 붐 현상을 분석하고 해설했다. 젠슨 황의 ‘광속 모험’을 소개한 셋째 칼럼은 정보성도 갖춘 해설이다. 필자가 쓴 이 칼럼이 발행된 즈음 젠슨 황의 ‘광속’ 경영은 국내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필자는 칼럼·수필 쓰기 첨삭 과정의 강사로도 활동한다. 그러면서 받아본 글, 개인적인 관심이나 필요에 따라 읽게 된 글에서 자주 보이는 유형이 있다. 독자에게 재미를 주겠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글이다. 재미는 어디에서 오나. 내용 자체가 신선하고 관심을 끄는 종류일 수 있다. 재료의 선도가 뛰어나지 않더라도 그 재료와 관련한 인용을 통해 논의를 풍부하게 하거나 수사법을 구사하면 독자는 흥미를 유지하는 가운데 글을 읽게 된다.

첫째 글의 제목은 ‘내 이름은 알루미늄’이다. 근래 들어 더욱 각광받고 두루 쓰이는 금속 알루미늄을 의인화하는 비유법이 여기에 구사됐다. 의인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과거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조침문’은 바늘을 의인화해 제문 형식으로 쓰였다. 조침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告)하노니, 인간 부녀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바늘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 바이로다.”



◇글감 정한 단계부터 표현도 궁리해야


의인법처럼 아주 가끔 쓸 수 있는 수사법이 아니더라도, 독자에게 재미를 주는 표현법은 많다. 은유법과 언어유희 같은 기법은 구사할수록 는다. 시행착오를 거쳐 자연스럽게 글에 입힐 수 있다. 은유법은 국어 교과서나 문예 작품에만 있지 않다. ‘꽈배기의 에르메스’처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활용하고 듣는다. 언어유희는 영어로 pun이라고 한다. 동서고금에 두루 쓰이는 기법이다. 어설프게 상투적으로 구사하면 ‘아재개그’가 되지만 이 기법 또한 자주 시도하다 보면 괜찮은 표현을 하게 된다.

둘째 글에는 제목을 조어로 붙였다. 마라톤은 경제 현상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마라토노믹스’라는 단어를 지어냈다. 또 도심 달리기는 ‘과시적 운동’이어서 만족도가 높다고 표현하고 설명했다. 셋째 글은 ‘광속’과 ‘모험’을 조합한 ‘광속 모험’이라는 문구가 재미나다는 반응을 얻었다.

수사법은 글감을 정한 뒤 글을 어떻게 전개할지 궁리하는 단계에서부터 동시에 모색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제목에 붙일 문구가 떠오르기도 하고, 종결부에 넣을 문장과 마주치기도 한다. 그 순간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 중 하나다.

적절한 인용은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글에 인용을 넣고 그 인용이 적절하려면 필자가 갖고 있는 일화와 어록이 풍부해야 한다. 인용이 꼭 글과 책일 필요는 없다. 영화나 드라마, 오페라일 수도 있다. 풍부한 인용을 위해서는 평소에 고전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에게 거론할 만한 작품을 다양하게 접하면서 언젠가 인용할 거리를 갈무리해둬야 한다.

인용과 관련해 꼭 하고 싶은 조언이, 사자성어나 속담은 피하라는 것이다. 사자성어나 속담은 독자에게 새롭지 않고, 재미도 없다. 그에 비해 서구의 어록 중에는 통찰이 있고 위트가 담겨 있으며 표현이 뛰어난 것이 많은 편이다. 서구의 어록을 패러디하는 기법을 권한다.

인용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생성형 AI한테 물어보자. 필자는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혁신의 사례를 인용하고 싶었다. 마땅한 예화가 바로 생각나지 않았고, AI에게 물어봤다. AI가 즉각 내놓은 일화들 중 한 건은 다음과 같다.

“컵라면 용기의 물 배출 구멍. 컵라면을 먹을 때 뜨거운 물을 버려야 하는 경우(예: 볶음면, 우동류) 물을 따라내다가 면이 쏟아지거나 뚜껑이 떨어지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를 개선한 사례로, 일부 컵라면 용기의 뚜껑에 작은 물 배출 구멍을 추가하여 뚜껑을 닫은 상태로도 쉽게 물을 버릴 수 있도록 한 디자인이 등장했다. (하략)”

프리드먼의 설명으로 돌아오면, 칼럼은 시사를 놓고 가능하면 재미나게 설명하거나 분석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글이다. 그렇게 하려면 오랫동안 꾸준히 자신의 콘텐츠를 확충하고 수사법을 연마해야 한다. 그 경지에 이르면 칼럼 작성은 필자에게도 힘겨움보다 더 큰 재미를 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s175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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