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검증은 생각보다 어렵다

[AI 시대, 리더의 생각]미심쩍은 부분과 제기되는 의문, 반드시 들춰봐야

글쟁이㈜ 백우진 대표 2025.10.14 09:35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생성형 인공지능(AI)이 여러 업무에 자리 잡고 있다. AI 사용으로 업무 효율이 향상되는 가운데, AI가 생산한 자료를 받은 사람의 검수 역량이 더 중요해졌다. 의사결정의 정점에서 일하는 리더는 특히 최종 검수자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여기에 활용할 생각법을 공유한다. AI 답변 대용으로 주로 전문가들이 쓴 글을 검수 대상으로 다룬다.
▲백우진 글쟁이㈜ 대표
미국 언론계 최악의 스캔들로 ‘지미의 세계(Jimmy’s World)’가 꼽힌다. 이 제목의 기사는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재닛 쿡은 이 기사를 취재·보도한 공로로 미국 저널리즘 분야 최고 영예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기사의 앞 두 문단은 다음과 같다.

"지미는 여덟 살 소년으로, 3세대에 걸친 헤로인 중독자다. 머리칼이 모래 색이고 눈은 벨벳 같은 갈색이다. 그의 여린 갈색 팔에는 아기처럼 매끄러운 피부 위에 주삿바늘 자국이 점점이 박혀 있다.

그는 워싱턴 동남부에 있는 안락하게 꾸며진 집 거실에서 크고 베이지색의 리클라이너 의자에 몸을 파묻고 앉아 있다. 옷과 돈, 볼티모어 오리올스 야구팀, 헤로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의 작고 둥근 얼굴에는 천사 같은 표정이 어른거린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중독 상태였다.”


기사의 종결부는 이렇게 전개된다.

“그는 지미(Jimmy)의 왼팔 팔꿈치 위를 움켜쥔다. 그의 거대한 손이 아이의 작은 팔을 단단히 감싼다. 바늘은 갓 구운 케이크의 중심에 빨대를 꽂듯, 소년의 부드러운 피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주사기 속 액체가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선명한 붉은 피가 채운다. 그 피는 다시 아이의 몸속으로 주입된다.

그러는 내내 지미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이제 눈을 뜨고 방 안을 재빨리 둘러본다. 그는 흔들의자에 올라가 앉는다. 고개가 푹 떨어졌다가 다시 번쩍 들리기를 반복하는데, 중독자들이 ‘끄덕임’이라고 부르는 상태다."

이 장면에서 지미에게 주사로 헤로인을 주입하는 ‘그’는 지미 어머니의 동거남 론이다. 기사는 론이 지미에게 “곧 말이야, 친구 네가 직접 이걸 할 수 있어야 해”라고 말했다고 인용하면서 끝난다.

이 기사는 〈워싱턴 포스트〉 1980년 9월 27일자로 발행됐다. 미국 활자매체들은 유료 회원에게만 기사 전문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기사는 예외적이다. 로그인하지 않아도 볼 수 있게 전문을 공개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기사의 도입부와 종결부는 〈워싱턴 포스트〉홈페이지에서 인용한 것이다. 번역은 챗GPT에 초벌을 맡긴 뒤 필자가 조금 다듬었다.

왜 이 기사는 무료로 공개되고 있을까? 기사 위에 게시한 ‘정정’ 고지문이 힌트다. 이 글은 “다음 기사는 사실이 정확하지 않고 필자가 날조한 것”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반성하고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이 기사 전문을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통째로 지어낸 기사가 팩트 체크 통과
3대에 걸친 헤로인 중독 집안의 여덟 살짜리 중독자. 이 기사의 내용 중 무엇이 사실과 다를까? 이런 접근은 사실 검증을 방해했다. 기사에 대해 의문을 품은 〈워싱턴 포스트〉의 간부들도 이렇게 접근했다. 이 기사는 일부가 사실과 다르거나 꾸며낸 내용이 아니었다. 전체가 허구였다. 기자 재닛 쿡은 이 글 전체를 창작했다. 3대째 중독 집안도, 지미도, 지미 어머니의 기구한 삶도 모두 지어낸 이야기였다.

어떻게 미국의 주요 언론매체가 이토록 어처구니 없는 실책을 저질렀을까. 쿡에게서 보고받고 기사를 검토하고 게재를 결정하기까지 간부들이 많을 텐데 어떻게 다들 넘어갈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답을 찾는 일이 기본이지만, 이 스캔들을 〈워싱턴 포스트〉의 실책으로 한정할 수는 없다. 미국 사회가 이 뉴스로 들썩거리는 동안 주요 인사들이 이 허구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매리언 배리 워싱턴 D.C. 시장은 “시(市)가 지미의 신원을 알고 있다”고 발표했다. 워싱턴 D.C. 소재 하워드 대학의 약물남용연구소장 앨리스 굴라티 박사가 지미와 그의 가족을 알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허구에 흥분하고 거들며 한몫하려는 행태는 어디에서나 나타난다.

재닛 쿡 사건에서 파생된 다른 교훈은 제삼자로서 발언할 때 표현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미의 이야기가 창작이라는 사실을 〈워싱턴 포스트〉가 밝히자 중남미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런 촌평을 내놓았다. “그녀가 퓰리처상을 받은 것은 불공정하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것 또한 불공정하다.” 날조한 이야기를 사회 문제로 키운 기사가 노벨문학상 감이라는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

이 표현은 관심을 끄는 데 치중한 나머지 저지른 실수로 보인다. “그녀는 진로를 잘못 택했다. 저널리즘이 아니라 문예의 길로 접어들었어야 했다.” 이 정도 촌평이 더 적절했지 싶다.

당시 이 신문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는 회고록 〈워싱턴 포스트 만들기 A Good Life〉에서 이 사건을 상세하게 복기하고 반성했다.

이어 사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무엇을 챙겨야 하는가 하는 교훈을 공유했다. 이 교훈은 언론매체가 아니라 사실을 다루는 모든 조직에서 참고할 만하다. 교훈 중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일상적으로 이력서의 모든 정보, 특히 학위증명서를 점검해야 한다.
2. 어떤 이유에서든 사실이기를 바라는 기사에 주의하라.
3. 어떤 기자든 기사 출처의 신원을 에디터와 공유해야 한다. 예외는 편집인에 의해서만 허용될 수 있다.
4. 모든 사람이 동료들에게 하듯이 자신의 상사와도 두려움과 의심을 공유하도록 보장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빈곤층 엄마가 비싼 마약을 아이에게도 줄까?
이에 대해 더 살펴보기 전에, 브래들리가 복기하지 않은 점을 먼저 생각해보자. 〈워싱턴 포스트〉의 간부들은 이 사건의 개연성을 따져보지 않았다. 다른 정보가 없는 상태일지라도 개연성이라는 기준은 사실을 검증하는 데 유효하게 활용될 수 있다. 쿡이 쓴 기사에서 개연성을 의심할 대목은 다음과 같다.

- 어린이의 욕구 체계는 어른과 크게 다르다. 어린 아이는 기본적인 신체 욕구가 충족된 다음에는 어릴 때에만 즐기는 놀이와 또래와 어울려 놀기 등을 좋아한다. 10세 미만 아이가 마약에 중독된 사례는 거의 없다.

- 빈곤층 마약 중독 어머니는 대부분 자기가 맞을 마약도 부족하다. 그런데 마약을 원하지도 않는 아들한테 비싼 마약을 (처음에는 강제로) 맞게 할까?

이 두 의문을 놓고 챗GPT와 대화해봤다. 우선 챗GPT는 “아동의 보상·욕구 회로는 성인보다 덜 발달해 있고, 자기주도적 약물 탐색이 제한적”이라면서 “10세 미만 아동이 헤로인 같은 강력한 불법 마약에 ‘습관적으로 의존’하는 사례는 문헌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또 헤로인은 고가의 불법 약물이기 때문에 극빈층 어머니가 ‘아이에게 줄 만큼 여분을 갖고 있다’는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는 부모가 중독 상태라면 자기 사용분을 확보하기도 버겁다”고 설명했다.

쿡은 지미의 엄마가 매춘과 절도로 생계를 이어갔다고 지어냈다. 그런데 하루에 마약에 지출하는 돈이 60달러라고 썼다. 당시 미국 저소득층 하루 벌이는 20달러 정도였는데, 지미의 엄마는 저소득층이면서도 그보다 세 배를 헤로인에 썼다는 것이다. 마약 지출액이 저소득층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비현실적이고, 사실인지 의심할 대목이다.

이제 브래들리의 교훈을 하나씩 그의 책에서 소개한다.

첫째, 〈워싱턴 포스트〉는 쿡을 채용할 때 쿡의 학력을 확인하지 않았다.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이, 자신을 거짓말로 치장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도 부풀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쿡이 이전 활자매체에 제출한 학력과 퓰리처위원회에 상을 신청하면서 낸 자료의 학력이 달랐다. 

쿡은 한쪽에는 명문 여대인 바사대를 1년 다녔다고 적었다. 다른쪽에는 바사대를 우등으로 졸업했고 털리도대 석사에 이어 파리 소르본에도 다녔다고 적었다. 사실 쿡은 바사대를 1년 다니다 털리도대로 옮겨서 그 대학을 마쳤다. 석사 학위도, 소르본 유학도 하지 않았다.

허위 학위 제시는 쿡의 사기가 발각된 실마리가 되었다. 퓰리처상이 발표되고 쿡에 대해서도 보도되자 바사대의 관계자가 〈워싱턴 포스트〉 등에 전화해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브래들리를 비롯한 간부들은 쿡을 불러 진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럼 이 신문은 왜 서류도 제출받지 않을 정도로 경황 없이 쿡을 채용했나? 쿡은 기사를 잘 썼고, 당시 주요 언론이 원하던 ‘흑인’에 ‘여성’이었다. 이 신문은 다른 경쟁지가 낚아채가기 전에 쿡을 서둘러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쿡이 쓴 ‘창작’은 선정적이라는 점에서 신문사 간부들이 원하는 종류였다. 간부들은 기사 내 ‘막장 드라마’도 따져보지 않았다. 지미의 엄마 자매 둘 다 그들 어머니의 정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셋째와 넷째는 함께 다룬다. 쿡은 지미의 집에 가서 취재했다며 거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러다 발행 전 기사 검증 과정에서 다른 기자를 그 집으로 데려가지 못했다. 그 기자는 기사의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했으나, 그 보고는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았다.

교훈 중 하나만 명심하자면 이것이다. 당신 귀에 솔깃한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더 깐깐하게 검증해야 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s175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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