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를 잡으려면 중간을 치시오

[리더를 위한 북(book)소리]

책글문화네트워크 최보기 대표 2025.04.15 10:10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최보기 책글문화네트워크 대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은 속담일 뿐 배는 산으로 갈 수 없다. 그런데 확고한 리더십으로 배를 산으로 보내버림으로써 위기를 돌파했던 역사가 실제로 있다. 

1453년 5월 29일(화) 정오, 오스만제국 술탄 메흐메드 2세가 비잔티움(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무너뜨렸을 때였다. 오스만 군대가 난공불락의 콘스탄티노플 성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골든혼 지역으로 함대를 진입시켜야 했지만 비잔티움군이 해협 입구에 설치한 쇠사슬 때문에 진입을 못한 채 지루한 공방전만 벌이고 있었다. 

메흐메드 2세는 골든혼 쪽으로 뻗어 있는 산에 길을 내서 함대를 이동시키는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해 오스만제국의 수도로 삼으면서 도시 이름은 이스탄불이 됐다.

비잔티움은 기원전 7세기에 세워진 고대 그리스의 도시였는데 330년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콘스탄티노플이 됐다. 이 나라가 비잔티움제국 또는 동로마제국으로 불린다. 동로마제국이 로마적 성격을 강조한다면, 비잔티움제국은 그리스적 성격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비잔티움은 로마법과 정치 제도로 통치되었고, 공식 행정언어는 라틴어였지만 일반 백성들은 그리스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 국립학교인 콘스탄티노플대학에서는 그리스의 역사, 문학, 문화를 가르치며 고대의 학문적 업적이 전승되도록 했다.

610년 황제로 즉위한 헤라클리우스는 아예 로마 문화와 언어의 관습을 버리는 파격으로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지정했다. 비잔티움제국의 시작으로 고대와 중세가 연결되었고, 그 종말로는 중세와 근대가 연결되었다. 비잔티움은 그리스/로마,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와 접하면서 동서양의 혼합된 문명을 후세에 남겼는데 특히 중세 기독교 세계와 동방정교회의 중심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류문화사의 옥좌’에 앉을 자격이 있다.

한편 오스만제국(1299~1922)은 콘스탄티노플에서 가까운 아나톨리아반도에서 작은 토후국으로 출발,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16세기 슐레이만 1세 때 가장 강력한 세계제국으로 부상했다. 오스만은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이었지만 무슬림이든 비무슬림이든 차별 없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다문화사회가 강점이었다.

『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의 ‘중간’은 중국문화권의 동양과 서양의 지리적 ‘중간지대’를 의미한다. 비잔티움은 그리스/로마 문화를 계승하며 동서양을 연결하는 인류사의 보고인데도 서구 중심적인 세계사에서 서자 취급을 받으며 변방으로 밀려났다.

오스만 역시 수 세기에 걸친 성전을 치르며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던 강대국이었지만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적 시각에 따라 동/서양이 이분법적으로 나뉘면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음해와 편견으로, 제1차 세계대전(유럽대전) 때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수모를 당하면서 위대했던 역사와 문화가 왜곡되었다.

『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은 ‘비잔티움,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 사이, 오스만제국’ 등 3부로 깔끔하게 구성, 한 도시가 ‘비잔티움(비잔틴),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이라는 세 개의 이름을 갖게 된 유럽과 아시아의 역사를 오롯이 담았다. 연대로도 로마~튀르크(330~1922)까지 1600여 년의 중/근세 역사를 널리, 간추려 압축했다.

오스만제국은 현재 튀르크공화국의 뿌리다. 대한민국과 튀르크는 ‘형제의 나라’라고 한다. 우리의 먼 조상이 알타이 산맥 유목민이었고, 고구려 연개소문이 튀르크(돌궐) 공주와 결혼을 했다고도 전하니 ‘중간세계사’를 ‘층간소음’으로 여기지 말고 이 기회에 글로벌 비즈니스 때 알토란처럼 써먹을 수 있는 역사의 지식금고를 들여놓는 것은 어떠한가, 리더여!
▲『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 이희철 지음/ 리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s175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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