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으로도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AI 시대 , 리더의 생각]이야기 속 상황의 개연성 점검하다 보면 팩트 체크 촉 발달

글쟁이㈜ 백우진 대표 2026.08.06 09:54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X
편집자주생성형 인공지능(AI)이 여러 업무에 자리 잡고 있다. AI 사용으로 업무 효율이 향상되는 가운데, AI가 생산한 자료를 받은 사람의 검수 역량이 더 중요해졌다. 의사결정의 정점에서 일하는 리더는 특히 최종 검수자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여기에 활용할 만한 생각법을 공유한다. AI 답변 대용으로 주로 전문가들이 쓴 글을 검수 대상으로 다룬다.
▲백우진 글쟁이㈜ 대표
책 〈숨이 막힌 도베르만 The Choking Doberman〉에 따르면, 아래 인용된 이야기는 미국 피닉스의 뉴타임스가 1981년에 처음 소개했다. 이후 내용이 조금씩 다른 여러 버전으로 널리 알려졌다.

아래 인용문은 내가 다듬은 버전이다. 뉴타임스는 이 이야기가 전한 사건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졌고, 이 사건을 알린 사람은 현지 대규모 공장의 직원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 직원도 여러 다리 건너 들은 이야기라고 말했다고 뉴타임스는 전했다.

지역 신문인 라스베이거스선은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취재했으나 확인하지 못했다고 뉴타임스는 전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

◇숨이 막힌 도베르만


사만타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반려견과 함께 사는 40대 직장인이다. 그는 평소처럼 퇴근길에 장을 보고 귀가했다. 집에 들어서니 반려견 도베르만이 헐떡이고 있었다. 목에 뭔가 걸린 듯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사만타는 급히 도베르만을 데리고 나가서 동물병원에 맡겼다.

사만타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조금 전 다녀온 동물병원의 수의사였다.
수의사가 급박하게 말했다.
“당장 집 밖으로 나가세요!”
사만타는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일이래요?”
“제 말대로 하시고 당장 옆집에 가 계세요. 곧 갈게요.”
수의사는 사만타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이렇게 덧붙이고 전화를 뚝 끊었다.
사만타는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수의사가 시키는 대로 집에서 나왔다.

그런데 사만타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경찰차 넉 대가 달려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집 앞에 섰다. 경찰들은 권총을 뽑아 들고 차에서 내리더니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겁에 질린 사만타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도 못한 가운데 바라보고만 있었다.

곧 수의사가 도착했다. 그는 사만타를 보더니 상황을 설명했다. 도베르만의 목구멍을 검사해보니 거기에 사람 손가락이 두 개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도베르만이 도둑을 놀라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경찰은 곧 피가 흐르는 손을 움켜쥐고 공포에 질려 옷장에 숨어 있던 도둑을 잡아냈다.


지난 기고에서 나는 텍스트가 전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투시’를 제안했다. 텍스트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대신 그 글 너머의 상황을 그려보자. 우리는 사만타가 처한 상황이 다음과 같음을 안다.

“어느 날 도둑이 라스베이거스의 한 주택에 들어갔다. 그 집 주인인 40대 직장인 사만타는 도베르만과 함께 살았다. 당시 사만타는 집에 없었고, 도베르만은 도둑을 보자 바로 달려들었다. 도둑은 공격하는 도베르만을 손으로 저지하려고 했고, 도베르만은 도둑의 손을 물어뜯었다. 도둑의 손가락 두 개가 잘렸고, 손가락 두 개는 도베르만의 목에 걸렸다. 이때 사만타가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인기척에 놀라고 당황한 도둑은 옷장에 몸을 숨겼다.”

◇상황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자
사만타는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까? 먼저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개연성 있게 떠올려보자. 상상하기 귀찮다면 인공지능(AI)에게 지시해도 좋다. 내가 부탁하자 AI는 다음과 같이 소설처럼 묘사했다.

“거실은 평소와 달랐다. 소파 옆 작은 테이블이 비스듬히 밀려 있었다. 누군가 급하게 움직인 흔적이었다. 바닥에는 흙 묻은 운동화 자국이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도둑이 들었다는 생각보다 “내가 뭔가 놓친 게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실 안쪽으로 몇 걸음 옮기자 상황이 달라졌다. 바닥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분명 사람이 흘린 것처럼 보이는 흔적이었다. 카펫 한쪽에는 찢어진 천 조각이 떨어져 있었고, 의자 옆에는 누군가 급하게 넘어뜨린 듯한 흔적이 있었다.”

그렇다. 사만타의 상황에 처했다면 대부분 누군가 침입했다고 생각한다. 침입자는 도둑이라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대부분 어떻게 대응할까?

독자께서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순서를 떠올릴 것이다.


“우선 도베르만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 안전을 확보한다. 전화로 경찰에 신고한다. 동물병원에도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집이 보이는 안전한 곳에서 기다린다.”


내게 질문을 받은 AI도 이와 비슷한 대응 순서를 내놓았다.

그러나 사만타는 도베르만의 안위에만 신경을 쏟았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채 바로 도베르만을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이 대목이 개연성이 살짝 떨어지는 부분이다. 바로 그다음에는 개연성이 실종된 상황이 전개된다. 사만타가 도베르만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간 뒤 도둑이 어떤 행동을 보일까? 이에 대해 AI는 이렇게 답했다. 여러분의 생각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도둑은 옷장 안에서 공포와 통증을 견디며 숨어 있다 → 사만타가 개를 데리고 급히 동물병원으로 간다 → 도둑은 한동안 기다린 뒤 몰래 빠져나간다 → 이후 심각한 손 부상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으려 하지만 범죄 사실이 드러날 위험과 갈등한다.”

도둑 열 중 아홉은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한 뒤 집을 빠져나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열 중 하나는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운 이유로 계속 옷장 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 (과다 출혈로 실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AI는 손가락 혈관은 굵지 않아서 두 개가 잘려도 과다 출혈로 인한 실신은 발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제 다시 사만타의 행동을 따져보자. 수의사는 사만타에게 도베르만은 자신이 알아서 치료해줄 테니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말한 듯하다. 사만타는 그 말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다.

AI는 이렇게 분석한다. “사만타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가능은 하지만 조건이 필요하다. 사만타 입장에서 집은 방금 전까지 누군가 침입했던 장소이자, 개가 공격한 흔적이 있는 장소, 침입자가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장소다. 따라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동물병원에서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경찰에 신고한다. 이웃이나 가족에게 연락한다. 집에 다시 들어가도 될지 고민한다. 최소한 경찰이 확인할 때까지 집에 가지 않으려 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사만타의 우선순위를 전제로 그의 행동을 예측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AI에게 다시 이렇게 질문했다. “앞에서 귀가했을 때 도둑이고 뭐고 도베르만에만 신경을 쏟았잖아. 그렇게 끔찍이 도베르만을 챙기는 사만타가 집에 가 있으라는 수의사의 말을 순순히 따랐을까?”

◇개연성 낮은 5곳, 허구라는 증거
AI는 이렇게 답했다. “지적한 부분이 핵심이야. 앞선 사만타의 행동 성격을 고려하면 “수의사가 집에 가 있으라고 하자 아무 말 없이 돌아간다”는 장면은 개연성이 상당히 낮다. 왜냐하면 앞에서 묘사된 사만타는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안전보다 도베르만의 생명을 우선하는 사람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야.”

이어 “이런 인물이라면 동물병원에서도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이 질문할 가능성이 높다”며 “순순히 자리를 뜨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제가 옆에 있어도 되나요?” “수술하면 제가 들어갈 수 있나요?” “깨어날 때까지 여기 있겠습니다.”

마지막, 개연성이 제로에 가까운 대목이 있다. 집에 다시 돌아간 사만타에게 수의사가 전화해 당장 집에서 빠져나오라고 지시하고 도둑이 아직 집 안에 숨어 있다고 추리하고 경찰에 신고한 대목이다. AI는 이 부분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앞서 짚어본 것처럼 도둑은 열에 아홉 집을 빠져나와 도망쳤을 것이다. 그런데 수의사는 사만타 집에 침입한 도둑은 희한하게도 계속 옷장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추리한다. 도둑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가운데 한 추리다. 이는 뛰어난 추리가 아니라 개연성이 추락하는 비약적인 상상이다. 게다가 수의사는 자신의 추리를 확신해 경찰에 신고해 사만타의 집에 아직 남아 있는 도둑을 체포하라고 제안한다.

여기서 개연성이 없어 설득력이 떨어지는 장면이 추가된다. 경찰은 수의사보다 사건에 익숙하게 마련이다. 수의사의 추리를 들은 경찰이 경찰차 무려 넉 대를 동원해 도둑을 체포하러 긴급 출동했다는 전개가 개연성이 떨어진다. 수의사의 추리를 들은 경찰은 대부분 이렇게 대응할 것이다.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아마도 도둑은 이미 현장을 떠났을 겁니다. 여하튼 즉각 출동하겠습니다.” 그리고 경찰차 한 대로 출동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한 버전을 플롯 측면에서 소개한 책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에 따르면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대부분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전한다. 그렇지는 않다. 내가 강의하면서 수강생들에게 간단히 테스트해본 결과 ‘사실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정도가 적합하다.

픽션을 놓고 이처럼 개연성 훈련을 하다 보면 현실을 전한다고 주장하는 글에서 사실이 아닌 부분을 찾아내는 촉이 발달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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