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공간 대전환? ‘제2의 서열화’ 우려

[심층리포트]중소 국립대 배제 전망 속, ‘똑똑한 선생님 모시기’ 등 숙제 산적

머니투데이 더리더 신재은, 이혜진 기자 2026.06.02 09:36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X
편집자주대한민국 도약의 시기인 1970~80년대. 당시 거점국립대는 지역 내 산업과 연계해 경쟁력을 키웠다. 구미의 전자, 창원의 기계, 여천의 석유화학 단지들은 해당 지역 대학의 인재들을 흡수했고 발전의 동력으로 삼았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하면서 이러한 현상도 사그라들었다. 정부는 올해 3개 거점국립대를 선정해 모범 사례를 다시 만들 계획이다. 관련 정책의 주요 내용을 짚어보고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한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지난 4월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서울대 10개 만들기)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스1

이재명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인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거점국립대 3곳에 집중 투자하는 방식으로 재편됐다. 정부는 3개 대학을 선정해 향후 5년 동안 매년 학교당 1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선정된 대학교는 기업·대학 일체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게 된다. 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대학 서열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략산업 육성에만 치우쳐 기초학문 경시 추세가 심해질 것이란 지적도 있다.

◇거점국립대 9곳 중 3곳 선정…1곳당 1000억 추가 지원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 내용/이미지=더 리더

교육부는 지난 4월 15일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을 발표하고 3개 거점국립대를 선정해 중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국가균형성장을 위해 추진 중인 이른바 ‘5극 3특’ 구상에 맞춘 방안이다. 이를 위해 선정대학엔 기존에 지원하던 연간 470억원에 더해 매년 약 1000억원씩 추가로 지원한다. 나머지 6개 거점 국립대엔 해마다 300억원씩을 지원한다.

교육부는 이번 방안에 대해 “한국의 국토-산업-인재를 새로 디자인하는 ‘국토공간 대전환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라며 “일극에서 다극 체제로 나아가는 데 3개 대학교가 거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방안은 이재명 대통령의 주요 교육 공약이었던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확정된 안이다. 당초 공약은 거점국립대 9곳(강원대·경북대·경상국립대·부산대·전남대·전북대·제주대·충남대·충북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으로 늘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을 위해 3개 대학에 향후 5년간 선별 투자한다는 계획으로 변경됐다.
당초 교육부는 이번 개편안을 작년 말에 발표하려 했지만, 인재 양성 방안이 국무총리 주재의 범부처 국토공간 대전환 사업으로 전환되면서 미뤘다. 소수 거점국립대를 선별 지원한다는 계획에 대학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는 대학별 신청을 받아 산업통상자원부의 성장엔진 확정 이후 최종 지원대학 3곳을 발표할 예정이다.

◇껍데기 산학 가고 ‘브랜드 단과대’ 세워 ‘한 지붕’ 모델

▲교육부가 발표한 2026년 3개교 패키지 지원대학 추가 지원액 규모/사진제공=교육부

3개 대학에 1000억원씩 투입되는 예산을 항목별로 보면 ‘브랜드 단과대 육성’이 400억원으로 가장 많다. 정부는 이곳의 교원 승진과 정년 보장 심사 수준을 수도권 주요 사립대 수준으로 강화한 뒤 연간 1500여명 규모의 인재를 배출할 계획이다. 그 밖에 △교육 및 연구 질 향상(최대 300억원) △지역 혁신 허브화 인센티브 추진(200억원) △인공지능(AI) 거점대 육성(100억원)에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AI 거점대 육성은 선정된 대학을 지역의 AI 교육·연구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방안이 기존 대학 지원사업과 다른 점은 돈의 규모보다 구조에 있다. 현재 산학협력은 기업이 대학과 협약을 맺어 장학금을 주거나 취업을 연계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반면 이번발표된 방안은 기업이 대학 운영 구조 안으로 직접 들어온다.

이를 위해 브랜드 단과대(기업이 교육과정 설계, 교과목 신설, 학생 선발 등을 주도하는 곳)와 특성화 융합연구원을 하나로 묶는다. 기업은 자금 일부와 장비를 대고 교원을 겸직으로 파견한다. 대학은 공간과 연구 인력을 제공하고 회사로부터 기술을 이전받는다.

학부생은 연구와 현장실습에 참여하고 대학원생은 연구원에 이중으로 소속돼 매월 200〜300만원의 연구장학금을 받으며 기업의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산업계·정부출연연구기관·한국과학기술원·국내외 대학이 동시에 연결되고 연구 성과는 기술창업과 상용화로 이어지는 출구까지 설계돼 있다. 학부에서 시작해 대학원, 연구소, 회사로 연결되는 인력 파이프라인을 한 지붕 아래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롤스로이스가 옥스퍼드대 등에 연구센터를 세워 대학원생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하는 방식, 다이슨 공대가 입학생을 채용해 이론과 실무를 병행하게 하는 모델과 유사하다.

정부는 기업 연계를 본격화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3월 산업통상부와 기업 30여곳을 대상으로 사업 설명회를 열고, 전북 새만금 부지에 9조원을 투자하기로 한 현대자동차와 접촉했다. 이해숙 교육부 고등평생정책실장은 “거점국립대학교들이 유수 기업과 다양한 네트워킹을 통해 소통을 시작했다”며 “일례로 최근 모 지역 대학은 LG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거나 해외 유수 대학의 국제적인 연구소와 MOU를 맺는 성과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국립대 서열화 가속” 지역 내 2차 서열화 우려도

▲지난해 8월 2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제79회 후기 학위수여식 모습/사진=뉴스1

정부의 지원 방안이 발표되자 일각에서 ‘국립대 줄 세우기’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기존 국정과제인 ‘거점국립대 9곳 지원’에서 ‘3곳 집중 지원’으로 규모가 축소됐기 때문이다. 이에 교육부는 한정된 예산과 정책효과를 고려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지난 4월 15일 사업 발표 자리에서 “9곳을 고르게 지원하는 것보다 준비가 잘된 3곳을 우선 지원해 모범 사례를 만드는 게 맞다고 범정부 차원에서 결정했다”며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이 후퇴되는 일은 결코 없다”고 밝혔다.

교육계에선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와 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 국가중심대교수회연합회 등 3개 단체는 지난 4월 20일 공동선언문을 내고 “특성화하겠다는 대학 3개만 고르겠다는 교육부 방침은 지역대학을 살려야 하는 이유를 망각한 것이며, 거점국립대 줄 세우기에 치중한 졸속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중소 국립대가 정책 영역에서 배제돼 지역 내에서 2차 서열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거점국립대에만 막대한 재정과 혜택이 집중돼 같은 지역 내 국공립대학(국가중심국립대)이 소외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전국 국·공립대학교교수단체 일동은 정부 정책에서 소외된 국가중심국립대와의 연계를 강조했다.

안현효 대구대학교 교수는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3개 거점국립대학 브랜드단과대 육성에 집중되며 수도권 집중, 대학서열화 등을 해결하기 어렵게 설계됐다”며 “개별 대학 선정방식보다는 공유대학, 연합대학 등 대학체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인당 교육비 서울대 70% 위해선 재정 투입 확대 필요
교육부는 서울대 수준의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질적으로 배정된 예산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발표에서 올해 약 0.46조원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5년간 누적 4조원을 단계적으로 추가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재원을 기반으로 외부 투자, 자체 수익 등을 확충하면 1인당 교육비가 24년 서울대의 약 70% 수준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부 교육계에선 서울대 수준의 교육 환경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과제인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목표치에 한참 부족한 수준이며, 정부의 지원은 외부 재원을 끌어올 마중물 역할에 불과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김한올 선임연구원은 “지방거점국립대의 연구 역량, 교육 역량을 확대하기에 발표된 재정 규모는 민망한 수준”이라며 “정부의 발표는 재정 투입 수준을 서울대 1인당 교육비의 70%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업 투자나 출연연 등 규제 완화를 통해 대학의 소득 창출 능력을 높이겠다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등교육 재정투자가 부족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실질적 재정 규모 확대가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비판했다.

◇‘기업 인재 양성소’ 머무를 수도…교육의 본질 고민해야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19일 오후 전남대학교에서 열린 ‘국가균형성장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 서남전북권 현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제공=교육부

근본적으로 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거점국립대를 중심으로 한 지방 대학 네트워크 구성과 연구·교육 경쟁력 강화라는 기본 틀에서 벗어나 전략산업 육성에만 치우쳤다는 것이다. (재)교육의봄은 성명을 통해 “이번에 발표된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전반에서 강조되고 있는 내용은 △기업 연계 △AI 인력 양성 △정주 인프라 조성 등 산업·지역 발전 논리가 대부분”이라며 “어떻게 교육의 질과 학습·성찰의 기능을 높일지, 역량교육을 강화할지에 대한 고민은 찾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교육계에선 대학이 ‘기업 인력 양성소’ 역할에 머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지원 사업의 핵심 중 하나인 브랜드 단과대학과 융합연구원은 5극 3특 권역별 성장엔진 산업에 기반해 기획 및 운영되는데, 여기에 단과대학 운영 전반에 기업이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기업이나 출연연 인력의 교원 겸직은 당장의 연구 인력 확보라는 의미는 있지만 대학의 자생적 역량을 높일 수는 없다”며 “전략산업의 응용기술 위주로만 투자가 이뤄진다면 기초 학문과 교양교육 발전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고급 교원 확보·기초학문 지원 함께해야”
교육계에선 이번 방안의 성패가 최상위급 교원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기업이 융합연구원에 참여하려면 그만한 연구진이 있어야 하고 우수 학생을 끌어들이려면 교수의 실력이 담보돼야 해서다. 정부가 융합연구원 소속 교원에 대한 지원금은 무제한이며 연구진을 함께 데려오는 것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힌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이 산업일변도로만 가지 않도록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현실적으로 지역 인재 양성이나 지방대학의 상황을 고려하면 산업체 연계를 빼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대학의 기업 예속이나 기초학문 소외 등이 나타나지 않게 교육부가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jenny0912@mt.co.kr

정책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