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한산소곡주의 유래는 백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 유민들이 부흥운동의 근거지였던 건지산 주류산성에 모여 흰 소복을 입고 술을 빚으며 슬픔을 달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때 마셨던 술을 ‘흰 소(素)’와 ‘누룩 국(麴)’을 합쳐 ‘소곡주(素麯酒)’라 이름 붙였고 지금의 한산소곡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의자왕이 당나라에서 고국의 술맛을 그리워하며 “한산소곡주의 맛과 같다”고 했다는 일화, 마의태자가 개골산에서 나라 잃은 설움을 술로 달래며 “그 맛이 소곡주와 같다”고 전했다는 구전은 소곡주의 역사와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또 ‘흰 소’ 대신 ‘작을 소(小)’를 사용해 ‘누룩을 적게 사용해 빚은 술’이라는 뜻도 함께 전해진다. 백제는 누룩을 활용한 양조기술로 유명했다. 일본 고대 문헌 <고사기>에는 수수허리(須須許理)라는 백제인이 누룩을 활용한 술 제조법을 전해줬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소곡주에는 백제의 역사와 뛰어난 양조기술이 담겨 있다.
◇일제 시련 속에서도 이어온 전통…우리나라 대표 명주로 자리 잡다
고을마다, 집집마다 저마다의 맛과 향기를 가진 우리 가양주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함께 시련을 겪는다. 1916년 조선총독부는 주세령 선포와 함께 면허 없이 자가소비용으로 만든 술도 밀주로 규정하고 단속했다. 술에 세금을 부과해 식민통치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광복 이후에도 어려움은 계속됐다. 1965년 양곡관리법 제정으로 쌀을 활용한 전통주 제조가 금지됐다. 그럼에도 서천군 한산면에서는 집집마다 소곡주를 몰래 빚으며 명맥을 이어왔다. 한산소곡주로 ‘식품명인’이 된 우희열 명인은 시어머니가 몰래 술을 담그던 모습을 보고 배워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소곡주의 부활에는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한 서천군과 군민들의 노력이 있었다. 1979년 충남 무형문화유산 제4호로 지정되며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1999년 우희열 명인이 식품명인 제19호로 선정되면서 한산소곡주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백제와 일제 설움 달랜 ‘국가대표 명주’ 부드럽고 은은한 단맛이 특징인 한산소곡주는 찹쌀과 누룩, 맑은 물만으로 빚어 100일간 저온 숙성해 완성된다. 쓴맛이 없고 달콤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해 현대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충청남도에서 선정한 ‘2025 충남술 TOP10’에 한산소곡주 4종이 이름을 올리며 상품성과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순자할머니소곡주, 녹천한산소곡주, 명품소곡주, 천년지기 등은 약주와 증류주를 아우르며 소곡주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김기웅 서천군수는 “전통산업 활성화를 통해 우리 지역 성장동력을 끌어올리는 데 소곡주축제가 큰 역할을 했다”며 “한산소곡주가 전국 최고의 명주로서 위상을 더 공고히 하고 전국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