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에서 정착까지…경북으로 오이소

[청년, 지역을 택하다]2년간 창업·정착 지원금 4000만원, ‘관계 형성’ 가장 큰 힘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현승 기자 2025.08.11 09:21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청년 인구 유출은 지역 소멸을 가속화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많은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하지만, 지역에서 미래를 설계하고자 하는 청년도 적지 않다. 이들이 지역에 정착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지자체의 청년 정책이다. 머니투데이 <더리더>는 ‘청년, 지역을 택하다’ 코너를 통해 지역을 선택한 청년들의 이야기와 이들을 지원하는 지자체 정책을 함께 조명한다.
▲지난해 12월 12일부터 13일까지 경상북도 경주 힐튼호텔에서 열린 청년정주 지원사업 ‘성과공유회’ 모습/사진제공=경상북도
경상북도의 청년 인구가 최근 10년간 연평균 1만9000여 명씩 줄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기준, 만 19세부터 39세까지의 청년층은 전체 인구의 20% 수준에 불과해 급격한 고령화와 청년 유출 현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도가 2024년 발표한 ‘2023 경상북도 청년통계’에 따르면 청년들의 주요 전출 사유로는 직업(37%)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가족(23%), 주택(19.6%), 교육(1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에 도는 2017년 광역시·도 최초로 청년정책·일자리전담부서인 ‘청년정책관’을 신설했다. 2021년에는 ‘제1차 청년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2018년 ‘도시청년 시골파견제’를 시작으로 △청년커플 지원사업 △청년창업 지역정착 지원사업 △경북청춘 창업드림 지원사업 △시골청춘 뿌리내림 지원사업 등 다양한 청년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청년들이 지역에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정착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202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청년창업 지역정착 지원사업’은 창업과 정착을 유기적으로 연계한 대표 사업이다. 단순히 창업자금만 지원하지 않고, 주거·멘토링·지역 네트워크·행정 지원 등 종합적인 정착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사업은 만 39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하며, 창업 아이템과 정착 의지를 중심으로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선발된다. 선발된 청년에게는 연간 최대 2000만원, 2년간 총 4000만원의 창업 및 정착 지원금이 제공된다. 

이와 더불어 △창업교육 △지역 네트워크 연계 △마케팅 및 판로 지원 △행정·세무 컨설팅 △선배 창업자들과의 멘토링 등 실질적인 창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후속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된다.

◇수도권에서 김천으로…‘낮은 경쟁률’이 만든 기회
▲ 2021년 9월, 카페 ‘공간지지’ 개업일에 메인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박소영 대표/사진제공=공간지지
카페 ‘공간지지’의 박소영 대표는 청년창업 지역정착 지원사업 1기를 통해 경북 김천시에 정착한 28세의 젊은 청년 창업가다. 인천 출신으로 수도권에서 온라인 유통업을 하던 박 대표는 “서울이나 수도권보다 인프라는 부족하지만, 그만큼 경쟁률이 낮아 창업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며 김천 정착 계기를 설명했다.

처음에 김천의 특산물인 흑돼지를 활용한 브런치 카페인 ‘공간지지’를 창업한 박 대표는 창업 초기에 “그동안 익숙했던 서울식 감각으로 인테리어와 메뉴를 구성했다”며 “이후 지역민들의 구성이나 소비행태를 분석해 운영 방식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과 달리 김천은 소비층, 생활 문화, 모임 방식 등 많은 것이 다르다”며 “작은 도시의 특성에 맞춰 고깃집도 룸 구조로 인테리어했다”고 설명했다.

지역에 빠르게 적응한 박 대표는 창업 4년 만에 카페, 레트로 주점, 고깃집까지 총 3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매장 운영은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창업 경험이 전무했던 그는 “회계, 세무, 운영 관련 지식이 부족했지만 지원사업 오리엔테이션과 실무 교육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특히 선배 창업자와의 멘토링을 통해 실질적인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고, 경북경제진흥원이 진행한 마케팅·회계·사진촬영 수업은 매장 운영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2023년 11월, 김천시 청년정책위원회 위촉장을 받고 있는 박소영 대표의 모습/사진제공=공간지지
박 대표는 예비 지원자들을 향해 “아무 연고 없는 지역에서 창업하는 건 분명 쉽지 않지만, 가능성이 많다”며 “지원사업을 통해 만난 멘토, 선배 창업자, 행정 담당자들과의 교류가 실제 정착에 큰 힘이 됐다”고 조언했다.

◇진심으로 경계심을 허물고, 마을과 함께 공방을 만들다
▲청년창업 지역정착 지원사업 2기를 통해 '영양가죽공방 헤랑'을 창업한 김우민 대표/사진제공=영양가죽공방 헤랑
청년창업 지역정착 지원사업 2기를 통해 창업한 ‘영양가죽공방 헤랑’의 김우민 대표(41)는 서울에서 11년간 영화 및 드라마 현장에서 조명 오퍼레이터로 활동했다. 그는 도시 생활에서 지쳐갈 때쯤, 조용하고 여백이 있는 삶을 꿈꾸고 경북 영양군으로 이주했다.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김 대표는 영양의 공장과 마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역 어르신들의 손기술에서 영감을 얻어, 취미였던 가죽공예를 창업 아이템으로 떠올렸다.

막상 창업을 하려니 공방 유지비와 제품 개발비 등 경제적 부담이 컸다. 준비 과정 동안 수익이 없다는 것도 큰 어려움이었다. 김 대표는 “지원사업에 선정돼 금전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며 “그 덕분에 공방 운영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영양군 다문화센터와 협업해 ‘이주여성 가방만들기 체험’을 진행 중인 김우민 대표의 모습/사진제공=영양가죽공방 헤랑
정착 초반에는 지역 주민들의 경계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김 대표는 “모든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시작된다”며 “이웃들에게 먼저 다가가 신뢰를 쌓으려 노력했고, 지금은 마치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그는 지역 복지관, 문화센터, 교육청 등과 협력해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을 대상으로 공예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착은 주소 이전이 아니라 관계 형성…커뮤니티의 힘
▲지난해 7월 23일부터 24일까지 청년정주 지원사업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선후배 협업데이’ 행사 모습/사진제공=경북도
두 창업자는 “정착은 단순히 주소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꼽은 지원사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커뮤니티’다.

도 관계자는 “이 사업은 단순한 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실무교육과 멘토링, 네트워킹 등 종합적인 정주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한다”며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외지에서 이주한 청년들이 지역 청년들과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안정적인 정주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도는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계속 개선 중이다. 정착해 뿌리내린 선배 창업가들과 신규 창업가들을 연결해 연대감과 소속감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정착률을 지속할 수 있는 다양한 네트워킹이 가능한 커뮤니티 콘텐츠를 지속 개발해나갈 방침이다.
▲지난해 6월 12일, 청년정주 지원사업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유통 상담 및 컨설팅 장면/사진제공=경상북도
이와 함께 △청년 관심사 기반의 맞춤형 교육 확대 △지역 자원을 활용한 창업 콘텐츠 발굴 △창업 인큐베이팅 기능 강화 등도 추진하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는 교육 및 네트워킹 10회, 홍보·판로 지원 4회, 협업 기반 행사 6회 운영됐다.

도 관계자는 “청년 유입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단기 체류형 창업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지역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책적 뒷받침을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27일에 열린 청년정주 지원사업 워크숍 모습/사진제공=경상북도
이 사업을 통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총 83명의 청년이 선발됐다. 이 중 71명이 해당 지역에 정착해 창업을 이어가고 있다. 정착률은 약 85%에 달하며, 단순한 지원사업 이상의 실효성을 입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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