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가 은퇴 전후에 발생하는 소득 단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도민연금제도’를 시행한다. 이 제도는 직장에서 은퇴한 뒤 공적연금을 받기까지 최대 5년 동안 발생하는 소득 공백을 메워, 중·장년층이 보다 안정적으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이 정책은 내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3일 도에 따르면 도민연금제도는 지방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첫 개인연금 지원 정책이다. 은퇴 이후 발생하는 소득 단절을 완화하고 생활 안정을 돕는 게 핵심 목표다.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조기퇴직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사회적 취약계층이 증가하는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대응 방안이다.
도는 대부분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이 노후 준비를 하지 않고 있어 이 같은 정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소득 크레바스(은퇴 후 소득공백기간)에 대한 인식과 주관적 대비’ 보고서에 따르면 비은퇴자 중 81.3%가 ‘은퇴 후 소득공백기간이 걱정은 되지만 아직 준비는 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조사는 60세 미만 전국 성인남녀 1508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은퇴 후 소득공백기간에 대해 잘 준비하고 있다는 응답은 12.0%에 불과했고, 6.7%는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도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 은퇴 후 소득이 단절되는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도민의 노후 불안을 줄이기 위한 지원 체계를 마련했다. 도민연금제도는 40세 이상 55세 미만의 소득이 있는 도민을 대상으로 하며, 연소득 9352만원 이하면 가입이 가능하다.
소득 수준에 따라 네 구간으로 나눠 단계별로 모집을 진행할 예정이다. 1차 모집은 연 소득 3896만원 이하(기준 중위소득 50%)인 도민을 대상으로 시작된다. 이어 2차 모집은 연 5455만원 이하(중위소득 70%), 3차 모집은 연 7793만원 이하(중위소득 100%), 4차 모집은 연 9352만원 이하(중위소득 120%)인 도민을 대상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 현황과 도민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소득 공백기 해소 효과가 큰 연령층과 소득 수준을 중심으로 지원 대상을 설정했다는 게 도의 설명이다. 특히 저소득층과 정보 접근이 취약한 계층이 제도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세부 기준을 조정했다.
도민연금 가입자는 최대 10년(120개월) 동안 총 240만원(연 최대 24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다만 지원금은 경남 지역에 주민등록 주소를 두고 있는 기간에 한해 지급된다. 연금은 55세 이상이면서 국민연금 최초 가입일로부터 5년이 지난 시점부터 수령할 수 있다.
납입 금액에 따라 연금액이 달라진다. 이를테면 매월 8만원씩 10년간 납입할 경우 도 지원금과 연 복리 2% 수익을 포함해 약 5년간 매월 21만7000원가량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누적 수익률로 약 35.7%에 해당한다.
지원금이 일시적으로 지급되는 구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도 해지나 예산 환수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기금운영 방식을 병행한다. 기금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자수익은 가입자에게 환원해 연금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도 포함됐다.
도는 매년 1만 명의 신규 가입자를 모집해 제도 시행 10년 차에는 누적 10만 명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 초기 예산은 24억원으로, 제도가 안착되는 10년 차에는 연간 240억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재원은 도와 시군이 각각 50%씩 분담한다. 이에 따라 첫해에는 도와 시군이 각각 12억원씩 부담하고, 10년 차에는 각각 120억원을 분담할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지속 가능한 재정 운영을 통해 제도의 신뢰도를 높이고, 도민의 노후 안정망을 탄탄히 구축하겠다”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제도 운영 기반을 마련해 도민의 노후 안정이라는 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리겠다”고 덧붙였다.
◇초고령사회 진입 가시화…체감형 복지정책 본격 가동
이 같은 제도의 추진은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도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2025년 5월 기준 경남의 65세 이상 인구는 약 72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2.4%를 차지한다. 일부 군 지역은 고령 인구 비율이 50%에 달해 초고령사회 진입이 가시화되고 있다. 인구 감소세도 이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5년 336만5000명을 기록한 인구는 지난 9월 기준 321만425명으로, 15만 명가량 줄었다.
인구 위기에 직면한 도는 주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복지정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도에서는 현재 39개의 고령자 관련 조례가 시행되고 있다. 이어 연간 약 1조8000억원 규모의 노인복지 예산을 편성하는 등 제도적·재정적 기반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사업은 ‘경남패스’다. 정부의 K패스를 기반으로 한 이 제도는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월 15회 이상 이용할 경우 이용 요금의 20%에서 최대 100%까지 환급받을 수 있다. 특히 75세 이상은 1회만 이용해도 혜택이 주어진다. 지난 1월 시행 이후 8개월 만에 가입자가 25만 명을 돌파하며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출산·양육 부담을 덜기 위한 정책도 이어지고 있다. 밀양에 이어 거창과 사천에 공공산후조리원이 들어섰고, 영유아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영유아 친환경 이유식 꾸러미 지원사업’은 광역자치단체 중 최초로 시행됐다. 인구감소지역 11개 시군에서 시범 운영 중이며, 지금까지 868명이 참여해 2700건 이상의 꾸러미가 전달됐다.
청년층 지원도 확대됐다. ‘청년주택 임차보증금 이자 지원’의 연령 기준을 39세로 높이고, 지원 한도를 연 150만원으로 상향했다. 은둔·고립 청소년 102명을 발굴해 87명을 상담과 프로그램에 연계해 지원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지원 대상을 청년까지 넓혔다.
도 관계자는 “교통비·주거·노후·청년 등 생애 전 주기에 걸친 체감형 복지정책을 강화해 도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