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국가의 첫째 조건 ‘자치재정’

[the Leader 심층리포트]헌법에 '지방분권' 담아라(上)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25.04.02 09:26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탄핵사태 이후 ‘87년체제의 한계’ 극복을 위한 개헌 필요성이 봇물처럼 터져나온 가운데 ‘지방분권’ 강화를 주 내용으로 한 개헌론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일선 지자체장들이 발표한 ‘지방분권 개헌안’은 지방정부의 권한 강화와 자치재정 확대 등으로 요약된다. 개헌안의 세부 내용과 실효성을 짚어봤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인 유정복 인천시장이 3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분권형 헌법 개정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지방자치 30주년을 맞아 일선의 지방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예속돼 있다고 주장한다. 1987년 제9차 개헌을 통해 부활한 지금의 ‘지방자치’는 1995년 6월 27일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재의 수도권 집중화와 지역 소멸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자체에 이양하는 ‘분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와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한민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가 ‘지방분권 개헌안’을 발표하며 논의에 불을 지폈다. 협의회들은 지난 3월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 제1조에 ‘지방분권 국가’를 명시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개헌안에는 △중앙-지방 간 수직적 상하관계를 수평적 협력관계로 전환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명칭을 ‘지방정부’로 변경 △자치행정·자치재정·자치조직권 등 지방의 자치권을 헌법상 원칙으로 보장 등을 담았다.

유정복 인천시장(시도지사협의회장)은 이 자리에서 “지방정부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행정을 수행하려면 헌법 개정이 필수”라며 “현행 헌법 체계에서는 지방정부의 권한이 제한적이고 재정적 자립도가 낮아 진정한 지방분권이 어렵다”고 했다. 조재구 대구남구청장(시군구청장협의회장)도 “재정확충이 함께 되지 않으면 여전히 중앙에 우리가 예속될 수밖에 없다”며 “예산철마다 국비를 확보하려는 촌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8대 2’ 국세·지방세 비율…“지자체 재원만으로는 어려워”

이들은 개헌안에 지자체가 ‘자치재정’을 이뤄야 한다고 명시했다. 행정안전부 지방세통계연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세와 지방세 비중은 각각 75.4%대 24.6%다. 이 같은 세입 구조에서 복지정책과 철도와 도로 등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지자체 재원만으로 충당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우리나라 지방세 비중은 낮은 편에 속한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이 지난 2023년 발표한 ‘OECD 국가 재정분권 수준 국제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지방세 비중은 24.7%로 주요국인 캐나다(55.1%), 독일(53.7%), 미국(46.5%) 등보다 낮은 편이었다. 같은 단일국가이면서 우리나라와 조세 환경이 비슷한 일본(37.7%)보다 13%p 낮았다.

▲권영세(오른쪽 다섯 번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정대철(앞줄 왼쪽 네 번째) 헌정회장 등 참석자들이 3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 국회 대토론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아무리 지자체장의 역점사업이더라도 국비가 확보되지 않으면 정책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종시의 경우 최민호 시장이 추진한 ‘2026 국제정원도시박람회’가 무산됐다. 국비로 반영된 77억원이 지난해 국회에서 삭감, 의결되면서 개최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자체가 스스로 살림을 꾸려가는 능력을 말하는 ‘재정자립도’는 2023년 기준 전국 평균 48.6%를 기록했다. 수도권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평균 50%를 상회한 반면, 비수도권은 36%에 불과했다. 기초 단체의 경우 평균 재정자립도는 11.6%다. 수도권 등은 자체 재원만으로도 사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기초단위의 지자체는 재정이 상대적으로 열악해 지역개발 투자 재원을 스스로 확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경우 국가 주도로 진행되는 ‘매칭사업’이 많아질수록 지자체의 ‘예산 재량권’이 줄어든다는 문제도 있다. ‘매칭사업’은 국비와 지방세가 함께 지출하는 사업이다. 대부분의 복지 사업은 매칭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재정자립도 등이 높은 지자체의 경우 매칭사업을 진행해도 예산이 남아 자체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예산이 부족해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방재정이 취약하다 보니 정부 예산안 편성작업이 진행되는 6월에서 8월까지 지방공직자들은 교부세와 보조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중앙부처로 향하기도 한다.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예산철만 되면 야근은 기본이고 아예 귀가를 하지 못하는 일도 다반사”라며 “중앙의 예산을 따오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지자체장의 정무적 감각이나 노력 등 개인 역량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일선의 지자체장들은 정부의 세입과 지출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과 책임을 지자체에 이양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 대토론회’에 참석해 "1987년 헌법 체제 극복의 핵심은 중앙집권적인 국가 체계를 허물고 지방정부로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데 있다"며 "입법·행정뿐만 아니라 세입·세출 권한까지 이양하는 과감한 지방분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3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87체재 극복을 위한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개헌, 지금이 적기”…“지자체·의회 신뢰도 낮아” 목소리도

헌법에 지방자치에 관한 조항은 제117조와 제118조뿐이다. 117조 1항은 ‘지자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118조는 ‘지방조직법정주의’로서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두고 △지방의회의 조직·권한·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장의 선임방법, 기타 지방자치 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지자체의 기능은 주민복리와 재산관리에 국한되며, 지방의회를 구성·운영할 수 있는 정도다. 지자체 차원에서 독자적인 지방 정책을 추진하거나, 의회와 집행기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을 자체적으로 설정할 수 없는 것이다.

개헌 논의는 2008년부터 시작됐지만 정치권에서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이제까지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제’를 비롯한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이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름을 올리기 위해 정쟁 몰이를 하는 게 아닌 지방 분권의 핵심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방자치가 실현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건 중앙정부로부터 권한을 이양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지자체의 자치행정, 재정권, 조직권 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재정과 권한을 지방으로 대거 이양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신뢰도가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우선 지자체장의 경우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비리에 연루돼 낙마한 사례가 적지 않다. 경기 용인시의 경우 민선 1기부터 6기까지 역임한 시장들이 비위에 연루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전북 임실군은 민선 5기까지 당선된 군수들이 모두 비리에 연루돼 중도하차했다. 이에 따라 민선 6기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공약은 ‘임기 마치는 군수’이기도 했다. 경북 청도군의 경우 민선 6기까지 총 9번의 군수 선거를 치렀다. 2005년부터는 해마다 군수가 비리로 낙마해 3년 연속 선거를 치르는 유례없는 기록을 남겼다.

지방 권력의 한 축인 지방의회도 신뢰도가 낮은 편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방의회의 종합청렴도는 68.5점(100점 만점)으로, 전체 행정기관 및 공직유관단체의 80.5점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었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외유성 출장은 도마 위에 오른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43개 지방의회를 대상으로 2022년 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지방의원의 국외출장 실태를 전수 점검한 결과 지방의회의 국외출장은 915건에 달했고, 약 355억원이 지출됐다.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의원이 동행한 출장까지 포함하면 1400건에 약 400억원이 사용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려 비수도권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이 지방 분권 개헌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하혜수 경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개헌을 이루기에는 지금이 적기”라며 “수도권 과밀화가 심하고, 지역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지금 개헌을 통해 실질적 지방자치 발판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일본의 지방정부는 조례로 지방세를 걷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도 중앙정부와 협의해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재정분권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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