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 답안지…'병원'을 유치하라

공공의료원 유치·부활 안간힘…기존 의료원은 인력 등 운영난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이하정 기자 2023.03.02 09:04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2021년 11월 25일 대전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대전의료원 설립을 위한 심포지엄’에 참석한 인사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뉴시스
의료 인프라는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심화하는 지방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지난 1월 국회입법조사처는 ‘2023 국회입법조사처 올해의 이슈’를 통해 지방소멸위기의 원인은 ‘지역의료 인프라 부실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역 쇠락과 의료 인프라 붕괴는 상호작용하는 악순환 관계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공공보건 의료 인프라 구축과 의료인력 확보는 지역공동화·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선제적 방안이라고 했다. 공공보건의료 인프라 구축이 잘되면, 지역 내에서 필수의료 서비스가 충족돼 인구가 유입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의료 인프라가 낙후된 지자체는 이런 이유로 의료기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진료 공백을 해소하고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을 막으려면 지역 내에 종합병원급 의료 인프라 확충이 절실하다. 전국의 지방의료원은 35개다. 300병상 미만의 소규모 지방의료원은 27곳으로, 평균 병상은 278병상에 그친다. 공공의료원이 없는 지역도 있다. 광주, 울산, 대전이다. 이들은 신규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 인천, 경남 등은 제2의료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2021년 3월 기준 △서울 14곳 △인천 3곳 △경기 5곳 △강원 2곳 △대전 1곳 △충남 2곳 △충북 1곳 △광주 1곳 △전남 2곳 △전북 2곳 △대구 5곳 △부산 3곳 △울산 1곳 △경남 3곳 등 43곳이다. 수도권 지역에 절반 이상(22곳)이 몰려 있다.

같은 수도권이라고 하더라도 의료 인프라 격차가 벌어진다. 수원·안성·의정부·파주·포천·이천 지역에는 일정 규모 병상을 갖춘 경기도의료원이 설치돼 있지만, 가평·과천·동두천·양주·양평·여주·연천·하남·남양주 등이 포함되는 동북부권에는 종합병원 급 의료기관이 없다.


경기 동북부권 공공의료원 두고 지자체 유치 경쟁


우선 경기 동북부권 지역에서 공공의료원 설립을 놓고 각 지자체의 유치전이 시작됐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난 1월 9일 확정 발표한 295개 공약에 ‘경기 동북부권 공공의료원 설립 추진’이 포함돼 있다. 아직 기본 방향이 결정되진 않았지만 지역 시장·군수들이 앞다퉈 ‘모시기’ 경쟁 중이다.

제일 먼저 유치 의사를 밝힌 곳은 가평군이다. 지역 내에 24시간 운영 응급실이나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이 없어 공공의료원 유치가 절실한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군은 지난해 7월부터 경기도의료원 가평 유치 추진단을 구성한 뒤 범군민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경기의료원 유치를 위한 온·오프라인 범군민 서명 운동을 전개했다.

남양주시도 지난해 말 주광덕 시장이 김 지사를 만나 경기도의료원 유치를 제안했다. 시는 대규모 병원 건립이 가능한 백봉지구 내 종합의료시설용 시유지 3만3803.9㎡를 무상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또 수석~호평고속도로와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등 인근 지자체 주민들의 편리한 접근성을 장점으로 어필하고 있다.

전진선 양평군수는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기도의료원 양평병원 유치 의사를 공식화했다. 양평군 역시 가평군과 마찬가지로 24시간 운영 응급실이나 소아과, 분만실 등이 없는 상태다. 군은 앞으로 수요조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경기도에 전달할 예정이다.

김덕현 연천군수도 지난해 12월 8일 김 지사를 만나 경기도의료원 연천병원 설치를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김 군수는 “응급실이 없어 지역응급센터까지 1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인천 연수구 연수구청 한마음광장에서 열린 ‘인천 제2의료원·공공의대 유치 서명 운동 선포식’에서 연수구 주민이 ‘제2의료원은 연수구로’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뉴시스



폐쇄한 의료원도 살아난다…“부족한 의료시설 확충하자”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은 의료원을 유치하기 위해 예비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인천과 경남 등은 제2의료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경남의료원의 경우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2013년 경남지사를 역임할 당시 폐쇄했지만, 부활이 본격화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지난해 7월, 오는 2026년까지 2195억원의 예산을 들여 공공의료원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350병상 규모의 광주의료원 설립 부지를 상무지구 도심 융합 특구 안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광주의료원 설립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결과 발표가 오는 4월로 연기됐다. 지난 1월 광주광역시 등에 따르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2월 발표 예정이었던 광주공공의료원 건립사업에 대한 타당성 재조사 결과를 오는 4월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조사 과정에서 광주의료원의 경제성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 광주광역시에 보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울산시는 2025년까지 북구 창평동 4만㎡ 부지에 22개 진료과와 500병상을 갖춘 울산의료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타당성 재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타당성 조사 결과는 3월에 나온다. 종합평가를 통과하면 3월 중 기재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사업 시행을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인천시도 제2의료원 설립에 대한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다. 제2의료원 규모, 건축계획, 경제적 타당성 등을 분석한다. 또 제2의료원 설립 및 운영계획 수립과 예타 대응을 위한 타당성 검토를 추진할 방침이다. 3월에는 정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1월 19일 한덕수 국무총리를 만나 제2의료원 건립이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국비 지원 상향 등을 요청했다.

2013년 폐업한 진주의료원도 8년 만에 부활 절차를 밟고 있다. 2013년 진주의료원이 폐업한 이후 경남은 공공병상 1개당 인구가 1만1280명으로, 전국 시·도 가운데 공공병상이 가장 부족한 지역이 됐다. 보건복지부가 2019년 11월 공공·민간병원이 없는 경남 진주권 등에 의료원을 짓는다고 발표하면서 ‘경상남도의료원 진주병원’ 설립이 추진됐다. 지난해 12월에는 ‘경상남도의료원 진주병원 설립 사업’에 대해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 단계를 통과했다. 경남도는 2027년 준공을 목표로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설 수 있게 됐다.
▲2022년 6월 28일 공공병원 대구시민행동 회원들이 제2대구의료원 건립 무산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방의료원 유치 이후는?…‘지속성’ 담보 못해


지자체들이 의료기관 유치에 사활을 거는 건 주민들의 복지 수준을 높일 뿐 아니라 외부 인구 유입을 유도하는 데도 기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장밋빛이 아니다. 이미 설치·운영 중인 상당수의 지방의료기관이 정상적인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지방의 공공의료원은 상황이 심각하다.

지방의료원 경영 위기…코로나로 심화

지역거점공공병원 알리미에 따르면, 전국 지방의료원의 병상 가동률은 2018년 82.36%, 2019년 85.45%에서 2020년 51.15%, 2021년 59.68%로 크게 떨어졌다. 100병상당 외래 환자 수도 2018년 8만876명, 2019년 8만1340명에서 2020년 5만1986명, 2021년 5만7149명으로 급감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공공의료원들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2년 넘게 외래와 수술이 중단된 탓이다.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해제되고 있지만 병상가동률과 외래환자 수는 아직 회복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감염병 전담병원 해제 후 의료정상화가 이뤄지는 시점을 6개월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감염병 전담병원 해제 이후 6개월간 이들 기관에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 수준의 차액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기관들의 진료가 정상화되기까지는 4년이 넘게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공개한 국립중앙의료원 자료를 보면, 지방의료원은 지난해 8210억원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6699억원, 2024년 5055억원, 2025년은 2745억원씩 4년 연속 적자를 낼 것으로 예측됐다.


공공부문 의료인력 이탈 가속


▲ 대한전공의협의회 여한솔 회장이 4일 서울 대한의사협회 용산임시회관에서 열린 ‘돈보다 생명을’ 대한민국 필수의료체계 붕괴 위기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강원도 속초의료원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응급실이 축소 운영되고 있다는 공지가 뜬다. 일주일 중 사흘은 응급실이 운영되지 않는다. 의료진이 부족해서다. 응급실이 운영되지 않는 날은 인근 강릉아산병원이나 속초보광병원으로 환자들을 안내한다. 속초의료원은 2월 초 공석인 응급실 전문의 3명에 대한 채용 절차를 진행했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이후 2차 채용 공고를 냈다. 기존 응급실 전문의가 받던 3억원에 1억원을 더해 연봉 상한선은 4억2000만원으로 제시됐다.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은 내과 전문의 채용을 위해 4차 모집 공고를 냈다. 산청군보건의료원은 지난해 4월 내과 전문 공중보건의 복무기간이 만료됐지만 11개월째 후임자를 찾지 못했다. 연봉 3억6000만원 등 채용 조건이 타 지역보다 높은 수준으로 평가되는데도 지원자를 찾기가 힘들다. 전남 순천의료원과 목포의료원도 정형외과 등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채용 공고를 잇따라 내고 있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토대로 최근 5년간 지방의료원 의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8년 7.6%였던 지방의료원 결원율은 2022년 9월 현재 14.5%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정원 1266명 중 184개 자리가 공석이었다. 전국 지방의료원 35곳 중 75%에 이르는 26곳이 의사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또,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4개 필수진료과가 모두 갖춰진 지방의료원은 65.7%에 그쳤다. 흉부외과와 비뇨기과까지 기준을 6개로 확대하면 22.9%에 불과했다.

지방의료원의 전문의 정원을 채우기 힘든 건 열악한 근무·생활환경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코로나19 공중보건 위기 대응에 동원되는 과정에서 의료인력의 ‘번아웃’ 문제가 수차례 제기된 바 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며 공공의료기관의 인력 유출이 잇따랐다. 또, 수도권 의료기관보다 금전적인 처우가 좋아도 근무환경이나 자녀 교육과 같은 정주 여건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의료진의 이탈은 반복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같은 이유로 전국 시·군 보건소도 보건소장을 임명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성남시의료원 위탁 운영 논란


성남시는 2020년 3월 개원한 경기도 성남시의료원의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매년 300억원을 지원해왔다. 성남시의료원은 현재 의사직 정원 99명 중 65명만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취임한 신상진 성남시장은 성남시의료원 운영을 대학병원에 위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성남시의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성남시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발의했다. 성남시의료원 위탁을 의무화하고, 위탁 주체를 민간기관까지 확대한 내용이다. 성남시는 올해 말까지 성남시의료원 운영 개선 방향을 결정하기로 하고 토론회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고 있다.

신 시장은 “대학병원이 의료원을 위탁 운영하면 전공의, 교수들까지 와서 진료를 하게 돼 대학병원급이 될 것”이라며 위탁 운영의 이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보건노조와 야당을 중심으로 ‘공공의료 포기’, ‘과거에 실패한 사례’라며 반발이 거세다. 군산의료원, 속초의료원 등 일부 지방의료원이 지난 2010년 전후 대학병원 위탁 운영을 해제하고 자체 운영으로 복귀한 사례를 들고 있다. 대학병원들이 일부 교수 등 의료진을 파견하는 것만으로 지방의료원을 감당하기는 힘들다는 이유였다.


공공 의료인력 확충이 관건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지방의 의료 인프라가 탄탄하게 구축돼야 한다. 의료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는지는 일자리, 교육과 함께 지역의 정부 여건을 가늠할 척도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2021-2025)’에는 의료자원 부족 지역에 적정 규모의 지역 공공병원 확충이 포함돼 있다. 지역 공공병원 20곳 이상을 신축 또는 증축한다는 계획이다. 관건은 의료인력 확충이다. 서울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1명이지만, 경북은 1.4명, 충북은 1.5명으로 지역 격차가 크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자 했다. 코로나 사태로 의료인력 부족이 또다시 논란이 된 2020년에도 의대 정원 확대를 공론화했지만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됐다. 의대생들은 집단 시험 거부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코로나19 안정화 선언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의대 정원 문제가 언론을 통해 이슈화하는 부분에 대해 매우 우려스럽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의료계의 진료 거부 등 현실적인 벽에 부딪힌 정부는 의료계와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이 문제를 재논의할 것을 합의했다.

코로나로 일시 중단됐던 의료인력 확충 방안에 대한 논의는 이제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 확충 방안으로는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졸업 후 일정 기간 공공보건의료기관에 의무복무하도록 하는 공중보건장학제도 등이 논의된다. 국립대학병원에 공공임상교수제 도입, 국립대학병원에서 지방의료원으로 의사 파견을 늘리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간호 인력 역시 지역간호사제 도입과 공중보건장학 간호대생 선발 규모 확대로 확충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역 공공의료인력 수급을 원활히 하려면 정부의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지역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서울과 수도권 등으로 몰리는 이유로 지역 내에 수련 병원과 지방 의과대학 정원에 비해 부속병원에 배정된 전공의 정원이 적은 것이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국립대병원이 지방의료원과 전공의 수련을 연계하려면 34개 지역의료원에 선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며 “지자체의 재정여건을 고려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지방의료원 신설·운영과 고가 장비 도입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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