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 전문가의 직격 “입법도 ‘융합’하자”

[법으로 보는 세상] ‘부처 소관주의’ 넘어 수요자 중심 법제로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하정 기자 2022.08.01 10:16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 박수철 전 수석전문위원과 이경선 교수가 ‘융합법제 활성화’를 주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청소년활동 진흥법’. 여성가족부가 소관 부처다. ‘한국청소년연맹 육성에 관한 법률’. 소관 부처 여성가족부.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육성에 관한 법률’은 해양수산부 소관, ‘한국4에이치활동 지원법’은 농촌진흥청 소관이다. 이들 법 모두 분야별 청소년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조항들로 구성됐다. 모두 청소년활동 진흥법의 하위 조항으로 묶을 수 있는 내용이라는 지적이다.

‘국립대학병원설치법’, ‘서울대학교병원설치법’은 교육부 소관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한다. 모두 의료기관 설치와 운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국립의료기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로 단일화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융합의 시대다. 과학기술과 인문학, 예술이 융합해 새로운 기술발전을 이뤄내고, 학교에선 문·이과의 경계를 허물어 ‘융합인재’ 육성을 꾀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융합’은 시대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융합의 필요성은 법의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법들은 부처별, 국회 상임위별로 각각 제정 또는 개정된 법이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어느 한 분야의 법령을 어느 부처나 기관이 담당하는지는 국민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특정 사안에 대한 법령이 지나치게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 찾기가 어렵거나, 관련된 규정들의 관계가 어렵고 복잡하다는 문제가 있다.

▲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구성의 건이 가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8월 [법으로 보는 세상]에서는 ‘행정개혁과 융합법제 활성화’를 주제로 나눈 입법 실무, 연구자의 대화를 들어봤다.

박수철 전 국회 수석전문위원은 국회 입법조사처 기획조정관을 거쳐 국회 정보위와 법사위 등에서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법제 실무 권위자다. 과 등을 저술했다. 이경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행정법무학과 교수는 공공부문 비대화 개혁과 전직대통령예우법 등 법령 체계 개혁을 주창해왔다.

“하나의 법률이면 될 일을 부처별로 여러 개의 법률로 쪼개 만들고 있는 불합리한 입법 관행을 깨야 한다”는 데 뜻을 모은 이들이 융합법제에 대한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융합법제’의 활성화를 주장하고 있다. ‘융합법제’의 개념을 먼저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이경선 서강대 교수(이하 이)
: 국민의 일상생활과 행복은 특정 부처에 국한된, 분절되고 파편화된 행정작용으로 온전히 규율되거나 충족되기 어렵다. 국민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살피고 행복감을 높여주기 위해서는 여러 부처와 공공기관의 행정작용이 유기적으로 협력·협업·연대·연계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타 부처 소관 업무에 대한 부처 간 업무협조와 조정을 능동적으로 기대하기가 극히 어려운 행정문화가 이어져 왔다. 부처 간 경계를 넘어서면 관여해서도 안 되고 아예 들춰보지도 않는 등 이른바 부처할거주의 관행이 극심했다. 행정학 연구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융합행정, 협업행정을 강조해왔다. 융합행정, 협업행정을 견인하고 뒷받침하는 것이 융합법제다.

박수철 전 국회 수석전문위원(이하 박) : 융·복합 법제 개념이 법정책학적으로나 법제 실무상으로 정립된 개념은 아니지만, 대체로 관련되거나 유사한 법령·규정을 대상으로 이를 하나로 통합하거나 체계적·내용적으로 분류하거나 조화시켜 중복은 제거하고 연계성은 강화함으로써 체계적 정합성을 높인 법제다. 융·복합 법제는 부처·기관 등과 같은 공급자가 아니라 국민과 수요자 또는 규율 대상자의 입장에서 정책을 규범화하는 입법의 지식과 기술의 총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융합법제는 왜 필요한가

: 행정청의 행정작용이라는 것도 결국 ‘조문’에 근거한다. 크고 작은 정책도 정책의 주요 골자들 대부분은 결과적으로 조문으로 구체화된다. 법제(法制) 부문도 국민 중심의 시대,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 융합의 관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민을 중심으로 법령을 재조합해 법령 간에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필요하면 그런 방향으로 법령을 통합하고 재구성해 법체계를 재편하는 작업, 즉 융합법제(convergence legislation)로의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
부처 간 칸막이 현상이나 부처할거주의로 인한 공급자 위주의 법령 체계를 국민과 수요자 중심 정책 중심의 융합 법제로 전환해 국민친화적인 법제도 시행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 현재 법률 제명에 ‘융합’이 명시된 법률은 ‘녹색융합클러스터의 조성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산업융합 촉진법’ 등 5개이고, 법률 내용 중 ‘융합’을 언급하고 있는 법률은 50개 이상이다. 융합이 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강조되면서 융합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법제 영역에서도 융합법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융합법제 활성화 연구는 단일 소관 부처 중심 법제 방식에 따른 칸막이식 입법으로 초래되는 비효율성이나 부작용을 짚어보고, 국민 모두에게 유익한 ‘좋은 법률’을 만들며, 국민 행복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성공한 입법’의 조건이나 환경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예를 들어, 창의와 혁신이 성공과 생존을 좌우하는 경제 조류에서는 융합 신제품의 신속한 인증 등이 필요하지만, 칸막이식으로 구획된 법령 체계하에서는 이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해 창의와 혁신이 구현된 제품이 신속하게 시장에 출시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융·복합 법제가 활성화됐다며 불필요한 규제를 사전에 제거하거나 필요한 법적 수단을 사전에 강구해 선제적 대응이 가능할 수 있다.

▲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소위./사진=뉴시스

-‘최근 입안된 법안 중에서 융합법제로 추진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법안이 있나

: 대체역법(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이다. 국방부와 병무청이 소관 기관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이 법에 따라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대체복무를 수행하게 됐다. 종교 등의 신념 등 양심의 자유에 따른 대체복무라면 복지부, 산림청, 농림부, 해양수산부, 산자부 등 다부처가 관여되도록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 또한 현재는 환경부 소관이지만 대부분 부처가 미세먼지 대응을 위한 각자의 역할을 갖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조문화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의 경우는 국무조정실과 환경부 소관으로, ‘정부는’, ‘국가는’으로 주체를 표현하고 있고 기본계획이나 위원회도 두도록 하고 있지만, 각 부처의 탄소중립 역할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게 맞다고 본다.

-기존의 소관 행정부처 중심의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이유가 있을 텐데

: 부처소관주의 원칙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헌법’이나 ‘정부조직법’, ‘국회법’에서도 명확하게 찾을 수 없다. 법제처와 국회 법제실이 제시하는 입안 기준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정부 부처가 나뉘어 있으니 그에 맞추어 입법과정에서도 법률안을 각 부처의 편제대로 나누어 설계해야 한다고 ‘당연시’ 여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행정조직법정주의 원칙은 법률의 부처소관주의 원칙과 관련성이 깊고 상호 참고사항은 될 수 있지만, 동일한 것으로 보거나, 전자가 후자를 포섭하는 관계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부처소관주의가 기본원칙이고 원칙이어야 한다면 이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준거점을 마련해두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소관주의 원칙’이 아니라 ‘부처소관주의 관행’이라 부르는 것이 현재로서는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 정부 조직은 여러 부처로 나뉘고 소관하는 사무도 기본적으로 분장되기 마련이니까 이 사무를 구체화하는 법률도 각 부처별로 구획(소관)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에 굳이 입안 기준 자체에서 설명할 필요성조차 없었던 것일 수 있다. 또한 이를 명쾌하게 설파해줄 법제실무자, 이론가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정부 조직의 업무가 나뉘는 것을 편의상 각각 개별법으로 법제화하는 것은 구분하기 쉽고 편의성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의 법률 내에서 ‘정부조직법’이 분장한 여러 부처의 사무 중 관련성이 높은 사무들을 동시에 규율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 하나의 법률을 시행하면서 그 법률에 근거해 여러 부처가 오히려 특정 사안에 대해 더욱 긴밀하고 동시적으로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만큼 사무의 효율성, 효과성, 적시성, 연대성, 공동책임성, 협업성 등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

: 정부입법에서 소관 행정부처 중심 방식은 책임성과 전문성 확보, 예산확보나 집행구조 측면 등에서 불가피한 점이 있다. 하지만 입법정책의 다원성, 복합성 등에 따른 한계와 함께 행정부처 할거주의 강화, 청탁입법 증대, 법률 수 증가 등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 한덕수 국무총리가 7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서 코로나19와 경제 대책 등을 주제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융합법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법적 조치가 선행돼야 하나

: 융합법제, 다부처소관법제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이른바 ‘부처소관주의’를 대전제로 입안되고 있는 법률 입안 방식의 관행과 한계를 뛰어넘는 법률 입안 방식이나 기준이 개발될 필요가 있다.
특정 부처가 특정 정책을 단독으로 주관하지 못하도록 좀 더 섬세한 조문 설계를 기한다든지, 대통령, 총리, 부총리, 위원장 등의 조정 능력을 각별히 발동하게 하는 장치를 강구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해결점을 찾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 학계, 법조계, 경제·산업계, 과학기술계, 법제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 인사들이 참여한 세미나·토론회·간담회 등을 개최해 융합법제에 대한 컨센서스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또, 융합법제를 상징할 수 있는 입안·입법과정을 거쳐 시행되는 사례법률을 만들 필요가 있다. 환경부 소관 법률로 되어 있지만 법률 내용에는 자원재활용과 관련된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 소관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을 융합법제 시각에서 새롭게 개편을 시도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융합법제로 성공한 외국 입법례를 적극적으로 수집·분석해 우리나라 융합법제 연구와 활성화에 유용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 추후 헌법 개정 시 국회의 입법권 행사 부분에서 책임 있는 정책집행과 공공사업 등의 추진을 위해 정부 부처별로 소관해 사무를 부여하는 법률을 제정하되, 다수의 부처나 모든 부처가 함께 협력해 추진해야 하거나 과학기술이나 사회인식 변화에 맞춰야 하는 정책과 사업 등에 대해서는 여러 부처가 함께 공동으로 집행해나가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는 취지를 간략하게 명시하는 방안을 고려했으면 한다. 이외에도 융합행정, 행정협업에 관한 당부를 언급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 형식을 활용할 수 있음을 반영하는 것도 좋겠다.
박 : ‘정부조직법’에서 협업에 관한 근거 규정을 두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행정기관 간의 업무 수행에서 업무 협력이 잘되려면 결국은 각 기관이 보유한 정보나 자료의 유통이 원활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고, 공동으로 협력해 일을 하는 조직구조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융합법제를 권장하고 활성화하면 생기는 부작용은 없나

▲ 박수철 전 국회사무처 수석전문위원.

: 융합법제 활성화에 대한 비판적 점검도 필요하다. 입법과 행정에서 다부처가 참여하고 다부처가 관리하는 성격을 지닌 법제를 융합법제라고 할 때, 현실적으로 융합행정이 이루어질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현재 정부 제출 법률안의 제정과 개정은 부처별이나 소관하는 담당 과별로 이루어지고 있고, 국회에서의 법률안 심의도 위원회별로 이뤄지고 있다. 행정이 법률에 기속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이 행정에 기속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융합법제는 주로 대통령이나 총리 소속 위원회 주관으로 이루어지거나, 복합사무를 관장하는 합의제 국가기관과 같은 조직형태가 아니면 여러 부처 중에서도 결국에는 특정 소관부처가 실제로 담당하는 경우(예를 들어 다부처적 정책 추진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의 경우 사실상 보건복지부가 담당하고 있는 상황 등)로 귀결될 것이다. 결국 행정의 책임을 물을 부처가 어떤 식으로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현실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우리가 융합법제로 조문 설계를 하더라도 결국은 특정 부처가 해당 법률을 주도적으로 관장하는 형국이 되는 문제가 있게 된다.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소관부처주의에 익숙한 법제 환경에서 융합법제를 활성화하려는 경우 저항이 예상되고, 이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각 부처 장의 인사권자가 정책에 대해 식견을 지니고 직접 통제와 조정을 행하는 방법인데 우리 현실에서는 낙관하기 어렵다. 우선 수많은 정부위원회를 융합법제에 활용되도록 그 기능과 위원 구성 등을 개편하여 운영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 이경선 서강대학교 행정법무학과 교수.

: ‘국회법’은 상임위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부처 사이 갈등이 있거나 다수 부처 소관사항에 대한 입법적 대처에 특히 취약함을 보인다. 다수 부처 관련 사항은 본회의에서 의장의 주재로 토론을 벌이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의장 통제 아래 소위를 구성해 본회의 절차에서 이견 조정을 도모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의장 직속의 융합법제적 정책 조정과 연계 전문성을 가진 보좌인력을 확보하게 할 필요도 있다.
아울러 본회의와 의장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으로는 현재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는 연석회의 제도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현재 국회에서 각 상임위원회는 소관 부처와의 유착관계 때문에 융합법제 추진에 한계가 있는데, 상임위원회 간 연석회의와 전원위원회가 활발히 가동된다면 융합법제 활성화를 위한 유효한 무대가 될 수 있다.


PROFILE

박수철
국회사무처 수석전문위원 (정보위, 법제사법위, 안전행정위, 농림해양수산위, 국토해양위)
국회입법조사처 기획조정관 등 
<입법총론>, <입법과정론> 등 저술

이경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행정법무학과 교수
한국납세자연맹 예산감시위원 등
논문 및 연구보고서 54편 저술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j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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