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예속화’ 지방 없는 지방정치…지방의회 정당공천, 국회 셈법 따라 출렁

[심층리포트] 공천제도 변화 필요...지역정당 허용 주장도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하정 홍세미 기자 2022.08.01 09:2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4년에 한 번 치르는 지방선거 때마다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에 예속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6.1 지방선거는 대선 직후 치러진 데다 중앙정치의 굵직한 이슈들에 가려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지방정치 예속화’의 중심에는 ‘정당공천제도’가 있다.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전국 규모의 정당에서 공천하는 ‘정당공천제도’로 인해 진정한 의미의 ‘풀뿌리 민주주의’는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지 31년. 지방정치 발전을 위한 대안을 찾아본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본 투표일인 지난 6월 1일 오전 경남 남해군 남해읍 해양초등학교에 마련된 남해읍 제4투표소에서 주민들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22년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됐다. 4년마다 한 번 우리 지역 일꾼을 뽑는 중요한 선거로 어느덧 31년의 역사를 갖게 됐다.

◇ 1991년, 30년 만에 부활한 지방선거
1952년 최초의 지방의회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이후 1960년까지 3차례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하지만, 5.16 이후 지방의회는 해산됐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임명제가 됐다. 지방선거는 사라졌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들은 저마다 지방자치제 부활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1988년 지방자치 관련 법안이 통과됐고, 여야 협상 끝에 1990년 6월까지 지방의회의원 선거, 이듬해 6월까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3당 합당으로 정국이 경색되면서 지방선거는 합의한 시간까지 실시하지 못했다. 이후 노태우 정부가 1991년 3월 말 구·시·군의회의원 선거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여곡절 끝에 1991년 3월 구·시·군의회의원 선거가, 6월 시·도의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30년 만에 부활한 지방선거였다.

1995년 6월 27일에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됐다. 우리나라 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지사 선거와 구·시·군의장 선거, 시.도의회와 구·시·군의회 의원 선거가 동시에 치러졌다. 이전까지 선거마다 각각의 선거법이 적용됐지만,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 의해 선거가 일괄 실시됐다.

◇ ‘풀뿌리 민주주의’ 과제는 여전
이후 4년마다 실시된 지방선거(2회는 3년 만인 1998년 실시). 평균 50%대의 투표율을 보였고, 선거마다 시대상이 반영되면서 선거 후 각종 분석과 관전평이 쏟아졌다. 1회 지방선거 당시에는 ‘완전한 의미의 지방자치제도 시작’이라는 의미가, 2회 선거 때는 ‘IMF 외환 위기 속에서 치러진 저비용 선거’라는 평이 나왔다, 3회는 2002 한일 월드컵의 여파로 50%에 못 미치는 투표율을 기록했다. 매니페스토 운동이 시작된 4회 선거,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가 함께 치러진 5회, 6회 때는 최초로 사전투표가 실시됐다. 7회 선거에선 1회 이후 처음으로 투표율이 60%를 넘었다. 올해 6월 치러진 8회 지방선거는 ‘대선 연장전’의 꼬리표가 붙었다.

각 회차마다 각기 다른 분석이 따라붙었지만, 선거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공통된 아쉬움이 있었다. 바로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는 언제쯤 실현될까’다. 이번 선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6월 31일 서울 용산2가동 주민센터 앞에 선거벽보가 첩부되어 있다. /사진=뉴시스
◇ 특정 정당 쏠림 뚜렷…공천 뒷말도 무성

제8회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은 226명, 시·도의원은 872명, 시.군.구의원 2988명이었다. 모두 4000여 명이다. 선거 결과는 국민의힘의 압승이었다. 4년 전과 정반대의 결과였다. 4년 전에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이슈가, 이번 선거에선 ‘정권교체’라는 이슈가 선거판을 지배했다. 지방선거지만 지방의 의제는 중앙정치 이슈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회를 거듭할수록 지방정치가 중앙에 예속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선거 진행 과정에서 다수 지역에서 공천을 두고 뒷말이 나왔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기초자치단체장 후보, 광역.기초의원 후보 공천에 관여했다는 의혹들이다. 어느 지역에선 국회의원이 출마자 중 특정 인사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전화 통화 녹음 파일이 공개됐고, 어느 지역에선 공천 과정에서 일부 후보의 컷오프 사유가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공천을 받기 위해 국회의원 또는 지역의 당협위원장(지역위원장)에게 줄을 서야 한다는 말은 이미 공공연하다. 지역에 따라 어느 당의 공천을 받는가가 곧바로 당선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공천의 힘은 막강하다. 공천만 받으면, 선거 자체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다. 지역 일꾼으로서, 지역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만들고 제시하는 것보다 어느 당에서, 누구와 소통하는지가 지방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는 요소가 됐다. 그래서 이번에도 지방선거에서 정당 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년 6월 15일 오후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01회 정례회 제1차 본회의에서 2021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2006년 도입 정당공천…폐지 목소리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은 제도적으로 변화해왔다. 지방자치단체장은 1995년 직선제가 실시될 때부터 정당공천을 받아왔다. 하지만, 기초의회의 경우 91년 지방자치가 부활했을 때는 정당공천이 없었다. 2002년 실시된 3회 지방선거까지 출마자 모두는 무소속이었다. 그러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됐다. 정당정치 실현이라는 명분으로 2006년 4회 지방선거부터 기초의회에도 정당공천이 도입됐다.

정당공천은 정치에 대해 전문성을 가진 정당이 후보들의 능력과 자질을 충분히 검증하고, 지방의정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후보 중심의 선거로는 자칫 ‘지역유지’ 중심의, ‘돈 선거’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를 차단하고, 한편으로는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하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정당공천을 통해 후보들의 능력과 자질이 검증됐다고 보긴 어렵다. 일부 지역에서는 정당에서 공천한 후보자의 허위 경력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범죄 이력으로 후보 간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초의회에서 소속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단체장과 의회 간의 갈등도 빈번하다는 지적이다. 지방정치에서는 모든 예산이 정당의 이익과 전혀 관계가 없는데도 정당공천이 유지돼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 ‘정당공천 폐지’ 공약에도 국회 ‘손익계산’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모두에 정당공천 폐지를, 문재인 후보는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시 박 후보는 “그동안 정당공천제로 인해 지방정치 현장에서 중앙정치에 대한 눈치보기와 줄서기 등의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며 “정당공천제 폐지를 통해 지방정치가 중앙정당 통제에서 벗어나 주민생활과 밀착된 정치를 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 당선 이후 2013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정당공천제 폐지를 제1과제로 놓고 논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당시 새누리당이 정당공천제 폐지가 위헌 가능성이 있다며, 입장을 철회했다. “광역단체장·의원과 기초단체장·의원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데 기초선거에 대해서만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였다. 이에 민주당이 반발했지만, 민주당 역시 당원 여론조사 등을 거쳐 정당공천 주장을 철회한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공천이 필요하다는 당원들의 의견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 결국 여야 모두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분주히 손익계산을 한 끝에 정당공천제 폐지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2012년과 2013년 국회에는 정당공천제 폐지를 담은 법안이 모두 6차례나 발의됐다. 정당공천 폐지 논의가 가장 활발한 시기였던 셈. 하지만 심의조차 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됐다. 2020년에는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목소리는 묻혔다.

이에 앞서 기초의회까지 정당공천제를 도입하기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 당시에도 반대 목소리가 있었다. 심재덕 의원이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 故 심재덕 전 의원은 1995년 민선 1기와 98년 2기 수원시장 선거에서 모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이후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지방선거에서의 정당공천 폐지를 지속 주장했고, 2004년 기초단체장 정당공천제 폐지를 골자로 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심 전 의원은 2008년 1월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해 힘썼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전남 여수시의회 권석환, 문갑태, 송재향, 이상우, 정경철, 정광지, 주재현 의원 등 7명이 5월 11일 여수시청 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현실적 대안’ 필요성도 제기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만,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영대 의원(더불어민주당, 전북 군산)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방의회가 부활되고 당시 시·군의원 선거가 무공천으로 진행됐지만, 그 결과는 정당에서 활동했던 분들과 50대 남성의 지역 유지들이 대부분이고 여성과 청년은 거의 없었다”며 “정당공천제는 의회 구성 다양성 차원에서 청년, 여성, 장애인 등 정치적 약자들의 진출을 장려하는 긍정적인 역할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정당공천제는 지방선거의 ‘흥행 요소’”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양당 경쟁과 같은 흥행 요소가 없다면 지방선거 참여 자체가 크게 줄어들 거라는 우려다. 아울러 지방정치에서도 정당의 필요성과 책임 또한 커지고 있는 만큼 정당공천제의 존폐를 논의하기에 앞서 지방의회에서의 교섭단체 활동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완전 폐지?…밀실 공천 방지가 우선”
정치권에서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보다는 기초의원 선거 구조를 바꿔 폐해를 줄이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두관 의원(더불어민주당, 경남 양산을)은 기초의회 선거에서 정당명부식 완전비례제를 적용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지난달 14일 발의했다. 비례대표 숫자를 늘려서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지방자치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선거구조 개선안이다.

기존에는 지역구마다 후보를 내고 투표하는 방식이었지만 법안이 통과되면 정당 득표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것으로 변경된다. 정당명부식 완전비례제는 유권자의 다양한 의사가 반영되고 승자 독식과 양당 체제를 공고히 하는 현행 선거 구조를 개선한다는 장점이 있다. 김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며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개혁특위에서는 기초의회 단위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실험적으로 하는 안이 마련되었으나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바 있다”며 “기초의회부터 소수정당의 진입기반을 만들어 풀뿌리부터 의회를 통해 다양한 의사가 표출되는 건강한 정치생태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에서는 지방의회 의원의 ‘밀실공천’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4월 한국 정당 역사상 최초로 ‘공직 후보자 역량강화평가(PPAT)’를 시행했다. 국민의힘 기초·광역의회 의원 공천 신청자 4500여 명이 대상이다. 만 19세 최연소자부터 만 80세 최고령자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PPAT를 봤다. PPAT는 지난해 30대 당 대표로 선임된 이준석 전 대표의 주요 공약 사항이다. 이 대표는 지역 내 ‘짬짜미 공천’과 이에 따른 폐단을 막기 위해 PPAT와 같은 자격시험을 제안했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요건을 묻고 함량 미달인 사람을 걸러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구의원 등 기초의회 비례대표 공천 신청자는 PPAT에서 60점, 시·도의원 등 광역의회 비례대표 공천 신청자는 70점 이상 맞아야 국민의힘 공천을 받을 수 있다. 지역구 출마자는 PPAT 성적만 갖고 컷오프되지 않는다. 고득점자에게는 공천 심사 시 가산점이 부여됐다.

▲지난 4월 17일 오전 경기 부천시 경기경영고등학교에서 열린 ‘2022년 국민의힘 공직 후보자 기초자격평가(PPAT)’에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인천지역 광역·기초의원 공천 신청자들이 시험을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역정당이 대안일까?…“우리나라에서는 창당 못해”

외국에서는 지역에서 정당을 만들어 유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본의 경우 ‘지역정당(local party)이 활성화돼 있다. 오사카를 지역 기반으로 출범한 야당인 오사카유신회를 비롯해 도쿄생활자네트워크, 가나가와네트워트 등이다. 전국적으로는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지만 특정 지역에서 뿌리 깊은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영국 스코틀랜드 국민당, 독일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독일에서는 유권자에게 일정한 수의 지지 서명을 받아 지방선거에만 후보를 내는 정치단체를 만들 수 있다. 독일은 공천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와 같은 정부기관이 관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역 주민들로만 구성된 정당의 창당은 시작부터 불가능하다. 정당법을 보면, 3조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 17·18조 ‘각 1000명 이상의 당원들을 지닌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한다’고 돼 있다. 중앙당이 있어야만 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지방자치가 생존할 정당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서울시의회 전 의원은 “지방의회 의원은 지역 당협위원장(지역위원장)의 보좌관이나 다름없다”며 “지방의회 의원이 줄서기 정치하는 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당법을 개정하는 등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j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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