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창작 꿈이 익어가는 ‘논논정미소’

[청년. 지역을 택하다]선배 창작자·동료와 함께한 2박3일…지역살이의 첫발을 떼다

머니투데이 더리더 김제(전북)=최현승 기자 2026.10.06 10:5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X
편집자주청년 인구 유출은 지역 소멸을 가속화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많은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하지만, 지역에서 미래를 설계하고자 하는 청년도 적지 않다. 이들이 지역에 정착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지자체의 청년 정책이다. 머니투데이 <더리더>는 ‘청년, 지역을 택하다’ 코너를 통해 지역을 선택한 청년들의 이야기와 이들을 지원하는 지자체 정책을 함께 조명한다.
▲논논정미소 프로그램에 참여한 참여자들의 단체사진/사진제공=청년마을 논논
벼가 익어가는 가을 평야 한가운데,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청년들이 모였다. 지난 9월 17일 전북 김제시 죽산면에서 진행된 청년마을 ‘논논’의 창작자 워크숍 프로그램 ‘논논정미소’ 현장이다.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연출한 김진만 PD와 ‘소시지아조시’로 알려진 유튜버 겸 작가 김보씨가 강연자로 나섰다. 이들은 참여자들의 고민을 듣고 창작 경험을 나눴다. 서울에서도 한자리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이들을 김제로 불러 모은 사람은 ‘논논마을방송국’을 운영하는 최별 PD다.

◇청년의 이야기를 도정하는 ‘논논정미소’
▲김진만 MBC PD의 강연 모습/사진=최현승 기자
최 PD는 MBC에 재직하던 2020년, 김제에서 마음에 드는 시골집을 계약했다. 집을 고쳐 사는 과정을 콘텐츠로 만들겠다고 회사에 제안했고, MBC 공식 유튜브 채널 ‘오느른’을 맡게 됐다. 집 수리로 시작한 이야기에 이웃과의 일상이 더해졌다.

2024년 채널 운영을 마친 뒤에는 서울로 돌아가 회사에서 다른 업무를 할지, 김제로 돌아갈지를 고민했다. 최 PD는 지난 9월 17일 머니투데이 <더리더>와의 인터뷰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PD 일도 이어가고 싶었다”며 “그러려면 김제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그해 12월 퇴사했다”고 말했다.

독립하자 콘텐츠 제작비도 직접 마련해야 했다. 쌀 브랜드 ‘오늘의 평야’를 운영한 이유다. 그는 “처음에는 쌀 판매와 유튜브 채널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며 “올해 3월 ‘쌀 파는 마을방송국’으로 방향을 다시 잡았다”고 설명했다. 채널을 논논마을방송국으로 재정비하고, 기존 서점 ‘오느른 책밭’에 이어 올해 5월에는 교류 공간 ‘논논 라운지’도 열었다.

지역에 더 뿌리내리고 싶어 신청한 청년마을 심사에서는 이미 사업을 운영하는데 왜 지원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최 PD는 “전에는 동네 가게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다 크리에이터로 보였다”며 “주변에 있는 카페, 자수 공방, 도자기 공방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선정 이후에는 지원을 받아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났다. 먼저 PD들을 위한 체류형 사무공간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한 달에 한두 차례 짧게 출장 오던 PD들은 이제 매달 2주가량 김제에 머물 수 있게 됐다. 시 청년정책팀도 별도 예산을 마련하고 필요한 부서 연결을 도와주고 있다. 최 PD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어도 시간과 비용이 든다”며 “청년마을이 아니었다면 예산이 없어 하지 못했을 일들”이라고 말했다.

청년마을 선정으로 할 수 있게 된 일 중 하나가 바로 논논정미소다. 2박3일 동안 참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기획안과 자기소개 영상으로 만든다. 첫날 기획과 지역 체험, 저녁 교류를 시작으로 둘째 날에는 죽산 산책과 두 차례 강연, 개별 작업이 이어진다. 마지막 날은 결과물을 공유하는 시간이다.

이름은 쌀을 도정하는 과정에서 가져왔다. 최 PD는 “본인의 서사를 가지고 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신이 가진 이야기 중 무엇을 선택하고 버릴지, 나만의 이야기를 어떻게 쌓아갈지 기준을 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출퇴근에 지친 디자이너…지역살이의 첫 단추를 끼우다
▲논논정미소 참여자들이 마을을 산책하며 둘러보고 있다/사진제공=청년마을 논논
경기 김포에 사는 오승원씨(33)는 현재 경기도의 한 시청에서 도시디자인 업무를 맡고 있다. 이전에는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 다니며 약 5년간 김포에서 서울로 출퇴근했다.

오씨는 “매일 야근하고 지친 채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며 이게 답일까 생각했다”며 “여유를 갖고 저를 돌아보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 다른 지역에서 살 방법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디자인 일자리는 서울에 많았고, 함께 공부한 친구들도 대부분 서울에서 일했다. 다른 지역에서 살아본 경험도 없었다.

지역살이를 고민하던 오씨가 오랫동안 지켜본 채널이 바로 ‘오느른’이었다. 그는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채널 운영이 끝난 뒤에도 내려와 방송국을 하는 모습을 봤다”며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과 나 자신을 콘텐츠로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맞물려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알아본 지역살이 프로그램은 6박7일이나 한 달 일정이라 휴가를 내기 부담스러웠다. 2박3일은 시도해볼 만했다. 김제에서는 귀농을 준비하는 청년과 완주에 정착해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참여자를 만나 정착 과정과 수익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씨는 “주변에는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대부분이었는데 이곳에는 프리랜서와 귀촌한 분들도 있었다”며 “어떤 결심으로 그런 생활을 하는지 들으며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강연을 들은 뒤에는 다음 날 발표할 기획안을 정리해야 했다. 오씨는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콘텐츠를 기획안처럼 정리해 나누는 시간”이라며 “창작자들이 어떻게 해왔는지 듣고, 오후에는 제게 적용해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제를 천천히 돌아볼 시간은 부족했다고 했다. 낯선 주민들과 관계를 맺는 일, 수도권의 친구들과 멀어지는 문제도 남아 있다. 현재 근무 계약이 끝나면 더 긴 지역 체류 프로그램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오씨는 “몇 년 동안 고민만 하다가 직접 와보니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며 “직접 경험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점에서 저에게는 첫 단추를 끼우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혼자 그리던 창작자, 김제에서 동료를 만나다
▲논논정미소 참여자들이 마을을 산책하며 둘러보고 있다/사진제공=청년마을 논논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여기도 있네.’ 경기 수원에서 온 나다림 작가(36·필명)가 첫날 저녁 죽산주막에서 했던 생각이다. 참여자들은 식사를 하며 창작에 대한 각자의 고민을 나눴다. 나 작가에게는 평소 털어놓을 곳이 없던 창작의 막막함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나 작가는 홍보·마케팅 일을 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인스타툰을 1년 넘게 연재했다. 독립출판을 준비하며 최근에는 유튜브도 시작했다. 함께 창작자의 길을 걷던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본업으로 돌아간 뒤에는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버거웠다.

그는 “동료가 한꺼번에 사라지니 무기력해졌다”며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이 일로 계속 먹고살 수 있는지 혼자 생각에 갇혔다”고 말했다. 좋아하던 크리에이터인 최 PD가 프로그램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왔다.

수도권에서 알아본 유명 크리에이터들의 창작 강의는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나 작가는 “구도나 색감, 편집처럼 기술적인 내용이 많았다”며 “여기서 얻어가는 것은 콘텐츠를 앞으로 어떻게 계속 만들지, 내 채널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 작가는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지역에 창작 공간 마련하는 것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공간에서 강의을 열고 싶었지만 수원 행궁동의 임대료가 부담스러웠다”며 “과거 순천을 여행하며 봤던 도서관의 창작 수업과 아이들이 가득한 동네 책방을 보고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어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나 작가는 짧게나마 머문 김제에 대해 “작은 마을이지만 새로운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는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며 “나도 원하는 공간을 마련해 꾸미고, 사람들을 모아 무언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주는 결혼처럼” 청년 창작자에게 건네는 지역살이 조언
▲최별 PD가 참여자들에게 콘텐츠 기획에 대한 고민을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제공=청년마을 논논
최 PD는 청년 창작자들이 작업의 고민을 나눌 기회를 늘리고자 후속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있다. 그는 “창작자를 꿈꾸는 청년들이 콘텐츠를 가지고 이야기할 자리가 부족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지금보다 더 긴 호흡의 워크숍을 더 자주 여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컬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청년들에게는 “지역의 고유한 이야기가 창작자의 자산이 될 수 있다”며 “창업 기회에 비해 경쟁자가 적은 만큼 밀도 있게 준비한 사람이라면 지역에서도 승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PD가 지역에서 직접 겪은 어려움도 있다. 협업할 사람을 찾을 때 역량과 경력을 파악할 정보가 부족했다. 교통과 주거 역시 이주 전에 살펴야 할 여건으로 꼽았다.

지역에 자리 잡는 과정은 연애와 결혼에 비유했다. 그는 “저도 오느른을 할 때는 방송사에 다니며 서울과 김제를 오갔다”며 “결혼 전에 연애를 하듯 지역에서 먼저 친구를 사귀고, 힘들 때 의지할 사람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본 뒤 내려오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당장 일상의 힘듦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도망치는 것으로 끝낼 수는 없다”며 “계획을 세우고 그런 과정을 거쳐 이주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 청년의 정착이 다음 청년의 기회로…김제시의 청년정책
▲강의를 마친 김진만 MBC PD가 참여자들과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제공=청년마을 논논
오씨와 나 작가가 김제를 찾게 된 계기는 지역에 먼저 자리 잡은 창작자들의 콘텐츠였다. 시는 이런 청년들의 활동이 다른 청년을 맞이할 기반으로 이어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죽산면에서는 2022년부터 트윈스테이블과 오느른 책밭 등 청년들이 운영하는 공간에 둥지마을 사업을 연결하고 농촌체험 스테이를 통해 외부 청년의 체류를 지원했다. 오후협동조합 등 청년들의 활동이 교류 행사와 플리마켓으로 넓어지면서 폐양조장 등 거점공간 재생과 로컬브랜드 사업, 청년마을도 연계했다.

시의 올해 청년정책은 55개 사업, 171억9600만원 규모다. 예비창업 도전 지원사업 ‘힌트’는 사업화자금과 실전 교육을, 창업 도약 지원사업 ‘톡톡’은 성장자금과 컨설팅을 지원한다. 김제청년공간 ‘이다’에서는 입주공간과 창업교육을 제공하고 기업 간 교류와 청년들의 모임을 돕는다.

청년들이 거주할 집을 마련하는 지원도 추진하고 있다. ‘청년거주형 스테이케이션 김제안착’은 빈집을 고쳐 청년에게 2년간 임대료 없이 제공하는 사업이다. 주거 형태와 소득 등 요건에 따라 청년 월세와 전세자금 대출이자도 지원한다.

죽산면에는 청년 창업공간과 임대주택을 함께 마련할 계획이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추진하는 총 120억원 규모의 기초생활거점조성사업에 두 시설의 조성이 포함돼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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