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역 과제는 지자체마다 다른데 예산 편성은 중앙정부 사업 중심이다 보니 지역 우선순위보다 중앙 지침과 평가 기준이 우선 반영된다. 응급의료가 급한 곳이 있고, 청년·산업 기반이 급한 곳이 있다. 상하수도·도로 정비가 우선인 지역도 있는데 중앙정부의 사업틀 내에서 지역 현안사업의 우선순위가 결정되는 구조다.
◇“돈은 내려오지만 자율성은 없다”… 중앙 주도 재정의 한계
지자체는 중앙정부 공모사업에 참여할수록 이에 대응하는 지방비가 늘어난다. 즉 다른 필수 지출(기본 운영비, 필수 복지, 시설 유지관리 등)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 때문에 사업이 단년도 중심으로 설계되거나, 장기 과제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임정빈 한국지방자치학회 회장은 “재정관계가 중앙정부 중심으로 구성돼 지방이 ‘무슨 일을 하고, 그에 필요한 재원을 얼마나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이 중앙 시각에서 이뤄진다”며 “그 결과 국고보조금처럼 의무지출 성격의 재원이 늘어 지방의 자율성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전국 7개 군 지역에서 국비·지방비를 매칭해 추진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두고도, 지자체 예산 마련 과정에서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사업 예산은 국비 40%, 도비 30%, 군비 30%씩 부담하는 구조다.
중앙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사업이지만, 실제로는 지방정부가 전체 예산의 60%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 논란의 핵심이다.
이런 매칭 구조는 광역단체와 기초단체 사이의 분담 갈등으로도 번졌다. 경남 남해군은 2026년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비 702억원 중 도 분담액 126억3600만원이 도의회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남해군은 예산 복원을 요구했다. 도비가 빠지면 매칭 구조상 국비 지원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장충남 남해군수가 도의회를 찾아 지원을 요청하고, 류경완 경남도의원(더불어민주당·남해군)이 삭발 투쟁에 나서는 등 진통이 이어졌다. 최종적으로 도의회에서 예산이 통과되며 사업 추진이 가능해졌다.
반면 신청을 포기하는 지자체도 잇따랐다. 전남 완도군도 그중 하나다. 완도군은 인구 약 4만5000명(2025년 11월 4만4676명) 기준으로 월 15만원을 지급하면 연 810억원이 필요하다고 산정했다. 국비 40%·도비 30%·군비 30%를 적용하면 군은 연 243억원(2년 486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완도군 관계자는 “지난해 최종예산 7911억원에서 올해 예산안은 6529억원으로 줄었다”며 “최근 2~3년간 재정이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체수입은 396억원이고 인건비 등 경직성 지출을 감안하면 자율적으로 쓸 돈이 없다”며 “시범사업 재원은 돌봄·농림해양수산·지역경제·재난안전 등 필수 경비에 우선 배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방정부들은 매칭사업을 포함한 재정 구조 전반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지방정부 4대 협의체(시도지사협의회·시도의회의장협의회·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는 민선 지방자치 30주년 간담회에서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지방재정 부담이 수반되는 정책은 사전 협의를 의무화하고, 법적 근거를 갖춰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포괄보조금제 전면 도입 △보통교부세 교부율 인상 등 재정분권 과제도 함께 제시했다.
임 회장은 “재정자치를 강화하려면 지방세 등 자체재원을 늘리는 방향이 필요하지만, 지자체 간 재정 여건이 크게 다른 만큼 이전재원 개편도 함께 가야 한다”며 “자체재원과 이전재원을 따로 보지 말고, 중장기 로드맵에 따라 전면적인 구조 개편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한 이양부터 권역 협력까지… 지자체의 대응 전략
한편 부산광역시·울산광역시·경상남도는 초광역 협력체인 ‘부울경 초광역 경제동맹’을 구성해 권역 단위 공동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지역 불균형 문제에 대응하고, 교통·산업·의료·관광 등 생활권 과제를 행정 경계를 넘어 묶어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부울경 경제동맹은 2026년도 초광역 협력사업의 국비 반영을 요청하기 위해 9월 17일 국회를 방문해 협조를 구했다. 10월 21일에는 ‘부울경 초광역 대분과 실무협의회’를 열어 국비 확보 대응 및 정부 건의사항 공동 추진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러한 지방정부들의 메가시티·행정통합 움직임에 대해 하동현 전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핵심은 행정구역을 단순히 키우는 것이 아니라, 교통·산업·환경 등 광역행정 수요를 처리할 정책 단위를 재설계하는 데 있다”며 “결국 통합은 ‘큰 시도’를 만드는 게 아니라, 현행 광역단체보다 상향된 권한·재정 등 운영체계를 다시 구성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법률이 아니라 헌법으로… 지방자치 권한 고정해야
현행 헌법에서 지방자치는 117조와 118조에만 담겨 있다. 지방정부가 어떤 일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재정은 얼마나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지는 법률로 정하게 돼 있다. 지방의 권한과 역할이 법이나 정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해마다 예산철만 되면 지방정부가 중앙부처를 찾아가 예산을 요청하는 관행도, ‘지방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재원’이 제도적으로 확실히 보장돼 있지 않다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전문가들은 분권형 개헌 논의의 핵심으로 ‘보충성의 원리’를 꼽는다. 지방정부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지방이 맡고, 지방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만 중앙정부가 필요한 범위에서 돕는다는 원칙이다. 다시 말해 주민과 가까운 곳에서 스스로 처리하고, 중앙은 최소한으로 보완하는 방식이다. 이런 원칙을 헌법에 명시한다면, 중앙 중심으로 법과 제도를 설계하는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하 교수는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법이 허용하는 만큼만 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로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자치입법·자치행정·자치조직·자치재정 등 이른바 ‘4대 자치권’을 헌법에 더 분명히 담는 방향으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