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고 건강한 소비 ‘로컬 푸드’가 뜬다

[심층리포트]지역 살리는 먹거리 운동, 범국가적 지원 ‘푸드 플랜’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신재은 기자 2025.06.04 09:55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기후변화와 식품안전 우려 속에 로컬푸드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로컬푸드 운동은 환경 보호와 지역 경제, 공동체 회복까지 아우른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접근성이 높아져야 로컬푸드가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로컬푸드의 성장 과정과 한계, 그리고 과제를 짚어본다.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에 위치한 로컬푸드 직매장/사진=홍세미 기자
“예전에는 대형 유통점에서만 장을 봤는데, 요즘은 가까운 로컬푸드 직매장을 주로 이용합니다. 생산한 지 하루도 안 된 채소를 저렴하게 살 수 있어서 정말 만족스럽죠.”

5월 25일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의 로컬푸드 직매장 앞에서 만난 이모씨(49)는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직매장의 단골이다. 그의 장바구니에는 덕양구에서 갓 수확한 상추와 깻잎, 토마토가 가득 담겨 있었다. 저렴한 가격은 물론, 아침에 수확한 농산물을 점심이나 저녁 식탁에 바로 올릴 수 있다는 점이 로컬푸드의 장점이다.

로컬푸드란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지역 농산물로 보통 반경 50㎞ 이내에서 생산돼 당일 수확·판매하는 신선 농산물을 지칭한다.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현상이 ‘로컬푸드 운동’이다.

로컬푸드의 장점은 다양하다. 먹거리가 생산지로부터 소비자까지 이동되는 단계를 줄이면 신선도가 유지될 뿐 아니라 가격 면에서도 저렴해진다. 농가는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고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로컬푸드를 통해 영양이 풍부하고 신선한 제품을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 처음 확산된 로컬푸드 운동은 환경 보호를 위한 취지에서 출발했다.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식재료의 운송 거리를 최소화하자는 취지였다. 대형 유통망을 통한 농산물의 장거리 이동이 불러온 환경 훼손과 식품 안전 문제, 그리고 농촌 공동화 현상에 대한 우려가 계기가 됐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먹거리를 소비하자’는 실천적 움직임으로 이어지며 점차 일상 속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대부터 지역 순환형 먹거리 ‘생산-소비’ 시스템 정책이 마련되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지역푸드플랜수립’을 통해 농산물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효율화하기 위해 ‘지역 농산물 사용 활성화 정책 사업’을 실시했다.

이에 대한 일환으로 2013년부터 ‘소비자 참여형 직거래 활성화 사업’이 진행됐다. 로컬푸드 직매장을 늘리고 직거래 장터를 활성화시키는 게 골자였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를 통해 농산물직거래 운영주체에게 생산자 조직화 교육, 공동작업장 시설, 로컬푸드 직매장 설치를 지원했다.

2015년에는 정책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지역 경제발전과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및 농가 소득증대와 소비자 이익 보호를 위해 ‘지역 농산물 이용 촉진 등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하 농산물직거래법)’이 제정됐다. 이 법을 토대로 로컬푸드에 대한 교육과 직매장 지원 등을 진행할 수 있었다.

2019년에는 로컬푸드에 대한 인지도 확산을 위해 정부가 ‘로컬푸드 3개년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3개년 추진계획’은 당시 로컬푸드 국민 인지도를 2019년 49.4%에서 2022년 70%까지 높이고, 유통 비중도 2018년 4.2%에서 2022년 15%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추진됐다. 아울러 정책에 지역별 먹거리 여건·환경을 반영하고 국민 인지도 제고, 지역 먹거리 여건과 중소 가족농 및 소비자를 고려한 로컬푸드 활성화를 추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우리가 재배한 농작물, 우리가 먹는다”…직매장 인기
▲대전 서구에 문을 연 ‘청양먹거리직매장 탄방점’/사진=뉴시스

로컬푸드는 대부분 로컬푸드 직매장과 학교급식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로컬푸드 직매장은 운영주체별로 △지방자치단체운영형 △지역농협운영형 △생산자단체운영형 등으로 나뉜다. 지방자치단체운영형은 직접 직영하거나 재단법인 또는 생산자단체 등 민간에 위탁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지역농협의 경우 하나로마트의 공간 일부에 로컬푸드 매대를 설치하는 숍인숍(shopinshop) 형태로 운영되기도 한다.

로컬푸드 직매장은 해마다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3년 32곳에 불과했던 로컬푸드 직매장은 2021년 기준 554곳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134곳은 국비 지원을 받고 있다.

농어민에게는 안정적인 판로가, 소비자에게는 신선한 먹거리가 제공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자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로컬푸드 직매장 총매출은 7143억원에 달했다. 직매장 1곳당 평균적으로 12억9000만원의 매출을 올린 것이다.

정부 지원 직매장 참여농가는 2017년 1만8000개에서 2020년 3만6000개로 증가했다. 하루 평균 방문객 수는 2017년 4만5517명에서 2020년에는 8만5395명으로 크게 늘었다.

로컬푸드 활성화가 지역 일자리 창출까지 이끈다는 조사도 있다. 2020년 기준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일하는 중소농은 1만4980명이었다. 특히 고령농 참가자가 2019년 6887명에서 8240명으로 증가해 노인 일자리 문제도 일부 해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매장 외에도 로컬푸드는 학교급식을 통해서도 공급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학교급식에 양질의 식재료를 공급, 급식 품질을 개선하려는 정책과 사업이 지자체별로 추진됐다. 각 지자체는 학교급식에 우수 식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학교급식지원센터를 마련하고 이를 식재료 공급의 거점으로 활용했다.

일부 지자체들은 공공급식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공급식 식재료 공급에 대한 다양한 정책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나주, 전주, 완주 등 혁신도시 내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로컬푸드 공급을 확대했고 정부세종청사 같은 정부기관과 군부대, 급식에도 로컬푸드 비중을 늘려나갔다.

◇소비자 접근성, 관리 체계 부실…내실화 필요하다는 지적도
▲지난해 7월 11일 이마트 청주점 푸드코너에 로컬푸드 직매장이 문을 열었다./사진제공=청주시

로컬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우선 소비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꼽힌다. 대부분의 로컬푸드 직매장은 도심이 아닌 외곽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경기연구원이 2022년 30대 이상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로컬푸드 직매장 이용 경험이 없는 도민 가운데 64.8%는 ‘주변에 직매장이 없어서 이용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용 경험이 있는 도민 가운데서도 52.4%는 ‘거리가 멀어서 이용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지자체는 대형마트, 지역농협과 협업해 로컬푸드 직매장을 대형마트에 입점시키고 있다. 충북 청주시는 시내 대형마트 2곳에 로컬푸드 직매장을 설치했다. 시 관계자는 “접근성을 높여 농업인과 소비자가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보다 쉽게 접할 수 있어야 로컬푸드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는 “일본의 경우 엄청난 매장을 갖추기보다는 길거리나 유명 관광 호텔 근처에서 부스 형태로 지역농산물을 판매하기도 한다”며 “기존 시설을 활용해 적은 비용으로 많은 소비자들이 로컬푸드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품목 부족도 로컬푸드 확장의 발목을 잡는다. 대도시의 경우 도시화가 많이 진행돼 농가 수가 적고 생산하는 농산물의 품목도 다양하지 않다. 소비자는 찾는 물건이 없어 로컬푸드 직매장을 찾지 않고 매출이 줄어 품목이 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에 대해 일부 지자체는 ‘광역화’를 대안으로 찾았다. 전주로컬푸드는 전북의 7개 지역과 농축수산물 교류 협약을 맺고 지역별 특산품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생산하는 가공식품까지 들여왔다. 농촌지역인 충남 청양군은 인근 대도시인 대전시에 로컬푸드 직매장을 개장해 운영하고 있다.

감시 체계 부재에 따른 비리 사례도 있다. 2021년 경기 양주시에서는 양주로컬푸드 운영자가 시도 사업비 지원을 받아 매장을 운영하면서 보조금을 허위로 청구해 2억9000만원을 가로채고 3000만원의 매장 보증금 등을 빼돌려 징역형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시 공무원과 시의원이 예산 심의 과정 및 사업자 선정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수사를 받기도 했다.

이 밖에도 2018년 세종시에서는 로컬푸드 사업 채용 비리 문제가 불거졌고, 2021년 부천시흥원예농협이 로컬푸드 직매장 건립 부지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매입한 것이 드러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일었다. 경기 포천시 로컬푸드 관련 공무원은 ‘로컬푸드 직매장 건립’ 지원사업 과정에서 농업회사법인 대표를 선정해주는 대가로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구속됐다. 로컬푸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로컬푸드 관련한 예산을 지원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며 “지자체와 관련 공무원의 행태를 감독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자리 잡은 ‘로컬푸드 운동’
▲서울 강동구 둔촌동 ‘하나로마트 둔촌포레본점’의 로컬푸드 코너/사진제공=농협유통

외국에서는 로컬푸드 문화가 생활 곳곳에 자리 잡았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로컬푸드 운동과 비슷한 ‘지산지소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1981년 지역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지산지소 운동은 외국산 농산물에 대응해 국산 안심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흐름으로 변화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적극적으로 지산지소 운동을 지원했고, 학교급식과 전문 외식업체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홋카이도나 가고시마현 등 농업지역의 경우 학교급식에 사용되는 농축수산물 중 지역의 것이 70%에 달한다. ‘학교급식법’에서도 ‘학교급식을 활용해 식(食)에 관한 지도를 할 때는 지역의 산물을 활용하는 등 창의적인 노력을 통해 지역의 식문화 및 산업, 자연의 소중함에 대한 이해를 높일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외식분야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농림수산성은 우량외식산업표창 부문에 ‘지역·국산 식재료 이용 추진 부문’을 만들어 농림수산대신상을 수여해왔다. 외식업체가 지역농산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유인책을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본 정부는 국산 농산물 소비확대와 자국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산지소 지원정책을 한층 강화하는 추세다.

로컬푸드 운동의 발원지인 미국과 이탈리아 등 서구권에서는 로컬푸드가 이미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와 전개 방식은 다르지만 대부분 지역 농부와의 거래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상생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의 농무부(USDA)는 2009년 ‘농부를 알고 먹거리를 알자(Know your Farmer Know your Food)’ 운동을 펼쳤고 이를 통해 직거래 장터인 농부마켓(Farmer’s Market)에서 도시민과 농부의 직거래가 활성화됐다. 이탈리아에서는 지역의 농산물로 영양가 높은 전통음식을 만들자는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이 널리 퍼졌다.

◇푸드플랜 수립해 장기적 관점 지원 필요
▲가평이음터에 설치된 로컬푸드 무인판매대/사진제공=가평군

우리나라에서도 로컬푸드가 뿌리 깊게 안착하려면 국가 차원의 푸드플랜 수립이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범정부 푸드플랜 안에 로컬푸드 활용 및 육성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법안도 발의됐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화성갑)은 지난 5월 8일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과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이른바 ‘국가 푸드플랜 패키지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송 의원은 “국가 차원의 범정부 푸드플랜 수정과 예산 지원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는 문제 의식에서 ‘국가 푸드플랜 패키지 법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밝혔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개정안에는 △안정적인 먹거리 공급 △식생활 교육 △먹거리 안전성 확보 △먹거리 접근성 확대 △친환경농업 육성 △지역 내 생산·유통·소비·폐기·순환 체계 확립에 이르기까지 7개 분야에 걸친 계획 수립 의무화 내용이 담겼다.

송 의원실에 따르면 110여 개 지자체의 지역 푸드플랜 수립은 로컬푸드 직매장 건립과 학교급식 지원 확대 등으로 이어졌다. 이는 농산물 운송거리 단축과 지역 농산물 판로 보장 등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정부 부처의 협력과 지원 없이 지자체의 의지나 역량만으로는 이 같은 푸드플랜이 한계가 뒤따른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송 의원은 “국가 푸드플랜 패키지 법안은 단순한 법 개정이 아니라 지역 농가의 안정적인 판로 확보와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 보장을 아우르는 정책 패키지”라며 “먹거리 전략 수립과 공공급식 연계를 함께 제도화함으로써 국산 농산물의 선순환 소비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민관 거버넌스 등 긴밀한 네트워크 조성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문제열 특임교수는 “우리나라는 앞으로 생산유통(판매) 위주의 로컬푸드 지원정책에서 벗어나 소비자 단체, 지자체 등이 네트워크를 조성해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푸드플랜을 수립해 안정적인 생산,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통합 관리하는 선순환 전략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jenny091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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