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과 귀향, 두 가지 꿈 이뤄준 ‘충주시 청년몰’

[청년, 지역을 택하다]입주 청년들이 직접 운영하는 공동체…지역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다

머니투데이 더리더 충주(충북)=최현승 기자 2025.06.09 10:34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청년 인구 유출은 지역 소멸을 가속화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많은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향하지만, 지역에서 미래를 설계하고자 하는 청년도 적지 않다. 이들이 지역에 정착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지자체의 청년 정책이다. 머니투데이 <더리더>는 ‘청년, 지역을 택하다’ 코너를 통해 지역을 선택한 청년들의 이야기와 이들을 지원하는 지자체 정책을 함께 조명한다.
▲충북 충주시 성내동에 위치한 충주시 청년몰의 모습/사진=최현승 기자
관아가 있어서 관아골로도 불리는 충청북도 충주시의 성내동. 조선시대에는 충청 감영이, 1970~80년대엔 법원, 검찰청, 한일은행 등 주요 관공서가 모여 있던 중심지였다. 그러나 관공서가 떠나고, 다른 도시들처럼 신도심으로 상권이 이동하자 상가에는 공실이 속출했다. 뒷골목을 걸으면 둘 중 하나는 빈집일 정도로 쇠퇴했다.

허름해진 이 골목에 청년들이 모여들면서 상황이 변해갔다. 청년들이 방치된 빈 상가를 고쳐 창업을 하면서 충주의 명소가 됐다. 시는 2017년부터 전형적인 원도심 상업지역의 형태를 보였던 성내동 관아골 일원에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 ‘충주시 청년몰’이다.

충주시 청년몰은 2017년 8월 △창업 희망 청년의 초기 안착 지원 △청년 일자리 창출 △초기 창업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목적으로 개소했다. 16개소로 시작한 청년몰은 2019년에 6개소가 추가로 조성되며 총 2개 동, 22개 점포가 운영 중이다. 입점 청년들은 최초 3년, 이후 최대 5년까지 연장 가능한데, 지난해 12월에 8년을 모두 채운 1기 졸업생들이 나왔다.

충주 출신의 심규민 툰즈 대표(34)도 1기 졸업생 중 한 명이다. 지금은 청년몰을 나와 시내에 사무실을 낼 만큼 자리 잡은 그도 “대학시절에는 다른 친구들처럼 더 많은 기회와 인프라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려 했다”며 “우연히 청년몰 모집 공고를 보고 고향에서 창업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지금 청년몰을 떠났지만, 이곳에서 맺은 관계를 기반으로 청년 창업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공동체가 만든 지속가능성
▲충주시 청년몰 자치 운영위원회의 회의 모습. 입점 대표들이 스스로 대표와 운영진을 선출하고 규칙과 운영 방안을 결정한다, /사진제공=충주시 청년몰
충주시 청년몰은 시 소유 건물에 입점 기회를 제공해 저렴한 임대료로 창업 초기 부담을 낮췄다. 최대 8년이라는 사용 기간 덕에 장기적인 사업 계획도 가능했다. 무엇보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공동체’를 강조하는 운영 방식이다. 

입점자는 관아골 상인회에 자동 가입되며 공동 마케팅과 행사 참여 등 협업 활동에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 문화는 청년몰 입점자들이 스스로 만들고 지키는 규칙이다.

심 대표는 “단순히 점포를 빌리는 게 아니라, 입주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조율하며 만들어가는 구조였다”며 “사업 초보인 입주자들끼리 같이 버티고, 성장했던 관계 덕에 청년몰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청년몰의 자율 운영을 보장하고 있다. 현재 청년몰 회장을 맡고 있는 고영애 토리공예 대표(40)는 “회장부터 사무국장, 총무까지 모두 1년에 한 번 투표로 선출하며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꿈이었던 청년 창업과 귀향을 도운 청년몰
▲청년몰 가동 105호에 입점한 캘리그래피 공방 ‘별하나 달하나’의 김수연 대표/사진=최현승 기자
청년몰 가동 105호에 입점한 캘리그래피 공방 ‘별하나 달하나’의 김수연 대표(27)는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지만 취미로 하던 캘리그래피를 업으로 삼아 2023년 입점했다. 김 대표도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대학 졸업을 앞두고 다른 지역으로 취업을 고려했다. 

때마침 코로나19로 취업길이 막히자, 막연하게 꿈꾸고 있던 창업에 도전한 것이다. 그는 “청년몰을 만나 창업이라는 꿈이 앞당겨졌다”며 “청년몰이 아니었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충주를 떠났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몰 나동 107호 ‘카페 이서’를 운영하는 류경현 대표(36)는 고향인 충주를 떠나 수도권에서 일하다 청년몰을 통해 다시 돌아왔다. 저렴한 임대료가 입점의 계기가 됐지만, 류 대표는 그보다 더 큰 장점으로는 입점자 간의 소통을 꼽았다.

류 대표는 “청년몰 입점자들은 상인회에 자동 가입된다”며 “그 덕분에 정부 지원 사업이나 플리마켓 행사 같은 유용한 정보를 입점자들끼리 공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입점자 간의 활발한 정보 교류와 협업이 창업 초기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스스로 선택한 고향, ‘충주’…청년몰을 통해 ‘삶의 터전’으로
▲청년몰 가동 104호에 입점한 수집책방의 이수빈 대표. 개업 이틀째를 맞은 자신만의 첫 매장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최현승 기자
지난 5월 20일, 청년몰에 새롭게 문을 연 독립서점 ‘수집책방’의 이수빈 대표(23)는 충주 출신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이사를 자주 다녀 ‘고향’이라 부를 만한 곳이 없던 그는 대학교 진학을 계기로 충주와 인연을 맺었고 결국 이곳을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선택했다.

이 대표는 대학교 3학년 때 남들처럼 수도권 취업을 고민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아 창업을 결심했다. 졸업을 앞두고 청년몰의 입점 공고를 접한 그는 “제 취향과 정체성을 담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며 “청년몰이라는 틀 안에서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입점을 준비하던 시기엔 낯설고 어색했지만, 선배 입점자들이 먼저 다가와 도움을 줬다. 이 대표 역시 개업 인사로 약과를 돌리며 동료들과 인사를 나눴다. 지역 커뮤니티와 행사에 적극 참여하며 ‘충주 사람’이라는 정체성도 점차 확고해졌다.

이 대표는 지역에서 창업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혼자 고민하고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해당 지역의 커뮤니티 안에 먼저 들어가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도시재생사업과 청년이 함께 만든 관아골의 세대교체
▲ 충주시 청년몰 입점 상인 졸업식이 지난해 12월 18일 관아골 문화창업재생허브센터에서 열렸다./사진제공=충주시
노후 상권에 청년몰이 자리를 잡자 점차 인근에도 공방, 카페, 소품숍 등이 생겼다. 쇠락한 구도심 이미지가 강하던 이 지역은 이제 지역 축제마다 청년몰 출신 대표들이 참여하는 플리마켓이 열리고, 상인회 역시 청년몰 출신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청년몰의 운영 안정성은 단지 건물 임대 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지역 내에서 자생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경험을 나누고 협업하며 ‘연결된 생태계’를 만들어 온 결과다.

다른 지역 청년몰 대표들과 교류해온 심 대표는 “가치 중심으로 행동하는 청년이 공동체 안에 20%만 있어도 그 조직은 오래간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공동 마케팅을 기획하고, 플리마켓을 확장하며 외부 축제에도 참여한다. 시도 청년몰 출신 셀러들을 시 축제에 우선 참여할 수 있도록 연계한다.

◇청년들이 만들어가는 ‘친화 도시’ 꿈꾼다
지난 2월, 충주시는 2040년까지 현재 약 20만7000명의 인구를 27만 명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를 위해서는 최근 심화되고 있는 청년 인구 유출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시는 ‘청년 친화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총 64억원 규모의 청년 정책 예산을 집행 중이다. 단순한 취업 지원을 넘어 주거, 복지, 문화, 창업 등 청년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29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시 관계자는 “’청년 소상공인 창업 지원사업’은 최대 1000만원의 창업 자금과 월 30만원의 임차료를 지원해 초기 부담을 덜고 지역 정착을 돕는 직접적인 정책”이라며 “이 외에도 면접비, 자격증 취득비, 정장 대여 등 실질적인 취업 지원은 물론, 청년 신혼부부 주거 대출이자 지원, 월세 보조, 주거급여 분리지급 등 정주 인프라도 촘촘히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하반기 개소 예정인 ‘청년센터’를 통해 청년이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정책 기획과 실행에 참여하는 주체로 자리 잡을 것을 기대한다”며 “이러한 청년 정책을 통해 단순한 청년 유출 방지에서 나아가, 청년이 자발적으로 ‘찾아오고 싶은 도시’가 되도록 유도하는 데 목표를 두고 청년 정착 기반을 다져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s175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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