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 소멸의 시계를 멈추고자 정부가 2022년부터 시작한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이 올해 시행 4년 차를 맞는다. 정부는 인구감소 지역과 관심지역에 2031년까지 매년 1조원씩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역활성화 사업을 지자체 주도로 추진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매년 사업 현황을 분석하며 사업개선 방향성을 조정하고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재앙’ 수준의 인구감소 상황에서 등장했다. 젊은 층은 수도권, 중장년층은 비수도권으로 향하는 흐름이 심화하면서 지방은 인구 유출과 고령화라는 이중고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2024년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인구격차는 매년 급증해오다 지난해 87만7825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광역시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17개 광역시도 중 전남, 경북, 강원, 전북 등에서 소멸 위험이 두드러진다. 부산광역시는 지난해 3월 광역시 중 유일하게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15개 구·군 중 11개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중장기 사업을 추진했다. 총 89곳의 기초 지방자치단체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하고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급했다. 인구감소지역은 지역의 인구소멸위험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진행되는데, △연평균 인구 증감률 △인구 밀도 △고령화 비율 등 8개 지표를 고려한다.
광역지자체 중 인구감소지역이 가장 많은 지역은 전남(16곳)이다. 이어 △경북(15곳) △강원(12개곳) △경남(11곳) △전북(10곳) △충남(9곳)이 뒤를 이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서울, 세종을 제외한 15개 광역자치단체가 대상인 광역지원계정과 기초지원계정(인구감소지역 89곳, 관심지역 18곳)으로 구분된다. 정부는 매년 1조원의 기금을 광역지원계정에 2500억원, 기초지원계정에 7500억원으로 나눠 배정한다. 기초지원계정 중 인구감소지역 89곳에 7125억원을, 관심지역 18곳에 375억원을 지급한다.
기초지원계정은 기초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세운 투자계획과 실행 성과에 따라 배분액을 산정해 차등 지원한다. 기금관리조합은 서면검토, 현장방문, 대면발표 등 총 3단계 평가를 통해 우수지역을 선정하고 있다. 심사 결과에 따라 인구감소지역에는 △2023년 최대 120억원 △2024년 최대 144억원을 지급했고, 관심지역은 △2023년 최대 30억원 △2024년 최대 36억원을 지원했다. 광역지원계정은 인구감소지수, 재정·인구 여건 등을 고려해 분배한다.
올해부터는 배분체계를 개선해 안정적 사업 추진이 가능케 할 방침이다. 기존 4단계 배분체계(S·A·B·C등급)를 2단계 배분체계(우수·양호)로 개편하는데, 최저 등급의 경우 64억원(C단계)에서 72억원(양호)으로 늘렸다.
우수 지자체에는 기금을 추가 지원해 지역 특성에 맞는 중점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했다. 72억원을 배정받는 인구감소지역 중 우수지역 8곳은 88억원을 추가로 받는다. 18억원을 받는 관심지역 중 우수지역 2곳엔 22억원을 추가 배분한다.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인구감소지역은 총 160억원, 관심지역은 총 40억원을 배분받게 된다.
기금의 사업 지원 범위도 넓힌다. 기반 시설 조성을 포함해 지역에 활력을 주는 프로그램 전반으로 확대한다. 기존에는 기금을 통해 조성한 기반시설을 사용하는 경우에만 프로그램 사업이 가능했다. 올해부터 각 지자체는 교육지원프로그램, 청년정착 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 사업에도 기금을 활용할 수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배분체계가 개선됨에 따라 지자체는 일정 규모의 재원을 연속적으로 확보해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다년도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4년 연속 최다 기금 확보한 전남도, 정주 여건 개선 사업으로 호응

사업 시행 이후 지방소멸대응기금을 가장 많이 확보한 지자체는 전남도다. 도는 총 6312억원(광역 1490억·기초 4822억)을 확보해 4년 연속 전국 최다 기금 확보라는 성과를 거뒀다. 전남은 22개 시군 가운데 16개 군이 인구감소지역일 만큼 지방 소멸 문제가 심각하다. 도는 이 기금을 활용해 전남형 만원주택(1000호), 공공산후조리원(4개소) 등 저출생 위기 극복 및 청년 정주 여건 마련에 집중 투자했고, 앞으로도 이 분야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전남 고흥군과 신안군은 올해 최고 등급인 우수지역으로 선정돼 최대 금액인 160억원을 배정받는다. 특히 신안군은 2022년부터 2025년까지 4년 동안 기금 총 450억원을 배분받아 인구감소지역 중 가장 많은 기금 재원을 확보했다.
고흥군은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거점으로 각종 국비 보조사업과 연계한 스마트팜단지(시설원예·축산 및 수산)를 구축해 청년 농어업인을 육성하고 창업형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스마트원예단지 △스마트축산ICT(정보통신기술) 단지 △스마트수산양식단지 조성에 나선다.
신안군은 ‘1도(島) 1뮤지엄(museum)’ 만들기 사업으로 팔금도에 책을 활용한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해 정주 여건을 개선하고 생활인구 유입을 추진한다. 구체적으로는 △거점 커뮤니티 센터 △셰프 빌리지(천일염 테마) △창작스튜디오 △북스테이하우스 등 체류 인구 지원 시설 및 주민 커뮤니티 지원 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경남 하동군은 공공의료 거점인 ‘별천지 하동 행복의료원’을 조성해 인구유출의 원인을 해소한다. 의료원을 종합병원급 의료서비스 공간으로 구축하고 건강행복학교를 통해 건강 코디네이터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북 청도군은 청년 인구를 늘려 인구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빈집을 활용해 숙박·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청년·신혼부부 등을 위한 ‘지역활력타운’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 올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 우수지역으로 선정된 인구감소지역은 △강원 횡성 △충북 단양 △충남 보령 △전북 남원 등 8곳이다. 우수 관심지역은 경기 포천, 경북 김천 등 2곳으로 확정됐다.
지방 소멸 해결책=관광 지원? 정주 여건 개선에 쓰여야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사업 분야를 분석한 결과 정주 여건 개선보다는 문화관광 사업에 편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3 회계연도 결산 위원회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과 2023년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의 분야별 현황의 경우 총 8개 분야 1065개 사업 가운데 문화·관광 269개(25.3%), 산업·일자리 262개(24.6%), 주거 231개(21.7%) 등 3개 분야가 전체의 71.6%를 차지했다. 대부분 생활인구 확대를 위한 워케이션, 테마파크 조성 등의 문화·관광사업, 청년층 대상 일자리 사업 등이다.
반면 정주 여건 개선에 중요한 교육, 노인·의료, 보육, 교통 분야의 사업은 전체의 23.7% (252개)에 불과했다. 특히 교통분야 사업은 2023년 기초지원계정 기준 총 434건의 사업 중 10건(2.3%)뿐이었으며 평가등급이 낮아 사업비도 적었다. 교통분야로 분류된 사업 중 일부는 사실상 관광 사업을 위한 도보길 조성사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이 정주 여건 개선을 통해 인구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조언과는 상반된다.
‘안 쓰나, 못 쓰나’…집행률 낮은 지역소멸대응기금

지방 소멸 문제를 푸는 ‘열쇠’로 지방소멸대응기금이 지급되고 있지만 지자체의 기금 집행률은 저조하다. ‘돈을 줘도 쓰지 않는’ 지자체가 많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11월 발행한 ‘인구감소지역 지원사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인구감소지역·관심지역 기초자치단체의 평균 기금 집행률은 각각 18.1%·25.6%에 그쳤다. 2023년에는 인구감소지역 19.3%, 관심지역 22.2% 집행률을 기록했다. 집행률이 0% 수준인 사업도 22년을 기준으로 38개, 23년을 기준으로 132개에 달했다.
집행률 범위를 넓히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용인갑)이 행안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말 기준 집행률이 10% 이내인 인구감소지역·관심지역 기초자치단체는 전체 90곳 중 47곳에 이른다. 관심 지역 중에는 전체 18곳 중 7곳(△부산 1 △광주 1 △대전 3 △강원 1 △경남 1)이 전혀 집행하지 않았고, 10% 이내도 8곳이었다. 정부는 기금 집행률이 저조할 경우 집행률 제고를 위해 기금의 일부 또는 전액 삭감 입장을 밝힌 상태다.
집행 실적이 저조한 대표적인 이유는 ‘시설사업비’에 기금 사용 분야가 치우쳤기 때문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시설 건립을 하려면 건축 계획 용역, 설계 등의 시간이 필요해 빠른 시일 내 예산을 집행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방의회의 승인이 늦어지거나 사업을 위탁받은 업체가 포기하는 등의 사례도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64억원의 기금이 배정된 ‘연천군 탄소중립 스마트팜 단지 조성’ 사업은 민간 업체가 사업성을 이유로 포기하면서 경기 연천군도 사업 추진을 중단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집행률이 낮다는 사실만으로 사업의 진척도가 낮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면서도 “지난해 6월 기준 1조4000억원에 이르는 기금 미집행액의 운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고 했다.
“단기적 성과 위주의 시스템 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지방소멸대응기금이 실효성 있게 쓰이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발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관영 전북자치도지사는 지난해 12월 17일 제60차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기금 활용 범위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방소멸대응기금 실효성 강화를 위해 운영비 지원 등 기금 활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시도협 차원에서 함께 건의해나가자”고 요청했다.
최호택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지속가능한 성과를 내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기적 성과에만 매몰되지 말고 지속가능성을 봐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이 건물이나 시설 조성에 쓰이는데 이것이 인구가 모이는 요인이 될 순 없다. 사람은 없는데 건물만 생기면 관리 비용만 더 추가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공동체,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효과가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집행률이 낮다는 사실만으로 사업의 진척도가 낮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면서도 “지난해 6월 기준 1조4000억원에 이르는 기금 미집행액의 운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요구된다”고 했다.
“단기적 성과 위주의 시스템 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지방소멸대응기금이 실효성 있게 쓰이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발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관영 전북자치도지사는 지난해 12월 17일 제60차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총회에서 기금 활용 범위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방소멸대응기금 실효성 강화를 위해 운영비 지원 등 기금 활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시도협 차원에서 함께 건의해나가자”고 요청했다.
최호택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지속가능한 성과를 내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기적 성과에만 매몰되지 말고 지속가능성을 봐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이 건물이나 시설 조성에 쓰이는데 이것이 인구가 모이는 요인이 될 순 없다. 사람은 없는데 건물만 생기면 관리 비용만 더 추가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공동체,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효과가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