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빈집에 청년 모이니 동네가 북적북적…관아골에 가다

[심층리포트 - ②]청년들로 채운 빈집 프로젝트 ‘관아골’, 도시재생 모범사례

충주(충북)=머니투데이 더리더 신재은 기자 2024.04.03 10:1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편집자주]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 사소한 것들을 방치하면 더 큰 범죄나 사회문제로 이어진다는 사회범죄심리학 이론이다. 깨진 유리창이 늘수록 주변이 황폐해지고 인구공동화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역의 방치된 빈집도 마찬가지다. 빈집이 관리되지 않으면 건물 붕괴 등 안전 사고는 물론, 범죄의 온상이 돼 주민 안전을 위협한다. 이는 지역의 인구 유출을 과속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인구감소의 결과인 빈집이 인구 유출을 유발하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빈집문제 해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빈집 철거를 위해 지방세법을 개정하거나, 매매하면 세금을 줄여주는 세컨드 홈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빈집을 정비해 임대주택이나 호텔 등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 전문가들은 복수주소제를 도입하는 것을 대안 중 하나로 제시한다.

▲충북 충주의 관아골 골목/사진=신재은 기자

"이 골목은 쓸쓸하고 죽어 있던 골목이었지. 근데 카페가 생기고 공방, 작업실 같은 곳이 문을 열면서 동네에 활기가 돌고 있어."

충북 충주시 ‘관아골’에서 80여 년 가까이 살아온 한 주민의 얘기다. 관아골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이 주민은 청년들이 빈집을 개조해 창업하면서 골목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골목 관아골.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이 길에는 소담하고 아름다운 구옥들이 자리해있다. 인형공방, 카페, 어린이미술교육센터 등이다. 살랑이는 바람에 딸랑이는 풍경소리, 예쁜 벽화가 있는 이 길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비행청소년들의 아지트였다.

관아골은 오랫동안 충주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관아가 있던 마을이었고, 1970~80년대에 법원, 검찰청, 한일은행 등이 모여 있던 이른바 ‘시내’였다. 하지만 주요 관공서와 상권들이 떠나면서 동네에 활기는 사라졌다. 골목에 빈집이 늘고 밤에는 주민들도 다니기 어려운 길이 됐다.



빈집을 개조해 콘텐츠를 채운다


▲리모델링 중인 세상상회/사진제공=성내·성서동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리모델링을 완료한 세상상회/사진=신재은 기자

이 골목에 청년들이 모였다. 2017년 충주시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청년가게 조성사업’에 참여한 이들이다. 도시재생 사업을 함께한 박진영 성내·성서동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지역활성화 방안을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빈집에 눈이 갔다고 말했다. 그는 “관아골에 사람이 오지 않는 이유를 고민해보니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비어 있는 집을 매입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재밌는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이들은 ‘청년가게 조성사업’의 지원금인 리모델링비 1000만원에 대출금을 더해 빈집을 매입하고 리모델링했다. 그 공간에 각자 마음속에 품었던 꿈을 그려냈다. 그렇게 관아골의 첫 가게인 인형공방 ‘제이플래닛’이 생겼다. 십수 년간 방치돼 폐허가 된 집을 매입해 젊은 감성에 맞춰 꾸몄다.

관아골 골목에는 연이어 카페와 어린이미술교육센터, 커뮤니티 공간, 독채스테이(숙박) 등이 자리 잡았다. 박 사무국장은 “관아골이 가진 무섭고 어두운 이미지 때문에 밤에는 가게 불을 켜놓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골목 초입에 위치한 카페 ‘세상상회’는 이 골목에 두 번째로 생긴 가게다. 이세창 세상상회 대표는 13년간 비어 있던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카페와 굿즈숍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역활성화 컨설턴트로 활동하던 그는 도시재생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관아골의 가치를 알아봤다.

이 대표는 구옥(세상상회)을 보자마자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근처 인형공방 대표가 우연히 집주인을 만나 연락처를 알려줬고, 이 대표는 7천만원에 구옥을 구매했다. 리모델링 후 2018년 세상상회를 열었다.

평일임에도 카페 안에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세상상회를 찾은 A씨는 “근처에 예쁜 카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며 “기존 집이었을 때의 화장실 타일을 그대로 두는 것처럼 구옥의 모습을 유지하는 인테리어가 신선하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의 눈길도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바뀌었다. ‘망하려고 그 골목에 가게를 내냐’며 걱정하던 주민들은 따뜻한 관심을 보여준다. 박 사무국장은 “골목에서 연 플리마켓에도 주민분들이 응원해주시고 찾아주셨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기준 관아골을 찾은 평균 방문자수가 3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보다 1000여 명 증가한 수치다.

사람이 모이자 집값과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권리금은 꿈도 꾸지 못할 지역에서 권리금을 포함해 거래되기도 했다. 빈집 가격에 대해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의 간극이 커졌다. 쓰레기와 벌레 등으로 민원이 들어와 충주시가 빈집을 매입하겠다고 했지만 그대로 방치하는 집주인도 있었다. 쓰러져가는 빈집 앞에는 개만 묶여 있었다.
▲빈집을 개조해 만든 숙소(왼)와 대조되는 빈집의 모습(우)/사진=신재은 기자




빈집의 새활용…도시를 바꾼다


▲오래된 염소탕 가게. 충주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바뀔 예정이다./사진=신재은 기자

70~80m 남짓한 관아골 골목에서 시작된 변화의 바람이 인근 골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바로 ‘여인숙 골목’이다. 박 사무국장과 함께 활동한 유순상 로컬종합상가 대표가 10년 넘게 방치됐던 여인숙을 매입해 청년들의 작업공간으로 꾸몄다. 곰팡이와 쓰레기가 가득한 노숙자들의 공간이 꿈을 향해 도전하고 시도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 옆 또 다른 여인숙은 카페와 숙박업으로 변신했다. 관아골에서 만난 지역 주민 B씨는 “밖에서 보기엔 여전히 우리 동네가 조용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직접 와보면 동네가 바뀌고 있다”며 “사람들이 찾아와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됐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서서히 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아골의 변화는 계속된다. 박 사무국장은 “얼마 전 관아골 골목의 빈집과 염소탕 가게를 매입했다”며 “이곳을 숙박시설로 꾸며 지역의 골목투어 프로그램과 연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골목투어는 관아골 원도심 내 빈집을 정비해 만든 카페, 인형·갤러리공방 등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관아골이 숙박과 투어가 가능한 관광지가 되는 것이다.

두 달 전 관아골의 한 카페를 인수해 운영 중인 중년의 사장님은 관아골의 영향력에 대해 말했다. 그는 “청년들이 빈집을 매입하고 그곳에서 여러 시도를 해보는 사례가 옆 동네, 인근 지역으로 퍼지면 그게 도시재생인 것 같다”며 “앞으로도 이런 사례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jenny0912@mt.co.kr

정치/사회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