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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운동권·언론계·시민사회 몸담고 문민정부 때 발탁 1960년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난 박 시장은 7살 때 상경했다. 서울 숭덕초등학교와 동국대사범대부속중학교,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고려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1980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최루탄에 오른쪽 눈을 다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다가 다시 모교로 돌아가 석사와 박사 학위를 수료했다. 1991년에는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임명됐고, 경제정의실천연합 부산본부에서 기획위원장을 맡았다.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건 1990년 민중당 창당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박 시장은 이우재·이재오 전 의원 등과 함께 노동정당을 표방한 민중당을 창당했다. 한나라당에서 활약하게 될 이른바 ‘친이계(친이명박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정당이다. 민중당은 1992년 치러진 14대 총선서 한 석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박 시장은 1994년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자문위원으로 발탁되며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박 시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표한 ‘세계화 구상과 전략’의 최종 집필자를 맡으며 활약했다.
#장면 2 17대 총선서 첫 배지…‘MB맨’으로 입지 다져 문민정부 이후 박 시장은 동아대학교로 돌아가 교수로 지냈다. 2004년 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첫 선거에 도전, 한나라당 후보로 부산 수영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원내에 입성한 이후 혁신위원회 위원과 홍준표, 원희룡, 남경필 등이 속한 수요모임 대표 등을 맡으며 당내 ‘쇄신파’로 활동했다.
2006년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당으로 복귀하면서 대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2007년 박 시장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캠프’에 합류하며 친이계로 분류됐다.
박 시장은 이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중도보수·실용주의로 견인하는 데 기여했다. 이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지만 2008년 18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후 2008년 6월 대통령 비서실 홍보기획관에 임명되면서 청와대에 입성했다. 2009년 9월 정무수석으로 임명되면서 친이계 핵심 인물로 여겨졌다.
#장면 3 ‘공천학살’ 당하기도…부산시장 당선되며 부활 박 시장은 MB정부에서 청와대 사회특별보좌관까지 역임하다가 2012년 19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퇴임했다. 과거 자신의 지역구였던 부산 수영을에 출마를 계획했지만 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임명돼 친박계가 당을 장악하고 있었던 상황. 친이계 대표주자였던 박 시장은 이른바 ‘공천학살’을 당했고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당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후 복당하지 않고 야인생활을 하다 2014년부터 2년 동안 국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2017년에는 JTBC <썰전>에서 하차한 전원책 변호사의 후임으로 출연했다. <썰전> 종영까지 보수 진영의 논객으로 활동하다 이후에는 동아대학교 교수로 일하며 야인생활을 지속했다. 박 시장은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자유한국당과 새보수당으로 갈라진 보수진영을 봉합하기 위해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자유한국당과 새보수당은 미래통합당으로 합당했고 박 시장은 당시 통합당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