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에 낀 ‘읽을 권리 vs 보상 권리’

‘공공대출 보상권’ 도입 놓고 칼끝 대립, 상생 이끌 합의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이하정 기자 2022.05.03 09:3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책 읽는 서울광장’/사진=뉴시스

# “음원도 저작권료가 있잖아요. 책도 이용하면 저자에게 저작권료가 갈 수 있도록 하는 건 맞는 거 같아요.” “법안으로 영세 출판업자들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찬성합니다.”

# “출판사의 어려움은 도서관 무상대출의 영향이 아니라 영상매체로 주요 콘텐츠가 넘어가면서 생긴 현상이 아닌가요. 오히려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책을 도서관이 구입하고 진열하면서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도 결코 작은 힘이 아닙니다. 대출 이후 구매로 이어지는 홍보 효과도 커요.” “결국 공공도서관 이용자에게 부담이 올 수 있고, 차후에는 도서관이 새로 생기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죠.”

지난달 중순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상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공공대출보상권(Public Lending Right)’을 담은 ‘저작권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되면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 위원회 국정감사/사진=뉴시스
◇ ‘공공대출보상권’ 담은 첫 법안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존 저작권법에 공공대출보상금 지급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에 따라 저작권 이용자는 저작재산권자로부터 이용 허락을 받거나 정당한 보상을 하고 있지만, 공공도서관 소장 도서 등은 일반인에게 무료로 대출 또는 열람됨에 따라 저작자와 출판계가 도서 판매의 기회를 잃어 불가피하게 재산적 손실을 보고 있다”는 게 제안 이유다. “이에 도서관 등이 도서 등을 공중에 무료로 대출하는 경우 대출보상금을 해당 저작재산권자에게 지급하도록 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공공대출보상금의 지급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도서관 등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공공대출보상금의 산정 기준이나 대상 자료의 범위, 보상 대상자는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국내에서 공공대출보상제를 법안에 담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도서 공공대출 서비스 등에 대한 출판업계 지원보상책인 ‘공공대출보상권’ 도입을 제안한 바 있다. 이후 지난 1월 28일 공공대출보상제도 도입을 위한 입법토론회를 열어 각 이해관계자 측의 입장을 듣고, 지난달 1일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4일 소관위원회로 회부됐고, 7일부터 16일까지 국회 입법예고 기간을 거쳤다. 입법예고 기간 의견 제출 게시판에는 의견 14491건이 올라왔다. 상당수가 반대 의견이었다. 피해는 결국 공공도서관 이용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 덴마크 첫 도입 후 34개국 시행 중
‘공공대출’은 ‘직접적인 영리 이외의 목적으로 일정 기간 이용을 위한 제공’을 의미하며 ‘영리 목적의 제공’인 ‘대여’와 구분된다. 따라서 ‘공공대출보상권’은 공공도서관 등이 소장하는 도서 등을 공중에게 대출할 때 그 도서 등의 저작자와 출판자 등이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2019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공공대출보상제도는 1946년 덴마크가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1917년 작가인 디트 옌센(Thit Jensen)이 공공도서관의 도서 대출에 대한 작가의 보상을 정식으로 주장했고, 작가 측과 도서관, 출판업계의 논쟁 끝에 1942년 처음 제도화한 후 1946년 시행됐다. 이후 덴마크는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디지털오디오북에 대해서도 공공대출보상금을 지급했다.

2021년 말 현재 덴마크를 비롯해 독일, 영국, 프랑스, 호주 등 전 세계 34개국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대만이 유일하게 2020년부터 3년째 시범 실시 중이다. 34개국 중 유럽이 30개국으로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는 2006년 유럽연합(EU)의 대여권·대출권 지침이 회원국에서의 공공대출보상제도 도입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다만, 보상의 법적 근거나 보상 대상 시설, 보상 대상 자료의 범위와 보상금 산정 기준, 보상 대상자와 보상금 분배 비율 등 구체적인 내용과 운영 실태는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보상 재원은 대부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부담하지만, 네덜란드는 도서관 이용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2020년 기준 덴마크가 공공대출보상금으로 약 342억원을 쓰고 있고, 스웨덴 약 232억원, 프랑스 약 231억원 등이다.

◇ 국내 1980년대 후반부터 논의
국내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공공대출보상제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논의를 보면, 출판자 단체들은 2017년 를 발표하고 도서관 활성화를 기하는 동시에 저자들도 지적재산권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공공대출보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8년에는 어린이책 작가 단체를 중심으로 한 ‘저작권 보호를 위한 작가단체 연합’이 결성돼 공공대출보상제도 도입을 위한 모임과 성명서 발표, 서명 운동 등이 전개됐다. 도서관 측은 공공대출보상제도에 부정적이다. 도서관 단체들은 출판·저작자 단체의 제도 도입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 저작권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논리를 다듬어왔다. 2019년 박양우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른 이용 환경 변화를 고려해 저작자와 창작 기여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제도 도입을 검토해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시민들이 독서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저작자·출판계-도서관 입장차 커
작가와 저작자 단체, 출판계는 그간 공공대출보상제를 요구해온 만큼 이번 법안 발의를 반긴다. 김호운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은 지난 1월 열린 입법토론회에서 “음악 분야 저작권의 위상에 비해 문학과 출판 분야는 권리를 제한받고 실질적인 보상도 미미하다”며 “공공대출보상제의 실질적인 목적은 문화 창의성을 증대하고, 해당 국가의 문화와 언어의 중요한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명환 교수(서울대 영문과)는 “공공대출보상권 도입에 따르는 예산을 정부가 부담해야 하고, 관련 업무가 도서관 행정에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전제하며 “저작자 집단의 노력에 대한 안정적인 사회적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영화나 미술 분야 등에서 유사한 문제 제기가 있더라도 이는 문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통과의례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서관 측은 저작권법 개정안 발의에 즉각 반대 입장을 냈다. 한국도서관협회는 14일 의견서를 통해 “공공대출보상제도 도입은 도서관의 도서 대출이 도서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전제로 하지만, 이런 주장이 실증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고 주장했다.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각각 진행한 연구에서 도서관 대출이 오히려 홍보 효과 등을 발생시켜 도서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런 간접적인 효과로 강연료 등의 추가 수입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부 베스트셀러 작가들에게 보상이 편중될 거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또, 출판사가 도서 판매가격을 자유롭게 책정하고 도서관 대출로 인한 영향도 미리 가격에 반영했기 때문에 사실상 이중 지출이 발생한다고 지적하는 한편, 현재 도서 대출은 저작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배포권과 최초 판매의 원칙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법안 자체의 취약점도 꼬집었는데, 문화체육관광부가 보상금을 위한 예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는 근거 규정을 마련했지만 임의 규정에 불과해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거다. 결국 도서관이 보상금을 부담하게 되면 도서관의 도서 구매 축소로 이어져 출판사나 저작자에게 오히려 손실이 야기될 수 있고, 나아가 도서관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인해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 공공도서관 1172개…하루 63만 권 대출
2020년 말 현재 전국의 공공도서관은 1172곳. 1년 사이 38곳 늘었고, 5년 전인 2015년(978곳)보다는 20%가량 증가했다. 도서관의 회원 등록자 수는 2700만 명, 전체 인구의 53% 정도다. 2020년 하루 평균 대출 도서는 63만 권으로, 코로나 사태로 공공도서관이 문을 연 날이 크게 줄었는데도 비대면 대출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전년 45만 권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공공도서관은 늘었지만, 공공도서관 직원 수는 1곳당 15명으로 전년보다 0.5명 줄었다. 공공도서관의 1년 운영 예산은 1조 2273억원, 이 중 자료구입비는 1000억원가량으로, 공공도서관 한 곳이 평균 9000만원에서 1억원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 예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예술인의 41%가 연간 수입이 없고, 80%는 월 100만원도 못 벌고 있다. 예술작품 발표 횟수도 3년 전보다 절반이 줄었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문화체육관광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김승원 의원 측 “사회적 합의 우선”
김승원 의원은 “돈이 없어 집필을 못하고, 출판도 못하고, 그나마 어렵게 출간한 도서도 마땅한 보상을 못 받는 악순환의 고리가 당연하게 여겨지면 K-콘텐츠의 위상도 흔들릴 수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승원 의원실 측은 공공대출보상제도 도입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선 “도서구입비 증액은 대선 기간 각 당 후보들이 한목소리로 약속할 정도로 사회적 요구가 높은 부분임을 알고 있다”며 “도서구입비 등 기존의 도서관 예산을 전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부 베스트셀러 작가들에게 보상금이 편중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전체 보상금의 3~5% 정도로 상한선을 정하고, 비인기 도서의 작가들도 최소한의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법안 처리에 앞서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며 “저작권단체와 출판계, 도서관단체로 구성된 상생협의체가 출범해 향후 합의안이 도출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 한국도서관협회는 사회적 합의체인 ‘상생협의체’를 출범시켰다. 협의체는 향후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공공대출보상제도 도입 여부와 시기, 세부적인 운영 방안 등을 모색할 예정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jlee@mt.co.kr

정치/사회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