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탈바꿈, ‘폐광 선진국’ 가능하다

[심층리포트(下)]예술촌·딸기농장·데이터센터 변신에 다른 광물자원 활용 기대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25.12.03 10:28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강원도 태백 폐광지역에 조성된 세계 최대 딸기 스마트팜 전경/사진제공=넥스트온
# 노르웨이 레프달 광산 지하에는 데이터센터가 들어서 있다. 이 시설은 연중 18~20℃의 낮은 온도를 자연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인근 해수를 냉각 시스템에 활용해 운영비를 크게 낮춘 것이 특징이다. 일본 유바리시는 폐광촌에서 영화 명소로 탈바꿈됐다. 이곳에서 개최되는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보기 위해 매년 도시 인구(5800여 명)의 두 배가량인 1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고 있다. 영국의 게이츠헤드도 폐광촌에서 매년 200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문화도시로 변신했다. 이곳의 54m 높이 천사상 조형물은 지역 랜드마크로 꼽힌다. 현재까지 약 1조원 규모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다고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폐광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폐광지를 지역 자원으로 재생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석탄 산업 쇠퇴 이후 공동화됐던 지역들이 관광·문화·레저 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활력을 얻으며 성장 기반을 다시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강원 정선군 고한읍의 ‘삼탄아트마인’은 38년간 가동된 정암광업소를 문화예술 단지로 재구성했다. 국비와 군비 110억원이 투입돼 23만㎡ 규모로 조성된 이 공간은 ‘예술을 캐는 광산’이라는 콘셉트로 운영되며,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 100선’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강원 태백시 장성광업소에 들어선 ‘넥스트온 딸기 클러스터’는 폐광 활용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시설은 ‘ECO JOB CITY 태백 경제기반형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2023년 조성됐다. 총 연면적 4193㎡ 규모로 12단 구조의 수직 농장 5개 동을 갖췄다. 한국형 저온성 프리미엄 딸기를 연중 생산하는 체계를 구축, 연간 300톤 규모의 딸기를 생산할 수 있다.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주민 스스로 폐광촌을 재생시킨 사례도 있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18리 주민들은 2018년부터 빈집을 개보수해 ‘마을호텔 18번가’를 조성,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꾸몄다. 숙박시설이 본관 역할을 하고 골목 상점들은 식당·이발소·세탁소·카페 등 부대시설로 운영된다.

광산 개발로 인한 환경 피해인 광해(鑛害) 문제를 해결한 곳도 있다. 강원도 정선군 소도천이 수질 회복의 성공 사례 중 하나다. 1954년부터 1993년까지 약 40년간 운영되던 태백의 함태탄광이 문을 닫았지만, 폐갱구에서 중금속 등에 오염된 광산 배수가 유출되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은 2004년 정화시설을 설치해 20년 동안 수질 개선을 이어가 회복하는 데 성공했고, 2021년 11월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달이 찾아오기도 했다.

▲화순탄광 폐광 종업식이 열린 2023년 6월 30일 전남 화순군 동면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에서 광부가 탄광 앞을 둘러보고 있다./사진=뉴시스
◇텅스텐·경석 남아 있는 ‘자원의 보고’…“적극 활용해야”

폐광이 차세대 산업의 원료 공급지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폐광에는 텅스텐과 경석 등 광물이 다량 남아 있어 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자원이 배터리 원료로 쓰일 수 있다며 국내에서 확보에 성공할 경우 공급망 안정과 소재 자립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강원 영월군에 따르면 상동광산에는 약 5280만 톤 규모의 텅스텐이 묻혀 있다. 군은 60년 이상 채굴이 가능하고, 경제적 가치는 약 6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군은 상동읍의 텅스텐과 한반도면의 석회석을 중심으로 관련 산업 기반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각 시에 따르면 태백·삼척 일대에는 약 1900만 톤의 경석이 매립돼 있다. 경석은 관리주체 부재와 활용 기술 부족으로 오랫동안 폐기물로 취급됐지만, 최근 건축자재·세라믹 원료로 재활용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는 강원도·환경부·행정안전부와 ‘석탄경석 규제개선 업무협약’을 체결해 경석을 폐기물에서 제외하고 산업 활용 기반을 다지고 있다.

강원연구원이 지난 10월 발표한 정책보고서에서도 폐광지 광물 자원을 중심으로 이차전지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차전지 공급망 강화를 위해 로드맵과 특화단지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도 역시 폐광지 광물을 소재 산업과 연계하고 배터리 재제조 인프라와 결합해 순환경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정대현 강원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차전지는 국가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해 육성하고 있는 분야”라며 “강원도 역시 보유한 자원과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 관련 산업의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폐광지에 남은 광물을 기반으로 이차전지 산업을 키워 순환경제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원 정선군 고한 18리의 고한18번가 마을호텔 객실 입구/사진제공=정선군
◇폐광의 대변신…데이터센터·우주 전초기지로 탈바꿈

폐광 지역을 새로운 산업 인프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각 지자체는 오랫동안 방치된 폐광부지에 스마트팜 단지나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구상을 내놓으며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강원 태백시와 전남 장성군은 폐광을 데이터센터 부지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광산은 넓은 지하 공간과 일정한 온도, 두꺼운 암반을 갖춰 냉각 효율과 보안성이 높아 데이터센터 입지로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태백시는 지난 6월 SH에너지솔루션과 업무협약을 맺고 폐광을 데이터센터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으며, 장성군 역시 지난 8월 LS일렉트릭이 고려시멘트 폐광 부지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조성할 계획을 발표했다.

폐광지역을 바이오·식품 산업의 새로운 거점으로 조성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전남 화순군은 2023년 문을 닫은 국내 1호 탄광인 화순광업소 일대에 바이오·식품 기반 농공단지와 스마트팜 단지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골프장과 리조트, 정원 등을 조성하는 복합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중입자 가속기를 활용한 첨단 의료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곳도 있다. 강원 삼척은 2030년까지 도계광업소 부지에 첨단 의료산업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기존 방사선 치료보다 정밀도가 높은 중입자 치료는 차세대 암 치료 인프라로 평가된다. 삼척은 단순 연구 거점을 넘어 환자 치료와 의료기기 산업까지 아우르는 산업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


20%대 갇힌 폐광 복구율, ‘환경복원’이 먼저다


정부와 일선 지자체가 폐광을 관광·산업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에 앞서 환경 복원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폐광 갱도(지하에 뚫어 놓은 길) 곳곳에서는 철 성분이 용출된 붉은빛 오염수가 흘러나오고 침전물이 하천과 지반에 쌓이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4차 광해방지 기본계획(2022~2026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폐광 복구율은 21.8%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1~3차 계획 기간 동안 예산 집행률이 목표의 58.8% 수준에 그치면서 복구가 지연된 영향이 컸다. 현재 수질 정화 시설이 설치된 오염 광산은 함태탄광을 포함해 59곳에 불과하다.

또한 산업부가 2021년 실시한 광해실태조사에서는 전국 휴·폐광산 5475곳 중 3300곳(7184개소)에서 산림 훼손, 지반 침하, 토양 오염 등 피해가 확인됐다. 이 가운데 1566개소는 복구가 완료됐지만, 나머지 지역은 여전히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환경 문제는 토양과 하천 오염을 유발할 뿐 아니라 지역 재개발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도 지적된다. 주민들의 노력과 정부의 정화 사업이 이어지고 있지만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2026년까지 폐광 복구율을 3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광산 개발로 피해가 발생한 588개소에 대한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2026년부터는 산림복구사업을 통해 매년 CO₂ 1400톤의 탄소 상쇄를 실현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더불어 탄소상쇄 광해방지사업 확대, 탄소배출 저감형 방지시설 활용 등 ‘국민 체감형 광해방지’ 실천을 통해 탄소중립에도 기여한다는 구상이다.

제4차 광해방지 기본계획의 주요 과제로는 △광해방지사업 효율성 제고 △지속가능한 광산개발 환경 조성 △국민 체감형 광해방지 강화 등이 제시됐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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