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과 비슷하게 조성됐지만 딱딱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아니라 아이가 쉽고 편하게 방문해요. 와서 책도 읽고 가상현실(VR) 게임도 하니까 아이가 먼저 오자고 하는 곳이에요.”
지난 6월 20일, 초등학교 1학년생 자녀와 부산시청 ‘들락날락’을 방문한 한 학부모가 공간을 찾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아이들이 바닥과 소파, 빈백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공부하는 공간, 체험할 수 있는 VR게임존과 미디어아트방이 있는 이곳은 부산시청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이다. 들락날락은 이곳 외에도 부산 전역에 100곳 넘게 있다.
부모, 조부모의 손을 잡고 들락날락을 방문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책꽂이로 향했다. 독서존에는 연령별로 즐길 수 있는 그림책, 소설책, 유아용 교구책이 가득했다. 들락날락은 자유롭게 운영된다. 몇몇 아이들은 친구끼리 함께 책을 읽으며 역할놀이를 하기도 했다. 25개월 손자와 함께 방문한 우정석씨는 “다양한 나이의 아이들이 와서 책도 읽고 놀이도 하기 좋다”며 “들락날락에 오면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손자가 좋아한다”고 말했다.
책을 읽던 아이들은 미디어아트전시실에 들어가 그림을 감상하거나 VR체험존에서 게임을 했다. 책 읽어주는 VR기기와 노래하는 로봇을 사용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영어랑 놀자’ 수업 시간인 오후 4시 10분이 되자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삼삼오오 수업실로 들어왔다. 원어민 선생님과 함께하는 ‘영어랑 놀자’는 들락날락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How was feel today?(오늘 기분 어때요?)”라는 원어민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은 “I`m hungry.(나는 배고파요.)” “I`m happy.(나는 행복해요.)”라며 차례대로 대답했다.
수업의 대부분은 영어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아이들은 ‘hungry(배고픔)’라는 단어를 말할 땐 배를 쓰다듬었고, ‘tired(피곤함)’라는 가사가 나오면 몸을 축 늘어뜨렸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부담감보다는 재밌게 학습하는 분위기였다.
쌍둥이 자녀가 모두 ‘영어랑 놀자’에 참여한다는 조은별씨는 “요즘 학원이 아니고서는 원어민 영어 수업을 받기가 힘든데 무료로 시에서 수업을 진행해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어 “아이가 처음에는 원어민 선생님을 대하기 어려워했는데 한국인 보조선생님이 있어 잘 적응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영어랑 놀자’는 부산시가 자체 개발한 ‘English Waves’ 교재를 사용한다. 표준화된 교재로 수업을 진행해 단계별·수준별 교육이 가능하고, 아이들의 흥미를 더 끌 수 있다. 부산시 ‘영어랑 놀자’ 관계자는 “요즘 트렌드인 놀이중심형, 체험중심형 콘텐츠로 구성했고,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춰 교재를 개발했다”며 “특히 아이들이 익숙한 부산 명소와 부산시 자체 캐릭터가 등장해 흥미를 유발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은 “학원처럼 체계적인 수업”이라고 평가했다. 조은별씨는 “다른 공공기관의 영어수업과는 다르게 체계가 잡혀 있어 만족스럽다. 교재 파일과 음원을 홈페이지에 올려줘서 아이와 함께 집에서 복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초등 고학년 수업도 개설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놀이와 학습,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은 아이들이 찾고 싶은 공간이 되고 있다.
◇아이들이 들락날락…얼굴엔 웃음 가득

들락날락은 ‘15분 생활권’ 내에 놀이와 공부를 결합한 열린 공간을 만들자는 박형준 부산시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어린이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을 기본으로 미디어월 전시관, 잉글리시존, 커뮤니티존 등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공간은 규모나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유동적으로 구성된다.
들락날락은 부산 전역에 위치해 있다. 운영 첫해인 2022년 10곳으로 시작한 들락날락은 지난 5월 기준 106개소까지 늘었다. 그중 81개소는 개관해 운영 중이다. 도심의 유휴공간이나 활용도가 낮은 노후 공공시설을 활용해 조성 속도가 빨랐다. 점포 수 확대가 중요한 이유는 시가 강조하는 ‘15분 도시’의 앵커시설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다. 부산시민 누구나 15분 거리 안에 있는 들락날락에 방문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들락날락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콘텐츠를 모두 즐길 수 있는 놀이형 학습공간이다. 몰입형 미디어아트나 미디어월을 통해 아이들의 몰입도와 예술적 감각을 높일 수 있게 했다. 모션인식과 AR 실감 기술을 활용해 스포츠, 댄스, 학습, 놀이 콘텐츠를 온몸으로 즐기는 인터랙티브 놀이공간이나 컴퓨터로 만든 가상 세계에서 플레이 장비를 착용하고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는 VR도 인기다. 장난감놀이터, 그물놀이터, 볼풀 등 신체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들락날락도 있다.
들락날락은 부산의 인기 있는 공간 중 하나다. 2024년 한 해 동안 150만 명이 들락날락을 다녀갔으며, 부산시청에 위치한 들락날락의 경우 월 1만8000여명이 이용하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태평양 도시 협력 네트워크와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 이사회가 주관한 ‘SDG 시티 어워즈’ 대상을 받아 부산이 ‘아동 삶의 질 1위’ 도시로 선정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영어·창의·디지털…다양한 콘텐츠 제공하는 ‘배움터’

연 2기 기수제로 운영하며, 평일 과정과 1회 체험형인 토요일 과정으로 나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참여할 수 있는 단체반도 있다. 지난해 42개 들락날락에서 운영한 결과 96%의 만족도를 기록했다. 올해는 들락날락 외에도 보육시설과 공공형 키즈카페 등이 참여해 총 64개소에서 ‘영어랑 놀자’를 운영하고 있다.
학부모 반응은 뜨겁다. 지난 3월에 진행된 상반기 ‘영어랑 놀자’ 프로그램은 신청 시작 1분 만에 마감됐다. 지난해 사하구 꿈꾸는 작은도서관 들락날락에서 ‘영어랑 놀자’를 이용한 한 학부모는 “놀이형식 수업이어서 아이가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참여한다. 영어라는 언어에 어색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닌 영어를 알아가는 시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창의적 사고와 예술 감수성을 높이는 ‘창의배움터’ 수업도 있다. 다양한 재료와 도구를 활용한 메이커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생각을 실제로 구현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올해는 △창의과학 △창의예술 △창의로봇 등 세 가지 주제로 진행한다. 38개소 들락날락에서 진행 중이다. 주말에는 가족 참여형 수업도 진행하고 있으며, 수업 참여 비용은 전액 무료다.
‘창의과학’과 ‘창의예술’은 다양한 창조 혁신 장비와 교구를 활용해 자기주도적으로 생각하며 손으로 만들 수 있는 실습·체험형 프로그램이다. ‘창의로봇’은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을 활용한 수업으로, 올해 시범사업으로 새롭게 시도해 첨단 신기술에 감성과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지난해 꼬마 메이커스 수업에 참여한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수업을 계기로 만들기에 흥미를 보인다”며 “집에서도 만들기 놀이를 하면서 집중력이 향상된 것 같다. 아이들이 끝나서 아쉬워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디지털배움터’는 들락날락을 이용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디지털 프로그램이다. 코딩, 영상편집, 생성형 AI 등 디지털 실생활 역량교육을 실시해 미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들락날락은 올해 운영 중심 정책에 집중한다. 시 관계자는 “인프라 확충 등 시설 조성 중심을 넘어 우수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들락날락의 시스템을 ‘프랜차이징화’할 계획이다. 부산의 육아종합지원센터, 지역아동센터 등 유아동 관련 기관에 ‘창의배움터’, ‘영어랑 놀자’, ‘디지털배움터’ 등 양질의 프로그램을 지원해 보다 많은 아동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다.
박형준 시장은 “들락날락은 15분 도시를 구현하는 핵심 앵커 시설이자 유휴 공간을 혁신적으로 활용한 성공 사례로 대한민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기존 들락날락에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입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시민행복공간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