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를 떠나보내기 전에 남길 말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독자 뇌리에 새겨지거나 심금을 울리는 종결부

글쟁이㈜ 백우진 대표 2025.06.20 09:30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이번 호를 끝으로 이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께 감사합니다.
▲백우진 글쟁이㈜ 대표
“다시 110년이 지났다. 충무공이 태어난 지 470년이 흐른 오늘, 그가 태어난 중구 건천로 일대를 걸으며 그를 기렸다. 명보아트홀 앞에는 그의 생가터임을 알리는 작은 표석이 놓여 있다.”

필자가 2015년 4월 28일자 〈아시아경제〉에 쓴 산문의 종결부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필자는 충무공 이순신(1545~98)을 기리는 글을 썼다. 그럴 때면 충무공을 주제로 올리는 계기로 글을 시작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라. ‘오늘은 충무공 탄신 470주년이 되는 날이다’라는 첫 문장은 얼마나 형식적인가. 주제를 선정한 계기는 도입부가 아니라 종결부에 배치하는 편이 낫다.

‘계기로 마무리’는 글을 끝맺는 여러 기법 중 하나다. 이에 대해서는 이 글의 중간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몇 가지 마무리 유형을 살펴보자. 종결부의 유형에는 경구 인용과 전환이나 반전, 풍경 묘사를 통한 심경 암시, 여운 남기기, 논지를 다시 거론하며 강조하기(양괄식), 수사법, 서두에 소개한 계기 제시 등이 있다.

먼저 경구를 인용한 종결부가 있다. 적절한 경구는 도입부에도 제격이고, 종결부에도 좋다. (’진리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사상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말’인 경구를 표현하는 유의어가 많다. ‘격언’이나 ‘잠언’도 있고 ‘어록’이라고도 한다. 영어에는 아포리즘(aphorism) 같은 단어가 쓰인다.)

경구가 인용된 종결부를 하나 소개한다. 출처는 박건식 전 한국PD연합회장이 어문기자협회의 2024년 여름호 〈말과글〉에 쓴 글이다. 제목은 ‘국민의 편에 서서 법률용어를 바라볼 수는 없을까?’이다.

- 검찰에 필요 이상의 권위를 부여하는 전문 용어 사용과 일본어의 잔재, 어려운 한자어 문제를 해결할 때, 우리는 비로소 “누구나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는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가 한 말이다. 이 문장은 하이데거가 바로 다음에 쓴 “그 안에 인간이 산다”와 함께 인용되기도 한다. 그는 언어는 인간의 존재를 이해하는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어떤 단어를 채택해 구사하는지에 따라 존재가 달라지고 관계도 달라진다. 

따라서 이 경구 인용은 검찰의 언어를 지양해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을 함축해서 전하는 힘이 있다. 다만 이런 설명을 한 뒤 이 문장을 던지며 글을 마쳤다면 내용이 더 충실히 전해졌을 듯하다.

전환 기법은 어떻게 쓰이나. 글 잘 쓰는 의사 남궁인의 의료 에세이집 〈만약은 없다〉에는 다음과 같은 종결부가 쓰인 글이 있다.

- 응급실 문 밖으로 나섰다. 겨울바람이 유난히 매서웠다. 나의 다른 세계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반전은 흐름을 깸으로써 자극이나 재미를 주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수필 ‘글빚을 갚다가’의 인트로와 아우트로(종결부)를 각각 다음과 같이 구성했다.

- ‘글 빚’이라는 게 있다. 어떤 글을 써 주기로 약속하고, 때로는 고료를 미리 받고도 원고를 넘기지 못한 경우 “글 빚을 졌다”고 말한다. (중략) 언젠가부터 ‘쓰지 않은 글’이 마음속에 채무로 자리 잡았다. 글을 쓰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정작 가족에게는 왜 글을 쓰지 않는가 하고 자문하면서 이런 채무감이 생겨났다.

그렇게 가족 이야기 첫 편을 적어 부모님과 아이들, 조카들에게 보냈다. 기자는 독자 반응을 기다린다. 편지를 읽으셨나 궁금해하던 차에 아버지가 전화통화 중 말씀하셨다. “편지 읽었다. 잘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 이름 가운데 글자 한자(漢字)를 잘못 썼더라.”

풍경을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심경을 넌지시 비친 사례를 소개한다. 이 종결부도 〈만약은 없다〉에서 가져왔다.

- 내가 디디는 발걸음마다 검게 곤죽이 되고 짓뭉개진 눈죽이 붙어 불결하고 서늘한 기운이 발 뒤로 끌려가고 있었다.

여운을 남기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영상에서 쓰이는 페이드 아웃(fade-out), 즉 암전 기법을 떠올리게 하는 종결부도 있다. 출처는 바로 앞과 동일하다.

- 나는 리모컨을 들어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텔레비전을 껐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칼럼은 양괄식 구성이 안정적


양괄식은 수미상관 기법과 통한다. 양괄식은 주로 논설의 구성을 가리키는 데 활용되고, 수미상관은 시나 소설의 수사적인 특징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필자가 이 코너에 연재한 글을 유심히 본 독자라면 글이 대부분 양괄식으로 마무리됐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문장도 다이어트가 필요해요’를 예로 들면, 앞에서 “반복은 물론이고 중첩도 피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놓고 사례를 들어 첨삭하는 내용이 펼쳐진다. 이 주장을 강조하는 종결부는 여러 문단으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무릇 개발자는 손이 베일 듯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은 이나모리 가즈오(1932~2022)가 이렇게 말했다. (중략) 기능과 외양 모두 하나라도 쓸데없는 것이 추가되지 않은 상태라야 그런 이미지를 풍길 수 있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군살이 있거나 덕지덕지 붙은 문장은 내용을 독자에게 매끈하게 전하지 못한다. 강한 인상을 주지도 못한다. 글을 잘 쓰고자 하는 리더들이여, 직접 쓰거나 제출받은 문장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다 들어내시라.

수사법은 아시다시피 매우 다양하다. 말을 만들어(신조어) 눈길을 끄는 기법도 있다. 필자는 ‘K스틸의 힘’의 중간 문단과 종결부를 이렇게 구성했다.

- 한국은 제철소 보유를 기준으로 할 때 철기시대에 뒤늦게 합류했다. 그런데도 2013년에 독보적인 철강을 새로 만들어냈다. 영하 163도까지 내려가도 파손되지 않는 극저온용 고(高)망간강이다. 포스코가 이순기 수석연구원을 중심으로 망간이 22.5~25.5% 포함된 이 소재를 개발해냈다. 이 소재는 의미를 부여해 이름을 짓고 불러줄 가치가 있다. ‘고망간강’ 대신 ‘K스틸’은 어떨까. 개발한 엔지니어 이순기 수석 연구원의 ‘기(氣)’도 담아서.

다음은 ‘나무 마천루 시대’ 글의 마지막 문단이다. 끝 문장에 수사법을 구사했다.

- 현재 세계 최고층 목조건물은 미국 밀워키가 보유하고 있다. 25층짜리 주상복합 ‘어센트’로, 2022년 준공됐다. 세계적인 목구조 건설 추세를 고려할 때 이 기록도 몇 년 안에 깨질 듯하다. 국내에도 목구조 고층건물이 속속 들어서기를 기대한다. 도심 콘크리트 숲 곳곳에 나무 마천루가 자라나기를.

자, 이제 계기를 알려주면서 글을 마치는 기법으로 돌아온다. 필자는 “이순신은 아무리 직급이 낮은 졸병이라 해도 군사(軍事)에 관한 내용이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했다”는 문장으로 ‘이순신의 작전회의’ 글을 시작했다. 이어 “그러자 모든 병사가 군사에 정통하게 됐다”고 첫 문단을 썼다. 계기는 다음과 같은 끝 문단에 담았다.

- 이순신이 23전 전승을 거둔 요인은 군비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병법을 구사했고, 여기서 병졸이 제 역할을 하게끔 한 것이다.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을 이런 배경에 비춰보면서 감상하면 어떨까 싶다.

만약 이 글을 “최근 영화 <명량>이 개봉했다’는 식으로 계기를 앞세워 시작했다고 상상해보라. 밋밋하고 독자의 눈길을 끌기 어려운 첫 문장이다.

불가피하지 않다면 계기를 앞세우지 말라. 이는 글쓰기에서 중급 이상에 오른 필자들 사이에서는 공유된 기법이다. 나는 영어 산문에서도 이를 확인했다. 마키아벨리를 다룬 글은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1527년 6월 21일, 즉 497년 전 오늘 5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로 마친다.

이를 모르거나 무시한 다음 도입부들을 읽으며 이 지침을 기억해두자. “오늘은 찰스 다윈이 악몽 같은 두 달을 보내고 드디어 안도의 숨을 내쉰 날이었다.” “오늘 7월 2일은 한 해의 한가운데다. 올해가 시작된 지 어언 182일이 지났고 이제 꼭 182일이 남았다.” “꼭 10년 전 오늘 우리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떠나보냈다.”

필자는 이 코너를 통해 정석에서 벗어난 사례를 다수 인용하고 첨삭해 보여줬다. 그러면서 지침을 따른 모범 하나에는 거기에서 벗어난 사례가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종결부에서도 그런 다양한 사례가 보인다. 어떤 글은 종결부가 없다. 주장을 첫째, 둘째, 셋째로 열거하는데, 셋째가 마지막 문단이다. 어떤 필자는 끝 문장을 꼭 ‘무엇이 필요한 때다’라거나 ‘무엇을 해야 할 것이다’ 형태로 쓴다. 딱딱할뿐더러 반복은 재미를 주지 못한다.

패션은 구두에서 완성된다고 한다. 글은 종결부에서 완성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hs175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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