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물이 행복한’ 청주동물원

['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삶의 희망’이란 날개 달아주는 동물원, 자연 속에 있는 듯

머니투데이 더리더 청주(충북)=신재은 기자 2025.06.04 09:22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은 ‘정책’의 기획과 실행 능력으로 평가된다. 한정된 예산으로 얼마큼 효율적인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주민 삶은 크게 달라진다. 우리 동네에 ‘안심가로등’이 설치되는 것부터 출산과 양육 지원까지 모두 정책의 영역이다. ‘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은 기자가 직접 정책 현장을 찾아가는 코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해당 정책의 실효성을 검증한다. ‘더 좋은 정책’을 위해 대안을 제시, 독자들과 정책 대상자들에게 사랑받는 코너로 자리 잡는 게 목표다.
▲청주동물원 야생동물 보호시설에 ‘갈비사자’로 알려졌던 ‘바람이’와 암사자 ‘도도’가 평화롭게 쉬고 있다./사진=신재은 기자

‘수달 기상 예상 시간 오후 2시’

동물을 쉽게 볼 수 없는 동물원이 있다. 동물의 생체리듬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동물을 언제나 관람할 수 있는 기존의 운영 방식에서 탈피, 동물은 자신의 리듬대로 살아가고 관람객은 이를 지켜보는 방식이다. 동물 보호와 복지를 추구하는 청주동물원 얘기다.

비가 오고 흐렸던 지난 5월 16일, 청주동물원의 수달은 오전 11시부터 밖에 나와 잔디에서 털을 말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늘은 볼 수 있을까’ 마음 졸이던 관람객들은 수달이 등장하자 유심히 수달을 지켜봤다. 근처를 지나던 한 관람객은 아들에게 “저번에 왔을 땐 수달이 자느라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오늘은 나와 있네”라며 웃었다.

▲물에서 나와 잔디에서 털을 말리고 있는 수달 두 마리. 수달의 활동 모습을 보려면 시간을 잘 맞춰 방문해야 한다./사진=신재은 기자

차갑고 딱딱한 시멘트 바닥, 좁고 촘촘한 창살 우리. 청주동물원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청주동물원은 동물의 습성에 맞는 생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넓은 곳에서 생활하던 늑대를 위해 4칸의 우리를 터 뛰놀 수 있게 했고, 산양이 오르거나 쉴 수 있는 돌 언덕을 쌓았다. 좁은 사육사를 옮겨다니며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도록 전용 터널도 조성했다.

지붕 없는 수달사도 마찬가지다. 그 덕에 까치, 왜가리 등 주변의 야생동물도 수달사에 잠시 앉아 쉬고, 수달의 먹이를 빼앗아먹기도 한다.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수의사)은 “먹이를 넉넉하게 준비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며 “이것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자 반달가슴곰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 마리가 큰 웅덩이에서 물장구를 치는 모습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웃었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이모씨(33·여)는 “곰들이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좋다. 보호와 치료를 하는 곳이라고 들어서 와봤는데 공간 조성도 잘돼 있고 동물들이 행복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곳에 있는 반이, 달이, 들이는 곰 사육공장에서 ‘웅담채취용’으로 키워졌던 아픈 과거가 있다. 청주동물원·환경부·녹색연합이 ‘사육곰 보호, 관리를 위한 업무협약’에 의해 이들을 구조했고,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청주동물원에 왔다. 청주동물원의 야생동물들은 비슷한 아픔을 가진 경우가 많다. 부리가 비뚤어져 아사 직전에 발견된 독수리 ‘하나’, 왼쪽 날개를 영구히 쓰지 못하는 독수리 ‘경남이’도 그렇다. 사육사들은 동물들의 사연을 간단히 적어 동물사 앞에 전시해 관람객이 동물 복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했다.

▲야생 황새가 청주동물원 황새장을 찾았다./사진=신재은 기자

청주동물원은 야생동물과 보호동물이 공존하는 장소다. 산속에 자리한 동물원의 자연 환경을 최대한 보존한 덕이다. 최근에는 야생 황새가 찾아왔다. 황새는 멸종 위기에 처한 천연기념물이다. 수의사들은 동물원 황새장 꼭대기에 인공 둥지를 지어줬다. 김 팀장은 “야생 황새가 친구 황새들과 먹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며 “만약 야생 황새가 여기에 알을 낳는다면 천연기념물의 번식 과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트를 위해 청주동물원을 찾았다는 한 시민은 “동물원이 아니라 자연 안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청주동물원은 상처받은 동물들이 보호받는 곳, 야생으로 돌아갈 동물들이 독립 준비를 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청주동물원, 전시 아닌 보호에 집중…동물복지 인식 개선 교육도 진행

▲청주동물원의 ‘사람관’. 좁은 사육사를 폐쇄하고 이 곳을 사람관으로 꾸몄다./사진=신재은 기자

청주동물원은 멸종 위기에 있거나 다친 동물을 외부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 예가 ‘바람이’와 ‘구름이’다. 청주동물원은 지난해 7월 경남 김해의 시멘트 우리에 방치돼 있던 20살의 사자 ‘바람이’를 구조했다. 구조 당시 삐쩍 마르고 병들어 갈비뼈가 다 드러나 ‘갈비사자’라는 슬픈 별칭도 생겼다. 또 지난해 8월에는 강릉 쌍둥이동물농장에 임시 보호돼 있던 ‘바람이’의 딸을 데려와 ‘구름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2018년 강원 동해 농장의 사육곰(반이·달이·들이) 구조를 시작으로 여우(김서방), 독수리(하늘이), 미니말(사라)에 이르기까지 구출한 야생동물도 많다.

청주동물원은 동물들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전국의 야생동물구조센터가 구조했으나 장애가 발생한 토종 야생동물을 데려와 치료한 뒤 방사가 가능한 경우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사설동물원에서 전시동물로 살다 청주동물원으로 온 ‘하늘이’도 그중 하나다. 김정호 팀장은 “어딘가에서 구조됐지만 열악한 환경에 방치돼 있었던 ‘하늘이’는 자꾸 날고 싶어 한다”며 “곧 조성될 자연방사훈련장에서 훈련 후 몽골로 돌려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주동물원은 이 과정을 시민교육으로 연계해 동물 보호에 앞장설 예정이다.

동물복지 및 인식 개선에도 나선다. 청주동물원은 자연 감소한 동물은 추가로 들이지 않고 소수의 종, 개체에 집중하고자 한다. 김 팀장은 “관리하는 종과 개체가 적을수록 집중도가 높아진다”며 “방사장의 면적을 넓히고 동물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 중이다”라고 밝혔다. 동물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사람관’도 인기다. 과거 스라소니가 썼던 우리를 새롭게 조성한 ‘사람관’ 안내판에는 ‘좁은 공간을 더는 동물 사육에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유롭게 들어가 동물원 동물이 되어보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다. 좁은 우리에 들어가봄으로써 동물의 마음을 역지사지로 느껴보자는 취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청주동물원은 지난해 환경부 제1호 거점동물원으로 지정됐다. 청주동물원은 국내 동물원 동물복지 증진을 위한 △동물원 안전관리계획 지원 △동물진료·감염병 예방 △동물원 동물 서식환경 개선 자문 △야생동물 구조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청주동물원의 야생동물 CT 촬영 시설/사진=신재은 기자

6월에는 청주동물원 야생동물 보전센터가 문을 연다. 야생동물의 병원인 셈이다. 국내 최초로 야생동물 건강검진 및 수술을 진행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졌다. 청주동물원에는 임상 경험이 있는 3명의 수의사가 있기에 센터 운영이 가능하다. 김 팀장은 “야생동물은 본능적으로 아픈 곳을 숨기기 때문에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몸의 이상을 조기 발견해야 한다”고 밝혔다. 야생동물 보전센터의 생식세포 냉동동결설비는 멸종위기종 복원과 보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보호 중인 천연기념물의 자연 복귀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자연방사 훈련장 조성 공사도 올해 시작한다. 지난해 문화재청 공모사업인 ‘천연기념물 동물 보존관 지원 사업’에 최종 선정돼 재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독수리·올빼미 등 천연기념물 야생동물을 구조해 치료한 뒤 재활훈련을 통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영구장애로 자연에 돌아가지 못하는 개체는 동물원에서 보호하고, 시민교육을 진행한다. 시 관계자는 “앞으로도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우리 지역의 토종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시립동물원으로서 공공성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야생동물, 반려동물 모두 행복한 청주시 만들겠다”
▲청주동물원에는 야생동물 앰뷸런스가 있다./사진=신재은 기자

청주시는 동물복지 선도 도시로 자리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 중이다. 반려동물 복지 정책이 대표적이다. 시는 반려동물보호센터를 확장 이전해 더 많은 유기동물을 수용할 계획이다. 하이테크밸리산업단지 부지(6620㎡)를 확보해 내년 5월 준공할 예정으로, 확장 이전하면 유기동물 수용은 현재 160마리에서 260마리로 늘어난다.

시는 반려동물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반려견 놀이터를 추가 조성한다. 기존 문암생태공원과 권역별로 용암근린공원, 율봉근린공원, 오창근린공원 등에 조성된 놀이터 외에 올해 10월 서원구 일원에도 추가 조성할 계획이다.

불법 사육 개 구출 및 입양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시는 지난 2월 불법 도축으로 신고된 개 사육 농장주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고, 해당 사육 농장은 폐쇄 조치됐다. 농장주가 개 소유권을 포기해 시가 돌보던 68마리의 개는 한 국제동물보호단체와 청주시의 협업으로 해외 입양에 성공했다.

이범석 청주시장은 “청주시는 시민과 동물이 모두 행복한 동물복지 선도도시로 나아가고 있다”며 “청주동물원에 사는 야생동물 복지부터 시민 삶의 동반자인 반려동물 복지, 더 나아가 유기동물 정책까지 세심하게 챙기겠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jenny091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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