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뻔한 표현처럼 들리지만, 강 종부의 말에는 조건이 있다. “정성은 좋은 재료에서 시작됩니다. 나주는 좋은 재료를 접하기에 최적의 장소죠. 그래서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어요. 좋은 재료는 당연한 겁니다.”
강 종부의 말에는 근거가 있었다. 나주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넓은 나주평야를 품고 있다. 서울의 약 3배에 달하는 약 1610㎢ 면적의 평야에서는 매년 양질의 쌀을 대량 생산한다. 여기에 영산강을 통해 다양한 수산물이 신선하게 공급되는 천혜의 식문화 환경을 품고 있다.

나주곰탕은 투명하고 맑은 국물과 두툼한 소고기 고명이 특징이다. 설렁탕처럼 뽀얀 국물을 사용하는 여타 지역과 달리, 나주곰탕은 살코기를 중심으로 국물을 우려내 고유의 맑고 진한 풍미를 자랑한다. 아마 나주곰탕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예부터 부유한 지역이라 맑은 곰탕을 먹어왔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주곰탕이 탄생한 배경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1910년에 개업해 올해로 창업 115년을 맞은 ‘하얀집’이 바로 나주곰탕이 태어난 곳이다.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아버지를 이어 4대에 걸쳐 하얀집을 운영하고 있는 길형선 대표는 나주곰탕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30년대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나주에 소고기 통조림 공장을 세웠습니다. 당시 일본은 고기만 사용하고 내장 등 부산물은 버렸죠. 그래서 그걸 활용해 국밥을 팔기 시작한 겁니다.”
일제 수탈로 인해 살코기 대신 내장탕, 국밥 형태로 시작됐다. 이후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경제적인 여건이 나아지면서 본격적으로 살코기를 사용한 맑은 곰탕이 자리 잡게 됐다.
지역민들의 음식이었던 나주곰탕은 1981년에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는 전환점을 맞았다. 군사반란과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고 들어선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국풍81이라는 대규모 문화축제를 열었다. 서울 여의도에서 5일간 열린 축제를 찾은 관람객은 600만 명에 달했다.
당시 행사장에는 팔도 향토 음식을 소개하는 부스가 있었다. 이때 나주곰탕이 전주비빔밥 등과 같이 전라도 향토 음식으로 선정돼 관람객들에게 선보였다. 이를 통해 나주곰탕의 맛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로 퍼져 나가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됐다.

나주곰탕의 맛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정성’이다. 원조집인 하얀집의 조리 과정을 보면, 한 솥에 200인분을 기준으로 고기만 40kg 이상을 넣어 끓인다. 이는 일반적인 30kg 대비 10kg 더 많은 양이다.
단순히 고기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국물의 깊이를 위해 사골의 비율을 조정하는 등의 섬세함이 뒷받침된다. 뼈는 우리가 흔히 하는 곰탕처럼 뿌연 국물을 만들어낸다. 길 대표는 이때 소금 간을 한다고 말했다. 적절한 순간에 소금을 넣어 곰탕의 투명한 색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투명한 국물에 수저를 넣어 흰쌀밥과 함께 한술 떠보니, 담백하면서도 고기에서 우러난 진한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분명 곰탕은 곰탕인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색다른 곰탕의 맛이 묘하게 수저를 당겼다.
길 대표에게 나주곰탕의 조리법이 마지막으로 정착된 것이 언제냐고 물었다. 그는 “1960년대 말, 아버지께서 ‘나주곰탕’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이후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