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국은 두 나라 엘리트(리더)들의 역량 차이였다. ‘메이지 유신 설계자’로 불리는 사카모토 료마나 정한론(征韓論) 원조 요시다쇼인 등 개혁가들이 하급무사 세력과 연대했던 것처럼 조선도 김옥균, 유길준 등 개화파가 녹두장군 전봉준의 동학 세력과 연대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역사의 가정을 해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국가는 리더를 넘지 못한다’는 법칙은 조선의 패망이 입증한다.
2025년 5월의 대한민국이 그때와 비슷한 형국이라고 하면 지나친 우려일까? 지나치더라도 걱정이 태산임은 분명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 국제정세 혼돈, 국가성쇠 위기가 시시각각 커지는데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으로 대립과 증오에 휩싸인 나라는 리더도 국민도 사분오열, 나라 밖으로 돌릴 눈이 단 한 개도 없지 않은가.
다행히 『미국 외교는 왜 실패하는가』가 국제정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엮은이 문정인 박사는 연세대학교 석좌교수로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정치학자인데 과거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로도 활약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1993~1997년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했던 제임스 레이니를 기리기 위해 연세대학교에서 했던 10회의 국제 강연 프로그램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제임스 레이니는 1994년 북핵위기 때 한반도의 전쟁을 막는 데 지대한 역할을 수행했던 전력이 있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재등장한 트럼프가 그 즉시 국제질서를 흔들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과 영토 포기 휴전 강요를 넘어 영토분할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전 세계 특히 중국을 대상으로 관세전쟁을 선포했다가 여의치 않자 거둬들였는데 잠시 전열 정비를 위해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여러 근거를 들며 트럼프가 중국을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한다. 오히려 중국이 이번 싸움에서 이기면 국제 질서의 양국 위치가 바뀔 수도 있어 종국에는 트럼프가 중국과 공존 전략을 택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중요한 것은 ‘예측’일 뿐이라는 사실, 상황이 어떻게 돌변할 지 아무도 모른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중동 충돌, 인도-태평양 전략, 기후위기 등도 트럼프 2.0 정세 돌변의 주요 이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북한 핵문제 해법’을 가장 비중 있게 다룬다. 재래식 군사력은 남한이 압도하므로 군사 충돌 시 북한이 궁지에 몰리면 핵무기를 씀으로써 과연 공멸을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북한 내부의 진정한 국가 목표를 알아야 추측이 가능하고,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도 풀 수 있다.
또 미국이 중국 봉쇄에 나서고 한국이 동참하게 되면 한반도가 신냉전의 최전선이 될 수 밖에 없을 터, 우리는 ‘미국 없는 한반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서 ‘창의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글자는 5자에 불과하나 누가 그 어려운 과업을 이뤄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지킬 것인가!
이런 와중에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 정국으로 나라의 앞날이 오리무중인 상황이니 19세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걱정이 왜 안 들겠는가. 리더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정점에 설 대통령도 역량을 제대로 갖춤으로써 ‘창의적 대안’을 찾을 사람으로 잘 뽑길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나날이 아닐 수가 없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이번만큼은 대통령 잘 뽑자!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