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의 나라, 이젠 ‘K-의료관광’이다

[심층리포트]피부·성형 시술, 새로운 관광 트렌드로… 지역도 유치전 가세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신재은 기자 2025.05.02 09:12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우리나라가 ‘의료관광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미용 시술 중심이던 외국인 환자 유치 시장은 최근 건강검진, 재활, 치유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일선의 지자체들도 치료와 휴식을 결합한 지역 특화형 상품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머니투데이 <더리더>가 국내 의료관광의 현주소와 과제를 짚어봤다.
▲2023년 3월 5일 서울 송파구 소피텔앰배서더서울호텔에서 열린 ‘2023 서울의료관광 국제트래블마트’ 개막식에서 의료 서비스 관련 국내 셀러들과 의료관광 관련 해외 바이어들이 개막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4월 2일 발표한 ‘2024년 외국인 환자 유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의료기관을 찾은 외국인 환자는 117만467명으로, 2023년(60만5768명)보다 약 2배 증가했다. 외국인 환자는 국내에 거주하지 않으며, 건강보험 가입자나 피부양자가 아닌 상태에서 진료를 받은 외국인을 뜻한다.

외국인 환자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관광통계에 따르면 2009년 6만 명 수준이던 의료관광객은 2016년 36만4000명으로 급증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유입이 감소했지만, 이후 3년간 빠르게 회복하며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 외국인 환자 유치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환자는 총 202개국에서 117만여 명에 달했다. 이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국가는 일본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경우 전체 외국인 환자 중 37.7%(44만1000명)를 차지했다. 이어 △중국 22.3%(26만1000명) △미국 8.7%(10만2000명) △대만 7.1%(8만3000명) △태국 3.3%(3만8000명) 순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가장 많았다.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환자는 99만9642명으로 전체의 85.4%를 기록했다. 이 외에 △경기도(4.4%, 5만1184명) △부산(2.6%, 3만165명) △제주(1.9%, 2만1901명) △인천(1.8%, 2만1387명) 순으로 나타났다.

피부과, 성형외과 등 진료 수요가 높은 병원이 서울에 집중돼 외국인 환자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인이 받은 진료과목은 피부과가 70만5044명(56.6%)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전년(23만9060명) 대비 약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어 성형외과(14만1845명·11.4%), 내과(12만4085명·10.0%), 건강검진센터(5만5762명·4.5%)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외국인들의 한국 화장품에 대한 호감도와 가격 경쟁력, 높은 접근성, 코로나19 이후 피부과 진료 수요 확대 등이 맞물린 결과”라며 “피부과와 성형외과 시술이 한국 관광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수도권 집중된 의료 인프라 활용…“프리미엄 의료관광 수요 타깃”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과 인천항 신국제여객터미널 2곳에 설치된 인천메디컬지원센터 모습/사진제공=인천광역시

일선의 지자체들도 외국인 환자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의료관광은 외국인 환자 치료뿐 아니라 쇼핑, 숙박, 관광 등 다양한 산업과 연계돼 높은 경제적 파급 효과를 내는 분야다. 외국인 환자를 적극 유치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끈다는 방침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외국인이 신용카드로 결제한 의료비는 약 3조9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일반 외국인 관광객의 1인당 소비 지출액이 평균 1063달러(약 145만원)인 데 비해, 의료관광객의 지출액은 3550달러(486만원)로 3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2023년 ‘외국인 환자 유치 활성화 전략’을 발표하며 연간 70만 명 유치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선 지자체들도 의료 인프라를 개선하는 한편, 지역만의 특색을 살린 정책으로 의료관광 활성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서울, 인천 등의 수도권은 의료 인프라와 국제공항을 활용해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일선 지자체는 지역의 문화적 특색을 활용한 웰니스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가장 많은 외국인 환자가 찾는 지자체인 서울시는 피부과·성형외과 등 의료인프라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의료관광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동남아 시장을 공략한다. 대부분의 의료관광객이 피부·성형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찾는 점을 활용한다는 복안이다.

서울시는 베트남 호찌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 현지에서 건강상담회와 서울의료관광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베트남은 점차 높아지는 소득 수준으로 의료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성형외과 △피부과 △치과 치료에 대한 관심이 크다. 시는 오는 6월 호찌민에서 베트남 의료관광설명회를 진행한다.

오는 10월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의료관광설명회를 연다. 인도네시아는 2억7000만 명의 높은 인구를 보유한 국가로 최근 △암치료 △심장질환 △정형외과 등 중증 치료를 위한 해외 원정 진료 수요가 높아 주요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병의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는 의료관광객 모시기에 열중이다. 강남구에 따르면 서울을 찾는 외국인 의료관광객 10명 중 4명은 강남구의 병의원에서 시술이나 치료, 수술을 받고 있다. 조성명 서울 강남구청장은 의료관광산업 육성 계획을 통해 의료관광객 확대 유치 사업을 추진했다. 압구정동 강남메디컬투어센터를 새단장해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위한 종합 커뮤니티센터로 재개관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센터에는 전문 인력이 상주하며 상담, 진료 예약 등 4개 국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K컬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난해 기준 1만2500여 명의 의료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했다.

인천시는 국제공항 및 항만이 위치한 점을 살려 외국인 환자 유치에 나섰다. 시는 ‘원스톱 메디컬지원서비스’를 통해 해외 환자 입국 시 이송서비스 및 통번역 서비스를 한 번에 제공한다. 또 메디컬지원서비스의 운영 방식을 의료기관별 개별 이용에서 통합 운영으로 변경해 이용객과 의료기관의 편의를 도모했다.

외국인 환자가 입국하는 인천공항과 인천항 여객터미널 등에 ‘인천메디컬지원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시는 이 센터에서 의료관광 상담, 메디컬 지원 서비스 종합 상담, 외국인 환자 유치기관 서비스 안내 등을 지원한다.

◇관광상품·무비자 입국 활용…“지방으로 오세요”

▲불가리아 기자협회 대표단이 2023년 9월 20일 오후 광주 서구 뷰티스맑은피부과를 찾아 신삼식 광주권의료관광협의회장의 진료를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지역에선 외국인 환자를 유인할 만한 관광 요소를 강화하고 있다. 외국인 의료관광객 방문 수 비수도권 1위를 차지한 부산시는 의료서비스에 웰니스 관광을 입혔다. 진료를 목적으로 지역을 찾은 외국인에게 치유 목적의 관광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웰니스란 웰빙(Well-being)에 건강(Fitness)을 결합한 개념으로, 웰니스 관광은 건강의 회복과 증진을 도모하고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관광 프로그램이다.

부산시는 우수 의료 인프라에 웰니스 관광을 접목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웰니스·의료관광 융복합 클러스터 2차년도 사업 성과평가’에서 ‘의료관광 중심형’ 분야에서 1위로 선정됐다. 시가 진행한 △웰니스 관광지 10개 선정 △외국인 환자 웰니스관광 연계 관광상품 제안 모듈 프로그램 개발 △외국인 환자 약 3만 명 유치 △웰니스·의료관광 전문인력 양성 △지자체 최초 부산의료관광비즈니스센터 개소 등을 인정받았다.

시 관계자는 “특히 의료관광과 웰니스 관광을 결합한 ‘힐링데이 인 부산’, ‘원데이 의료웰니스 힐링투어’ 등 10건의 융복합 상품이 부산을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에게 인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간 ‘치료 목적 방문객의 관광 연계’ 유치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관광·전시복합산업(MICE) 방문객을 대상으로 한 치료 연계 마케팅도 병행해 부산을 의료관광 허브 도시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시는 ‘2025 부산의료관광 활성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특수목적 관광도시(SIT) 조성을 목표로 △의료관광 유치기반 강화 △융복합 차별화 △타깃 브랜딩 등 세 가지 전략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국비를 포함한 30억 원을 투입해 웰니스·의료관광 체험단 초청 홍보 팸투어를 진행하는 한편 전문인력 양성, 국제의료 인증기관 지원, 통역 및 차량 서비스 제공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제주도는 무비자 입국 제도를 활용해 외국인 환자 유치에 힘쓰고 있다. 중증 치료나 고난도 수술보다는 성형, 피부시술 등을 여행과 결합해 의료관광객의 방문을 이끈다는 전략이다.

도 관계자는 “2023년 대비 지난해 외국인 환자 중 중국인 환자의 비율이 많이 늘었다”며 “중국 정부가 한국행 단체관광을 재개하면서 지난해에 자연스럽게 제주에서 미용 시술과 관광을 즐기려는 의료관광이 활성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중국 관광객은 현재 제주도에만 비자 없이 30일간 체류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도와 제주관광공사는 해외 현지 의료기관 혹은 의료관광 전문 여행업체 등이 참여하는 설명회나 세미나, 박람회 등에 도내 의료기관과 함께 참여해 해외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고 있다. 도는 외국인 환자 유치 확대를 위해 병원유치기관 및 의료기관, 유관기관과 소통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웰니스·의료 융복합 클러스터 지정…“지역 특화 상품 개발 필요”

▲웰니스 관광·의료관광 융복합 클러스터 지정 현황/사진제공= 문화체육관광부
정부는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각각 지정해 운영하던 웰니스 클러스터와 의료관광 클러스터를 하나로 합쳐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의 의료 및 관광 자원을 결합해 외국인 환자 유치에 적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다.

2023년 정부는 ‘웰니스·의료 융복합 클러스터’ 공모를 진행, 7개의 광역지자체(인천, 대구·경북, 부산, 강원, 전북, 충북)를 선정했다. 2025년까지 3년간 한 지자체 연간 5억원씩 총 30억원이 지원된다.

각 지자체는 지역이 지닌 특수성을 활용한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다. 대구·경북은 두 지자체가 협력해 대구의 성형·피부 의료기술과 경북의 소백산, 백두대간 등 자연·숲 웰니스 관광을 연계한 특화 관광상품을 발굴했다. 또 웰니스·의료관광 전용 카드, 의료 특화 해외홍보 거점을 운영 중이다.

전북은 진안, 임실, 순창 등을 중심으로 웰니스관광 거점 5개소를 구축하는 동시에 지역 전통문화와 양·한방 협진을 통한 만성질환 관리를 연계한다.

충북은 충주·제천의 ‘깊은산속옹달샘’과 ‘리솜포레스트’ 등 선도적인 웰니스 관광지를 중심으로 양·한방 통합진료를 연계한 ‘검진~치료~치유~휴양’ 등 융복합 체계를 갖춘다.

장태수 단국대학교 보건행정학 교수는 “초기 의료관광은 중증 환자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진료에 웰니스적 요소를 결합한 것이 세계적인 트렌드”라며 “노화 예방, 만성질환, 질병 전단계의 사람이 치료를 받고 관광을 즐기는 것이 웰니스 의료관광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모든 지자체가 동일한 의료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지역이 보유한 의료인프라와 특색 있는 웰니스 자원을 결합해 지역특화형 웰니스 의료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제도 개선·다양한 관광 프로그램 필요”

우리나라가 더 많은 의료관광객을 유치하려면 비자 발급 기준을 보다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의료관광비자(C-3-3)는 대부분 90일 미만 단기 체류만 가능하며, 1년 이내 체류가 가능한 치료요양비자(G-1-10)는 발급 요건이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외국인 환자가 입국하려면 의료관광비자(C-3-3) 또는 치료요양비자(G-1-10)가 필요한데, 불법체류 우려 등으로 인해 비자 발급에 어려움이 있다”며 “전자비자 신청 권한을 가진 유치기관과 보호자 범위를 확대하고, 재정 능력 입증 서류 제출 의무를 면제하는 등 유입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관광 주요국은 보다 유연한 비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태국은 2022년부터 외국인 환자 본인과 동반 가족 3명에게 최대 1년간 체류 가능한 의료관광 비자를 제공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의료 목적 방문 시 별도의 비자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환자 유치 확대를 위해 의료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진료 중심의 단기 방문에 그치지 않고 관광과 장기 체류를 연계한 통합형 의료관광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환자 대부분은 성형외과나 피부과 시술을 목적으로 방문하고 있다”며 “이 분야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지만, 더 많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려면 다른 분야의 의료 기술을 알리는 전략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더욱이 의료에 관광을 접목한 프로그램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기존에 있는 지자체의 관광 프로그램과 연계하거나, 의료 외에 다양한 요소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방식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외국 VIP 등이 참여할 수 있는 별도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의료관광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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