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산갓김치는 이름만 들어도 침샘을 자극할 정도로 강한 개성과 중독성을 자랑한다. 갓 특유의 알싸하고 톡 쏘는 맛이 입안을 감돌며, 씹을수록 감칠맛이 깊어진다. 일반적으로 쓴맛은 ‘독의 맛’으로 몸이 인식해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돌산갓김치는 이 쓴맛을 오히려 미각적 매력으로 승화시켰다. 에스프레소나 카카오 함유량이 높은 다크 초콜릿처럼 ‘어른의 맛’으로 불린다. 경험이 쌓여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돌산갓김치의 매운맛과 쓴맛의 비밀은 ‘시니그린(sinigrin)’이라는 성분에 있다. 씹을 때 분해되면서 강한 매운맛을 내는 이 성분은 항산화 및 항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돌산갓김치는 시니그린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건강식으로도 주목받고 있으며, 발효 과정에서 유산균과 결합해 더욱 깊은 풍미를 만들어낸다. 덕분에 저장성이 높고 시간이 지나도 쉽게 물러지지 않는 장점을 가진다.
그렇다면, 돌산의 갓김치는 어떻게 전 국민의 입맛을 중독시켰을까? 여수시에 따르면, 과거 돌산섬 주민들만이 알고 즐기던 돌산갓김치가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데는 두 번의 중요한 분기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1984년 돌산대교의 개통이다. 이 다리 덕분에 돌산과 육지가 연결되면서 갓김치가 여수의 재래시장과 식당가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1991년 전라남도 특산품 지정과 함께 여천군 지역특산품으로 선정된 일이다. 이후 본격적인 브랜드화와 생산 확대가 이뤄지면서, 돌산갓김치는 명실상부한 여수의 대표 먹거리로 자리 잡게 됐다.

돌산섬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채소 주산단지로 활용하던 곳이다. 해방 이후 일본에서 들여온 ‘만경평경대엽고채’ 품종이 돌산읍 우두리 세구지마을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이후 재래갓과 자연 교배되면서 지금의 돌산갓이 탄생했다. 이러한 자연적인 품종 개량 덕분에 돌산갓은 섬유질이 적고 부드러운 특성을 가지게 됐다.
돌산 지역의 독특한 기후와 토양도 돌산갓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연평균 기온이 비교적 따뜻하고,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한파가 심하지 않아 갓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배수가 뛰어난 사양토와 식양토가 풍부해 갓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자연조건 덕분에 돌산갓은 아삭한 식감과 톡 쏘는 맛이 더욱 살아난다. 하지만 품종이 고정되지 않아 상품의 균일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따라 여수시는 돌산갓김치를 브랜드화하기 위해 자체 육성 품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1년부터 품종 개발을 시작했다.
전국 각지의 재래종과 일본 및 국내에서 판매되는 시판종을 조사해 돌산갓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개체를 선발하고, 교배를 통해 품종화 가치가 있는 유전자원을 확보했다. 이후 노지 재배 실증시험과 균일성 검정을 통해 고정도와 안정성을 확인했다. 돌산갓의 자체 품종 개발 목표는 매운맛이 적고 부드러우면서도 김치를 담갔을 때 감칠맛과 특유의 향을 내는 품종을 선발했다. 지금까지 개발된 자체 품종은 10종으로 국립종자원에 품종 등록까지 완료했다.

“한 번 맛보면 눈썹을 찡그리고, 두 번 씹으면 눈물을 글썽인다. 맵고도 달콤한 그 맛은 계피와 생강도 무색하게 만든다.”
15세기 시문선집 <동문선(東文選)>에 등장하는 이 시구는 돌산갓김치의 독특한 풍미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갓김치의 맛은 현대 미식 트렌드 속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최근 돌산갓김치는 다양한 요리에 접목되며 팔방미인과 같이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갓김치 볶음밥, 갓김치 찜, 갓김치 샐러드는 물론, 삼겹살이나 장어구이 같은 기름진 음식과도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하며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시는 이러한 돌산갓김치의 가능성에 주목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2021년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사업인 ‘농촌융복합산업지구 조성사업’에 선정되면서 생산, 가공, 유통, 관광을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또한, 2022년에는 ‘돌산갓청년단’을 모집해 돌산갓을 활용한 디저트 개발을 지원하고, 지역 외식업체와 협업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다. 그 결과 탄생한 신메뉴로는 △갓쿠키 △갓고로케 △갓초콜릿 △갓라떼 △갓시래깃국 등이 있다.
또한, 여수시는 돌산갓김치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2025 갓섬피크닉’ 축제를 개최하고, 올해 6월부터 자유학기제 및 체험 관광 프로그램을 도입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돌산갓김치를 단순한 1·2차 산업에서 벗어나 관광과 체험이 결합된 새로운 지역 특산물로 발전시킬 방침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