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자치분권 명시해 지자체 존립 보장해야"

[the Leader 심층리포트] 헌법에 '지방분권' 담아라(下)

머니투데이 더리더 신재은 기자 2025.04.02 09:31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탄핵사태 이후 ‘87년체제의 한계’ 극복을 위한 개헌 필요성이 봇물처럼 터져나온 가운데 ‘지방분권’ 강화를 주 내용으로 한 개헌론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일선 지자체장들이 발표한 ‘지방분권 개헌안’은 지방정부의 권한 강화와 자치재정 확대 등으로 요약된다. 개헌안의 세부 내용과 실효성을 짚어봤다.
▲대한민국헌정회, 지방분권전국회의 등 7개 단체가 주최하고 부산시민단체협의회 등 9개 단체가 주관한 ‘헌법개정 부산 결의대회 및 국민주도 개헌 토크쇼’가 지난 3월 20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사진=뉴시스

일선 지자체장들은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자율성을 높여 지방의 상황에 맞는 창의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정부에 재정권을 비롯한 자치입법권·자치행정권·자치조직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3월 4일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는 자체개헌안에서 지방정부가 실질적인 자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자치입법권’을 명문화하고, 주택·교육·환경·지역계획 등 분야에서 필요한 경우 법률과 다른 내용으로 자치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자치계획권’ 신설을 주장했다.

◇“헌법에 자치분권 명시해 지자체 존립 보장해야”
전문가들은 우리 헌법에서 지방자치에 관한 내용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시도지사협의회가 2022년 9월에 발간한 분권레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헌법 중 지방자치 관련 조문은 제117조, 제118조뿐이다. 반면 독일 기본법은 전체 조항 중 44.2%가 지방자치와 관련된 조항이다.

이에 대해 조성호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분권형 헌법개정’ 보고서를 통해 “단 2개의 조문만으로는 지방자치와 분권에 필요한 각종 제도적 수요를 맞추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개헌을 통해 지자체 존립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우리나라 헌법의 조문을 보면 지자체 권한의 대부분을 법률로 규정할 수 있게 했다. 명칭 또한 지방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로 지칭돼 있고, 주어진 권한도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로 한정돼 있다. 지방정부에 조례제정권이 있지만 ‘법령의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에 따라 개헌을 통해 상위법인 헌법에 ‘대한민국은 자치분권국가다’라는 내용을 명기하고 지방의 권한 확대의 근거로 삼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프랑스는 2003년 헌법 개정을 통해 헌법 제1조1항4문에 “프랑스의 조직은 분권화된다”라는 문구를 신설해 지방분권을 국가조직원리로 규정한 바 있다. 또 제72조 제2항에서 권한배분 원칙을 명시해 “지방자치단체는 지방 차원에서 실행할 수 있는 권한 전반에 관한 결정권을 행사한다”라고 규정하며 총체적 권한이양 방식을 헌법에 명시했다.

한국지방자치학회 차기 회장으로 선출된 이향수 건국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현행 헌법에 명시돼 있는 ‘지방자치단체’라는 표현만 봐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결정을 집행하는 기구라는 의미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방의회가 지역의 현안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례를 제정하려고 해도 상위법에 저촉돼 현장에 맞는 조례를 제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조례로 권한 위임·특자도 설립…“권한 이양은 제한적”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2023년 4월 25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기자회견장에서 전북 특별자치도 비전, 특례 브리핑을 열고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방자치 30년 동안 진보와 보수 진영은 균형발전과 지방자치 등을 위해 법 제정과 기구를 만들어왔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연방제 수준에 버금가는 자치분권’을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그 결과 2020년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을 통해 주민의 권리를 확대하고 지방의회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는 제도적 토대가 마련됐다. 대표적으로 지방의회는 2인 1명의 정책지원관제가 신설되고 지방의회의 인사권이 독립됐다. 이 밖에도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신설해 국가균형발전이나 자치분권에 관한 중요한 정책은 대통령과 중앙부처 장관들, 지방의 대표들이 논의하게 했다.

윤석열 정부는 강력한 지방시대 개막을 알렸다. 자치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합한 ‘지방시대위원회’를 설립해 효율적인 지방분권 정책을 추진했다. 지방시대위원회는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수립, 지방에 기회발전·교육·문화특구를 지정해 지원하고 있다.

일선 지자체는 자율성 확대를 요구한다. 2022년 10월 열린 제2차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김영록 전라남도지사는 “현재는 법령의 위임범위 내에서만 조례 제정이 가능해 현장에 맞는 조례 제정이 어렵다”며 “법령에 위배되지 않고 법령의 취지에 부합한다면 위임근거가 없더라도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해달라”고 말했다.

균형발전을 위해 특별자치도가 생겨나고 있지만 권한 이양은 제한적이다. 지난해 12월 시행된 전북특별법을 보면 입법권이 국회에 있는 특례 창설이 절반을 넘는다. 시행령이나 법률의 조례 이양 비율도 10%가량에 머물고 있다. 특히 제주특별자치도나 세종특별자치시처럼 국가 예산의 일부를 자율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정특례가 담기지 않았다.

허강무 전북대학교 글로벌융합대학 교수는 지난 3월 21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 1주년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여전히 많은 권한이 중앙에 있어 권한 이양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지방의회 전문성 강화 위해선 “자치조직권 보장 필요”

일선의 지방의회는 ‘자치조직권 자율화’를 주장한다. 2020년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을 통해 지방의회는 인사권 독립과 2인 1명 정책지원관제 도입을 획득했지만 예산편성권과 자치조직권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장에 귀속돼 있다.

지난해 3월 행정안전부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기구와 정원기준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을 통해 인구 규모에 따른 국장급 기구 설치 제한을 폐지하는 등 지자체의 자치조직권을 완화했다. 하지만 여기에 광역의회의 국장급 기구 설치는 빠졌다.

일선의 지방의회는 현행 대통령령이 의회사무기구 설치기준 및 의회사무기구장의 직급을 의원정수와 인구수로 제한하고 있어 의회와 집행기관 간 직급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민홍일 전남 해남군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해남읍, 마산, 산이)은 지난 2월 21일 열린 제342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최근 개정된 지자체의 행정기구와 정원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지자체의 국장급 기구 설치를 자율화하고 부단체장의 직급을 상향 조정함으로써 지방의회 공무권 간 직급 불균형이 발생하도록 해 지방의회의 실질적 견제와 감시 기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향수 교수는 “지역민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존재는 지방의회다. 이 지방의회에 양질의 인력이 올 수 있게 하려면 직급체계를 개선하는 등의 유인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가 처한 지역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권한을 줄이고 지방정부가 자율성 있게 현안을 해결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그 시작이자 법률적 근거가 지방분권형 개헌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jenny091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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