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생존의 조건, 청년을 잡아라…문제는 '일자리'

[심층리포트①]사업체 절반 수도권 집중, 100대 기업 본사는 91%나 몰려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25.03.05 09:34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청년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2052년에는 전국 청년의 58%가 수도권에서 거주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모일수록 저출산이 가속화하고, 비수도권의 중·장기적 성장을 저해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머니투데이 <더리더>에서는 청년이 지방을 떠나는 현상을 짚어보고 대책을 알아본다.
▲서울역 열차 승강장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서울과 경기,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면적은 대한민국 국토의 11.8%에 불과하다. 이 지역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다. 1960년대부터 산업이 발달하면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사람이 모이는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이 진행됐지만, 수도권 집중 현상은 최근 4년 사이 더욱 심화됐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2022년 발표한 ‘인구감소지역의 인구변화 실태와 유출인구 특성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49.0%였던 수도권 인구 비율은 2017년 49.6%로, 8년 동안 0.6%p 늘었다. 하지만 2017년 이후로는 매년 0.2%p씩 늘어 2021년엔 수도권 인구 비율이 50.4%를 기록했다. 2018년에서 2021년까지 4년 동안의 수도권 인구 비율 상승 폭이 이전 8년간 상승 폭에 비해 2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수도권 집중 현상의 주된 원인을 ‘청년층(만 20~30대)의 지역 이동’으로 보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월 발표한 ‘2024년 국내 인구이동 통계’에 따르면 서울·경기·인천 수도권으로 향한 20~29세 청년은 3만6000여명이었다. 반면 경남의 경우 같은 연령대 인구 1만1183명이 빠져나갔다. 경북에서는 7050명이, 전북에서는 6908명이, 전남에서는 6345명이, 대구에서는 6277명이, 부산에서는 4597명의 20대 청년이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서 현재 우리나라 청년 중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7월 발표한 ‘2024 수도권 청년층의 삶’에 따르면 전체 청년 인구(15세~39세) 중 수도권에 거주하는 청년이 53.9%에 달했다. 반면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청년 인구 비율은 46.1%였다.

앞으로도 수도권에 더 많은 인구가 집중돼 2052년에는 청년 인구의 58%가 수도권에 거주한다는 조사도 있다. 행정안전부 소속 민간 자문위원회 ‘미래지향적 행정체제개편 자문위원회’가 지난 1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2052년에는 청년인구의 58%가 수도권에 거주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시내 한 대학교 채용게시판에 관련 공고가 게시돼 있다./사진=뉴시스
◇사업체 절반이 수도권에…일자리 찾아 떠나는 청년들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향하는 이유는 일자리 문제가 크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행정안전부,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사업체의 49.1%에 달하는 약 301만 개가 수도권에 자리 잡고 있다. 사업체 중에서도 본사·본점 등은 수도권에 전체의 55.9%가 소재하고 있다.

더불어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도 수도권에 모여 있다. 부산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매출 100대 기업 중 91%가 본사를 수도권에 두고 있고, 시총 100대 기업 중 83%가 수도권에 있다. 매출 1000대 기업으로 기준을 넓혀도 전체의 73.4%가 수도권에 있다. 아울러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계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21년도 기준 전국사업체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종사자 300명 이상 사업체 4479개 가운데, 58.3%에 달하는 2612개는 수도권에 위치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비수도권 지역의 경우 지역 주력산업이 침체기를 겪으면 청년 유출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남권(부산·울산·경남)의 경우 조선업 등 지역 주력산업이 침체를 겪으며 20대 인구 유출이 갈수록 늘고 있다. 동남지방통계청이 지난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16.2%였던 청년인구 비중이 2010년 14.9%, 2022년 13.5%로 지속해서 줄었다. 동남권 청년의 전출 사유는 ‘직업’이 64.3%로 가장 많았다.

◇“수도권 집중 지속되면 국가 전체에 악영향”

문제는 대다수의 기업들이 앞으로 지방으로 이전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인협회 국제경영원이 지난 2022년 매출액 1000대 기업을 대상(152개사 응답)으로 ‘기업의 지방 이전 및 지방 사업장 신증설에 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가운데 89.4%는 이전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지방 이전의 장애요인으로는 교통·물류 애로와 인력 확보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비수도권 청년들을 수도권이 빨아들이는 ‘수도권 일극 체제’는 한국 전체의 저출산을 심화시키고 비수도권의 중장기적 성장을 저해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층의 수도권 이동이 지금처럼 유지되면 한국 인구가 현재보다 703만 명 줄어드는 것으로 예측했다.

수도권 청년 쏠림이 비수도권의 성장 동력도 끌어내린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비수도권에서 대졸 이상 청년층의 순유출률이 1%p 오르면 향후 5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이 0.05%p에서 0.06%p 하락한다고 분석했다.

차미숙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수도권의 집값이 높고 살기 바쁘니 아이도 낳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수도권 집중 현상을 해결하지 않고는 지역균형발전도 이루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만큼, 정책도 수도권 위주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 연구위원은 “수도권에 인구 절반 이상이 살기 때문에 국가적인 정책을 만들 때에도 수도권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큰 대응을 하지 않으면 수도권 집중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시민들이 노을을 감상하고 있다./사진= 뉴시스
◇지역 살수록 행복·만족도 높아…‘청년 정주하는 지역 만들어달라’ 목소리도

지역을 떠나 수도권으로 가는 청년은 많지만, 만족도는 지역에서 거주하는 청년들이 더 높았다. 국회 미래연구원이 지난 2023년 발간한 보고서 ‘대도시 청년들의 삶의 만족도: 7대 광역시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청년의 일에 대한 만족도가 부산이 7.65점으로 7대 광역시 중에서 가장 높았다. 반면 인천 청년들의 행복감(6.14점)이 가장 낮았다. 아울러 서울, 인천의 수도권 대도시 청년층의 우울감, 외로움의 증상을 경험하는 빈도가 다른 지역들에 비해 높은 편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천,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들의 동네환경 만족도가 지방 대도시 청년들의 만족도 수준보다 낮게 나타났고, 수도권의 높은 주거비용에 비해 청년들의 기대수준에 못 미치는 여건이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삶의질그룹장은 “수도권으로 향하는 청년들이 자의적으로 이동한다기보다 어쩔 수 없어서, 기회를 찾기 위해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조사”라며 “수도권에서 거주하는 청년 삶의 만족도가 높지 않은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진행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만족도를 높인다고 해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는 청년이 줄어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그럼에도 각 지역에서는 청년이 떠나는 이유와 삶의 질 제고 전략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 인구 수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전남 순천시의 청년 연합회는 지난해 4월 ‘지역을 떠나기 싫다’며 기자회견을 개최한 바 있다. 이들은 시에 각종 정책을 제안하고, ‘청년이 떠나지 않는 시’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차 연구위원은 “현재로서는 지역이 수도권만큼의 인프라를 제공하지 못하는 건 사실”이라며 “지역에서는 우선 체험위주의 정책을 진행해 ‘지방도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마을을 조성하는 등 경험을 해보고 지역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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