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쓴 수필이 처음 발표된 것은 그의 나이 50세 때인 1957년이었다. 그 작품은 〈현대문학〉에 실린 〈측상락〉이었다. 한국 수필문학에서 일가를 이룬 윤오영의 데뷔작이라는 점에서 이 수필에 관심을 둘 만하다.
그는 이 작품을 “잠시나마 안정이 그립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어 “하도 숨가쁜 세상이니 흰 구름 뭉게뭉게 일어나는 깊은 산, 고요한 절에서 목탁을 울리며 사는 승려의 생활도 이 세상에서는 벌써 신화가 되고 말았다”면서 “강낭콩같이 푸르고 맑은 호숫가에 일간죽을 드리우고 고기와 벗을 삼아 짙어가는 저녁노을에 물들어보는 것도 태곳적 꿈인 양 싶다”고 아쉬워한다. “구태여 생생한 현실을 등지고 도피의 생활을 추구하랴마는, 진실로 너무나 몸 둘 곳이 없이 숨가쁘기 때문이다”라고 토로한다.
차분한 인트로(도입부)다. 그는 다음 문단에서 현대인의 불안과 초조를 서술한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독자가 궁금해할 즈음, 본론을 꺼낸다. “그러나 나에게는 한 복지(福地)가 남아 있다”면서 “변소에 문을 닫고 용변하는 시간만은 완전히 이 세상과 절연된 특권을 향유한다”고 말한다.
어럽쇼. 체면을 중시하는 교사가, 당시로서는 지긋한 나이에 대변을 누는 이야기를 데뷔 작품의 주제로 잡다니! 이쯤에서 독자는 제목의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측상락’은 한자로 廁上樂이다. 廁은 측간, 요즘 말로는 화장실을 가리킨다. 그가 쓴 제목은 우리말로 풀어 쓰면 ‘화장실에서 누리는 기쁨’ 정도가 된다.
수필을 쓰거나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 작품과 윤오영에게서 배울 점은 글감을 찾아 정하는 파격이나 과감함이 아닐까 싶다. 점잖은 언행에서 벗어나기를 꺼리는 교육자인데도 그는 ‘용변의 즐거움’을 주제로 잡았다. 그가 이 글감을 택한 것은 ‘다들 화제에 올리기 주저하지만 화장실이 주는 평안함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한다’는 판단에서 였으리라
◇파격적이라도 독자 호응 얻을 수 있다면
가히 수필의 시대라고 할 정도로 에세이가 관심을 받고 있다. 서점의 주요 자리에 수필 매대가 넓게 차지하고 있다. 인문으로 분류되는 매대에는 며칠마다 새로운 글쓰기 책이 등장한다. 그중 대부분은 수필 작법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수필집을 내거나 내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이에 맞추어 수필 쓰는 방법을 공유하는 책도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리더에게 수필은 다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조직의 활동을 알리기에 좋은 장르다. 활자매체들은 수필 코너를 운영하고, 필진에게 일정 기간 연재할 기회를 제공한다. 주제의 범위를 조직에서 찾는다면 선택의 자유도가 높지 않다. 그러나 개인적인 주제로 잡을 수도 있다. 그럴 때에는 한 번쯤 파격적인 주제를 써도 된다.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 때면 참고할 글 중 하나가 바로 윤오영의 데뷔작이다.
‘주제 선정’에 이 글 분량의 3분의 1 이상을 할애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음식 맛의 절반 이상을 식재료가 좌우하는 것처럼, 수필 멋의 절반 이상이 글감에 달려 있다. “다른 이들도 그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내용, 누구나 금방 떠올릴 수 있는 뻔한 생각을 가지고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작가 전상국이 〈전상국의 즐거운 마음으로 글쓰기〉에서 내놓은 조언이다. 부연하면, 이미 글로 많이 다뤄진 경험이나 생각은 내가 아무리 공들여 표현하더라도 신선도가 떨어진다. 나만의 경험이나 나만의 생각이면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주제면 좋다. 누구나 공감할 주제인데 금기의 영역에 있다고 여져지는 것도 괜찮다.
당신이 활자매체에 수필을 정기적으로 쓰게 됐다고 하자. 또는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꾸준히 쓰고자 한다고 하자. 이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안테나를 세우는 것이다. 그 안테나는 글감이라는 전파를 포착하는 역할을 한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을 장면과 말, 글이 이제는 수필의 글감이라는 관점에서 처리된다. 보고 듣는 대상이 글감을 연상시키는 순간은 스쳐지나간다. ‘아’ 하고 머릿속에서 반짝 불이 들어온 다음 금세 잊힌다. 그래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수시로 메모한다.
주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만 고집할 이유는 없다. 여러 재료의 새로운 조합도 훌륭한 요리법이다. 한국에서 많이 읽힌 에세이스트 이어령은 같은 글감도 다르게 다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오그래피〉에 실린 대담에서 자신은 “서로 다른 현상에서 같은 점을 찾고, 같은 현상에서 다른 점을 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공통점 찾기는 이야기와 글의 익숙한 착안점이다. ‘A와 B의 공통점’이라는 형식인 유머를 다들 여럿 접했으리라.
◇비교 기법과 글 도입부의 유형
윤오영의 수필에도 비교한 작품이 있다. 〈곶감과 수필〉이다. 그는 “소설을 밤에, 시를 복숭아에 비유한다면 수필은 곶감에 비유할 것이다”라면서 글을 연다. 그는 “소설이나 시는 잘못되어도 그 형태로 보아 소설이요 시지 다른 문학의 형태일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문학 수필과 잡문은 근본적으로 같지 않다고 주장한다. 감의 껍질을 벗기고 말려야 곶감이 되는 것처럼, 문장도 여러 번 손질해야 수필이 된다고 설명한다.
내가 쓴 수필 중에도 그런 종류가 있다. 제목은 TV사회자와 치과 의사’다. 이 글은 “치과의사와 TV방송 진행자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둘 다 자신이 바로 뒤에 할 일을 알려준다”고 설명한다. TV사회자와 치과의사의 공통점과 그로부터 얻는 시사점은 위 제목으로 해당 수필을 검색하면 읽으실 수 있다.
공통점 찾기는 적절할 경우 재미와 더불어 두뇌 스트레칭에서 오는 시원함도 선사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갖다 붙인, 견강부회가 되고, 독자는 고개를 갸웃하거나 젓게 된다.
윤오영은 수필을 문학의 한 장르로서 연구했다. 연암 박지원 등의 문장을 분석했고 수필 문학에 이론적으로도 접근했다. 따라서 수필 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이 장르에 심혈을 기울인 윤오영의 작품을 작가의 관점에서 살펴볼 만하다.
글감 다음에 신경 쓸 대목이 제목과 인트로다. 윤오영의 수필 제목은 ‘달밤’ ‘소녀’ ‘붕어’ ‘촌가의 사랑방’ 등 한두 단어가 많다. 주제나 소재를 가리키는 역할 정도에 그친다. ‘측상락’은 예외적인 제목이다. 그의 인트로에는 당연히(!) 배울 점이 많다. 도입부 첫 문장을 읽어보자.
먼저 풍경이나 날씨, 상황을 독자와 나누는 유형이다. 단편소설과 비슷한 기법이다. “고개 마루턱에 방석소나무가 하나 서 있다.” “아까부터 찌는 듯한 날씨에 검은 구름이 몰리더니 마루턱에 오자 금방 비가 쏟아질 듯했다.” “전등은 나가고 훤한 달빛만이 영창에 어리는 외로운 밤이다.”
움직이는 상황으로 시작하는 종류도 있다. “찰밥을 싸서 손에 들고 새벽에 문을 나선다.” 예화로 시작하기도 한다. “칼라일과 에머슨이 처음 만나 인사한 뒤, 한 삼십 분 잠자코 앉았다고, “오늘은 재미있게 놀았습니다.”하고 헤어졌다.”
나라면 권하고 싶지 않은 첫 문장을 윤오영도 썼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는 가끔 침울증에 빠지는 수가 있다.” “내가 잠시 악향해서 있었을 때 일.” 인트로 또는 첫 문장은 독자를 글로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 바로 상황이나 사건으로 시작하는 편이 더 낫다. 또 ‘나’로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다.
수필에도 전개 기법이 구사된다. 수필을 읽을 때면 작가가 내용을 어떻게 펼쳐놓았는지 방법을 눈여겨보기를 권한다. ‘측상락’은 이를테면 기승전결의 전개를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수필 장르의 덕목으로 진솔함이 꼽힌다. 자신이 직접 보고 스스로 생각한 바를 담백하게 담은 작품이 수작으로 평가된다. 기본은 문장이다. 남의 문장과 표현을 가져다 활용하거나 실제 현상이 아니라 관념 속 모습을 서술할 경우 진솔함에서 멀어진다.
윤오영의 문장에도 상투적이고 틀린 표현이 끼어들었다. 앞에 인용된 ‘강낭콩같이 푸르고 맑은 호숫가’가 그런 사례. 강낭콩의 색은 푸른빛과 반대인 붉은 계통이다. 왜 강낭콩을 푸른 색이라고 썼을까? 푸른 물결을 강낭콩과 연결한 문인은 수주 변영로.
그는 1922년 발표한 〈논개〉에서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고 노래했다. 수주는 분명 ‘강낭콩꽃’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나 이후 ‘강낭콩보다 푸른’이나 ‘강낭콩처럼 푸른’이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게 됐다.
“수필가도 다른 장르의 작가처럼 습작과 문장 수련이 필요하다.” 윤오영의 지론이다. 수필 쓰기는 그렇게 배우고 익힐 가치가 크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