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늘면 덜 받는’ 5년차 비효율 기금

[심층리포트②]기존 정부 재원과 겹쳐 혼란만 초래, 공정한 심사 우선돼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25.02.04 10:44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지난해 8월 ‘2024 시도지사 정책컨퍼런스’가 열렸다./사진=뉴시스
지방 도시 대부분은 인구 소멸을 걱정하고 있다. 정부도 10년 동안 10조원을 투입하며 지역 인구를 늘리기 위해 안간힘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정책 타당성이나 실현가능성을 판단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기초지자체는 투자사업 평가결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받고, 광역단체는 인구감소지역 비율 등에 따라 기금을 배분받는다.

일선의 지자체들은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받기 위해 최우선 목표를 인구 증대로 정하고 다양한 사업들을 제시한다. 지난해 지방소멸대응기금 집행 우수 지역으로 남원·보령시, 고흥·단양·신안·청도·하동·횡성군과 관심지역의 우수지역인 김천·포천시 등이 선정됐다. 우수 지자체로 선정되면 두 배가량 더 많은 지원금이 지급된다.

전문가들은 지방소멸대응기금이 제대로 활용되려면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우선 우수 정책을 펼친 지자체를 대상으로 선별적으로 지원금이 지급되는 구조는 지자체 간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인구 증가를 위한 중앙정부의 행정·재정 지원이 다양한데, 지방소멸대응기금까지 더해져 비효율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2022년부터 시행된 지방소멸대응기금 정책이 인구 증가에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6일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지방소멸대응기금 관련 논문에 따르면 지방소멸대응기금과 인구 재성장 영향을 분석한 결과 두 요인 간 유의한 연관성이 관측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충남 예산군, 인천광역시 동구 두 곳을 선정해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실효성을 분석했다.

◇“지자체 경쟁 부추기는 구조…자율성 보장해야”

지방소멸대응기금이 지방교부세, 지방세 등 기존 정부 재원과 겹쳐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운용 현황과 개선방안’에서는 ‘기금이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 재원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보고서에는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다수의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국가재정의 비효율성과 지방자치단체에도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도 했다.

높은 평가를 받아야 많은 지원금을 끌어올 수 있는 구조는 지자체 간 ‘경쟁’을 촉발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이 기존 재원과 다른 점은 중앙정부에서 지자체 정책을 평가해 지원금을 차등 배분한다는 것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지자체의 제안서를 토대로 정부에서 4단계(S·A·B·C등급) 평가를 진행해 지원금을 선별적으로 지급했다. 올해부터는 2단계(우수·양호)로 축소된다. 평가에 따라 최고와 최저 배분 금액 최대 차이는 80억원에서 88억원으로 늘어난다.

박관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정책연구센터장은 “기금을 받기 위해 지자체는 사업계획을 세워야 하고, 정부에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지방세나 지방교부세 등 인구 소멸을 위한 정부 재원에 비해 절차가 복잡하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정책이어도 심사해야 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구조”라며 “이런 구조는 지자체가 스스로 정책을 추진하는 데 제약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평가를 통해 기금을 배분한다면 제대로 된 평가 기준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정부 평가로 지자체가 등급을 받게 되고, 지자체 담당자들은 사실 등급 판정의 기준을 알 수 없다”며 “결국 주는 대로 받는 구조”라고 말했다.

▲전남 고흥 혁신밸리에서 청년이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다./사진제공=전남도
◇“꼭 필요한 사업보다 평가에 유리한 사업 제안”

지자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단기적 성과 위주의 정책을 제안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차미숙 국토연구원 선임위원은 “지역은 다양한 이유로 인구 위기를 맞고 대응 방안도 지역마다 다르다”며 “그러나 기금을 집행하는 평가지표는 획일화돼 있어 지자체에서는 가급적 목적에 맞게 사업을 제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차 선임위원은 “지자체 입장에서는 인구 증가나 국가균형개발에 꼭 필요한 사업보다는 평가에 유리한 사업을 찾게 된다”며 “막상 집행하려고 하면 꼭 필요한 사업이 아닐 수도 있고, 추진이 쉽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방소멸대응기금이 지급돼도 집행률은 60%가 넘지 않는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3월 31일 기준으로 2022년분 지방소멸대응기금 집행률은 59.8%에 불과하고, 2023년분 지방소멸대응기금 집행률은 43.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자체와 의회에서도 지방소멸대응기금의 배분 기준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지자체가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북도의회에서는 지난 2022년 '지방소멸대응기금 확대 편성 및 운용계획 재조정 촉구 건의안'을 발의, 정부의 지방소멸대응기금 분배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전남 완도군에서도 지방소멸대응기금 제도가 재조정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건의문을 지난해 2월 발표했다. 지방소멸대응기금 체제가 장기적인 투자사업 추진을 어렵게 하고 배분 격차의 심화로 지역 간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김양훈 완도군의회 의장은 <더리더>와의 통화에서 “인구감소를 겪는 지자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데 정부 평가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지역과 맞지 않은, 평가를 잘 받기 위한 정책을 제시하기도 한다”며 “이 같은 정부 주도의 심사 방식은 지역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자율성을 저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금을 균등하게 배분하거나 정량평가 비중을 높이는 등 배분 방식을 재조정해야 한다”며 “공정한 심사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평가 시에는 그동안 기금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지역에 더 많은 기금이 배분될 수 있도록 집행실적과 전년도 성과평가 반영 비중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방시대 정책과 사업 간 시너지 유도를 위해 주요 정책사업과의 연계 여부를 반영했다고 했다.
▲전남 나주시가 농촌 빈집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모습/사진제공=나주시
◇“소멸돼야 지원받는 아이러니”…대안 마련돼야

인구감소지역은 2026년 재지정된다. 인구 증가로 소멸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지자체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전체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절반가량인 107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기금의 배분 대상이다.

광역 시도 산하에 인구소멸지역으로 선정된 시군구의 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지원금을 배정받는다. 더 많은 지원금을 받기 위해 광역 시도는 산하 시군구가 계속해서 인구소멸지역으로 선정돼야 한다. 반대로 산하 시군구들이 인구소멸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인구감소지역에서 벗어나면 해당 시도는 지원금을 덜 받는다.

박관규 시도지사협의회 정책연구센터장은 “소멸지역으로 지정된 지자체들은 10년 동안 기금을 통해 지원받는데, 만약 인구가 늘어 소멸지역으로 지정되지 않는다면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며 “인구가 늘어난 지자체에 대해서도 지원받을 수 있는 장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차미숙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년 인구감소지역을 재지정하는데, 소멸지역에서 벗어난 지자체가 있다면 앞으로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며 “그런 지자체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연착륙시키는 방안에 대해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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