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의 ‘새 효자’가 태어나다, 강원도형 어르신 병원동행 서비스 체험기

['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 강원도 구석구석 ‘병원 동행’ 서비스, 만족도·재이용률 높아

춘천(강원)=머니투데이 더리더 신재은 기자 2024.05.02 09:16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은 ‘정책’의 기획과 실행 능력으로 평가된다. 한정된 예산으로 얼마큼 효율적인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주민 삶은 크게 달라진다. 우리 동네에 ‘안심가로등’이 설치되는 것부터 출산과 양육 지원까지 모두 정책의 영역이다. ‘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은 기자가 직접 정책 현장을 찾아가는 코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해당 정책의 실효성을 검증한다. ‘더 좋은 정책’을 위해 대안을 제시, 독자들과 정책 대상자들에게 사랑받는 코너로 자리 잡는 게 목표다.
▲어르신 병원동행 서비스 현장 모습. 병원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동행매니저와 어르신이 함께 택시를 타고 있다./사진=신재은 기자

“아버님, 저 도착했어요. 제가 모시러 올라갈까요?”

비 예보가 있던 지난 4월 15일 오전 10시, 강원도 춘천시의 한 골목에서 ‘어르신 병원동행 서비스’ 동행매니저(이하 매니저)가 한 어르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통화를 마친 최승길 어르신(80세)이 집 앞에 대기 중인 매니저를 만났다. 이들이 만난 이유는 어르신의 병원 진료 때문. 기자는 이날 두 사람의 병원 방문길을 동행했다.

매니저가 미리 호출한 택시를 타고 두 사람은 강원대학교병원으로 이동했다. 매니저는 택시 안에서 “아버님, 오늘은 항암 치료 진행하시고 나서 몸이 어떤지 확인하는 날이에요. 피검사랑 CT 촬영 할 거예요”라며 병원에서 받을 검사 내용을 짚어줬다.

▲동행매니저와 어르신이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사진=신재은 기자

10여 분 후, 택시가 강원대학병원에 도착했다. 매니저는 자연스럽게 어르신을 부축했다. 어르신은 “검사 때문에 아침도 못 먹고 항암 약을 먹어서 어지러워”라며 매니저에게 의지해 걸음을 옮겼다. 매니저는 어르신을 의자로 부축한 후 자연스럽게 키오스크로 접수와 수납을 마쳤다.

피검사와 X-ray 촬영, CT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병원 1, 2층을 오가야 했다. 어르신은 “매니저가 도와줘서 검사 잘 받는 거지. 이 병원에 여러 번 왔어도 아직 순서며 뭐며 헷갈려요”라고 말했다.

검사를 기다리는 중간중간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요즘 몸 상태는 어떤지, 밥은 잘 챙겨 드시는지 자식과 부모처럼 오가는 대화 속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2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모든 검사가 끝났다.

“아버님, 이제 검사 다 끝났어요. 집으로 가요.” 매니저는 어르신을 부축해 택시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밖엔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매니저는 우산을 들고 어르신을 부축해 택시에 올랐다.

어떻게 이 서비스를 알게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르신은 “시청 복지과의 소개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이 서비스를 처음 알게 됐는데 벌써 14회 정도 이용했다”며 “병원 예약 전날 전화로 확인도 해주고 같이 동행해줘 든든하다. 2주 뒤에 있을 병원 진료 때도 또 이용할 것”이라며 웃었다.



자택부터 병원 진료실까지 모든 과정을 동행


▲동행매니저와 어르신이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사진=신재은 기자

기자가 동행한 어르신 병원동행 서비스는 춘천을 비롯해 강원도 14개 시군에서 운영되고 있다. 홀로 병원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과 병원에 동행해 보호자의 부담을 줄여주고 노인돌봄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최근 키오스크를 이용해 접수 및 수납을 진행하는 병원이 늘면서 병원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이 많아졌다.

매니저가 접수·수납 및 각종 검사실 이동 안내, 병원 예약, 처방전 및 약품 수령과 투약 지도 등 병원 방문의 전 과정을 함께 한다. 진료 내용을 정리해 보호자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강원도의 어르신 병원동행 서비스는 65세 이상 재가 노인이 대상이다. 병원동행 서비스 운영에 무리가 없다면 장보기, 은행·관공서 방문 등 필수 활동도 함께할 수 있다. 해당 지역 및 편도 2시간 이내의 관외 지역까지도 동행이 가능하다. 서비스 수행기관인 춘천남부재가노인센터 소속 이수정 사회복지사는 “강남세브란스병원 등 서울까지 동행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까지 이동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려운 어르신들이 신청하시곤 한다”고 설명했다.

이용료는 1시간에 5000원, 추가 30분당 1500원이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은 1시간당 1000원, 추가 30분당 500원을 지불하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교통비는 이용자 부담이라 도보 및 버스, 택시, 기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동한다. 시간당 2만원 정도인 사설 서비스에 비해 저렴하다.



강원도, 올해 14개 시군으로 병원동행 서비스 확대



강원도는 특히 어르신 병원동행 서비스가 필요한 지역이다. 신보미 강원도청 보건국 노인돌봄팀장은 “우리 도의 노인 인구가 높을 뿐만 아니라 병원동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 사업자도 없어 정책에 대한 도민의 요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도는 지난해 어르신 병원동행 서비스의 필요성을 느끼고 광역 단위의 공통 지침을 마련했다. 이어 춘천을 포함한 3개 시군을 시범 사업지로 지정해 운영 노하우를 쌓았다. 올해부터는 14개 시군으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서비스 만족도와 재이용률은 높다. 지난해 243개 지자체가 제출한 대표 혁신사례 중 1차 평가 결과 ‘우수’로 선정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신 팀장은 “올해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는 4개 시군은 자체적으로 취약 노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 곳”이라며 “수요를 파악해 원하는 지역은 언제든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쉬운 병원 이용, 진료 내용 안내…심리적 위로도 돼


▲대학병원 키오스크 접수수납기. 대부분의 대학병원이 키오스크를 활용해 접수 및 수납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신재은 기자

이용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지난해 시범 운영한 6개월 동안 1989건의 서비스가 진행됐다. 재이용률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홀로 병원을 방문할 수밖에 없는 어르신뿐만 아니라 자녀 등 보호자가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 타 지역에 거주하거나 근무로 인해 부모님 진료에 동행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2일 서비스를 신청한 보호자는 “아버님께서 작년부터 이용했는데 제가 바쁠 때 매니저가 병원 업무를 대신해줘 마음 편하게 제 일을 볼 수 있다.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이용 소감을 밝혔다.

이 사회복지사는 “매니저가 어르신의 다음 진료 예약을 돕거나 진료 내용을 보호자에게 전달해드리는데 이것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것이다. 매니저와 동행한다는 사실 자체로 외로움을 덜어주기도 한다. 조정숙 매니저는 “거동이 원활한 어르신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와 함께 병원을 오고 간다는 점만으로도 위로와 응원을 받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서비스를 이용한 한 어르신은 “매니저가 봄내콜(춘천시 교통약자 전용 콜택시) 신청 방법도 알려줘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특히 장보기도 함께 할 수 있어 삶에 활력도 되고 아프기 전 일상으로 되돌아간 것 같아 우울감도 줄었다”고 말했다.

복지 현장에서는 연계기관 네트워크 강화 등 촘촘한 사회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호자가 없거나 관계 단절인 어르신이 많아져 지역사회의 보호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 사회복지사는 “서비스 제공 시 어르신 개인정보에 관한 부분이 필요할 경우가 있다”며 “대학병원 및 치매안심센터, 행정복지센터 등 관내 유관기관이 참여하는 협의체나 연락 체계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인 인구 증가에 따라 돌봄이 필요한 고령·독거노인 인구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르신 병원동행 서비스 등 노인과 상호작용하는 서비스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jenny091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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