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이들은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고립·은둔 청년 등으로 불린다. 통상적으로 3개월 이상 방이나 집 등 제한된 공간에 머물며 사회적 교류 없이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 경제활동을 포기한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과 다른 점은 제한된 공간에서 지내며 사회적 교류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방안’에 따르면 ‘고립 청년’은 타인과의 유의미한 사회적 관계가 부족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지체계의 사회적 관계 자본이 결핍된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방이나 집과 같은 제한된 물리적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은둔 청년’으로 설명할 수 있다.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고립·은둔 청년들이 여러 이유로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고립과 은둔으로 이어진 경우가 있다”며 “상담이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지지체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립·은둔 청년 규모 약 51만6000명 추정 고립·은둔 청년의 수는 조사 기관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결코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7월부터 전국 19~39세 청년 5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고립·은둔 청년은 전체 응답자의 5%였다. 이에 복지부는 전체 고립·은둔 청년 규모를 약 51만6000명으로 추정했다.
5월 7일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2022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19~34세 청년 중 ‘임신·출산·장애 등 특별한 이유 없이 거의 집에만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2.4%로, 청년 인구에 적용하면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은둔 청년은 24만7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202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통계진흥원이 수행한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25세에 은둔을 시작한 사람 1인당 사회적 비용 추정치는 약 15억원에 달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은둔 청년 한 명당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을 계산하면 최대 375조에 달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고립, 은둔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은둔생활의 이유로 꼽은 것 중 45.6%가 ‘기타’이다. 청년들이 각기 다른 이유로 고립된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취업 어려움 35% △인간관계 어려움 10% △학업 중단 7.9% △진학 실패 1.5% 순이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고립·은둔을 선택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은다. 팬데믹 여파로 실직하거나 구직 기간이 길어지는 한편 사회적 소통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솔지 동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에 우울감 등 심리정서적 문제 요소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코로나 시기 대인관계에 문제를 겪으며 문제가 시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행기 단계에서 실패를 경험한 후 이를 극복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교육을 이수하고 경제활동에 돌입하는 과정에서 취업에 실패하거나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직장에서 부당한 경험을 하는 등이다.
고립·은둔 청년의 큰 문제는 이들의 고립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우리보다 앞서 히키코모리 문제를 경험한 일본에서는 1990년대 취직 빙하기에 구직활동을 포기하고 고립된 세대가 부모님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5080 문제’로 1990년대 당시의 청년 히키코모리가 50대가 된 지금까지 80대의 부모님 연금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일본 내각부가 2016년 발표한 ‘청년생활 조사’에 따르면 15~39세 히키코모리는 약 56만 명이며, 2019년 발표한 ‘생활상황 조사’에 따르면 중장년 히키코모리는 약 61만 명이다.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복지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방문석 국민통합위원회 사회문화 분과위원이 9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사회적 고립에서 일상으로 분과과제 정책 제안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고립·은둔 청년 대책 세우는 정부
정부는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 대책을 내놓았다. 9월 19일 당정은 ‘청년 복지 5대 과제’를 발표하며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주요 청년 복지 정책 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정부가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정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건복지부는 고립·은둔 청년에 대해 원스톱 통합지원 사업을 처음으로 실시한다. 내년부터 4개 시·도를 대상으로 시범 시행하며, 2026년 전국 확대를 목표로 한다. 복지부 인구정책총괄과 담당자는 “전국 단위로 진행하는 첫 사업이다 보니 시범사업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해나가며 체계적이고 꼼꼼하게 사업을 설계할 계획”이라며 “전국 확대를 위해서는 예산 확보도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원스톱 통합지원 사업의 큰 골자는 ‘대상자 확인-유형화-사회 재적응 지원-사후관리’를 한 번에 진행한다는 점이다. 먼저 온라인 커뮤니티, 방문, 전화·문자 상담 등 각종 온오프라인 창구를 통해 고립·은둔 청년을 파악할 예정이다. 가족이나 주변인을 통해서도 대상자 파악 및 지원 신청이 가능토록 해 문턱을 낮췄다.
탈 고립·은둔 의지가 확인된 신청자를 대상으로 종합 평가를 실시하고, 평가 결과에 기초해 적합한 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계획해 제공할 예정이다.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심리·정신 상담을 진행하는 ‘자기회복 프로그램’, 독서·요리·신체·예술 활동 등을 통해 사회관계를 맺는 ‘사회관계 형성 프로그램’, 공동주거 공간에서 은둔 청년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생활 프로그램’ 등이다. 가족 지원과 일 경험 프로그램 등도 있다.
사업은 시범사업 지역 내 가칭 ‘청년미래센터’에서 진행되며, 전담인력은 각 센터당 8명이다. 복지부는 서비스가 종결된 이후에도 정기 면담, 탈 고립·은둔 청년 모임 등을 운영해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보다 앞서 시작한 지자체 고립·은둔 청년 조례 제정
지자체는 정부보다 앞서 고립·은둔 청년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고립’을 다룬 조례는 148건이며, 이 중 ‘고립 청년’과 관련된 조례는 17건이다. ‘은둔’을 다룬 조례는 총 31건으로 집계됐다.
광역의회를 기준으로 현재 17개 시·도 광역의회 모두 ‘고립 가구’, ‘고립 청년’ 또는 ‘은둔형 외톨이’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세종시의 경우 ‘세종특별자치시 사회적 고립 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10월 16일 소관위를 통과한 상태다. 서울시, 대구시, 인천시, 제주시가 고립 청년과 관련된 조례를 제정했고, 광주시, 대전시, 부산시, 인천시, 전남도, 전북도가 은둔형 외톨이 관련 조례를 만들었다.
서울시는 적극적으로 고립·은둔 청년 문제에 대응하는 지자체 중 하나다. 지난해 5월~12월까지 전국 최초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1월 시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서울 청년 중 고립·은둔 비율은 4.5%로 추정된다. 서울시 인구에 적용하면 최대 12만9000명이다. 서울에 사는 만 19~39세 청년 표본 5221가구와 청년 5513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시는 이 조사를 바탕으로 4월 25일 고립·은둔 청년 종합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서울시의 종합지원대책의 특징은 개별 사업 단위가 아닌 추진방향과 세부 전략을 갖춘 정책 모델이라는 점이다. △발굴부터 사회복귀까지 원스톱 지원·관리 △고립·은둔에서 벗어나도록 따뜻한 사회 분위기 조성 △2025년부터 지역단위 대응 집행 로드맵 마련 등 3가지 방향이다.
주민센터 등 관을 비롯해 고립·은둔 청년의 가족, 친구 등도 상담 및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발굴 이후 고립·은둔 청년에 대해 진단을 실시하고 유형에 따라 맞춤형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자아 및 진로 탐색, 대인관계 기술 훈련, 자기이해 향상 프로그램 등이 제공된다. 시는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지속적인 멘토링 및 사후 모니터링을 진행할 계획이다. 2025년부터 지역단위로 사업을 집행하기 위한 지역밀착형 인프라도 확충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9월 기준 활동형 고립 청년 165명, 활동제한형 고립 청년 226명, 은둔 청년 111명에게 맞춤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 4월 24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고립 청년 활동공간인 은평구 두더집 현장을 방문한 모습/사진제공=서울시청
광주광역시는 2019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등 선제적으로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 2020년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지난해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를 열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부산시는 2021년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지난해 9월 부산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산 거주 18~34세 청년 중 은둔형 외톨이는 최소 7511명에서 최대 2만2507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은 수립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 관계자는 “현재 부산연구원에서 기본계획 수립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11월 초에 연구가 종료되면 이것을 기본으로 추진계획을 수립, 내년부터 실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기도는 고립·은둔 청년 정책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기본적인 초안만 준비됐고, 내년도 사업으로 준비 중이라는 것이 도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기도청 청년기획과 관계자는 “예산을 요청한 상태”라며 “실태조사와 시범사업 등도 진행해야 하기에 최대한 빨리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고립·은둔 청년을 대상으로 한 조례도 부재하다. 유호준 도의원이 6월 1일에 대표발의한 ‘경기도 사회적 고립 청년 지원 조례안’은 2020년 제정된 ‘경기도 고독사 예방 및 사회적 고립 가구 지원 조례’와의 충돌 문제로 계류됐다. 경기도의회에는 10월 11일 제정된 ‘경기도 은둔형 청소년 지원에 대한 조례’만 있을 뿐이다. 유 의원은 “고립·은둔 청년의 고립은 가구 내에서 청년 1명만 고립된 경우가 많다. 기존의 조례는 고독사와 고립 가구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대상과 범위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대구시는 실질적 정책이 미미하다. 작년 김태우 대구시의원이 발의한 ‘대구광역시 사회적 고립 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가 통과됐지만 실태조사나 실질적 지원은 없다. 양은숙 대구 달서구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10월 19일 제308회 달서구의회 임시회 5분 발언에서 “현재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도 계획하지 않아 사실상 실질적인 대책이나 지원은 미흡한 상황이고, 그러는 사이 고립 은둔형 청년들은 계속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인 지원·관리 필요…사회적 인식 개선돼야
▲ 서울시가 고립·은둔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 활동 모습. 관계형성, 신체회복 프로그램 등이 있다./사진제공=서울시청
전문가들은 고립·은둔 청년 개개인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 인력 양성이 필수적이다. 김성아 부연구위원은 “고립·은둔 청년의 회복부터 사회복귀까지 총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적 규모의 고립·은둔 청년 지원도 필수적이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고립·은둔 청년의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지자체 단위의 세밀한 실태조사와 이를 근거로 한 정책이 동반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솔지 교수는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좋지만 기존에 전국 단위로 운영되는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서 고립·은둔 청년을 대상으로 한 사업을 확대하는 것도 방안”이라고 제언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낙인이 아닌 따뜻한 시선이다. 직접 고립·은둔 청년을 만났던 전문가들은 이들이 문제아도, 잠재적 범죄자도 아닌 도움이 필요한 일반 청년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스스로의 힘으로 고립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뿐이다. 김성아 부연구위원은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가족이나 지역사회가 그들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않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받아주는 사회적 인식 개선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