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막기 위한 ‘영양형 인구정책’ 필요”…영양군의회의 실험

[열린 정책 소통합시다]청년 귀농부부에 폭넓은 혜택 제공, 정부도 보육·교육 지원 확대해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대담 서동욱 편집장 정리 신재은 기자 2023.06.01 09:3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현재와 같은 저출산 현상이 계속된다면 2075년엔 한국이 소멸될 것이다.” 세계적 인구학자인 콜먼 옥스퍼드대 교수는 우리나라가 ‘인구소멸 1호 국가’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전망했다. 작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일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은 0.78명으로 세계 꼴찌다.



‘영양군이 사라진다’


▲김석현 영양군의회 의장/사진=영양군의회 제공

경상북도 영양군은 인구절벽 위기인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심각한 지역이다. 올해 4월 기준 영양군의 인구는 총 1만5920명. 섬 지역인 울릉군을 제외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다.

영양군의 인구 감소 수치는 절망적이다. 2022년 영양군의 출생 인구는 32명이다. 2023년 4월 기준으로 10명이 출생했다. 60세 이상 인구는 52%에 가깝다. 2000년 인구소멸위험지수 0.608로 ‘소멸주의’로 분류됐던 영양군은 2020년 0.162로 ‘소멸고위험도시’가 됐다.

‘소멸’되지 않기 위한 영양군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영양군의회는 ‘영양군 출산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 개정을 통해 신생아 지원 대상 범위를 최대한 확대, 군내 인구 유입과 정착을 촉진하도록 힘썼다. ‘영양군 인구증가정책 지원 조례’를 통해서는 인구 정책 사업을 포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기피시설로 치부되는 교정시설 유치 노력이나 양수발전소 유치에 필사적인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김석현 영양군의회 의장은 머니투데이 <더리더>와의 인터뷰에서 “영양에 정주할 수 있게 하는 경제적 여건도, 아이를 낳고 기를 인프라도 부족한 현실이지만 ‘영양형 인구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입법활동과 정책 개발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생애주기별 지원 통해 ‘살고 싶은 영양군’ 만들어야



▲간담회 중인 김석현 영양군의회 의장/사진=영양군의회 제공

김 의장은 “주소지 이전을 통한 인구 증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주 여건이 개선된 지역으로서의 성장, 지속 가능한 인구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본질적인 인구 증가를 위해선 생애 주기별 필요에 부응하는 출산, 보육, 교육, 주거, 의료, 경제활동 지원 등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김 의장은 △출산 및 보육에 따른 비용 지급 △응급의료체계 정상화를 통한 의료공백 최소화 △고품질 고부가가치형 농업 정책 등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국가 차원의 금전적 지원에도 저출산 현상이 계속되자 출산장려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와 관련해 김 의장은 “현금 지원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현금 지원 없이는 아이를 낳고 보육하기 힘든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의장은 “특히 영양군의 경우 출산 가능 인구의 직업은 대부분 공무원, 농협직원, 건강보험공단직원 등 직장인”이라며 “그들의 월급이나 경제적 상황을 봤을 때 출산장려금이 출산 및 보육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출산장려금을 포함한 출산 장려 정책은 결국 ‘영양의 미래에 대한 투자’,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이며 재원의 크기로 논할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출산장려금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보육과 교육에 대한 지원을 주장한다. 가령 영유아를 대상으로 365일 탁아소를 운영해 부모의 보육 걱정을 덜어주거나 사립학원과의 양해각서(MOU)를 통해 도농 간 사교육 공백을 채우는 것이 그 예이다. 김 의장은 “젊은 인구를 유입하려면 선심성 정책이 아닌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출산, 보육, 교육 여건 등을 최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부가가치 농업 지원해 ‘영양형 농업’ 확산


▲2022년 8월 고추품평회에서 김석현 영양군의회 의장이 농가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영양군의회 제공

김 의장은 ‘영양형 농업’이라 부를 수 있는 농업 정책의 변화를 주장한다. 핵심은 두 가지다. ‘고부가가치 작물 보급을 통한 경제적 안정성 제공’과 ‘청년농업인들에 출산장려금, 보육비 지원 등과 같은 출산 정책 혜택 제공’이다. 김 의장은 “청년 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출산 정책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고소득 맞춤형 농업을 통해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하는 것이 청사진”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영양군 하면 떠오르는 고추 품종 중에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품종을 지원하거나 고소득 과일 작물을 지원해 농가 수입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영양군의회는 지방 세수 확보를 위해 ‘영양군 풍력발전단지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및 출자에 관한 조례’(가칭)를 발의할 예정이다. 영양군 풍력발전에 대한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 30% 정도의 지분 투자를 한다면 이를 통해 발생하는 재원을 인구 증가 정책 등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김 의장은 “전기요금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이기에 수익성이 있을 것”이라며 “신재생에너지로서의 경제 구조에 주도적으로 대응하면서 인구문제와 지방분권을 더불어 해결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장은 “영양군의 인구 감소,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해선 개혁에 가까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제 해결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과도한 절차 및 규제가 아닌 지자체의 자율성에 맡기는 것이 지역형 인구 증가를 돕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 의장과의 일문일답.

-영양군의 인구 문제가 심각하다. 원인을 무엇으로 보는가
▶지난해 영양군의 출생인구는 32명이고, 올해 4월까지는 10명이 출생했다. 섬인 울릉군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지자체다. 60세 이상 인구가 52%에 가까울 정도로 노령화됐다. 현재의 영양군은 교통, 의료 등 정주 여건이 부족하다. 영양군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4차선 도로가 없고, 고속도로와 철도가 없어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린다. 의료 수준도 심각하다. 영양군의 유일한 야간 당직 의료기관은 영양병원 하나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인근 지역으로 달려가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소원한 실정이다.

-인구 감소에 따른 해결 방안을 무엇으로 보는가
▶우리나라 전체가 인구 절벽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지자체는 살기 좋은 정주 여건을 제공하는 적극적 인구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출산, 보육, 교육, 주거, 의료, 경제 등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부분을 도와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살고 싶은 영양군’을 만들어야 한다.

-출산, 보육, 의료 여건 개선의 구체적인 방안은
▶가장 먼저 출산장려금 등을 통해 출산 직후에 필요한 목돈을 보장해줘야 한다. 둘째, 보육 부문에 있어서 영유아기 때 부모의 보육 걱정을 덜 수 있는 탁아소 운영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셋째, 군 차원에서 사립학원과의 양해각서를 통해 교육 여건을 개선할 수도 있다. 넷째, 지역의 병원과 군이 협업해 군은 예산을 지원하고 의료기관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지방의회로서 입법활동에 나설 것이다.

-인구 정책 중 금전적 지원에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많은 청년들이 결혼 및 출산을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로 경제적 문제를 꼽는다. 영양군의 경우, 청년 인구의 대부분이 신규 공무원, 농협 직원, 건강보험 공단 직원 등인데 이들의 급여는 출산 및 보육하기 빠듯한 수준이다. 때문에 출산 및 보육에 기본적인 도움이 되는 금전적 지원은 필요하다. 이는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 미래의 영양군에 대한 투자다.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선 경제활동에 대한 부분도 중요할 텐데
▶고품질, 고부가가치 작물을 재배토록 하는 농업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이른바 ‘영양형 농업’이다. 산지형 과일단지를 조성하거나 프리미엄 고추 품종을 재배하는 등의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동일한 면적에서 높은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청년 귀농 부부를 대상으로 출산 혜택, 폭넓은 청년지원 혜택을 통해 출산 및 육아 부담은 줄여주는 방법이다.
▲2022년 영양고추 H.O.T 페스티벌에 참석한 영양군의회 의원들/사진=영양군의회 제공

-인구 문제 해소를 위해 양수발전소 유치를 추진한다고
▶전 영양군민이 양수발전소를 찬성하고 있다. 양수발전소 유치가 확정된다면 936억원 규모의 지역 발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150여 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와 지방 세수 확보도 가능하다. 수변 공원, 카페, 상부지 전망대 등 관광명소로도 활용할 수 있다. 영양군은 대부분 산지로 이뤄져 양수발전소 건설에 적합하고 군내 풍력발전단지도 있어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영양군의회도 지난 5월 8일 ‘양수발전소 신규건설지 지정 촉구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양수발전소 유치 외에도 풍력발전단지 특수목적법인 설립에 나선다고
▶현재 영양군의 풍력발전단지는 민간사업자가 운영한다. 영양군의회는 영양군 풍력발전단지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및 출자에 관한 조례를 발의할 예정이다. 특수목적법인에 30% 정도의 지분 투자를 진행한다면 전기세 상승 등으로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본다. 이 재원을 인구감소 정책 등에 사용한다면 더 많은 혜택을 군민에게 환원할 수 있을 것이다. 풍력발전단지 특수목적법인 설립은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 신재생에너지로의 경제 구조에 주도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이다.

-인구 정책과 관련해 중앙 정부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영양군에서 인구 증가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자 열거한 사항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선심성 포퓰리즘으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지방자치단체가 직면한 절박한 상황에 대해 정부 차원의 이해와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영양군은 개혁에 가까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는 지자체가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진행할 때 적극적으로 규제를 혁신했으면 한다. 영양군의회는 군민의 대의기관으로 시대에 맞는 정책 개발을 통해 ‘살고 싶고 머물고 싶은 영양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jenny091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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